오상분결(五上分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중생에게 5종의 번뇌가 있어 色界·無色界에 결박됨으로 해탈할 수 없게 하는 것. 色貪(色愛)結·無色貪(愛)結·掉擧結·慢結·無明結이 그것.
참고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 · 鳥 · 蛇 · 狐 · 鰐 · 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惑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및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報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의 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惑(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染·漏·結使·結·縛·纒·軛·暴流·取·蓋·繫·使·垢·株杌·燒害·箭·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體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體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枝末번뇌의 두 번뇌로 나눈다.
근본번뇌라 함은 번뇌의 體 그것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로, 本惑·根本惑 혹은 다만 번뇌라고도 부르며, 有部에서는 隨眠이라고도 한다. 단 經部에서는 隨眠을 번뇌의 종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번뇌의 現行(현재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을 纒(전)이라 한다. 유식종에서도 隨眠이란 번뇌의 종자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근본번뇌에 貪·瞋·癡·慢·疑·見(惡見)의 六번뇌(六隨眠)가 있는데, 見을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의 五見으로 나누어 貪 등의 다섯과 합해서 十번뇌(십隨眠, 十使)라고 한다. 이 가운데 貪 등의 다섯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에 五鈍使(五惑), 五見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五利使라고 한다. 또 六隨眠 가운데 貪을 欲界의 탐과 上二界(색계·무색계)의 貪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欲貪·有貪이라고 하며 합하여 七隨眠(七使)이라 하고, 혹은 十隨眠 중에 貪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欲貪·色貪·無色貪으로 하고 十二隨眠(十二使)이라고도 한다. 유식종에서는 십종의 근본번뇌 가운데 제七識과 상응하여 항상 일어나는 我癡(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나의 相에 어두운 번뇌로 無明을 말함)·我見(我執을 말하며 有身見의 일부)·我慢(나를 집착하고 나를 믿고 우쭐하는 거만)·我愛(나를 집착하여 나에 탐착하는 것)의 넷을 四煩惱(四根本煩惱, 四惑)라고 한다. 또 탐·진·치는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근본(즉 因)이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三不善根·三毒·三垢·三縛 등이라고 한다.
지말번뇌라 함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隨惑·枝末惑·隨煩惱라고도 한다. 단 수번뇌란 말은「心王에 붙어다니는 번뇌」란 뜻으로 풀어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지말번뇌에는, 구사종에서는 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無慚·無愧·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睡眠·惡作의 十九를 말하며, 유식종에서는 睡眠·惡作을 버리고 失念·散亂·不正知를 더하여 二十으로 하기도 한다. 業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惑을 發業의 惑(주로 다음에 말하는 分別起의 혹으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無明이 그것이다)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서 迷界의 중생을 윤택하게 하고 삼계의 중생을 받게 하는 혹을 潤生의 혹(다음에 말하는 俱生起의 번뇌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貪을 主로 한다)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해서 번뇌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서 나누면, 二障 공히 각기 분별기와 구생기가 있다. 邪師·邪敎·邪思惟 등 밖으로부터의 緣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분별기의 혹이라고 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을 구생기의 혹이라고 한다. 십근본번뇌중에서, 의심과 邪見과 見取見과 戒禁取見과의 四는 분별기뿐이며, 다른 六과 二十隨惑은 양쪽에 모두 공통한다. 번뇌를 여의는 것을 離垢, 번뇌가 없는 것을 無垢, 번뇌가 다한 것을 漏盡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漏盡比丘, 또 漏盡하여 마음에 진리를 了解하는 것을 盡漏意解라고 한다.
색계(色界) : 色天 · 色行天이라고도 한다. 欲界 · 無色界와 함께 三界의 하나이다. 淨妙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로 四禪(四靜慮)을 닦은 사람이 死後에 태어나는 天界, 또 이와 같은 有情의 생존을 말한다. 欲界 위에 있으며 果報의 優劣에 따라 四禪天으로 크게 나누며 더욱 자세히는 모두 17天(혹은 16天 · 18天)으로 나눈다.
무색계(無色界) : 無色天 · 無色行天이라고도 한다. 欲界 · 色界와 합하여 三界의 하나. 곧 물질을 초월한 세계로 물질적 비중이 큰 것(色想)을 厭離하여 四無色定을 닦은 이가 死後에 태어나는 天界. 또 그와 같은 有情의 생존을 말한다. 물질이 없으므로 場處(空間)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간적인 高下의 차별은 없지만 果報의 勝劣에 따라 4계급으로 나눈다. 곧 닦은 四無色定에 따라 이것을 空無邊處 · 識無邊處 · 無所有處 · 非想非非想處의 四無色界로 나누고 三界를 九地로 나눌 때는 후반의 넷을 四地라 한다. 그러므로「空無邊處地」라 하여「地」자를 덧붙여서 부르기도 하고, 또 天界에 속하므로「空無邊處天」이라 하여「天」자를 첨가하여 부르기도 하며, 그 가운데 非想非非想處天은 世界(有情의 生存)의 最高位라 하여 有頂 · 有頂天이라고도 한다. 無色界의 有情들은 男根은 없으나 모두 남자이며 그 壽命은 차례로 2 · 4 · 6 · 8萬 劫을 산다고 한다. 또 分別論者는 無色界에도 細色이 있다고 주장한다.
해탈(解脫) : ① 毘木叉라고 음역. 풀려오다. 번뇌에 묶인 것에서 풀려 미혹의 苦에서 풀려서 나오는 것. 미혹의 세계를 넘는다는 뜻으로 度脫이라고도 한다.
② 본래는 열반과 같이 실천도의 究極의 境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서 고찰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有爲解脫(아라한 곧 해탈한 자가 확실히 了解하여서 인정하는 마음의 작용. 곧 勝解)과 無爲解脫(열반), 혹은 性淨해탈(중생이 본래의 모습에서 번뇌의 汚染에서 벗어나서 청정한 것) 또 障盡해탈(현실에서 번뇌때문에 그 본래의 청정이 오염되어 있어 그 번뇌를 끊고 해탈할 수 있는 것) 혹은 心해탈(마음에 탐애를 여의는 것) 또 慧해탈(지혜에 의하여 무명 즉 無智에서 벗어나는 것) 혹은 慧해탈(아라한이나 아직도 滅盡定이 아닌 것)과 俱해탈(아라한이 滅盡定을 얻는 것) 혹은 時해탈과 不時해탈로 둘로 나누어 이것을 二해탈이라고 한다. 또 煩惱해탈·邪見해탈 등의 十해탈을 열거하기도 한다.
③ 귀로 불법을 듣고 해탈하므로 「귀를 기울이여 불법을 듣는다」고도 한다. 해탈의 眞味를 解脫味라고 한다. 그러나 해탈의 경지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므로 一味라고도 한다. 소승에선 해탈하는 데 아주 빠르면 3년이 걸린다고 하며 3년 해탈이라고도 한다. 또 여래를 眞解脫(진실한 해탈)이라 일컫는 것은 아라한(소승의 해탈)은 일부분의 해탈로 진실한 해탈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해탈을 하여도 그것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자는 해탈의 깊은 구렁에 떨어진 자라고 한다.
색탐(色貪) : 色界에서의 탐애의 번뇌를 가리킴. 이 色은 오상분결(五上分結 : 色愛·無色愛·掉·慢·無明)의 하나. 上分結이라는 것은 色界·無色界에 중생을 속박시키고 있는 번뇌라는 의미임.
무색탐(無色貪) : 欲界의 貪을 欲貪, 無色界·色界의 貪을 有貪이라 하고 有貪을 둘로 나누어 色貪과 無貪이라 한다. 또 無色界의 禪定境界에 탐착하는 無色愛結을 말한다. 五上分結의 하나.
도거(掉擧) : 마음이 경조(輕躁)한 것. 경조(浮動하여 조용해지지 않는 것).
만결(慢結) : 九結의 하나. 慢이라고 하는 번뇌. .....구결(九結)→九種의 결박이란 뜻. 중생을 결박하여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9종의 번뇌로, 즉 愛結(사랑) · 恚結(성냄) · 慢結(자만하는 것) · 無明結(무지) · 見結(그릇된 견해) · 取結(집착) · 疑結(의심) · 嫉結(질투) · 慳結(인색함) 등을 일컫는다.
무명결(無明結) : 九結의 하나. 無明을 뜻함. 結은 결박의 뜻이고,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번뇌가 중생을 결박하여 生死의 苦海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結이라 한다.
결(結) : 범어 bandhana. 또는 samyojana의 번역. 중생을 迷惑의 경계에 結縛한다는 뜻이다. 번뇌의 다른 명칭이며 結使라고도 한다. ① 三結. 有身見結·戒禁取見結·疑結의 三과 五見 및 疑의 六번뇌가 이 가운데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는 때에 預流果에 이른다」고 하는 經說에 의해 三結이 다하는 때에 見惑의 모두가 단절된다고 한다. 愛·恚·無明을 三結이라고 한다. ② 四結. 四身結이 그것. ③ 五結. 五下分結과 五上分結이 있다. 전자는 중생을 欲界에 결박시키는 번뇌이다. 곧 有身見·戒禁取見·疑·貪欲·瞋恚의 五를, 후자는 色界·無色界의 上二界에 결박시키는 번뇌이니, 色貪·無色貪·掉擧·慢·無明의 五를 가리킨다. 또 따로 貪·瞋·慢·嫉·慳을 五結이라고도 한다. ④ 九結. 愛·恚·慢·無明·見·取·疑·嫉·慳의 九이니 이는 六根本煩惱(貪·瞋·癡·慢·疑·惡見의 六종 번뇌. 이 가운데 惡見을 다섯으로 나누어 身見·邊見·邪見은 見結이라 하고 見取見과 戒禁取見은 取結이라 한다.)에 嫉과 慳을 더한 것이다. 大毘婆沙論 卷五十에는 九結의 體(自性)을 합하여 百이라고 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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