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지부(化地部)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소승 20부의 하나. 佛滅 後 3백년 경에 一切有部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일파. 磨醯奢娑迦·彌喜捨娑柯라 음역. 正地·敎地·大不可棄라 번역함. 이 파의 初祖를 不可棄라 한다. 불가기는 본래 국왕이었으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有部宗에 들어가서 불법을 넓히다가 뒤에 다른 일파를 세우다. 이 部의 이름은 派祖가 국왕이던 데서 나왔으니, 국왕은 국토, 곧 地를 化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이렇게 이름하다. 교리는 大衆部와 거의 같으며, 現在有體過未無體說을 세우고, 見道에서 空無我와 行相으로써 四諦를 일시에 現觀함을 말하며, 또 中有를 부정하고, 五識에 雜染의 힘이 있다고 하며, 九無爲를 세워서, 預流果退·羅漢果不退를 말한다. 賢首는 이 部를 法無去來宗이라 함.
참고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對. 이 교법 중에서 敎·理·行·果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인 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觀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는 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의 八宗判, 法藏의 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의 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 ․ 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유부(有部) : 설일체유부의 약칭. 소승종의 일파. 범어 음역은 薩婆多. 有爲·無爲의 일체법이 모두 實有에서 세웠기 때문에 설일체유부라고 말한 것이다. 불멸후 300년 초에 상좌부에서 분립된 것임.
대중부(大衆部) : 범어 Mahasamgika의 번역으로 摩訶僧祇部라 음역. 두 가지 流派가 있다.
① 하나는 根本結集時의 대중부다. 窟內의 結集에 참여한 대중을 上座라 하는데 대해서 窟外 결집에 참여한 佛弟子의 일단을 대중부라 하며, 이것이 小乘二十部의 根本 二部다. 佛滅 후 백년경 學僧 大天比丘가 처음으로 대중부의 本義를 확립하고 그 뒤 그 部에서 다시 異部를 세웠다. 2백년경에 대중부에서 一說部·說出世部·鷄胤部의 三部가 나오고 뒤이어 多聞部·說假部가 나왔다. 또 第二百年의 끝에는 制多山部·西山住部·北山住部가 나와 대중부는 모두 九部로 되었다. 본래 二部로 분열이 있은 뒤, 상좌부는 쫓기어 히말라야지방에 옮겨 있었는데, 佛滅 후 第三百年初에 둘로 분열하여 說一切有部·雪山部(本上座部)로 나뉘었다. 다시 說一切有部에서 犢子部가 나뉘어 나오고 犢子部에서 다시 法上部·賢冑部·正量部·密林山部의 四部가 나왔다. 또 說一切有部에서 化地部가 나오고 化地部에서 法藏部가 나왔다. 佛滅 후 第3百年末에는 說一切有部에서 飮光部가 나오고, 第4百年의 처음에는 說一切有部에서 經量部가 나왔으며, 上座部는 이렇게 해서 도합 20部派가 되므로 이것을 小乘二十部라 부른다.
② 남방에서 전하는 것. 佛滅 후 1백년 경에 비야리의 跋耆비구가 10개조의 새로운 주장을 내세워 종래의 持戒法을 破하였으므로 長老 耶舍가 사방의 학승을 모아 비야리의 婆梨迦園에서 그 열가지의 옳고 그름을 평론했는데, 이때 이를 옳다고 한 동방 발기족의 自由寬容派를 일컬어 대중부라 한다. 이들은 그 뒤 백년간에 鷄胤部·一說部·說假部·多聞部·制多山部의 五分派를 내어 本派와 합해 모두 6部가 되었다.
견도(見道) :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는 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의 眞理)를 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位.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는 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修習하는 位. 見道와 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는 無學位·無學果·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位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를 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와 佛果를 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을 決擇이라 하며 見道는 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는 邪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를 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는 異生(곧 凡夫)의 生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를 正性離生·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공무아(空無我) : 苦諦四行相 가운데 두 가지. 오온(五蘊)의 법에 확실한 一相·異相이 없는 것을 空이라 말하고, 我와 我所가 없는 것을 無我라고 한다.
고제(苦諦) : 석존께서 講說하신 네 가지 진리. 즉 四諦중의 첫째.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생존은 모두가 괴로움이라는 진리를 말한다.
사행상(四行相) : 苦諦의 苦·空·無常·無我의 4종의 行相을 말하는 것.
행상(行相) : 心識의 각자 고유한 성능을 行相이라 함. ①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影像을 말한다. ② 대승에서는 주관의 認知하는 작용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影像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 ③ 隨行과 戒相. ④ 수행 방법의 모습을 말함.
사제(四諦) : ①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集諦·滅諦·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集·滅·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說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곧 三轉이란 제1轉 「이것은 苦諦(集·滅·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제2轉은 「이 苦諦(集·滅·道)는 徧知(永斷·作證·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제3轉은 「이 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眼·智·明·覺(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의 四行相을 假設하고 각각의 諦에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眼·智·明·覺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에 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② 有部敎學의 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諦의 하나를 觀하는데 4種의 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를 觀한다. 곧 苦諦에서 非常·苦·空·非我(恒存性이 없는 苦이며 假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의 四行相, 集諦에서는 因·集·生·緣(執着을 苦의 원인으로 하여 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苦의 助緣이다)의 四行相, 滅諦는 滅·靜·妙·離(苦滅의 理想境은 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의 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의 四行相, 道諦에는 道·如·行·出(苦滅의 聖道는 聖者實踐의 正道이고 正과 理가 합하여 迷의 生存을 超出하는 것이다)의 四行相이 그것이다. 이 四善根位의 다음에 見道에 들어 無漏의 眞智를 가지고 四諦를 現觀한다. 이 見道는 預流向에 속하는 일로서 預流果 이후로는 修道에 속하는데 이 預流向·預流果를 통하여 16心으로 四諦를 現觀한다. 이것을 聖諦現觀이라고 한다.
중유(中有) : 中陰·中蘊이라고도 번역한다. 有情이 生死에 流轉하는 과정을 四有 곧 네 가지의 生存으로 분류하는 가운데 전세의 죽음의 순간(死有)으로부터 다음 세상에 태어나는 刹那(生有)까지의 중간 시기의 존재인 靈魂身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다음 生存을 希求하는 求生, 다음생까지 사이에 잠시 일어나는 것이므로 起, 血肉에 의해 보호 유지되는 身이 아니라 오로지 香냄새로 食을 삼으므로 乾闥婆(神의 이름 食香·尋香이라 번역한다)라고도 한다.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지는 化生의 身 곧 意生身(意成身이라고도 한다)으로 精血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中有의 身이 그 行에 의해 生을 받을 곳이 결정되면 不可思議한 作用이 있는 定力·通力·借識力·大願力·法威德力의 五力(唯識宗의 敎義로 不可思議한 5종의 힘)을 가지고도 變更이 不可能하므로 이것을 五力不可到라 한다.
오식(五識) : 五識身. 곧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의 總稱으로 六識 혹은 八識중의 前五이기 때문에 前五識이라고 하고, 또 複數를 가리키는「身」자를 붙여서 五識身이라고도 한다. 眼根등의 五根을 의지할 곳(所依)으로 하여, 色境등의 五境을 識知하는 다섯의 마음이다. 이 다섯의 마음은 함께 물질적 感官(色根)에 의하고, 物(色法)을 對境으로 하고, 다만 현재만을 대상으로 하여 작용하고, 단지 直覺(現量)에 의해서만이 對境을 識知하고 항상 일어나 계속하는 것이 아님은, 前五識과 공통이기 때문에 총괄해서 五識이라고 한다.
구무위(九無爲) : 9종의 無爲法. 곧 生·住·異·滅의 변천을 받지 않은 不生不滅의 實在法을 말함. (1) 擇滅法. (2) 非擇滅. (3) 虛空. (4) 空無邊處. (5) 識無邊處. (6) 無所有處. (7) 非想非非想處. (8) 緣起支性. (9) 聖道支性.
불퇴(不退) : 阿鞞跋致·阿鞞拔致·阿惟越致라고 한자음으로 음역하고, 不退轉·無退라 번역한다. 또 必定이라고도 한다. 退는 退步·退墮의 뜻으로 惡趣나 二乘地(聲聞·緣覺의 자리)에 退墮하고, 깨달은 보살의 地位나 깨달은 法을 잃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不退란 그 반대를 말한다. 不退의 자리를 不退轉地라고도 한다. 有部에선 四善根位 중에 忍位에 이르면 다시 惡就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므로 不退를 얻는다고 說한다. 大乘般若 卷四四九에 말하기를, 見道에 들어가면 無生法忍을 얻어 다시 二乘地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不退를 얻는다고 했다. 또 보살의 品階로 말하면 十住의 第七住位를 不退轉住라고 부른다. 이런데 근거하여 여러 가지 不退說이 생겼다. ① 三不退. 吉藏의 法華義소 卷李의 설. 네 가지 說이 소개되어 있는 가운데 第一설에 따르면, (1) 位不退는 十住位의 第七住 이상의 보살이 二乘地에 退轉치 않는 것. (2) 行不退는 十地중 第七地의 보살이 수행한 行이 退轉치 않는 것. (3) 念不退는 第八地이상의 보살이 無功用(짐짓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도를 얻는 것)의 道에 들어 不動念이 된 것.
십종(十宗) : 화엄종에서의 불교 敎義分類批判(敎判)의 1종. 五敎를 합해서 五敎十宗이라고 하고, 五敎가 나타내는 敎義上의 분류인데 대해 十宗은 나타나 있는 원래상의 主된 주장을 10으로 나눈 것이다.
(1) 我法俱有宗. 主觀의 我도 객관의 사물도 함께 참으로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佛陀가 일반 세간을 위해서 說한 人天乘 및 小乘중의 犢子部 등이다.
(2) 法有我無宗. 객관의 사물은 3世에 걸쳐서 참으로 있는 것이지만, 주관의 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 小乘의 說一切有部 등이 이것.
(3) 法無去來宗. 事物은 현재에 있어서만 實體가 있고 과거와 미래에는 그 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大衆部 등.
(4) 現通假實宗. 사물은 과거·미래에 無體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五蘊의 법은 실체가 있으나 十二處·十八界는 잠정적이라고 하는 것. 說假部나 成實論 등.
(5) 俗妄眞實宗. 世俗의 사물은 허망하고, 出世間眞諦인 불교의 진리만이 실다운 것이라고 說한 것. 說出世部 등.
(6) 諸法但名宗. 世間·出世間, 有漏·無漏의 온갖 사물은, 다만 이름뿐으로 실체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 一說部 등. 이상 6宗은 小乘인데, 제6은 또 大乘初敎인 始敎에 통한다.
(7) 一切皆空宗. 모든 사물은 다 빠짐없이 眞空이라고 하는 般若經 등의 大乘始敎를 말한다. 眞空이라 함은 迷한 마음으로 空이라고 생각하여 空이 아니라 無分別한 分別以前의 그대로가 곧 空이란 뜻이다.
(8) 眞德不空宗. 모든 사물은 결국 다만 이것이 眞如이고, 번뇌에 덮여 있는 眞如를 如來藏이라 하고, 그것은 진실의 德을 가지고 淸淨하여 수없는 성질을 갖추고 있다고 說함. 五敎중의 終敎이다.
(9) 相想俱絶宗. 진리는 객관의 대상과 주관의 마음이 한가지로 없어지고, 상대가 끊긴 不可說, 不可思議한 곳에 있다고 한다. 五敎중의 頓敎로, 維摩經의 黙不二의 說과 같은 것.
(10) 圓明具德宗. 하나 하나의 사물은, 모두 다 일체의 공덕을 구족하고, 온갖 현상이 서로 방해됨이 없이 重重無盡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說함. 華嚴의 別敎一乘이 이것이다. 이상은 法藏의 華嚴五敎章 卷上 및 華嚴經探玄記 卷一에 說해 있음. 澄觀의 華嚴玄談 卷八에는 「(7)三性空有宗. 三性·三無性을 說하는 相始敎. (8)眞空絶相宗. 앞의 相想俱絶宗에 해당. (9)空有無礙宗. 앞의 眞德不空宗에 해당. (10)圓融具德宗. 圓明具德宗에 해당한다」고 하여 法藏이 性相融會(본체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의 사이에 融合一致를 인정함)를 主로 하는데 대하여, 澄觀은 性相決判(본체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을 구별한다)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이 화엄종의 十宗은 法相宗의 八宗의 敎判을 참고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곧 八宗이라 함은 (1)-(6)은 十宗의 前六宗, (7) 勝義皆空宗(般若經이나 三論의 說), (8) 應理圓實宗(深密·法華·華嚴의 諸經이나 無著·世親의 說)이다. (窺基의 法華玄贊 卷一)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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