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2915-583

근와(槿瓦) 2018. 5. 17. 01:43

대보적경-2915-58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911 / 3476]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눈·····의지의 경계가 아니요, 빛깔·소리·냄새··촉감·법의 경계도 아님을 알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경계 아닌 것이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옵니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부처님께서 얻으신 그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슨 경계가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의 경계이니 모든 소견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모양이 없는[無相] 경계이니 온갖 모양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소원이 없는[無願] 경계이니 삼계(三界)가 평등하기 때문이요, 지음 있는 것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함이 없는[無爲] 경계이니 함이 있는 것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함이 없는 경계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억함이 없는[無念] 것이 곧 함이 없는 경계이니라.”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함이 없는 것 등이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어서 기억함이 없게 된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이렇게 말하게 됩니까?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에 설하는 바도 없고 설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가히 설할 수가 없나니,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야, 부처님의 경계를 어디에서 구하여야겠느냐?”
온갖 중생의 번뇌 안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의 번뇌의 성품은 얻을 수 없나니, 성문이나 연각으로서 알 수 있는 바가 아닌 까닭에 이것을 곧 모든 부처님의 경계라 합니다.”
문수사리야, 부처님의 경계는 늘거나 줄어듦[增減]이 있느냐?”
늘거나 줄어듦이 없습니다.”
어떻게 일체 중생의 번뇌의 본 성품을 분명히 아느냐?”
부처님의 경계가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번뇌의 본래 성품도 늘거나 줄어듦이 없습니다.”


                                                                            [2912 / 3476]

어떤 것을 번뇌의 본래 성품이라 하느냐?”
번뇌의 본래 성품은 바로 부처님 경계의 본래 성품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의 성품이 부처님의 경계와 다르다면 곧 '부처님은 온갖 법의 평등한 성품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리니, 번뇌의 성품이 곧 부처님의 경계의 성품이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평등한 성품에 머무른다'고 설합니다.”
또 물으셨다.
너는 여래가 어떠한 평등에 머무른다고 보느냐?”
제가 이해한 것과 같다면 중생들이 현재 짓고 있는 욕심·성냄·어리석음이 머무는 그 자리에 평등하게 여래는 머물게 됩니다.”
중생이 현재 짓고 있는 3()의 번뇌는 어떠한 평등에 머무르는 것이냐?”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평등한 성품 안에 머무릅니다.”
문수사리야, 그 성품이 공한 가운데 어떻게 다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겠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것이 있는 가운데 성품의 공한 것이 있어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기에 그 가운데서 성품의 공함이 있다고 말하느냐?”
 

문자와 언어 가운데서 성품의 공함이 있다고 말하며, 성품의 공함이 있기 때문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비구들아, 생김[]이 없고, []이 없고,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는 것이 있느니라. 만일 생김이 없고 함이 없고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는 것이 있지 않다면, 역시 생김이 있고 함이 있고 지음이 있고 일어남이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생김이 없고 일어남이 없는 것도 있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생김도 있고 일어남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고 하심과 같습니다. 그와 같아서 세존이시여, 만일 성품의 공함이 없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다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의 온갖 소견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2913 / 3476]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이런 이치 때문에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번뇌가 머문다는 것은 바로 성품의 공함이 머무른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행을 관하는 사람[觀行]이 번뇌를 여의면서 성품의 공함을 구한다면 서로가 걸맞지 않거늘 어떻게 따로 성품의 공함이 있어서 번뇌와는 다르다 하겠습니까? 만일 번뇌를 관하면 바로 이것이 성품의 공함이니, 바른 수행이 되겠나이다.
문수사리야, 너는 번뇌에 머물러 있느냐? 번뇌를 여의었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모든 번뇌는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평등한지라 저는 바르게 수행하여 이 평등에 들어가나니 곧 번뇌를 여의지도 않고 번뇌에 머무르지도 않습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스스로를 가리켜 욕심과 소견과 다른 번뇌를 여의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 두 가지 견해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두 가지 견해인가 하면 번뇌가 있다고 여기는 상견(常見)과 번뇌가 없다고 여기는 단견(斷見)이 그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르게 수행하는 이는 나와 남[自他]이나, 다 없다[有無]하는 모양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법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어떤 것에 의지하여야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되느냐?”
바르게 수행하는 이는 의지하는 바가 없습니다.”
()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수행하는 것이냐?”
만일 의지하는 바가 있어서 수행한다면 곧 이것은 함이 있는[有爲] 것입니다. 만일 함이 있는 것을 행하면 평등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생기고 머무르고 무너짐[生住壞]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함이 없는[無爲]가운데서는 혹시 수()가 있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함이 없는데도 수가 있다면 그것은 곧 함이 있는 것이


                                                                            [2914 / 3476]

, 함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성현이 함이 없음을 증득하면 곧 이런 법이 있거늘 어찌 수가 없다 하느냐?”
법에는 수가 없기 때문에 성현은 수를 멀리 여의나니 그러므로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문수야, 너는 성현의 법[聖法]을 증득하였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化人]에게 '너는 성현의 법을 증득했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야,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면 곧 증득하였다거나 증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모든 법은 모두가 환술과 같다'고 설하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하였느니라, 그러하였느니라.”
만일 일체 법이 모두 환술과 같다면 어떻게 '너는 성현의 법을 증득하였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십니까?”
문수야, 너는 3()에서 어떤 평등을 증득하였느냐?”
부처님 경계의 평등이오니 저는 그것을 증득하였습니다.”
너는 부처님의 경계를 증득하였느냐?”
만일 세존께서 증득하셨다면 저도 역시 증득하여야 되나이다.”
 

그 때 존자 수보리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경계를 증득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성문의 경계에서 얻은 것이 있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성자(聖者)는 얻은 것도 아니고 얻지 않은 것도 아닌 데서 해탈하였습니


                                                                            [2915 / 3476]

.”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여래께서도 역시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계가 없는 것도 아닌 데서 해탈하셨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새로 뜻을 일으킨 보살을 돕지도 않으면서 법을 연설하시는군요.”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수보리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어떤 의사가 병든 이를 돕는다고 맵거나 시거나 쓰거나 떫은 약들을 주지 않는다면 그 의사는 그 병든 이를 낫게 해주는 것입니까, 죽음을 주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것은 죽음의 고통을 주는 것이지 안락을 베푸는 일은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 설법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만일 다른 이를 보호하여 그가 놀라거나 두려워할까 염려스러워 이처럼 매우 깊은 이치를 숨기고서, 다만 여러 글귀와 번드르르한 글과 말로만 그에게 연설한다면 이는 곧 중생에게 늙고 병들고 죽은 고통을 주는 것이요, 병이 없는 안락과 열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을 연설할 때에 5백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리었으며, 8천의 하늘과 사람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안에서 법 눈[法眼]이 깨끗해졌으며 7백의 천자(天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원을 세웠다.
'저희들은 장차 미래 세상에 문수사리와 같은 변재를 얻을지어다.'
그 때 장로 수보리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성문승의 법으로 성문을 위하여 말씀하지 않습니까?”
온갖 승()의 법이 바로 제가 설하는 법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성문승이십니까, 벽지불승이십니까? (정등각승(正等覺乘)이십니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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