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920-58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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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문승이면서도 다른 이의 음성으로 인하여 이해를 내지 않고, 나는 벽지불승이면서도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며, 나는 응·정등각승이면서도 본래의 서원[本願]을 버리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이 어떻게 성문입니까?”
“그 모든 중생들이 아직 일찍이 법을 듣지 못했으면 법을 얻어듣게 하기 위하여 나는 성문이 됩니다.”
또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벽지불입니까?”
“중생과 법계(法界)를 믿게 하고 깨닫게 하나니, 그 때문에 나는 벽지불이 됩니다.”
또 말하였다.
“온갖 모든 법과 법계는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분명히 아는 까닭에 나는 응·정등각이 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결정코 어느 자리[地]에 머물러 계십니까?”
“온갖 자리에 다 머무릅니다.”
“당신이 범부의 자리에야 머무르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나는 역시 틀림없이 범부 자리에도 머무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떤 비밀한 뜻[密意]이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든 법은 제 성품이 평등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일 온갖 법이 다 평등하다면 어느 곳에서 모든 법을 건립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문의 자리입니까, 벽지불의 자리입니까, 보살 또는 부처님의 자리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비유하면 시방의 허공 중에서 '여기는 동쪽의 허공이다' 하고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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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남쪽·서쪽·북쪽이요, 동·서·남·북 사이의 방향이며 위와 아래다'라고 말을 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은 언설로 갖가지 차별을 둔다고 하여도 그 허공에는 차별이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어진 이여, 온갖 법의 필경공(畢竟空) 가운데서 갖가지 모든 자리[地]의 모양을 건립한다 하여도 역시 공한 성품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증득하여 드셨다가 도로 나오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어진 이는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보살의 지혜와 방편입니다. 정성이생에 사실대로 증득하여 들었으나 방편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활을 아주 잘 쏘는 사람이 자신의 원수를 죽이려고 한다고 비유해 봅시다. 그 명사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마침 그 아들은 너른 들판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명사수는 아들을 자신의 원수로 잘못 알고 활을 쏘았습니다. 그의 아들이 '제게는 잘못이 없는데 왜 저를 죽이려하십니까' 하며 크게 울부짖고서야 비로소 그 명사수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리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그 화살을 뽑아 주니 바로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보살도 그와 같이 성문과 벽지불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정성이생에 들어가 있지만 다시 그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문이나 보살의 지위에서 떨어지지는 않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부처님의 자리[佛地]라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보살이 이런 자리를 얻게 되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일 모든 보살이 온갖 자리에 머물면서도 머무는 것이 없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온갖 자리를 두루 잘 연설하면서도 낮고 천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이가 수행하면서 온갖 중생의 번뇌를 다하고자 하나 법계는 다함이 없고 비록 함이 없음에 함이 있음을 행하며,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수행하지 않고 생각으로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뜻하고 원한 바를 모두 원만하게 하고, 나 없음의 지혜[無我忍]를 얻으면서 중생을 성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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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면서 저 지혜 없는 사람에게 성을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법을 구하는 이를 위하여 법륜(法輪)을 굴리지만 법계에는 또한 차별이 없나니 이렇게 수행하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만일 모든 보살이 악마와 원수를 꺾어 조복하면서도 실제로는 4마(魔)를 짓고 있으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의 행을 모든 세간 사람들이 믿기란 심히 어렵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보살의 행은 세간에 있어서 세간의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저에게 이 세간을 초월하는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간이란 5온(蘊)을 이름한 것입니다. 이 5온 가운데서 물질[色]은 물보라의 성품이요, 느낌[愛]은 물거품의 성품이며, 생각[想]은 아지랑이의 성품이요, 지어감[行]은 파초의 성품이며, 의식[識]은 환술의 성품입니다. 이와 같이 세간의 본래 성품은 물보라요 물거품이며, 아지랭이요 파초며 환술과 같은 것인 줄 알아야 하나니 이런 가운데에는 온(蘊)도 없고 온이라는 문자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문자도 없으며, 세간도 없고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만일 5온을 이와 같이 바르게 알면 이것을 가리켜 훌륭하게 안다고 하나니 만일 바로 훌륭하게 알면 본래부터 해탈한 것이요, 본래부터 해탈하였다면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5온의 본래 성품은 공한 것입니다. 본래 성품이 공한 것이라면 나와 내 것이 없고, 나와 내 것이 없으면 이것을 곧 둘이 없으며, 본래부터 둘이 없으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으면 집착할 것도 없으며,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이 5온은 인연(因緣)에 속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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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만일 인연에 속한다면 나에 속하지도 않고 중생에게 속하지도 않으며, 만일 나에 속하지도 않고 중생에게 속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곧 주인이 없는 것이요, 주인이 없다면 취하는 이가 없고 취하는 이가 없으면 다툼이 없으며, 이런 다툼이 없으면 이것이 사문(沙門)의 법이니, 마치 손으로 허공을 그으면 닿거나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공하고 평등한 성품을 수행하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5온의 법계는 똑같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라 이것은 경계[界]가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 경계가 없다면 땅의 요소[界]도 없고 물·불·바람의 요소도 없으며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도 없고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과 나고 죽음[生死]과 열반(涅槃)의 경계도 없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들고나면 세간과 함께 하면서도 머무는 바가 없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 세간을 초월하는 법을 말할 때 2백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으므로 저마다 울다라승(鬱多羅僧)의 옷을 벗어서 문수사리를 덮어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이 법문에서 믿음과 이해를 내지 않는다면 그는 얻는 바도 없고 증득한 바도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수보리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당신들은 조금이라도 얻거나 증득한 바가 있습니까?”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만일 증상만에 빠진 사람이라면 얻은 것이 있고 증득한 것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증상만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얻은 것도 없고 증득한 것도 없으니 그들이 어느 곳에서 이런 생각을 움직이면서 스스로 '나는 이와 같이 얻었다, 나는 이와 같이 증득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일 그 안에서 생각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바로 악마의 업[魔業]일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습니다.
“장로여, 당신들이 이해한 대로라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증득하기에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까?”
비구들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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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부처님·세존과 문수사리만이 우리가 얻은 바와 증득한 바를 아십니다. 대덕이여, 우리들이 이해한 대로라면 만일 괴로움[苦]의 모양을 분명히 알지 못한 자가 말하기를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증상만인 것입니다. 이와 같아서 '쌓임[集]은 끊어야 한다, 사라짐[滅]은 증득해야 한다, 도[道]는 닦아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증상만인 것입니다. 그는 괴로움·쌓임·사라짐·도의 모양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도를 이미 닦았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인 것입니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모양이냐 하면 생김이 없는 모양[無生相]입니다. 이와 같이 쌓임·사라짐·도의 모양이 생김이 없다면 모양도 없고 얻을 바도 없나니, 그 가운데서는 조금이라도 알만한 괴로움과 끊을 만한 쌓임과 증득할 만한 사라짐과 닦을 만한 도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거룩한 진리[聖諦]를 설명하는 데도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증상만이 아닌 것이요, 만일 놀라거나 두려워한다면 증
상만인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 모든 비구들을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그리고 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은 일찍이 가섭 부처님[迦葉佛]의 법 중에서 문수사리가 설한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들었느니라. 이 비구들이 과거에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수행하였던 까닭에 지금 듣고 수순하여 속히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차례로 나의 법 가운데서 이 매우 깊은 법을 듣고서 믿고 이해한 이들은 모두가 장차 미륵(彌勒)의 법 앞에서 대중의 수효에 들게 될 것이니라.”
그 때 선덕천자(善德天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어진 이께서는 이 염부제 안에서는 자주 설법을 하시는군요. 청하옵나니, 어진 이께서는 도솔타천(兜率陀天)에 다녀와 주소서. 그 곳의 모든 천자들도 오래 전에 광대한 선근을 심었는지라 만일 법을 듣게 되면 곧 환히 알 터인데 쾌락에 집착하는 까닭에 부처님께로 와서 법을 듣지 못하고 스스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문수사리가 이내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선덕 천자와 그 곳에 모인...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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