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一念)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 혹은 순간적으로 생각하는 것. 또는 한번 생각하는 것. 어떤 일이 성취되는 그때라는 뜻.
① 시간의 단위로 1찰라 또 六十刹那·九十刹那라 하고 혹 1 彈指의 60분의 1 또는 400분의 1을 一念이라 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므로 현재의 순간, 동시(無前無後)란 뜻으로 쓰인다. 또 순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一念頃, 一發意頃이라는 말과 같다.
② 한번 생각하는 것. 念은 思念이지만 중국에선 心念(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觀念(法性의 理나 佛의 相好, 혹은 時節의 因緣이나 중생의 素質과 能力을 觀하는 것), 稱念(佛名을 부르는 것)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淨土敎에선 善導의 註釋을 인정하여 念을 稱念의 뜻이라 해서 念聲是一이라고 一念을 一聲에 해당시켜 一念의 稱名이라고 한다. 眞宗에선 이것을 行의 一念을 말하고 信의 一念에 대조하기도 한다. 信一念이란 信心을 처음 얻은 그 순간(時間的)을 말하고 또 한 마음으로 彌陀를 믿고 딴 생각 않는 것(마음의 모양)을 가리킨다. 그 信을 一念의 信, 聞信의 一念, 一念喜愛心 등을 말한다. 그때 淨土에 往生하는 因이 정해지므로 一念業成이라 하고 이것을 事究竟의 一念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信의 一念에 의해 往生이 정해져서 자기의 지은 죄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을 一念滅罪라 한다. 疑心을 여의고 즐거움이 많아지는 것을 一念無疑, 一念慶喜, 一念歡喜 등이라고 한다. 信心 혹은 稱名의 이익이 廣大한 것을 一念大利라고 한다.
③ 법화경 分別功德品에,「능히 一念의 信解가 생기면 얻은 공덕이 한량이 없다」고 했다. 一念信解란 한번 說法을 듣고 疑心이 없어져 마음의 문이 열려 분명하게 되는 것으로 이 자리를 천태종에선 觀行卽, 혹은 相似卽이라 한다.
④ 천태종에선 마음 속에 여러 가지가 다 부족됨이 없이 具足되어 있다 하여 그 마음을 一念이라고 한다.
⑤ 一念相應이란 大般若經 卷三百九十三에 刹那의 一念과 相應하는 慧에 의하여 대번에 깨닫는 것을 말한다. 起信論 등에선 本覺과 始覺이 서로 相應한 理智冥合의 無念의 念을 말한다. 眞宗에선 行者의 信心과 佛의 願力의 一念이 相應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찰나(刹那) : 범어 ksana의 音譯. 叉拏라고도 쓰고 念頃(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一念·發意頃 등으로 번역하며 생략하여 단지 念이라고 만도 한다. 곧 시간의 최소단위를 뜻한다. ① 俱舍論卷十二에는 120찰라를 一怛刹那, 六十怛刹那를 一臘縛(범어 lava, 羅預·羅豫라고 音譯), 三十臘縛을 一牟呼栗多(범어 muhurta 牟呼栗多라 音譯하고 須臾라 번역), 30모호율다가 1주야라고 했다(1찰라는 지금의 0.013초에 해당한다). ② 僧祇律卷十七에는 20念을 1瞬, 20瞬을 1彈指(손가락을 튕기는 것), 20彈指를 1羅豫(臘縛), 20羅豫를 1須臾, 30須臾가 1주야라고 했다. (1念은 지금의 0.018초에 해당) ③ 1刹那와 1念은 서로 다르다는 說도 있다. 往生論註卷上에서는 60찰나를 1념으로, 仁王般若經卷上에서는 90찰나를 1念이라 했다. ④ 智度論 卷三十 및 卷八十三에서는 60念을 1彈指로, 俱舍論卷十二에서는 65찰나를 1彈指로 했다.
⑤ 大般若經 卷三百四十七에서 說하는 1日夜·1日·半日·1時·食頃·須臾·俄爾·瞬息頃의 순서에 의하면 一食頃(一前食과 後食 사이 곧 朝食前 또는 朝食하는 사이란 뜻)에 대한 대체적인 시간의 길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⑥ 모든 存在가 찰라찰라 생겼는가 하면 滅하고 滅하면 또 생기고 하는 生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刹那生滅이라고 한다. 事物의 無常한 窮極的인 모습을 一期生滅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⑦ 現在의 1찰라를 現在라 하고 前刹那를 過去, 後刹那를 未來라 하며, 이 셋을 합하여 刹那三世라 한다. ⑧ 仁王般若經卷上에는 1찰라에 9백 生滅이 있다고 하고, 往生論註卷上에는 1찰라에 百一의 生滅이 있다고 한다.
탄지(彈指) : 범어 acchata의 번역으로 拇指와 食指의 指頭를 튕기는 것. 인도에서는 본래 敬虔(경건)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경고나 허가의 표시로 사용되었다. 흔히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이는데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짧은 시간을 1彈指 : 1彈指頃이라고 한다. 경 중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1) 허락의 뜻. (2) 환희의 뜻. (3) 경고의 뜻.
일념경(一念頃) : 순간.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함.
사념(思念) : 마음으로 신중히 생각하는 것. 주의하여 생각함.
칭념(稱念) : ① 입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고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것. ② 무엇에 대하여 말하면서 잊지 말고 잘 생각하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
미타(彌陀) : 아미타불의 약칭. 無量壽 · 無量光 · 甘露라고도 함.
무량수(無量壽) : 범어 amitayus로 阿彌陀瘦斯라 음역.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말.
무량광(無量光) : 범어 amitabha의 번역. 12光의 하나로 佛陀(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無量의 빛이다.(入楞伽經卷一) 아미타불의 光明은 그 數가 극히 많아, 數量으로써 헤아릴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 또한 그 利益은 한이 없어 過去 · 現在 · 未來의 三世에 이르도록 끝이 없으므로 이같이 말한다. 無量光佛의 약칭.
일념업성(一念業成) : (1) 사람의 信心이 彌陀의 佛智에 冥合한 一念에 의해 往生의 業이 완성된다는 뜻. (2) 彌陀의 本願을 믿는 一念에 往生淨土의 業이 완성된다고 하는 뜻.
일념신(一念信) : 한결같은 信心.
왕생(往生) : 목숨이 다하여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것. 極樂往生 · 十方往生 · 兜率往生 등이 있다. 往生을 원하는 것을 願生(願往生)이라고 한다.
① 極樂往生은 無量壽經 등의 說에 의거하여 아미타불의 淨土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淨土敎는 이것을 목적으로 하는 敎이고, 다른 대승불교에서도 깨달음을 열기 위한 수단으로서 說한다. 眞宗등에서는 往生即成佛의 說을 세운다. 往生의 방법에는, 念佛往生(불타의 이름을 부름으로 인하여 왕생함) · 諸行往生(염불이외의 착한 행위를 해서 왕생함) · 助念佛往生(염불의 도움으로 하여 諸行을 닦아서 왕생함)등이 있고, 또 聞名往生(부처의 이름을 듣고 믿어 왕생함)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또 即往生[불타께서 주신 信心에 의해서 報土에 태어나는(化生) · 便往生(자기의 힘을 의지해서 化土에 태어나는 것(胎生))의 二往生說, 혹은 即往生을 難思議往生(第十八願 他力念佛往生) · 便往生을 難思往生(第二十願 自力念佛往生) · 雙樹林下往生(第十九願 諸行往生)이라고 하는 三往生說이 있다. 또 眞宗에서는 信心을 얻은 때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 定해지는(往生一定) 것을 前念命終 後念即生이라고 하고, 即得往生이라고 한다. 또 이것을 不體失往生(더러운 몸 그대로 平生중 어느 때에 왕생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고, 體失往生(육체가 죽으면 곧 왕생한다)에 상대시킴. 또 한번 죽어 새로 태어났다가 왕생하는 것을 願次往生이라고 한다. (極樂傳記를 往生傳이라 한다).
② 十方往生은 十方隨願往生經 등의 說에 의거하여 아미타불 이외의 諸佛의 淨土에 태어나는 것.
③ 兜率往生은 彌勒上生經등의 설에 의거하여, 미륵보살이 現存하는 兜率天에 태어나, 56억 7천만년 뒤에 세계에 태어나서 깨달음 얻기를 원하는 것으로, 법상종 계통에서 많이 행해졌다.
신해(信解) : ① 修行階位의 이름. ② 믿은 뒤에 확실히 이해하는 것.
일념신해(一念信解) : 한 생각으로 믿어 깨닫는다는 뜻.
설법(說法) : 불타의 도를 사람들에게 說하여 전하는 것. 說敎·說經·演說·法施·法讀·法談·談義· 讚歎·勸化·唱導 등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불타는 때나 상대의 능력·성질 등에 응해서 각기에 알맞은 敎法을 써서 敎化의 효과가 완전히 되게끔 說法하셨다. 또 불타는 한가지의 말로 說法하여도 듣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이해의 깊이가 다르다. 思益梵天所問經 卷二에는
佛은,
(1) 진리에 꼭 맞는 말씀에 의해(言說),
(2) 상대의 능력 성질에 따라서(隨宜),
(3)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하여(方便),
(4) 위대한 진리를 설하여 깨달음의 길을 보이고(法門),
(5)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신다(大悲)고 하고, 說法이 이 다섯가지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5종설법이라고 한다. 經論 기타의 說하는 사람은 5종류가 있고 <이것을 五說 혹은 5종說人이라고 한다>. 智度論 卷二에는 佛·佛弟子·仙人·諸天·化人(참 모습을 감추고 거짓으로 다른 몸을 나타내는 것)의 5로 했는데, 善導의 觀經疏玄義分에서는, 佛·佛弟子·天仙 ·鬼神·變化의 5로 했다. 또 澄觀의 華嚴經疏 卷一에는, 화엄경 중의 說敎者에 佛·보살·聲聞·중생 ·器界(山河大地등)의 5가 있다고 하고(이것을 五類說·五種說法이라고 한다). 一行의 大日經疏 卷七에는, 眞言의 說法者에 如來·금강보살·二乘·諸天·地居天의 5가 있다고 했다. 說法은 法施라고 하여 出家한 자의 布施행위라고 했으며, 또 五分律卷二十六에는 自恣가 끝나는 밤에 說法·經唄(經文을 곡조 붙여서 노래 부르는 것)를 행한다고 말한 것처럼 교단 행사의 뜻으로도 쓴다. 설법할 때의 마음 가짐으로서는, 법화경 卷四 法師品에, 如來의 방(大慈悲)에 들어가, 如來의 옷(柔和忍辱)을 입고, 如來의 자리(諸法空)에 앉아서 해야 한다고 하였고, 優婆塞戒經 卷二나 十住毘婆沙論 卷七에도 각기 마음 가짐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說해져 있다. 說法의 의식에 대해서는, 佛本行集經 卷四十九 說法儀式品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 설법을 듣는 聽者의 마음 가짐에 대해서도 모든 經論에 기록되어, 이들 설법의 說하는 자와 듣는 자의 마음가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사항을 說聽의 方軌라 한다. 더욱이 優婆塞戒經 卷二에는, 說法에 淸淨·不淨의 2종說法이 있는 것을 說하고, 利己心이나 다른 사람과의 경쟁심에서 하는 說法을 不淨說法이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齋會 등의 때에 說法하는 것을 唱導라 하고, 高僧傳 卷十三에는 唱導에 능한 스님의 傳記를 전하고 있다.
천태종(天台宗) : 또는 天台法華宗 ∙ 天台法華圓宗 ∙ 台宗 ∙ 台家라고도 함. 중국 隋나라 때 천태산에서 天台 智顗를 開祖로 하여 창립한 대승불교의 한 파.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하며 禪定과 지혜의 調和를 宗義로 함. 智顗는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불교를 통일하고, 적극적으로 諸法實相論을 주창하며 심오한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法華文句」∙「法華玄義」∙「摩訶止觀」등 三大部를 지어서 한 宗을 이룩하였다. 그 뒤에 章安 ∙ 智威 ∙ 慧威 ∙ 玄朗 ∙ 湛然 등이 계승하고, 荊溪 湛然은 三大部의 주석을 지어 그 때에 융성하던 법상종 ∙ 화엄종 ∙ 선종 등에 맞서 천태종의 眞面目을 크게 선양하였다. 그 뒤에 道邃 ∙ 廣修 ∙ 物外 ∙ 元琇 ∙ 淸竦 ∙ 義寂 등이 전해오다가, 五代의 전란에 宗典이 흩어지고, 思潮가 떨치지 못하였다. 義寂은 그 宗典을 고려와 일본에 전하여 다시 宗義의 연구가 성행하였고, 송나라 때에는 山家 ∙ 山外의 두 파로 대립하게 되었다. 山家派는 四明知禮가 으뜸이었는데 그의 학풍은 천태종의 근본 사상인 物 ∙ 心을 같이 취급하는 사상을 굳게 지키고, 또 현재의 자기를 여의지 않고 전체를 해결하는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源淸 ∙ 宗昱 ∙ 智圓 ∙ 從義 ∙ 仁岳 등이 영도한 山外派의 학풍은 緣起論에 반하여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있었다. 중국에서는 明나라 때의 智旭이 종풍을 빛낸 것이 끝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玄光 ∙ 法融, 고구려의 波若, 고려의 諦觀 등이 천태종을 깊이 연구하였다. 또 義天은 송나라에 유학하여 宗旨를 배워 돌아온 후 개성에 국청사를 짓고, 천태종을 설립하였다. 그 門下에는 德麟 ∙ 翼宗 ∙ 景蘭 ∙ 連妙 등이 있었다. 천태종은 법화경 ∙ 대열반경 ∙ 대품반야경 ∙ 화엄경 ∙ 금광명경 ∙ 유마경 ∙ 지도론 ∙ 중론 ∙ 법화론 등을 所依의 경전으로 삼고, 實相論의 극치를 주장하였다.
관행즉(觀行卽) : 천태종에서 圓敎의 수도상 階位를 6단으로 나눈 六即의 하나. 처음 觀智로 十乘觀法을 닦으면서 兼行六度와 正行六度 등의 수행으로써 助成하여 圓妙한 이치와 相應하는 位. 五品位에 해당함.
일념상응(一念相應) : ① 無間道와 金剛喩定이 상응하는 智로 오직 1찰나가 된다. ② 露地와 自性의 一念이 상응함을 말함.
무간도(無間道) : 번뇌를 끊고 진리를 體得하는 단계에 加行道·無間道·解脫道·勝進道의 4道를 세운다. 無間道는 無礙道라고도 한다. 곧 「번뇌를 나의 몸에 끌어당겨서 관계를 갖게 하는 힘, 곧 번뇌의 得을 끊는데 간격이나 방해하는 것이 없고 또 解脫道를 얻는 因緣을 방해하거나 간격을 갖게 하는 同類의 道가 없다」는 뜻으로 無間·無礙라고 한다. 틀림없이 번뇌를 끊고 擇滅 곧 깨달음을 몸에 胚胎하는 단계이다. 이에 대해 無間道의 직후에 번뇌를 끊어 버리고 번뇌의 장애로부터 解脫하여 틀림없이 擇滅을 깨달아서 離繫得을 현재에 성취하는 것을 解脫道라 한다. (俱舍論 卷二十三, 卷二十五). 마치 번뇌의 賊을 몰아내고(無間道) 그 다음 문을 닫는 것(解脫道)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有部에서는 無間道는 번뇌를 끊어가는 位이므로 거기에는 번뇌의 得이 있다. 그래서 번뇌의 得과는 다른 解脫道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唯識宗에서는 無間道에서 이미 번뇌의 種子를 끊는다고 하고, 그래서 다시 解脫道를 일으키는 것은, 목적으로 하는 마음이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無間道는 斷惑(번뇌의 種子를 끊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解脫道는 證滅(擇滅을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그 정확한 뜻은 無間道로 斷惑됐다 하더라도 남은 번뇌의 習氣(無堪任性)를 버리지 않으면 안되므로 解脫道는 그것을 버리는 것과 擇滅을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여, 이것을 無間道斷·解脫道捨證이라 한다. (成唯識論 卷九). 見道에서는 八忍이 無間道, 八智가 解脫道에 속하고 修道에서는 九地의 각 位에서 九品의 번뇌를 단절해야 하므로 各地의 無間道·解脫道가 있다고 하여 이것을 九無間道(九無間·九無礙)·九解脫道(九解脫)라 한다.
금강유정(金剛喩定) : 金剛에 비유되는 定이란 뜻이니 金剛三昧·金剛心·頂三昧라고도 한다. 금강이 견고하여 모든 번뇌를 깨뜨리는 것에 비유하여 금강이라 했다. 小乘의 수도자인 聲聞이나 大乘의 수도자인 菩薩이 수도가 완성될 무렵 최후로 번뇌를 끊을 때 생기는 定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定으로부터 발심하여 번뇌를 다 끊어 없애면 聲聞인 경우엔 최고의 깨달음인 阿羅漢果를 얻고 보살의 경우엔 佛果를 얻는다. 일반적으로 번뇌를 끊는 자리를 無間道라 하는데, 이로 인하여 진리를 깨달은 位를 解脫道라 하므로 金剛喩定을 일으키는 것은 無間道에 해당되며 이로 인하여 얻는 阿羅漢果나 佛果는 解脫道에 해당한다. 그래서 金剛喩定이 일어나는 無間道를 金剛無間道라 한다.
노지(露地) : ① 屋外. 戶外의 아무 것도 없는 곳. ② 덮인 것이 없는 곳에 앉는 것. 12頭陀行의 하나. ③ 번뇌에서 벗어난 경지. 법화경 비유품의 火宅의 비유에서 전하여 쓰이게 되었다. 長者의 아들이 불타고 있는 집에서 피하여 露地에 있는 大白牛車를 얻는데 비유하여 三界의 번뇌를 끊은 평안한 경지를 가리킨다. ④ 見惑 뿐 아니라 思惑을 없앤 경지. ⑤ 특히 禪宗에 있어서, 僧堂內의 보행하는 것을 말함.
상응(相應) : 범어 samprayukta의 번역. 평등하게 화합한다는 뜻. 法과 法이 서로 和合하여 떨어지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 특히 마음과 心所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수가 많다. 六因 중의 相應因은 이것이며, 俱舍論 卷六에 五義平等을 相應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것이다. 雜集論 卷五에는, 서로 떠날 수 없는(不相應), 화합하는(和合), 모이는(聚集), 同時에 生하고, 同時에 滅하는(俱有), 목적을 같이 하는(所作), 心과 心所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한결같이 작용하는(同行) 것의 6종 相應을 說함. 이 중에서 앞의 5종은 주로 色法(물질)에 대해서 말한 것. 이 밖에, 函과 뚜껑과 일치하는 것을 函蓋相應, 敎를 받는 者(機)와 敎가 일치하는 것을 機敎相應이라고 한다.
이지명합(理智冥合) : 眞如의 理와 이것을 깨달은 智慧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 이것을 覺悟라 한다.
무념(無念) : 구체적인 모습. 행상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여 觀을 닦아 마음에 인정하는 것을 有念. 대상의 相을 초월한 眞如의 本性을 觀하여 마음까지도 여의는 것을 無念이라고 한다. 이것을 聖道門의 有念無念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산란한 생각을 따라 마음을 닦는 散善을 有念, 마음을 하나로 가라앉혀 닦는 定善을 無念이라 하는 것은 淨土門의 有念無念이다.
행자(行者) : ① 범어 acarin. 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 여러 곳 聖地를 돌아다니면서 참배하는 사람. ③ 아직 숭려가 되지 않고, 사원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신심(信心) : 덧없는(疑)것을 여읜 청정한 마음. 佛法僧의 三寶 및 因果의 이치를 믿는 것으로 佛敎를 믿는 첫걸음으로 한다. 南本涅槃經卷三十二 師子吼品에는 佛性을 大信心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淨土敎에선 無量壽經의 설에 따라 아미타불의 本願을 믿는 것으로 되어 있다. 曇鸞은 往生論註卷下에 三不三信을 말하고, 善導는 觀經疏散善義에 機法二種의 信心을 말하고 있다. 眞宗에선 信心만으로도 往生할 수 있다고 해서 信心을 근본으로 할 것을 내세운다. 그 信心은 부처님이 준 他力信心(利他眞實信心 · 眞實信心)이라 하여 信心을 얻은 뒤 稱名念佛하는 것을 信後相續의 易行이라 하여 부처님의 恩惠에 보답하는 행위라 한다. 信心이 확정되는 것을 信心決定, 信心이 계속되는 것을 信心相續이라 한다.
불(佛) : ① 범어 buddha의 音略. 佛陀 · 佛駄 · 浮陀 · 浮屠 · 浮圖 · 浮頭 · 沒駄 · 勃陀 · 馞陀 · 步他 등으로 音譯하고 覺者 · 知者 · 覺이라 번역하며, 眞理를 깨달은 이의 뜻으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하다는(覺行窮滿) 뜻이 있다. 이 自覺과 覺他와 覺行窮滿의 관계는 凡夫에 있어서는 三자가, 二乘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최후의 하나가 모자라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佛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경론에 여러 가지로 설해 있고, 佛身 佛土 등에 대해서도 各宗의 異說이 있는데 대체로 대승에서는 佛果에 이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②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데 갖가지 佛號를 세운다. 곧 여래의 十號를 비롯하여, 一切知者 · 一切見者 · 知道者 · 開道者 · 說道者라든가, 世尊 · 世雄(世間에 있어서 一切의 번뇌를 끊는데 雄猛, 雄健한 者) · 世眼(세간의 눈이 되어 이것을 인도하는 者) · 世英(세상에 훌륭하여 뛰어난 자) · 天尊(五天 가운데 가장 훌륭한 第一義天)이라든가, 大覺世尊(略하여 大覺尊) · 覺王(覺皇) · 法王 · 大尊師 · 大聖人 · 大沙門 · 大仙(大僊 仙人 중의 가장 높은 仙人) · 大醫王(병에 따라 신묘하게 약을 주는 명의와 같이 마음의 法을 자유자재로 설하는 자) · 佛天(五天 가운데 가장 뛰어난 第一義天) · 佛日(불타를 태양에 비유한 말) · 兩足尊 · 二足尊 · 兩足仙 · 二足仙(이 네 가지 이름은 두 다리를 가진 生類 중에서 가장 높은 이란 뜻. 또 二足이라 함은 願과 行을, 혹은 福과 慧를 갖추었다는 뜻) · 天中天(諸天중의 最勝者) · 人中牛王(불타를 牛王에 비유한 말) · 人雄獅子(人中의 雄者여서 마치 獸類中의 獅子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부처를 能化人 곧 가리키는 이, 인도하는 이란 뜻으로 能人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아미타불을 安樂能人(安樂世界의 能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能人이라 함은 能仁으로, 能仁은 釋迦의 번역이니 釋迦佛의 이름을 빌어서 佛 일반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하여 그 몸에는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구족하고, 또 十力 · 四無所畏와 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 불타의 초월성을 七항으로 묶어서 七勝事 · 七種最勝 · 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곧 身勝 · 如法住勝 · 智勝 · 具足勝 · 行處勝 · 不可思議勝 · 解脫勝의 일곱 가지 이름이 그것이다. 불타의 定과 智와 悲는 공히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大定 · 大智 · 大悲라고 하여 斷德 · 智德 · 恩德의 三德에 배속하고 합해서 大定智悲라고 한다.
③ 過去世에 나타나신 佛(過去七佛 · 燃燈佛 등)을 過去佛 또는 古佛이라고 하고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는 불타(彌勒佛 등)를 後佛, 또는 當來佛이라고 한다. 최초의 佛이라 하면 역사상의 불타는 釋尊뿐이었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過去七佛(釋尊은 그 일곱번 째)의 사상이 생기고 좀 늦게 未來佛로써 彌勒佛을 생각하게 되어, 현재는 釋尊과 미륵불과의 두 부처의 중간에 無佛의 세상이라고도 한다. 곧 小乘에서는 現在世에 있어서 二佛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大乘에 오면 그 세계관은 확대되어 자못 크고 넓게 되고 동방의 阿閦佛이나 西方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 他方세계에 無數(恒河의 모래의 수만큼)한 佛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여, 十方恒沙의 諸佛이라고 일컫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小乘은 一佛說이고, 大乘은 多佛說인데, 小乘중에도 大衆部 같은데서는 다른 三千大千世界에 동시에 다른 一佛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며, 一界一佛 · 多界多佛說을 취하고, 有部 등은 多界一佛說을 취한다. 이 경우「界」라 함은 三千大千世界를 말한다. 또 三世의 모든 부처에 대해서 과거의 莊嚴劫에 千佛, 현재의 賢劫에 千佛, 미래의 星宿劫에 千佛, 합하여 三劫에 三千佛이 있다고 하며, 그 佛名은 三劫三千佛名經에 나와 있다. 佛名會는 이 經의 說에 의한 法會이다.
④ 내세에 成佛하기 위한 信佛 등의 인연을 佛因 · 佛緣, 또 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인연을 佛緣(예컨대 佛緣을 맺는 것 등), 佛恩에 보답하는 것을 佛恩報謝라고 한다.
원력(願力) : 本願의 작용. 本願力 · 大願業力 · 宿願力 등으로 부름. 淨土敎에서는 阿彌陀佛의 구제력을 말함. 곧 彌陀佛의 願力廻向으로 중생이 淨土에 往生하는 因도 淨土에서 얻는 果報도 모두 부처님에 의해 얻는 것이란 해석. 그 작용이 우리의 思慮를 초월한 것을 願力不思議, 그 작용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을 願力自然, 그 작용으로 된 淨土를 願力成就의 淨土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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