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실상(聲字實相)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眞言宗의 敎義. 音聲文字 그 자체가 實相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如來의 三密에 있어서는 身語意의 三業은 원래 평등하여 널리 우주 전체에 가득 차 있고, 삼라만상은 다 이 三密을 원만히 갖추어서 본래적으로는 부처인데, 중생은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如來는 音聲(聲)에 의해서 敎를 설하고, 文字(字)에 의해서 敎를 나타내어 깨닫게 하려고 한다. 때문에 聲字는 如來의 語密이고, 그것은 如來의 身密인 實相(물건의 본래대로의 모습)과 완전히 평등한 것으로서, 聲字가 그대로 實相이다. 더욱이, 五大는 다 음향을 가지고 十界는 다 言語를 갖추고 六塵은 다 文字이고 法身은 實相이기 때문에 聲字實相이라 함은 法佛平等의 三密, 중생 本有(本來具有하고 있다)의 曼茶羅를 나타낸다.
참고
진언종(眞言宗) : 密宗. 秘密宗이라고 하며 眞言이란 말은 三密중 語密을 뜻하며 이것에 의해서 宗名이 생겼다. 724(唐開元 12년) 善無畏三藏이 蘇悉地經 大日經 등을 번역하므로 중국의 眞言宗이 創始되었으며 金剛智·不空三藏 등을 거쳐 계승되다. 우리 나라는 신라의 惠通이 求法入唐하여 善無畏三藏으로부터 印訣을 받아 와 眞言宗을 연 것으로 전한다(664. 文武王 4년). 또 不可思議는 不空三藏에게, 明朗은 唐에 들어가 眞言의 神印을 얻어 와 神印宗을 開宗했으며 密本도 密宗의 高僧으로 전한다. 神印宗의 廣學과 大緣은 麗初 開城에 賢聖寺를 세워 이 宗의 근본 도량으로 했으며, 李朝에 이르러 廢宗되다.
교의(敎義) : 종교에 있어서 공인된 진리로 가르치는 信條. 敎法의 義理. 敎와 義란 뜻. 언어문자로써 말한 敎와 그 안에 포함된 義理를 말함.
음성다라니(音聲陀羅尼) : 불·보살의 說한 바는 모든 秘密의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音聲陀羅尼라 함.
문자(文字) : 뜻과 이치를 밝혀 나타내는 부호. 實相은 본래 문자를 떠나 존재하나 문자를 빌리지 않으면 실상을 밝히지 못하므로 文字는 法身의 생명이 된다. 法華玄義五에「文字는 法身의 氣와 命이다. 讀誦明利는 圓家의 數息이다」라 하였다. 維摩經觀衆生品에「言語文字는 모든 解脫相이다」라고 함.
실상(實相)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실상을 관찰하는 것을 實相觀이라 하고, 唯識觀은 事觀임에 대하여 이것을 理觀이라고 한다. 또 諸法의 실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大乘佛敎의 印, 곧 標幟로 이를 實相印이라 한다. 大乘에서 一法印을 주장하는 것은 小乘佛敎가 三法印(無常·無我·涅槃)을 주장하는 것에 대조가 된다.
무상(無常) : 범어 anitya의 음역. 物·心의 모든 현상은 한 순간에도 生滅 變化하여 常住하는 모양이 없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2種이 있다. (1) 刹那無常. 찰나 동안에도 生·住·異·滅하는 것. (2) 相續無常. 한 평생 동안에 生·住·異·滅의 四相이 있는 것을 말함.
무아(無我) : 非我라 번역하기도 한다. 我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常), 독립적으로 自存하며(一), 핵심적인 所有, 곧 주인공으로서(主), 지배적 능력이 있는 주체(宰)로 생각되는 영혼적 또는 本體的 實體를 의미한다. 모든 物體에는 이런 我가 없고 我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을 諸法無我라고 하며 無我를 觀하는 것을 無我觀이라 한다. 無我는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三法印의 하나인 無我印에 해당된다. 이 諸法無我印에서의 我의 뜻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我의 뜻과는 구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래로 brahman교의 교설에 의해 atman(我) 사상이 젖어 잇었기 때문에 釋尊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我의 관념을 부인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석존은 我가 될 수 없는 것, 我가 있지 않은 것, 我라는 집착에서 떨어질 것, 我가 아닌 것을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我라는 관념,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배제하는 사고방식, 我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었다. 팔리어 聖典에서의 無我의 원어는 anattan이다. 그 뜻은 「我가 아니다」라는 의미와 「내가 있지 않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초기 佛敎에선 결코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我에 대한 집착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Upanisad 철학에서는 我를 實體視하는 것에 비해서 佛敎에서는 이런 見解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客體的, 기능적인 我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반대한 것이다. 我의 存在·不存在라고 하는 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석존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참다운 나의 문제는 존재적 존재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므로 존재·非存在의 관념적·논리적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석존은 일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석존은 다만 곧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원시불교에서는「五蘊의 하나하나가 苦이므로 非我이다」라는 敎說, 또「無常이므로 無我이다」라는 敎說(雜阿含經 卷三)이 있다. 이것은 我가 아닌 것을 我, 곧 我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특히 身體를 나의 것,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라는 觀念」을 排除하고자 했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人無我를 말하며 아를 부정하였으나 諸法을 實有라 하고 法無我는 말하지 않았다. 뒤에 와서 차차 「我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無我說이 확립되었으며, 이런 입장은 說一切有部, 초기 大乘佛敎에도 계승된다.
이렇게 하여 無我에는 人法二無我의 說이 있게 됐다. 有情(살아 있는 것들 : 衆生) 은 五取蘊(凡夫의 생존을 이루는 物心의 다섯가지 요소(五蘊))의 假和合的 존재이므로 이런 五蘊的 假和合體를 實體的인 생명의 주체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人無我라고 칭한다. 또 모든 것은 因緣(結果를 내는 親因은 因, 結果를 내는데 보조되는 것은 緣)에 따라 나타난 것(假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원래 고유한 獨自的 本性(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法無我라고 한다.
열반(涅槃) : 滅·寂滅·滅度·寂이라 번역한다. 擇滅·離繫·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樂·我·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恒·安·淸淨·不老·不死·無垢·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恒은 항상, 安·快樂은 樂으로, 不老·不死는 我에, 淸淨·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래(如來) : 범어 tathagata의 번역. 多陀阿伽度·怛薩阿竭·怛他誐多·多阿竭이라 音譯. 如去라고도 번역한다. 진리(곧 如)에 따라서 왔고, 眞如에서 現出한 이, 곧 佛陀를 말함. 위없는 높은 이라고 하는 의미로 無上의 無上, 곧 無上上이라고도 한다. 여래에는 열가지 別稱이 있어서, 如來十號 또는 十號라고 불리운다. 곧,
(1) 應供. 阿羅漢이라고도 한다. 相應한 이의 뜻으로, 人·天으로부터 존경받고 供養받을 자격이 있는 이.
(2) 正編知. 바르고 완전하게 진리를 남김없이 깨달은 이. 等正覺·正等覺이라고도 번역한다.
(3) 明行足. 天眼·宿命·漏盡의 三明의 지혜와 身體·言語의 행동 등이 다 함께 완전한 자.
(4) 善逝. 범어 sugata의 번역. 잘 가는 이란 뜻으로, 迷의 세계를 잘 뛰어 넘어서 다시 迷에 돌아오지 않는 것.
(5) 世間解. 世間·出世間의 일을 다 아는 이.
(6) 無上士. 世間에 있어서 가장 높은 이. 같은 의미로 三界獨尊, 三界尊이라고도 한다.
(7) 調御丈夫. 중생을 잘 調伏制御해서 涅槃에 인도하는 이.
(8) 天人師. 天과 人의 師匠. 지옥·아귀·축생 등을 포함한 迷의 세계에 있는 중생을 다 가르쳐서 인도하지만 하늘과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중심이 되므로 天人師라고 한다.
(9) 佛. 佛陀의 別稱. 깨달은 이, 눈뜬 이.
(10) 世尊. 많은 德을 갖추어서 世間에서 존경받는 이.
이상이 十號인데, 如來란 말을 포함시키면 11號가 된다. 단 如來는 總名으로, 應供이하의 十號는 그 德을 나타내는 德名으로 하는 것 같다. 또「如來」에는 따로「중생」의 의미가 있어, 이 때에는 구별하여 如去라 번역하기도 한다. 곧 十四無記중에서 如來의 死後의 有無를 문제로 한 경우와 같은 것.
삼밀(三密) : 秘密의 三業(身·口·意에 의해서 행하는 행위)이란 뜻. 곧 身密·語密(口密)·意密(心密)의 셋. 주로 密敎에서 말함.
① 顯敎에서는 범부로서는 헤아리지 못하는 三業을 말함(智度論 卷十등).
② 密敎에서는, 佛陀의 三業은 體·相·用 三大 중 用大(眞如의 작용)에 해당하며 범부가 미치지 못하는 不思議한 작용이기 때문에 三密이라고 하며, 중생의 三業도 佛陀의 三密에 맞추어 닦는다. 그 감추어진 本性에 있어서는 佛陀의 三密과 한가지이기 때문에 三密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중생의 三業이 佛陀의 三密과 相應하면, 거기에 用大라고 하는 三密用大의 의미가 완성된다. 佛陀의 三密은 전우주에 遍滿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四種曼茶羅나 佛·蓮華·金剛의 三部(順次로 身·語·意에 해당함) 등으로서 나타내고 있다. 중생의 三密에 2종이 있다. 佛과 중생이 서로 融合하는 瑜伽의 境地에 들어가서, 중생이 몸에 印을 맺고(身密), 입으로 眞言을 외우고(口密), 뜻으로 本尊을 觀하는(意密) 것을 有相三密이라 하고, 중생의 온갖 身·語의 행위나 생각 그대로가 바로 三密임을 無相三密이라 한다. 有相三密에 의해서 중생의 三業 위에 佛의 三密이 더하여 攝持되는 것을 三密加持라 하고, 이것에 의해 佛의 三密과 중생의 三密이 相應融和하는 것을 三密相應(三密瑜伽)이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行者와 本尊은 一體로 되고, 이 몸 그대로 佛이 된다고 하는 即身成佛의 깨달음을 이룬다. 三業을 깨끗이 하는 觀法으로 三密觀(三金剛觀·三金觀·三吘觀이라고도 한다)이 있다.
삼업(三業) : 三業이라 해도 그 기준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눈다.
① 身業·口業·意業의 3業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고,
② 받는 果報의 내용이 福인가 罪苦인가에 따라 福業·非福業·不動業(色界·無色界에 태어날 因인 善業),
③ 받을 果報의 시기에 따라 順現業·順生業·順後業의 三時業을 들기도 하며,
④ 行業의 내용이 善인가 惡인가에 따라 善業·惡業·無記業(善도 惡도 아닌 것)이 있는가 하면,
⑤ 行業을 일으키는 심리내용에 따라 曲業(아첨에서 일어남)·穢業(嗔心에 의함)·濁業(貪欲에 의함) 등이 있다.
중생(衆生) : 有情·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含情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群萠·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耳·鼻·舌·身·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鳥·蛇·狐·鰐·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교(敎) : 범어 agama의 번역. 聖者가 보이신 것이기 때문에 聖敎라고도 하고, 말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言敎라고도 한다. 또 理·行·證·觀·禪 등에 상대되는 말이다. 敎를 大乘敎·小乘敎·漸敎·頓敎·權敎·實敎·了義敎·不了義敎·一乘敎·三乘敎·顯敎·密敎 등으로 나눈다.
오대(五大) : 地·水·火·風·空의 5大種을 말함. 大種이라 함은 널리 一切萬法에 걸쳐 있어 그것들을 生成하고, 그것들의 所依가 되어 本原이 되는 것이란 뜻. 五唯등과 같이 外道의 數論派에서 說한다. 불교 중, 俱舍宗·唯識宗 등에서는, 모든 물질(色法)을 만드는 所依로 하여 四大(空大를 除함)를 說하고, 密敎에서는 五大·六大(識大를 더함)를 說하며, 一切萬法이 이것들에 의해서 生成한다고 한다. 空大는 虛空(空間)으로, 거리낌이 없고(無礙), 막히지 않고(不障), 萬象을 그 가운데서 安住시키는 것.
십계(十界) : 迷한 者나 깨달은 이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境地를 10종류로 나눈 것. 곧 地獄界·餓鬼界 ·畜生界·修羅界·人間界·天上界·聲聞界·緣覺界·菩薩界·佛界의 10으로, 이 가운데 앞 6은 범부의 세계이고, 뒤 4는 聖者의 세계이기 때문에, 六凡四聖이라고 한다. 또 이것을 四類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四趣·人天·二乘·菩薩·佛로 하는 경우도 있고, 5종류로 나누어 순서대로 三惡道(三途)·三善道 ·二乘·菩薩·佛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 10종의 法은 각각 苦樂凡聖에 있어서 다른 것과 같이 그 경지를 자초한 원인도 같지 않으므로, 分齊가 不同하다는 의미로 또 十法界라고도 부른다. 지옥은 地下에 있는 牢獄이므로 고통이 가장 많은 곳. 축생은 서로 다른 축생을 먹이로 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고통이 무겁다. 아귀는 음식을 얻지 못하므로 고통이 그칠 날이 없다. 수라는 阿修羅의 略語로, 바다에 살고 질투심이 강한 것. 사람은 괴로움 반, 즐거움이 반쯤 되는 것. 천은 아주 즐거움을 누리기는 하나, 구경적인 괴로움을 면치는 못하는 것. 성문은 부처의 소리(敎)를 듣고서 깨닫는 것(단 소승의 敎). 연각은 인연을 觀하여 홀로 깨달음을 즐거워 하는 것. 보살은 다른 이와 같이 깨달음을 얻고자 願을 내어 수행하는 것. 불은 스스로도 깨닫고 다른 이도 깨닫게 하는 이. 이 가운데에서 불계는 悟界(또는 성문·연각·보살까지 포함한 4계를 悟界로 하기도 함)이고, 다른 九界는 迷界인데, 천태종에서는 十界 각각 權實(진실과 잠정적인 것)을 갖추고 있고, 그리고 權과 實은 본질적으로 일체이기 때문에 十界皆眞實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十界權實이라고 한다. 또 십계중에서 성문과 연각의 이승은 일반적으로는 성불할 수가 없다고 하나, 법화경에서는 이승도 성불하기 때문에, 십계의 중생이 다 성불한다고 설한다. 이것을 十界皆成이라고 한다. 천태종에서는 또 불계의 평등한 진리만을 관념하고 다른 九界차별은 理가 緣에 따라서 생긴 妄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斷破하고 배척하는 입장을 緣理斷九라고 하고, 이것은 別敎에서 說하는 方便의 敎로 圓敎의 진실한 說은 아니라고 한다.
육진(六塵) : 六根의 대상. 六境과 같음. 色·聲·香·味·觸·法이 人身에 들어가서 청정한 마음을 혼탁하게 하므로 塵이라 한다.
법신(法身) : 범어 dharma-kaya의 음역. 3身의 하나. 또 法佛·法身佛·自性身·法性身·寶佛 등이라고 한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佛陀가 說한 正法, 혹은 十力 등의 功德法을 말함. 法의 集會. 대승에서는 究極·絶對의 존재를 말하고, 일체의 존재는 그것의 나타남이라고 풀이한다. 진리를 몸으로 하고 있는 것이란 뜻. 진리 그 자체. 영원의 理法으로서의 불타. 本體로서의 신체. 그것은 순수하여 차별상이 없으며, 그것은 空과 같은 것이다.
① 聖者가 몸에 갖추어 있는 공덕.
② 佛의 宇宙身. 빛깔도 형상도 없는 진실 그대로의 體. 온갖 것의 근본.
③ 영원불변의 진실한 모습 그것.
④ 法으로서의 身體. 법을 신체로 하는 것. 불의 色身에 대해서 이름.
⑤ 절대 완전한 신체.
⑥ 如來藏과 같다.
⑦ 佛 그 자체.
⑧ 法 그 자체. 法의 기초.
⑨ 여래장이 번뇌를 여의고 그 자신을 나타낸 것.
⑩ 4종법신을 말함.
⑪ 佛陀의 진실한 본체. 그러나 활동을 나타냄. 시간·공간에 걸쳐서 우주의 總合. 통일체로서의 佛.
본유(本有) : ①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 性이란 말로 표현할 때도 있다. 修行에 의하여 나타나고 성립되는 修生 또는 修成에 대조가 된다. 또 本有種子를 한 熟語로 하여 新熏種子와 대조어로 쓴다. 원래 有라고 하면 本來空에 대한 語句로, 일체가 假象이고 實在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면을 本來空, 眞如가 나타난 긍정적인 면을 本來有라 한다. ② 四有의 하나.
만다라(曼茶羅) : 범어 mandala의 음역. 曼陀羅·曼吒羅·漫茶羅·蔓陀羅·曼拏羅·曼拏攞·滿茶邏·滿拏囉라고도 표기하며, 壇·壇場·輪圓具足 등이라고 번역한다. 輪圓의 뜻으로 印度에서 秘法을 닦을 때, 魔衆의 침입을 막기 위해 圓形을 그려 놓는 것. 일반적으로 圓形, 方形 등으로 구획한 지역을 曼茶羅라 하며, 律에는 不淨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경우에 曼茶羅를 만들게 됨을 말한다. ① 密敎에선 大日經疏卷四에 曼茶羅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하고, 輪圓具足을 뜻한다고 했다. 諸尊이 普門의 大日如來를 輪, 둥근고리(輪)로 에워싸 大日을 도와 중생을 普門에 가게 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또 발생의 뜻이 있다 하여 佛種을 길러 佛樹王(佛果)을 나오게 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혹은 범어 manda는 우유를 精製한 醍醐의 뜻이다. 따라서 曼茶羅는 佛果의 醇淨融妙한 것을 나타내어 極無比味, 無過上味의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 密敎에서는 주로 聚集의 뜻을 취하여 諸佛·菩薩 등의 聖衆이 모이는 곳을 말한다고 했다. ......
음성불사(音聲佛事) : 佛事는 부처님이 제도하시는 事業이다. 佛이 중생을 제도하는데 光明 · 佛身 · 香飯 · 衣服 · 臥具 등으로 하며 이 사바세계의 다른 방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음성으로 설법하시므로 말하는 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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