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육종성(六種性)

근와(槿瓦) 2018. 4. 30. 02:50

육종성(六種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보살의 因行으로부터 에 이르는 行位種性을 여섯가지로 분류한 것.

(1) 習種性. 10住位空觀을 닦아 見惑思惑을 깨뜨리는 .

(2) 性種性. 10行位로서 하지 않고, 나아가 假性을 분별하는 .

(3) 道種性. 10廻向位로서 中道妙觀을 닦아 일체의 佛法을 통달하는 .

(4) 聖種性. 10地位로서 中道妙觀에 의하여 無明業識을 깨뜨리고 聖位에 들어가는 .

(5) 等覺性. 妙覺 다음으로 높은 .

(6) 妙覺性. 斷證이 끝나고 自覺·覺他·覺行窮滿三覺이 원만한 최상의 佛果(瓔珞本業經).

 

참고

종성(種性) : 범어 gotra의 번역으로 種姓이라고도 쓴다. 聲聞·緣覺·菩薩 등의 三乘이 각각의 깨달음을 開得하는 이 되는 본래적 素性·素質을 말한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경우와 후천적인 修行에 의해서 얻는 2종의 種性이 있다. 전자를 本性住種性(약하여 性種性)이라 하고 후자를 習所性種性(약하여 習種性)이라 한다. 有部 등의 部派에서는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이른바 性得佛性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후천적으로 이른바 修得佛性만을 인정한다. 또 대승의 法相宗에서는 五性이 선천적으로 구별되어 있다고 하여 性種說을 설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또 별도의 習種性을 설하는데, 이것은 護法學流에 속한다. 種性이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唯識宗 그 가운데도 異說이 보이고 있으니, 成唯識論卷二에 의하면, 種子에 대한 견해의 相違로부터, 護月本有性種性(선천적)만을, 難陀新熏習種性(후천적)만을, 護法兩方을 다 인정하는데, 法相宗에서는 이 護法說을 따른다. 이에 반해서 천태종·화엄종 등에서는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佛性을 갖추고 있다고 설한다. 三乘種性을 가지고 마침내 三乘에 이르게 되는 有種性(有性)과 아무리해도 迷惑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無種性(無性)二種性으로 나누고도 있어서 五性의 구별을 하는 唯識宗에서는 이것을 인정하고 無性有情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다. 種性의 의미를 轉用하여 보살의 階位를 보이기도 한다. 仁王般若經卷上에는 習種性·性種性·道種性三種性을 세워서 차례로 보살의 十信心·十住心·十堅心에 배당했으며, 瓔珞本業經卷上에는 習種性·性種性·道種性·聖種性·等覺性·妙覺性六種性을 세워서 순차로 보살의 十信·十住·十行·十廻向·十地·等覺·妙各階位에 배당했는데, 이 가운데 妙覺性을 제외하고 五種性이라 한다. 大集經卷八 등에는 凡夫性·信行性(善知識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서 그대로 수행하는 三賢位法行性(선지식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佛陀의 설하신 법에 따라 修行하는 것, 四善根位八忍性(八忍七智를 갖춘 것, 見道位須陀洹性·斯陀含性·阿那含性·阿羅漢性·辟支佛性·佛種性十種性하고 있다.

 

인행(因行) :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

 

() : , 原因을 따라서 일어나는 결과를 일컬음. 有部宗이나 唯識宗에선 五果로 분류한다.

(1) 等類果. 善因으로부터 생기는 善果, 惡因으로부터 생기는 惡果처럼 同質를 일컬으며, 六因중의 同類因遍行因에서 생기는 를 가리키고 習果라고도 한다.

(2) 異熟果. , 不善業因 異熟因으로부터 생기는 無記(非善非不善)를 말한다. 과 성질이 다른 成熟란 뜻. 報果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習果報果를 합해 二果라고도 한다.

(3) 士用果. 俱有因 · 相應因이며, 이 강한 세력을 男子(士夫)의 동작()에 비유해서 士用이라 한 것이다. 士用的에 의해서 생긴 란 뜻. 곧 동시의 因果를 말한다.

(4) 增上果. 자기 자신(主體)을 제외한 모든 有爲法能作因이라 하고, 이 능작인에 의해 생긴 를 말한다. 에 대해 힘을 강하게 주는 에 의해서 생긴 란 뜻. 이상 四果有爲法이므로 有爲果라 한다.

이에 대해 (5) 離繫果無爲果가 된다. 離繫란 번뇌의 속박을 여읜 것을 뜻하므로 離繫果擇滅 , 열반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擇滅無爲法이어서 등을 갖지 않으므로 不生不滅이며, 따라서 離繫果道因에 의해 생기는 는 아니지만 擇滅을 얻기 위한 (離繫得)을 내는 이 되고, 동시에 擇滅에 의해서 證得되므로 擇滅離繫果라고 하여, 이것을 또 果果라고도 한다. 修行이므로 菩提에 의해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이다. 또 이 五果에 다음의 네가지 를 더하여 九果로 하기도 한다.

(6) 安立果. 다른 것에 의지하여 건립된 .

(7) 加行果修行의 실천에 의해 얻어진 .

(8) 和合果는 여러 和合에 의해 나오는 .

(9) 修習果聖道修行을 따라 생기는 를 말한다. 특히 十力 · 四無所畏 · 十八不共法 · 自在神力 등은 修行의 결과이며 佛力이므로 果力이라고도 한다. 대승에 있어 佛果, 소승에 있어 阿羅漢果究極이므로 極果라고도 한다.

 

습종성(習種性) : 六種性의 하나로 보살 수행의 階位 가운데 10住位 보살. 地位에서는 空觀을 닦아 見惑思惑을 끊고 이것으로 證果에 이르는 種子를 삼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공관(空觀) :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觀想하는 수행법. 모든 존재를 (실체가 없음)으로 하는 입장. 모든 사물은 다 하다고 하는 도리를 깨닫기 위하여 수행하는 觀法. 모든 사물은 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生起)이기 때문에 그 실체는 있을 수 없고, 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견혹(見惑) : 은 마음의 迷惑, 곧 번뇌의 별명이며, 또한 見惑이란 것은 見道에 의해 消滅되는 이란 뜻이고, 修惑(思惑이라고도 한다)修道에 의해 消滅해 없어지는 이다. 俱舍宗에서는 四諦의 진리(, 佛敎의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眞理를 모르는 見惑, 現象的인 사물에 집착하고 迷事修惑이라 했으며, 唯識宗에서는 邪道의 이단자가 邪敎 등의 誘導에 의해, 또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分別起)見惑,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생기는 선천적인 번뇌(俱生起)修惑이라 한다고 했다. 또한 天台宗에서는 · 二惑空觀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이므로 塵沙惑 · 無明惑과 구별했으며 합해서 三惑이라 했다. 그 가운데 · 은 모두 三界안의 사물에 의해 상대적으로 일어나고, 三界生死(, 迷的 生存)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界內이라 했고, 三乘이 공통으로 끊지 않으면 안되는 이므로 通惑이라 한다.

俱舍宗에서는 見惑八十八이 있다고 하여 見惑 八十八使(使 : 번뇌의 다른 이름)라 한다. , 見道함으로 없어지는 근본번뇌는, 五利使(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五鈍使(· · · · )이지만, 이것을 각각 四諦에 맞춰, 三界에 해당시킬 때 欲界三十二, 色界 · 無色界各 二十八이 되므로 합하여 八十八이 된다. 또한 修惑八十一이 있다고 하여, 修惑 八十一品이라 했으니, 修道에 의해 없어질 근본번뇌로, 欲界에서는 · · · , 色界 · 無色界에서는 각각 · · 十種이지만 이것들을 각각 일괄하여, 九地配對하고, 다시 각각 번뇌의 강약에 따라 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九種으로 나누어 八十一品으로 한 것이다. 見惑八十八使修惑十種을 합하여 九十八隨眠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見惑百十二, 修惑十六으로 나누고 합하여 百二十八의 근본번뇌를 세운다.

 

사혹(思惑) : 修惑이라고도 하며, 事物의 차별적인 眞相을 알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번뇌.

 

() : · 에 대응되는 말. 實體가 없는 것을 가리키고 혹은 · · 방편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실체는 없고 말하자면, 이름만 거짓 붙어 있는 존재를 假名有라 하고, 에는 어긋나지 않는 한 진리를 假諦라고 하며, 內心外相이 다른 행위를 虛假이라 하고, 방편의 假門이라 하는 등이 그것이다. 현상으로서의 諸法라는데 대해 다음과 같은 분류가 있다.

二假. 窺基成唯識論述記 卷一本, 延壽宗鏡錄 卷六十七無體隨情假 · 有體施設假를 들고 있다. 無體隨情假란 어리석은 범부(迷情)實在하지 않는 實體實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임을 말하며, 有體施設假經典해 있는 바와 같이 현상계의 諸法實體가 없지만 그러나 을 따라 생겨나므로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깨달은 聖者가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거짓으로() 실체가 있는 것처럼 假設한 것을 말한다. 知禮金光明玄義拾遺卷五에는 生死假(妄假) · 建立假(施設假)란 말을 세워서 거의 비슷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三假. 大品般若經卷二三假品에는 諸法自性이 없음을 밝힘으로 凡夫妄執을 타파하기 위해 受假 ·法假 · 名假三假했고 이것을 三波羅攝提(범어 prajnapti의 음역), 三攝提, 三假施設이라고 한다고 했다. 慧遠大乘義章卷一에는 智度論卷四十一의 해석에 근거하여

(1) 受假란 많은 것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 하나는 결국 많은 것을 싸서 수용한 것으로 實體가 없는 것이란 뜻이며,

(2) 法假그 자체가 因緣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無自性이고 이므로 實體가 없는 것이란 뜻이며,

(3) 名假無自性이고 이므로 모든 것은 다만 이름만 있고 實體가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智顗仁王般若經疏卷二에는 仁王經卷上 序品三空觀門을 해석하여, 法假色陰, 受假受想行識四陰, 名假란 그 두 이름을 취한 명칭이라고 했다. 成實論假名相品에는, (1) 因成假(일체의 有爲法因緣에 의해 성립된 것이므로 ), (2) 相續假(前念後念不斷相續하므로 有爲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찰나로 改變生滅하는 ), (3) 相待假(현상계의 長短·輕重 등은 상대적인 것으로 그 기준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三假를 들었다.

이와 같이 三假는 모두 虛無한 빈 말이라 하여 三假浮虛라 한다. 智顗摩訶止觀 卷五下에는 이것을 藏敎 ·通敎이라고 한다. 成唯識論 卷八에는 依他起性이 있다고 하여, 聚集假 · 相續假 ·分位假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成實論三假와 거의 같은 뜻이지만 分位假不相應行法의 경우와 같이 하나의 사물로부터 그 작용정도가 다름에 따라 다른 것으로 되기 때문에 라는 뜻이다. 十八空論分別假 ·依他假 · 眞實假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三無性에 의한 것이다.

四假. 普光俱舍論記(光記) 卷二十九 등에 나온다. 成實論所說로서 因生假 · 緣成假 · 相續假 · 相待假四假를 들고 있지만 因成 · 相續 · 相待三假와 거의 동일한 뜻이다. 因成假를 열면 因生假緣成假가 되는데, 因生假三假施設에 있어서의 法假이고 緣成假는 같은 受假에 해당된다. 吉藏三論玄義 · 大乘玄論 卷五 등에는 智度論 卷一四悉檀에 의해 세운 法朗을 이어 받아서 因緣假 · 隨緣假 · 對緣假 · 就緣假四假를 세웠다. 여기서 말하는 法門을 밝히는 施設을 의미하고 機緣에 응하여 그것이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을 말하며, 각각 第一義 · 爲人 · 對治 · 世界四悉檀에 배치된다.

 

중도(中道) : 二邊. 곧 양극단이 따로 떨어지므로 얻을 수 있다. 치우치지 않는 中正의 뜻. 中路 혹은 단순히 이라고도 함. 中道佛敎의 근본적 입장을 말하고 있어 대승 · 소승에 걸쳐서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그 뜻하는 바에도 深淺이 있지만 각 종파에서 이 語句를 가지고 교리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중도의 意義中道義, 중도의 眞理를 중도의 , 중도의 敎說中道敎(三時敎의 하나), 중도를 종지로 하는 종단을 中道宗(법상종에선 唯識中道를 주장하므로 자신이 中道宗이라 한다), 중도를 하는 것을 中道觀(자세히 말하면 中道第一義諦觀이라 하여 三觀의 하나)이라고 한다. 또 중도는 우주만유의 진실상을 나타내므로 중도는 곧 實相이라는 뜻에서 中道實相이라 한다

阿含八聖道의 실천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치우친 생활태도를 버리고 중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열반의 證得으로 가는 도이므로 팔성도를 中道라 한다(中阿含經卷五十六). 十二緣起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常見(중생의 생명의 주체인 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斷見(死後엔 아주 滅無로 돌아간다는 생각). 有見(자연적입장, 世間의 상식)無見(허무주의)등과 같은 치우친 견해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십이연기를 옳게 하는 것이 중도의 正見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잡아함경 권십이등). 초전법륜에서 석존이 설한 것인데 前者는 실천상의 중도이며 後者思想上의 중도이다

部派불교의 중도. 大毘婆沙論卷四十九成實論卷十一등에서 아함의 교설을 받아 들여 중도는  · 二見을 떠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대승의 中觀派에서는 般若波羅密을 근본적인 조건이라 하고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無所得의 상태에 있는 것을 중도라 한다. 中論 卷一 觀因緣品, 緣起理法  · · · · · · · 의 여덟 가지의 잘못된 견해(八邪 · 八迷 · 八過 · 八計 · 八謬 · 八事 · 八迷戱論)를 타파하여 의 진리를 밝힌 것이다. 萬有는 그 緣起道理에 순응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원래 八邪를 여의었으며 실체가 없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와 같이 八邪가 떨어져 無得正觀(無所得의 바른 견해)하는 것을 중도라 하고 이것을 八不中道 · 八不正觀 · 無得中道 · 八不中觀이라 한다. 여기에 八不이란 생멸 등의 八邪否定하는 不生 · 不滅 · 不斷 · 不常 · 不一 · 不異 · 不去 · 不來를 가리킨다. 이에 의하여 모든 邪執이 파멸되어 諸法이 그대로 實相인 도리가 나타난다. 八不중에서도 不生 · 不滅이 그 근본이다. 특히 팔불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不生이 팔불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한다.

中論疏卷二에 의하면 不生兒闡提, 不滅邪見闡提, 不斷斷見聲聞, 不常常見聲聞, 不一 · 不異外道, 不來不去獨覺 初發心 보살들의 각각의 邪執을 파괴시킨다고 한다. 삼론종은 八不中道의 설에 입각하여 세 가지 중도를 주장한다. 中論疏 卷一에는 八不中道二諦關係시켜 설명한다

(1) 因緣에 의해 거짓 존재하는 現象面으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실체가 아니고 이면서 거기다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므로 無生滅生滅이니 이나 不生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俗諦中道 · 世諦中道라고 일컫는다.

(2) 사물의 진실한 실재의 측면 곧 본체면으로부터 말하면 모든 사물은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면서 또 그 本體이기 때문에 生滅無生滅로서 不生이라고도 非不生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이것을 眞諦中道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二諦各論中道라고 한다

(3) 그렇지만 無生滅生滅, 生滅無生滅이란 실은 生滅도 아니고 無生滅도 아닌 言語思慮를 여읜 究極的이라고 하여 이것을 二諦合明中道 · 非俗非眞中道라 일컫는다. 三論玄義卷下에 중도에 一中 내지 四中의 구별이 있다고 했다. 곧 중도가 유일의 청정한 도인 것을 一中, 중도를 二諦에 대해 논하여 世諦眞諦으로 분류하는 것을 二中, 二諦非眞非俗을 더하여 三中이라 한다. 四中이란 다음 네 가지이다. (1) 對偏中· 偏見에 대해서 설한 . (2) 盡偏中. 그들 偏見滅盡되어 중도의 意義가 나타난 것. (3) 絶對中. 거기 나타난 은 언어와 사려를 초월한 不偏不中인데,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이라 한 것. (4) 成假中. 非有非無絶對中에 의해 현상으로서의 거짓 존재(有無)를 성립시켜 중생을 교화하는 수단(方便)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 · 三諦의 설을 주장하여 모든 존재를 一面으로만 생각하는 · 를 초월한 절대적인 본체는 언어와 사려의 대상이 아님을 中諦라고 한다. 이 중제는 化法四敎  · 二敎로 설명된다. 그러나 別敎에선 三諦를 각각 독립된 진리라고 생각하고(隔歷三諦), · 二諦는 현상면, 中諦는 본체면으로부터 말한 것이라 하여 但中, 圓敎三諦는 서로가 개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一諦중에 三諦를 갖추고 있어 셋이 별개가 아니고 융합되어 있다고 보며(圓融三諦), 卽空 · 卽假 · 卽中으로서의 中諦이므로 이것을 不但中이라고 한다. 通敎에선 三諦의 설은 없지만 거기서 주장하고 있는 空理 가운데 중도가 들어 있다고 설명되고 있으므로 통교를 含中敎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중도의 는 우주의 진실한 모습인 만큼 이 진리를 깨달으면 내지 地獄十界敎化시키는 대상자에게 맞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應化本源이 중도에 있다는 뜻에서 中道應本이라고 한다. 藏敎通敎의 보살은 이것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前者本惑을 끊지 못하고 남겨 두어 三界에 남아 있고 後者誓願을 세워 煩惱習氣를 붙들어 三界에 태어나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유식종에선  · · 三時敎敎判을 세워서 解深密經 등의 설처럼 · 二邊(兩極端)을 여의고 非有非空의 중도의 진리를 완전하게 나타낸 中道了義敎라 하고· 에 치우친 不了義敎라고 한다. 그 중도란 소위 唯識中道로서 곧 (1) 범부가 실재한다고 본 바의, 有情의 실체적 생명으로서의 萬有의 구성요소로서의 迷情의 집착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情有理無非有이다. (2) 萬有는 인연의 假有的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의 變現이므로 즉 理有情無非無이다. (3) 또 만유는 고정된 본성(自性)이 없고 이므로 자유자재로 현상될 수 있는 것으로 곧 공은 眞空妙有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宇宙眞相非有非無(非有非空)의 중도로 파악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中道了義敎라고 한다. 三性說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遍計所執性에 해당하고 依他起性, 圓成實性에 해당한다(成唯識論 卷七). 우리 나라의 원효는 그의 梵網經菩薩戒本私記卷上에서, 非有非無는 가()를 여읜 중도의 를 나타낸 말이니, 그러므로 를 말하면 因緣을 따라 생긴 것이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非有, 가 비록 非有라고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토끼 뿔이 없는 것처럼 아주 없는 것은 아니므로 非無라 한 것이다.라고 하여 非有非無의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효는 이어서 만일 을 말하면 막는다는데 의 뜻이 있는 것이니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 그러므로 계는 결국 인연을 따라서 생기지만 그러나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들어가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얻어질 실재의 客觀은 없다.고 하고 한 걸음 나아가 계를 중도에 契合시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면 뿌리의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될 요소가 따라 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그 절대적인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罪性)이 있음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罪性은 마음의 근본바탕에는 없다. 그렇지만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여기에 가 중도에 들어 맞는 도리가 있는 바이다.원효가 一切法無碍自在一大理論으로 千經萬論을 막힘이 없이 꿰뚫은 것도 다 철두철미하게 一貫 中道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華嚴經序원래 無障無碍法界法門이란 것도 없고 법아닌 것도 없으며 이 아니고 아님도 없도다. 그것은 도 아니요 도 아니며 도 아니며 도 아니다.라고 했고, 金剛三昧經論序할 것도 없고 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아무 이치가 없는 것 같지만 지극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하다고 했다. 이러한 圓融無碍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 · · · · 의 일체의 相對性會通시킴으로  · · · 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고려의 義天대저 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으며 말이나 형상을 여읜 것도 아니니 말이나 형상을 여의면 뒤집힌 迷惑이요, 말과 형상을 집착하면 참으로 한 것이다라고 했고, 敎學者는 안을 버리고 밖으로 구하며 習禪人因緣法을 모르고 안으로만 밝혀서 偏執하므로 二邊을 다 읽는다고 하여 역시 중도가 究竟임을 누누히 밝혀 주고 있어서, 원효의 중도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 있어서는 執空說을 취하는 南寺傳의 중도설과 體空說을 취하는 北寺傳의 중도설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먼저 집공설의 입장을 주장하는 남사전에 의하면 三性對望의 중도설을 주장한다. 곧 진여인 원성실성(眞有)에 의해 의타기성(假有)으로서의 현상이 있다. 現象實有라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성(理無)이므로 변계소집은 非有, 의타기와 원성실은 非無이다. 三性一法上三性이므로 三性을 상대로 하여 볼 때 여기에 非有非無인 하나의 중도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體空說을 취하는 북사전에서는 一法中道說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변계소집성은 情有이므로 非無, 理無이므로 非有로서 곧 중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三性이 각각 하나하나 다 중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아가서 情有도 단순한 가 아니라고 하여 많은 一法中道를 주장한다. 단 일법중도설 가운데서 변계소집성은 범부의 迷情이므로 중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설도 있다. 三性을 상대로 중도를 설명하는 것은 言說로 설명한 중도이므로 言詮中道라 한다. 一法中道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인 진실한 으로는 언어와 사려를 끊어버린 非有非空의 중도라 하여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도이므로 離言中道라고 하여 이들을 합해서 二重中道라고 한다. 이것은 중도에 따로 두 개가 있는 것은 아니라 前者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중도, 後者는 자기 스스로의 깨달음의 내용으로서의 중도이다. 또 중도란 말은 能觀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所觀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묘관(妙觀) : 천태종에서 別敎隔歷三觀에 대해 圓敎圓融三觀妙觀이라 함.

 

격력(隔歷) : 가로막고 있는 것. 따로따로 되어 있는 것.

 

격력삼제(隔歷三諦) : ··三諦가 서로 서로 막히어 合一하지 못한 것. 우주의 본체인 眞如·의 두 편을 초월한 中道의 뜻. 中諦이다. 萬法의 존재이므로 假諦이며 따라서 현상은 그 實體가 없는 까닭으로 空諦이다. 그러나 이 空諦假諦, 또는 空諦·假諦·中諦는 서로 다르므로 일치하지 않고 상호 막혔다고 하는 것. 이것은 天台四敎 가운데 別敎의 주장임.

 

원융(圓融) : 걸리고 편벽됨이 없이 가득하고 만족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서 서로 융합하므로 방해됨이 없는 것을 圓融이라 하고, 서로 떨어짐()이 있어 따로 따로 있는 것을 隔歷이라 한다. 無差別·絶對와 차별·상대라고 하는 의미에 가깝다. 불교에서 事事物物의 차별적 현상의 實在를 인식하는 것과, 事物本性遡及하여 평등상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평등상을 주장함이다. 또한 는 이치에서 생긴 것이므로, 이치를 여의고 가 없어 한결같이 평등하여 가 걸림이 없다. 平等界에서 나타난 차별적 현상계의 事物도 상호간에 無礙圓融하다고 한다. 천태종이나 화엄종 등에서 많이 쓰는 말.

 

원융삼제(圓融三諦) : 이것은 天台敎學의 주장. ··三諦는 서로 融合되어 同一時에 성립되고 三諦가 각기 다른 二諦를 함유하고 있다. ··三諦前二諦(空諦·假諦)現象面, 中諦本體面을 강조하는 각각 독립된 眞理라고 하는 생각(隔歷三諦)에 대해, 一諦안에 三諦가 갖추어 있어서, 三者가 서로 融合되어 둘이 아닌 것을 일컫는다. 三諦의 진리를 觀法으로 體得하는 것이 三觀으로 이것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圓融三諦라고 한다. 또한 다른 敎學에서는 三諦가 각각 따로 존립하고, 또 일방에 치우쳐 實在를 말함에 대하여, 三諦는 서로서로 融通하여 相即無礙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不次第三諦·不縱不橫三諦라고 부른다. 空諦라 하여도 을 여읜 但空이 아니고, 三諦相即이므로 이는 (不定(肯定絶對의 세 뜻을 다 포함하고 있다. 에는 의 사상을 不定하는 破有의 뜻도 있고, 한 사상을 그대로 긍정하는 立空의 뜻도 있다. 單破·單立이 아니고 을 함께한 이며, 를 함께한 이다. 非破非立, 亦破亦立破立 절대의 ()인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이 空諦에서 三諦를 원만히 갖춤을 即空, 假諦에서 세 뜻을 모두 갖추어 假諦 그대로 ··三諦인 것을 即假, 中諦가 그 당체에서 三諦의 뜻을 모두 갖춘 것을 即中이라 한다.

 

삼관(三觀) : 3종의 觀法.

천태종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대로 眞如에 합당한 것을 3종의 방면에서 觀察한다. 三觀瓔珞本業經 卷上從假入空二諦觀 · 從空入假平等觀 · 中道第一義諦觀을 바탕으로 세운 것이며, 空觀 · 假觀 · 中觀이라고도 약칭하고, 空假中 三觀이라고도 한다. 三觀化法四敎· 圓 二敎觀法이지만, 三觀四敎에 배열하면 空觀· 2에 속한다. 藏敎에서는 모든 物心의 존재를 분석하여 실체적인 것은 없다고 하여 空理에 들어가게 하는 析空觀이고, 通敎에서는 모든 존재는 환상처럼 있는 그대로 곧 이라고 하여 空理에서 일으키는 體空觀을 쓰고, 이로써 三界의 안에서 일어나는 思見을 끊는다. 이들의 空觀은 함께 空理에 기울어지므로 但空觀이라 하고 이에 대해 · 圓 二敎의 공관을 不但空觀이라 한다. 假觀別敎에 속하는데 別敎에서는 위에서 건립된 현상 그대로를 하여 이것에 의해 塵沙을 끊는다. 別敎假觀圓敎假觀과의 相違는 전자가 · 別視되는 것에 대하여, 후자는 同一視되는 점에 있다. 中觀圓敎에 속하고 · 의 둘을 지양하여 하나라고 하므로서 이것에 의해 無明을 끊는다. 別敎에서도 十住 · 十行階位에서 · 二觀을 닦은 뒤에 따로 中道하는 中觀(但中觀)을 닦지만, 이에 대해 圓敎中觀· 融合하는 三即一, 一即三不但中觀이다. 別敎三觀三觀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고 그 다음에 세월을 두고 하는 것이므로 別相三觀 · 次第三觀 · 隔歷三觀 등으로 불려지고, 그 다음에 三惑을 끊고 三智를 얻는 것이지만 圓敎三觀一念 중에 · · 融合三諦의 진리를 하는 것이니, 의 대상은 一念이고, 一空一切空 · 一假一切假 · 一中一切中으로서 即空 · 即假 · 即中이라 한다. 즉 사로잡히는 마음을 하고 모든 것이 그대로 現象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절대적 세계에 體達하는 것()一念 가운데 거두어 하는 것이다. 一念에 관해서 趙宋 天台山家派에서는 이것을 妄心, 山外派에서는 眞心이라 한다. 山家派에서는 의 대상()妄心으로 하는 유력한 이유의 하나로서, 摩訶止觀卷五下 三科 揀境을 든다. 의 대상을 함에 있어서 五陰 · 十二入 · 十八界三科을 가리어 三科 가운데 五陰을 취하고 五陰 가운데 識陰을 취하며 識陰第六識을 취하고 第六識無記(善惡 어느 쪽도 아닌 것)을 취하고 心王 · 心所心王을 취하여 의 대상으로 한다라고 해져 있는 것은 가장 직접적인 凡夫無記妄心을 가지고 의 대상으로 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또한 圓敎三觀一觀 가운데서 원만하게 三諦하는 점에서 通相三觀, 一念의 마음 가운데 원만하게 三諦하는 점에서 一心三觀으로 이름지어지고, 여기에 別敎別相三觀을 더하고 三種三觀이라고 하는 수도 있다.

律宗에서는 性空 · 相空 · 唯識三觀(南山三觀)을 세우고, 각각 二乘 · 小菩薩 · 大菩薩이 있다고 했다. 性空觀은 천태종에서 말하는 析空觀 體空觀에 상당하고 相空觀은 모든 존재의 본래의 모습이 無相空이라고 하는 것이며, 唯識觀은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오직 만을 실다운 本體라고 하는 것이니, 唯識觀에는 뛰어난 이가 닦는 直爾總觀初心者가 닦는 歷事別觀이 있다고 한다.

화엄종에서는 一心法界하는 지혜의 高下에 따라 하는 대상은 같은 一心法界일지라도, 거기에 3종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眞空觀(理法界) · 理事無礙觀(理事無礙法界) · 周遍含用觀(事事無礙法界)의 셋이 그것이니 이것을 三重觀門 · 法界三觀이라 한다. 杜順法界觀門에는 眞空觀을 열어서 會色歸空觀 · 明空即色觀 · 空色無礙觀 · 泯絶無寄觀四句를 들었고 理事無礙觀을 열어서 理徧於事門 · 事徧於理門 · 依理成事門 · 事能顯理門 · 以理奪事門 · 事能隱理門 · 眞理即事門 · 事法即理門 · 眞理非事門 · 事法非理門十門으로 나누고, 周徧含用觀을 열어서 理如事門 · 事如理門 · 事含理事門 · 通局無礙門 · 廣狹無礙門 · 徧用無礙門 · 攝入無礙門 · 交涉無礙門 · 相在無礙門 · 漙融無礙門十門을 들고 있다.

원각경의 에 기준하여 을 닦는 정신상태에 奢摩他 · 三摩鉢底 · 禪那의 세가지가 있다고 하고, 宗密은 이것을 泯相澄神觀(靜觀) · 起幻銷塵觀(幻觀) · 絶待靈心觀(寂觀)이라 이름하고 이것을 닦는데 25종이 있다고 하고, 또한 이 三觀은 분류의 의도에 따라 마음의 상태에 관한 분류이므로 天台三觀과는 다르지만 그 의미 내용으로 말하면 · · 에 해당한다고 했다.

천태종에서 말하는 止觀義例에 의하면 十乘觀法을 닦는데 모든 대상에 따라서 一心하는 從行觀(約行觀), 四諦五行 등의 法相해서 一心하는 附法觀, 事象意義하여 一心하는 託事觀3종의 방법이 있다고 했다.

 

불법(佛法) : 부처가 하신 佛法이라고 한다. 成實論卷一에는 여섯 가지 동의어를 들고 있다. 이것을 佛法六名이라고 한다. (1) 善說(있는대로 하기 때문). (2) 現報(現世에 있어서 果報를 얻게 하기 때문에) (3) 無時(吉凶이 때를 가리지 않고 따라오기 때문에) (4) 能將(正行으로써 중생을 잘 이끌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5) 來嘗(자신이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6) 智者自知(지혜있는 사람은 스스로 잘 信解하기 때문에

부처가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敎法. 出世間의 법을 불법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하여 만든 국법을 王法이라 한다. 眞宗에서는 王法爲本 · 仁義爲先이라고 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국법을 준수하고 윤리도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불타가 얻은 법(緣起道理法界의 진리 ). 부처가 알고 있는 법(一切法). 불타가 갖추고 계신 여러 가지 功德(十八不共法)을 불법이라 하는 수도 있다.

 

통달(通達) : 가까워진다, 도달한다. 골고루 미쳐서 꿰뚫다의 뜻.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통달친근) 길을 건너가다. 다하다. 감관이 예민한 감각을 느낀다. 지혜의 완성의 극치. 확실히 이해하는 것. 깨닫는 것. 골고루 미치다. 철저하다.

 

삼각(三覺) : 불타를 번역한 에 갖춘 세 가지 뜻.

(1) 自覺. 범부들의 자각이 없는 데 대한 것.

(2) 覺他. 성문 · 연각이 자기만 깨닫는 데 노력하고 다른 이를 구하지 않음에 대한 것.

(3) 覺行窮滿. 보살과 구별하여 불타의 覺者인 뜻을 밝힌 것.

 

불과(佛果) : 修行으로 하여 極果에 이르는 부처님의 지위.

 

극과(極果) : 지극한 證果란 뜻. 부처님의 正覺을 말함. 대승의 佛果, 소승의 無學果와 같이 至極究竟를 가리킴. 因位 수행의 결과를 말함. 무상 열반의 극과라고도 한다.

 

성종성(性種性) : 六種性의 하나. 十行地位에 있는 보살은 우주 만유의 本性眞空이라 증득하고도, 萬有諸法을 인정하여 중생을 제도하므로 이렇게 이름함.

 

도종성(道種性) : 瓔珞經에 설하는 6種性의 하나. 十廻向를 가리킴. 에서 비로소 바로 中道觀을 닦는 까닭에 라고 하고, 를 내기 때문에 이라고 한다.

 

성종성(聖種性) : 六種性의 하나. 보살수행의 地位. 十地 보살을 말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中道의 진리를 통달하여 無相煩惱를 없애고 等覺位證入할 것이므로 이렇게 이름함.

 

등각성(等覺性) : 부처가 되기 직전의 자리를 말함. 또한 일체의 번뇌를 끊은 때를 等覺性이라 한다.

 

묘각성(妙覺性) : 瓔珞本業經에서 설한 六種性의 하나. 佛果性分.

 

무명업식(無明業識) : 미혹된 마음을 말한다.


 

등각(等覺) : 等正覺(두루하고 바른 보편타당성 있는 이란 뜻)을 말함. 불타를 말함. 널리 진리를 깨달아 諸佛의 깨달음의 내용이 동등하다는 뜻.

내용적으로는 불타의 깨달음과 동등하고, 실제로는 불타의 한 발 앞에 있는 자. 보살 수행의 階位 五十二位 가운데의 제51, 六種性의 제5. 等正覺(正覺과 동등한 ) · 有上士(妙覺의 불타를 無上士라고 하는데 대해, 等正覺은 아직 上位가 있기 때문) · 一生補處(현재의 一生 뒤에는 불타가 될 補處佛) · 金剛心(金剛처럼 견고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쳐부순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等覺의 보살이 불타가 되기 전에, 다시 거듭하여 범부의 에 내려가서 닦는, 진리에 비추어 닦는 수행을 入重玄門이라고 한다.

 

묘각(妙覺) : 佛陀不可思議絶妙無上正覺. 究極佛陀의 자리(天台四敎儀). 보살52. 41의 하나. 곧 보살수행 최후의 자리로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하게 갖춰진 자리를 말함.

 

불과(佛果) : 수행한 으로 하여 極果에 이르는 부처님의 지위.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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