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촬요

깨달은 후 차츰 닦는 법을 보임(重示悟後漸修)

근와(槿瓦) 2015. 4. 11. 00:08

깨달은 후 차츰 닦는 법을 보임(重示悟後漸修)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지마는, 많은 생의 습기가 깊구나. 바람은 멈췄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상이 그대로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종고선사도 ‘간혹 영리한 무리들은 흔히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이치를 깨치고는 곧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으려 하지 않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여전히 흘러다니면서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하니 어찌 잠시 깨달은 바가 있다 하여 다시 닦는 일을 던져 버리리요?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 오래오래 밝히고 살펴서 망념이 일어나거든 결코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더 할 것이 없는데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하리니, 천하의 선지식이 깨친 뒤에 수행을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나중에 닦는다고는 하나, 망념은 본래 공하고 심성(心性)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먼저 깨쳤으므로 악을 끊어도 끊을 것이 없고 선을 닦아도 닦을 것이 없나니 이것이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갖가지 수행을 골고루 닦는다 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 근본을 삼는다’하였다.”

 

“규봉스님도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이치를 통틀어 결론하기를,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으며,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단박 깨치고 그것에 의해 닦으면 그것을 최상승(最上乘)의 선(禪)이라 하고 또 여래의 청정한 선이라 한다. 만일 생각생각에 닦아 익히면 저절로 차츰 백천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스님의 문하에서 계속해 서로 전해오는 것이 바로 이 선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선악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억제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닦는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미혹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문(聲聞)들은 마음 마음에 미혹을 끊지마는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하였다. 다만 살생과 도둑질 · 음행 · 거짓말 등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나는 줄로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는 것이어서 그 자리가 곧 고요한 것이니, ‘어찌 다시 끊을 필요가 있는가?’하였다.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망념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없어지리라’하였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비록 밖에 대한 번뇌(客塵煩惱)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최상의 맛(醍醐)이 되느니라.

 

다만 미혹이 근본이 없는 줄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허망한 삼계는 바람이 연기를 걷음과 같고, 허깨비인 육진(六塵)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만일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 살피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면,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없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밝아지며, 죄업이 저절로 끊어지고 공덕이 저절로 늘어나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곧 끊어질 것이다.

 

만일 미세한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고 원각의 큰 지혜가 환하게 홀로 있으면 곧 천백억의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안에서 중생들의 정성에 감동되는 대로 응해 주리니, 그것은 마치 달이 하늘에 나타나면 그 그림자가 온갖 물에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이 있는 중생을 제도하면서 즐거워 근심이 없으므로 크게 깨달은 세존이라 하느니라.”

 

 

출전 :선문촬요(수심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