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無生)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① 태어남이 없는 것을 말함. 태어나지 않으면 滅하는 것도 없으므로 無生滅 또는 無生無滅이라 한다. 일체의 현상은 그 본질에 있어서 實體가 없고 空했으므로 生하고 滅하는 變化가 없음을 말한다.
② 阿羅漢 또는 涅槃의 의역. 彌陀의 本願에 따라 淨土에 탄생함은 미타의 본원이 無生인 涅槃의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범부가 생각하는 거짓되고 헛된 無常의 生과는 다르다고 했으며, 往生論註에서 曇鸞은 이것을 無生之生이라고 했다. 열반에는 生滅이 없다는 점에서 열반을 깨닫는 것은 無生身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며, 極樂은 열반에 적합한 세계란 의미가 있다고 하여 無生界라고도 한다.
참고
무생무멸(無生無滅) : 상주하는 것.
일체법(一切法) : 一切諸法 · 萬法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 一切의 事物, 모든 現象, 정신적 · 物質的인 것. 일체 現象的 존재를 말함. 원 뜻은「緣起로 된 모든 존재」곧 有爲法을 가리켰으나 뒤에 이와 對立하는 無爲法도 추가되었다. 法에 관하여 여러 가지 분류방법이 있다. 그러나 일체법은 모두 所緣이 된다.
본질(本質) : 法相宗의 敎義. 心·心所(마음의 작용)가 대상을 인식할 때 그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음속에 變現시켜, 이것을 직접의 대상으로 하여 인식이 성립되는데 이 직접의 대상(親所緣)을 影像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이 影像의 실정·근거·의거할 바가 되는 事物자체를 본질이라고 한다. 본질도 또 간접적으로는 인식의 대상(疎所緣)이 되기 때문에, 相分을 두 가지로 나누어 本質相分·影像相分으로 한다.
본래공(本來空) : 萬有의 諸法은 본래부터 그 實體가 없는 것으로 空하다는 원리.
아라한(阿羅漢) : ① 범어 arhan의 音譯. 이것은 男性, 主格, 單數의 形이니, 原形은 arhat. 阿羅訶·阿囉呵·阿盧漢·遏囉曷帝라고도 쓰고, 略하여 羅漢·囉呵라고도 한다. 應供·應·殺賊·不生·無生·應眞·眞人이라고 번역한다. 보통 狹義로 풀이하여, 小乘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이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廣義로는 大乘·小乘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應供이라 함은 供養을 받는데 응하는 이, 相應한 이,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이라는 의미인데,「供養云云」은 補足한 말로,「應」은 확실히 이 말의 번역이다. 應供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大應供이라 하고, 보통 佛陀의 異名이다. 殺賊이라 함은, 번뇌의 賊을 죽였다는 의미이며, 不生 또는 無生이라 함은, 영구히 열반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다시 미혹의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들 두 번역은 原語의 語義에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이를 應供·殺賊·不生의 三義를 阿羅漢의 三義라고 한다.
② 如來十號의 하나. 이 경우는 佛陀의 異名.
③ 四沙門果. 곧 聲聞四果중에서는 최후의 자리. 여기에 다시 向과 果를 나눈다. 그 果를 向해서 수행하고 있는 사이가 阿羅漢向이고, 확실히 그 果에 도달한 때가 阿羅漢果이다. 이 阿羅漢果의 聖者를 已達의 大德이라 한다. 이것은 최후의 理想세계로, 여기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다시 더 배워야 할 一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無學 또는 無學果라 하고,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의 八聖道와 無學解脫·無學正智의 10종의 無漏法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것을 十無學支라고 한다.
④ 俱舍論권25에 의하면 아라한을 6종으로 분류해서, 6종 아라한을 세운다. 곧,
(1) 退法(또는 退相) 아라한(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으로부터 退失하기 쉬운 사람).
(2) 思法(또는 死相) 아라한(退失이 두려워서 自害하려고 생각하는 사람).
(3) 護法(또는 守相) 아라한(退失하지 않으려고 防護하는 자).
(4) 安住法(또는 住相) 아라한(防護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退失하지 않지만 또한 增進하기도 어려운 자).
(5) 堪達法(또는 可進相) 아라한(增進해서 빨리 다음의 不動法을 통달하는 자).
(6) 不動法(또는 不壞相) 아라한(전혀 退失하지 않는 자). 이들 중에서 앞의 5는 성품이 遲鈍한 자(鈍根)로 時解脫이라고도, 時愛心解脫이라고도 하고, 뒤의 1은 성품의 예리한 자(利根)로 不時解脫이라고도, 不動心解脫이라고도 한다. 또 아울러서 2종 羅漢이라고 한다. 時解脫은 좋은 緣이 있는 때를 기다려서 定에 들어가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時解脫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入定하여 해탈하는 자, 時愛心解脫은 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을 항상 애호해서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動心解脫은 번뇌 때문에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退失하지 않고 해탈하는 자를 의미한다. 또 不動法아라한 중에서, 본래 利根인(예리한 성격자)을 不退(法)(또는 不退相) 아라한이라 하고, 수행의 힘에 의해서 不動法아라한에 나아간 자를 不動法아라한이라고 하여 둘로 나누고, 이것을 앞의 5에 더해서 7종 아라한이라고 하며, 不動法아라한을 不動아라한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다시 緣覺과 佛을 더하여 9종 아라한 또는 九無學이라고 한다.
⑤ 成實論 권一, 中阿含經 권十三에는, 緣覺·佛 대신 慧解脫·俱解脫을 더한 또 다른 형의 9종 아라한(九無學)을 說하고 있다. 그 중 慧解脫은 지혜의 힘에 의해 번뇌를 해탈한 아라한을 말하고, 俱解脫은 慧解脫人이 다시 滅盡定을 얻은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俱解脫이라고 일컫는 것은, 滅盡定을 얻은 것이 心解脫을 의미하고 있고 따라서 마음과 慧의 兩(곧 俱인)해탈을 얻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慧解脫과 俱解脫을 2종 羅漢이라 하고, 여기에 無疑解脫을 더하여 3종 羅漢이라고 한다. 無疑解脫이라 함은, 俱解脫 중에서 일체의 文義에 통달하여, 四無礙解를 얻은 자를 말함.
⑥ 天台宗에서는 아라한이 不淨觀을 닦는 경우 그 對境의 차이를 따라 壞法·不壞法의 2종 羅漢으로 나눈다.
열반(涅槃) : 滅 · 寂滅 · 滅度 · 寂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 · 樂 · 我 · 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 · 恒 · 安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 · 恒은 항상, 安 · 快樂은 樂으로, 不老 · 不死는 我에, 淸淨 · 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의 二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緣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의 3열반을 세운다.
③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敎에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의 相)을 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④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薪은 佛身 또는 機緣, 火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또 影像을 涅槃像, 그날(2월 15일)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死를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미타(彌陀) : 아미타불의 약칭. 無量壽 · 無量光 · 甘露라고도 함.
무량수(無量壽) : 범어 amitayus로 阿彌陀瘦斯라 음역.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말.
무량광(無量光) : 범어 amitabha의 번역. 12光의 하나로 佛陀(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無量의 빛이다.(入楞伽經卷一) 아미타불의 光明은 그 數가 극히 많아, 數量으로써 헤아릴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 또한 그 利益은 한이 없어 過去 · 現在 · 未來의 三世에 이르도록 끝이 없으므로 이같이 말한다. 無量光佛의 약칭.
무량광불(無量光佛) : 12光佛의 하나. 無量壽佛의 호를 무량광불이라 함. 즉 아미타불을 말함.
무량수불(無量壽佛) : 범어 Amitayus-buddha. 아미타불의 義譯으로 淨土敎의 주존불. 수명이 한없는 불타의 덕을 찬양하여 이르는 말. 아미타불은 중생구제의 48가지 本願을 가지고 오랫동안 수행하여, 十劫 이전에 그 원을 성취하여 성불하였으며, 현재 극락세계에 머물러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범어 원어는 amitayus(無量壽)와 amitabha(無量光)의 두 가지가 있어, 그 기원은 다르나 정토사상의 경전에서는 동일한 부처로 취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무량수경이 amitabha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에서 ami=tabha와 동일시하여 설한다. 그러나 후의 밀교에서는 태장계의 불로서는 아미타불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감로(甘露) : 범어 amrta의 음역. 不死 · 天酒라 번역함. 蘇摩의 즙, 天神들의 음료.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이라 하여 甘露라 이름한다. 經典에 甘露란 말이 많은 것은, 부처님의 교법이 중생을 잘 제도함에 비유함.
본원(本願) : 불과 보살이 因位에서 생기는 誓願을 말한다. 本弘誓願을 약하여 本誓 · 宿願이라고도 한다. 그 원하는 바가 크다는 뜻에서 弘誓라고도 한다. 또 諸佛과 보살이 가지고 있는 固有한 願을 別願이라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 四弘誓願은 함께 가지는 總願이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法藏보살)의 四十八願(梵本에서는 四十六願, 異譯의 經典에서는 三十六願, 또 二十四願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藥師佛의 十二大願, 釋迦佛의 五百大願 등은 別願이다. 그 밖에 보현보살의 十大願이나 舊譯 화엄경에서 說하고 있는 初地의 보살이 일으키는 十大願 등이 있다. 淨土敎에서는 아미타불의 四十八大願 특히 第十八大願을 本願(王本願)이라 한다. 四十八大願은 無量壽經에 說하고 있는데, 이것을 六八弘誓 · 六八願이라 한다. .....
정토(淨土) : 衆生의 세계는 貪 · 瞋 · 痴의 三毒에 의해 이루어진 穢土인데 대해 佛陀가 머무는 세계는 오직 깨달음에 의한 거룩한 淸淨光明覺의 세계이므로 淨土라 한다. 또 淨刹 · 淨界 · 淨國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의 적극적인 활동을 인정, 열반을 성취한 無數한 佛이 각각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敎導활동을 전개하는데 그 佛이 머무는 세계를 佛國淨土라고 한다.
維摩經卷上佛國品에는 마음이 淸淨하면 國土 또한 청정하다고 했으며, 깨달음을 열면 이 娑婆世界가 그대로 정토가 된다 라고 했다. 또 화엄경의 靈山淨土, 화엄경의 蓮華藏 세계, 大乘密嚴經의 密嚴淨土 등을 설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또 무량수경 등에서는 사바세계 이외의 他方에 존재하는 불국정토를 說示했으며, 또 다른 경에서는 미래에 건설될 정토가 있다고도 했고, 이러한 정토는 보살이 本願에 의해 구상하고 무량한 수행을 통해서 성불할 때에 완성되는 국토로서 그 불세계에 나고자 하는 중생들이 왕생한다고 한다. 타방세계에 있는 정토로서 아미타불의 西方極樂세계, 阿閦佛의 東方妙喜세계, 釋迦佛의 西方無勝세계, 藥師佛의 東方淨瑠璃세계 등이 있으며, 이들 諸佛의 정토는 각각 사바세계로부터 각각 다른 방향에 있으므로 十方정토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특히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소중하게 여기고 저 세계에의 왕생을 강조한다.
극락세계는 須摩提의 번역으로 妙樂 · 安樂 · 安養 · 樂邦 등의 뜻을 갖는다. 이 정토는 보살이 닦는 因行의 報로서 이루어진 報土, 그것도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짓으로 나타낸 應化土인데, 서방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실재하는 것인가?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가? 하는 등에 대한 諸說이 있다. 정토교에서는 報土로서 서방에 실재한다고 하며, 거기에 왕생하여 받는 낙에 대해 往生要集卷上에,
(1) 聖衆來迎樂(臨終할 때 아미타불과 관음 · 세지의 2보살 등이 와서 맞이하여 정토에 인도하는 것).
(2) 蓮華初開樂(연꽃에 의탁하여 정토에 왕생(化生)하므로 그 연꽃이 처음 열릴 때 정토의 莊嚴을 보게 되는 것).
(3) 身相神通樂(三十二相의 몸과 天眼 등의 5종의 신통(五通)을 얻는 것).
(4) 五妙境界樂(色 · 聲 · 香 · 味 · 觸의 5境이 勝妙한 것).
(5) 快樂無退樂(즐거움을 받는 일이 무궁하여 끝이 없는 것).
(6) 引接結緣樂(전에 緣을 맺었던 恩人 등을 정토에서 맞이하는 것).
(7) 聖衆俱會樂(많은 보살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8) 見佛聞法樂(불타를 뵙고 그 법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
(9) 隨心供佛樂(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十方의 諸佛을 공양하는 것).
(10) 增進佛道樂(수행정진이 잘 되어 마침내 佛果에 오르는 것).의 十樂을 설하고 있다.
또 극락에는 邊地 · 疑城 · 胎宮 · 懈慢界(극락에 도달하는 도중에 있는 나라라고도, 또는 彌陀정토의 化土라고도 한다) 등이 있어서 佛智를 의심하는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이라고도 한다. 또 佛土에는 없지만(정토는 불의 세계) 미륵보살의 兜率天이나 관세음보살의 普陀洛山 등도 淨土라고 할 수 있다.
무상(無相) : ① 眞如 法性은 迷한 생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현상의 모양이 없는 것. ② 生滅 변천하는 모양이 없는 無爲法. ③ 모든 執着을 여읜 경계. ④ 客觀의 속박을 벗어나 萬法이 幻術과 같은 줄로 아는 온갖 無漏心. ⑤ 初地 이상의 菩薩이 無漏心으로 닦는 空觀.
생멸(生滅) : 生起와 滅盡을 병칭하는 것으로 起滅이라고도 한다. 인연이 화합하여(곧 모든 조건이 만족하게 되어) 성립하는 萬有(곧 有爲法)는 변천하는 성질의 것(無常)이므로 반드시 生滅한다. 인연을 여의고 존재하는 영구불변(常住)하는 것(곧 無爲法)은 無生無滅(不生不滅)이다. 단 대승에서는 유위법에도 불생불멸의 뜻이 있다고 한다. 또 생멸은 시간의 최소단위(刹那)로 논하면 찰라찰라에 생멸하므로 이것을 刹那生滅(刹那滅)이라 한다. 이에 대해 有情이 나서 죽을 때까지 한 평생(一期)을 가지고 생멸(出生과 死滅)이라고 하는 것을 一期生滅이라 하고 합해서 2種生滅이라 한다.
무생신(無生身) : ① 生滅이 없는 불타의 法身을 말함. 열반 곧 無生의 진리를 證悟한 것. 여기에 分과 圓이 있다. 그 一分을 깨달아 얻은 이가 菩薩位이고 원만하게 그 전부를 깨달아 얻은 이가 佛果. ② 永久의 몸. 극락정토에서 얻어진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