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과 교계(113)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다시 미륵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무량수국에 주하는 중생의 공덕과 지혜는 이루 다 찬양할 수가 없다. 또한 그 국토가 오묘하니 즐겁고 청정한 일도 위에서 설한 대로이다. 무엇 때문에 이 세계의 중생들은 애써 선을 행하고 자연의 대도(大道)를 염하되 상하에 걸쳐 다함없는 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저마다 면려하고 몸소 구하도록 하라. 그러하면 반드시 안양(安養)의 국토에 태어나고 부처의 거룩한 힘에 의해 모든 악도를 뛰어넘어 각에 오르는데 장애는 없으리라. 그 나라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 들어가는데 방해가 없고 저절로 중생을 끌어들이는 것이지만, 참으로 가기 쉽되 가는 중생은 없다. 만일 세간의 일을 버리고 면려하여 도를 구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다함이 없는 낙을 받게 되리라.
그렇건만 세간의 중생은 천박하여 눈앞의 시시한 일을 가지고 다투며 이 격렬한 악과 괴로움 속의 영위(營爲)에 바빠 겨우 그날 그날로 날이 밝고 밤을 샌다.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남자도 여자도 한가지로 일과 금전에 대해서 근심하고 있다.
있는 자도 없는 자도 그 수심에 변함이 없다. 수심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고 생각을 거듭하여 염려하고 그 때문에 혹사 당하여 평안한 때가 없다. 밭이 있으면 밭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하고 소, 말, 온갖 가축, 종, 재산, 옷, 음식, 집기에 관해서도 걱정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때아닌 물, 불, 도둑, 원수, 빚쟁이 때문에 떠돌게 되고 불타고 빼앗겨 그 같은 소유물을 없애고 나면, 근심은 독을 마신 것처럼 마음에 얽혀 풀릴 때가 없다.
분함은 가슴 속에 맺혀 고뇌가 되고 마음은 굳어져 뜻대로 되지 않는다. 혹은 화를 만나 목숨이 끝나면, 홀로 가며 아무도 따르는 자가 없어 한탄한다.
귀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이 환난(患難)에는 변함이 없다. 근심과 두려움은 끝없이 겹치고 괴로움이 끊일 사이가 없다. 때로는 오한을 느끼고 끓어오르는 열을 느껴 아픔 속에 잠긴다.
가난하고 천한 자는 또 언제나 부족한 일에 괴로워하고 있다. 밭이 없으면 밭을, 집이 없으면 집을, 우마 혹은 의식, 집기 등에 관해서도 없으면 역시 없는 대로 자꾸만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모자라고 그것이 있으면 이것이 없다. 어떻게든지 모두 갖추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이윽고 방자한 세월이 흘러가 버린다.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또다시 구할지라도 쉽게 얻을 수가 없고 애닯게 여기더라도 효과가 없고 몸도 마음도 고달프고 기거도 편하지 않고 수심은 그림자처럼 따르고 오한을 느끼고 열을 느끼고 아픔에 잠긴다. 어떤 때에는 이 일로 요사(夭死)하는 일조차 있다. 이렇듯 선을 행한 일도 없고 도를 행하고 덕을 전한 일도 없으므로 목숨이 끝나면 단 혼자 먼 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선악의 보를 받는 길을 아는 자도 없다.
세간의 중생들이여, 아버지도 아들도 형제도 부부도 친족도 서로 공경하여 사랑하되 미워하거나 시기해서는 안 된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탐하고 아껴서는 안 된다. 늘 말이나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거슬려서는 안 된다. 만일 다투는 마음이 생겨 노여움을 품으면 이승에서는 미미한 증질(憎嫉)일지라도 내세에는 점차 심해져 큰 원이 된다. 왜냐하면 세간의 일은 서로 해치더라도 그 즉시 터지지 않지만, 독을 품고 노여움을 축적하고 분함이 마음에 맺히고 절로 마음에 새겨져 떠나지 않고 생을 바꾸어 서로 원수를 갚는다. 사람은 애욕이 넘친 세상에 혼자 태어나 혼자 죽고 혼자 가거나 혼자 오거나 하여 괴로운 곳에, 또는 즐거운 곳에 가되, 몸소 그것을 겪으며 대신해 주는 자도 없다. 선과 악은 저마다 그 보를 달리 하고, 선은 복을, 악은 재앙을 가져오는 일, 엄숙한 인과의 이치에 의해 미리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씩 먼 곳으로 옮겨지는데 누구도 볼 수가 없다. 저마다 한 선악의 업에 의해 어둡고 아득한 곳에 따로따로 떨어져 태어나고 그 가는 길이 다르므로 만나는 때란 없다.
그러므로 중생들이여, 세간의 일을 버리고 모두가 건강한 때에 선을 닦고 면려하여 망집의 세계를 여의고 영원한 생을 얻고자 원해야 한다. 도를 구하는 일을 제외하고서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즐거움으로 삼으려는가.
그러하건만 세간의 중생은, 선을 행하면 선을 얻고 도를 구하면 도를 얻는 것을 믿지 않고 또한 죽음은 태어나는 것이며, 주는 일은 복을 얻는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즉, 그들은 선악 인과의 업을 모두 믿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그 견해를 뿌리로 하여 선인(先人)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전한다. 즉, 앞 사람은 물론 선을 행하지 않고 도를 모르고 어리석고 어두운데다 마음은 폐색(閉塞)되어 사생(死生)의 행방도 선악의 도도 보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화와 복이 다투어 일어나더라도, 한 사람도 그것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의심하는 자가 없다. 이렇듯 의심하고 환사하는 길은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어버이가 자식 때문에 울고 자식이 어버이 때문에 울고 형제 부부도 서로 울며 슬퍼한다. 언제나 거슬리는 일이 일어나지만 무상이 그 원인이다.
사물은 모두 지나가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없다. 가르쳐 이끌더라도 믿는 자가 적으므로 생사의 흐름은 그칠 때가 없다. 이와 같은 중생은 어리석고 성품이 사나와서 가르침을 믿는 일이 없고 먼 사려가 없으므로 단지 눈앞의 낙에 빠지고 애욕에 마음이 흐려져 도에 이르지 못하고 노여움에 빠져들어 이리와 같이 재물이나 색을 탐한다. 이 때문에 악도의 괴로움에 빠지고 망집의 길은 그치는 일이 없다.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어떤 때는 가족, 부자, 형제, 부부 중에서 한 사람은 죽되 한 사람은 태어나 서로 은애로 이어져서 근심에 계박되고, 애처로운 생각이 맺혀 날이 가고 해가 지나도 풀리는 일이 없다. 도를 가르쳐도 마음은 열리지 않고, 친함에 얽매여 정욕에 빠지고, 어둔 생각에 가리어 깊이 사물을 생각할 수가 없고, 바르게 도를 닦아 세간의 일을 결정할 수가 없고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몸의 종말은 가까워져 나이를 다하여도 도를 얻지 못한다. 세간이 모두 애욕을 탐하고 있기 때문에 도에 혹(惑)하는 자는 많고 도를 깨닫는 자는 적다. 세간의 일은 황망하게 지나가 의지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귀한 자도 천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모두가 저마다의 생업에 괴로워하여, 남을 해칠 생각을 품는다. 악한 기운은 연기처럼 서리어 망녕되이 일을 일으키고 자연의 도에 거슬리고 자연의 인정에 위배되므로 죄악의 행이 절로 일어나 그것을 부추기고 가는 데까지 가도록 버려 둔다. 때문에 천명도 다하기 전에 죽음에 빼앗겨 악도에 빠지고, 생을 거듭하여 괴로움에서 괴로움으로 옮기고 천만겁을 지나도 헤어날 수가 없다. 가엾고 애처롭기 이를 데 없다.”
세존은 다시 미륵 보살에게 고하셨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 세간의 일을 말했다. 중생들은 이 때문에 번거로와 도를 얻지 못한다. 잘 생각을 가다듬고 모든 악을 멀리하며 선을 택하여 힘써 행하는 게 좋으리라. 애욕도 영화도 오래 부유할 수는 없다. 이윽고 서로간에 헤어지게 되리라. 즐거워야 할 일이란 하나도 없다. 만일 부처의 세상을 만나게 되면 힘써 무량수불의 수승한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라. 밝은 지혜와 수승한 공덕을 얻으리라. 욕심대로 내맡겨 가르침을 어기고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 그대들, 만일 의문이 있다면 나에게 물으라.”
미륵 보살은 무릎을 꿇고서 아뢰었다.
“세존의 위덕(威德)은 존귀하고 설하시는 바는 상쾌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마음에 깊이 거룩하신 가르침을 생각하오면, 세간의 모양은 바로 세존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바야흐로 세존의 자비에 의해 큰 도를 가르치시어 저희들은 마음의 귀도 눈도 열리고 영원히 망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기뻐하는 것은 저희들뿐이 아니옵니다. 위로는 하늘의 신들로부터 아래로는 벌레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터운 은혜를 입어 괴로움을 여의옵니다. 참으로 세존의 가르침은 이를데 없이 깊고 지혜는 시방을 보시고 삼세를 밝히시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망집을 여읠 수가 있음은 그 옛날 세존이 도를 구하고 계셨을 때 몸을 낮추어 고행을 한 때문이옵니다. 참으로 불은(佛恩)은 넓어 두루 세상을 덮고 거룩하신 덕은 높아서 산처럼 솟아 그 위에 빛은 사물의 끝까지 비추어 공(空)을 나타내며, 그리하여 깨달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때로는 간곡하게 가르침을 내려주시고 때로는 위덕을 떨치시어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시고 시방에 걸쳐서 끝없이 감동케 하십니다. 세존은 참으로 법왕이시고 모든 성자를 뛰어넘어 널리 모든 중생의 스승이 되십니다. 중생이 만일 마음으로써 원하면 모두 도를 얻게 해 주십니다. 지금 저희들은 세존을 만나 뵙고서 무량수불의 거룩한 이름을 듣고 가슴은 기쁨으로 뛰고 마음은 열렸습니다.”
세존은 미륵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하는 바는 옳다. 세상에 부처를 공경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리고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나는 지금 이 세계에 부처가 되어 법을 설하고 온갖 의망(疑網)을 끊고 애욕의 뿌리를 뽑아 악이라는 악의 근원을 막고 삼계를 걸어가는데 장애가 되는 바가 없다. 그 지혜는 모든 도의 요제(要諦)이다. 따라서 불을 보는 것보다 밝게 망집의 세계의 모양을 보여 주고 그 안에 있는 중생으로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를 구제하여, 깨달음의 도에 이르게 한다.
미륵이여, 그대는 끝이 없는 먼 옛날부터 보살의 행을 닦아 중생을 구제했다. 또 그대를 따라 깨달음의 언덕에 이른 중생은, 들어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대를 비롯하여 온갖 중생이 먼 옛날부터 망집의 세계를 윤회하고, 우고(憂苦)에 빠져 있는 일은 도저히 말로써 다 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도 망집을 끊는 일이 없다. 그렇건만 이제 부처를 만나고 무량수불의 거룩한 이름을 듣고서 믿을 수가 있었던 것은 심히 유쾌한 일이다. 나는 그대를 도와 기쁘게 해 주었으나, 그대 또한 망집의 생을 받아 늙음과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에 염증을 가져야 한다. 무릇 세상은 악과 더러움에 넘쳐 즐거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 마땅히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선을 행하여 마음의 때를 없애고 언행에 신(信)이 있고 표리가 서로 걸맞고 먼저 자기를 구하되 나아가서 남을 구하듯이, 명백한 원을 갖고서 선의 기초를 이루도록 하라. 세간의 일에 괴로워하는 것도 잠시 동안이다. 후에는 무량수국에 태어나 끝이 없는 즐거움을 받아 영원히 도(道)와 하나가 되고 미혹의 뿌리를 뽑아 또다시 탐, 진, 치의 고뇌는 없으리라. 목숨의 장단도 자유자재이며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고 깨달음의 도와도 상응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면려하여 믿음의 원을 구하고 의심하는 과실을 범해서는 안 된다.”
미륵 보살이 말하기를,
“세존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받자와, 면려하고 가르침과 같이 행할 것입니다.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 고하셨다.
“그대들은 이 세간에서 마음을 단정히 하여 악을 짓지 않는다면, 시방 세계에 견주어 비할 데 없는 덕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 국토의 중생은 스스로 선을 행하고 심한 악을 짓지 않으므로 가르쳐 이끌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이 세간에 부처가 되어 다섯 가지의 악, 다섯 가지의 아픔, 다섯 가지의 불태우는 심한 괴로움 속에 있으면서 중생을 가르쳐 이 같은 고뇌를 버리게 하며 그 뜻을 항복시켜 미혹의 세계를 여읜 복, 끝이 없는 영원한 수(壽)에 찬 득을 얻게 해 주리라.
그 첫째의 악이라고 함은 일체 중생으로부터 벌레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로가 악을 짓고자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쓰러뜨리고 서로 해치거나 죽이고 물어뜯음을 일삼아 선을 이룰 줄을 모르고 마음이 사나와 도에 거슬리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범하는 자는 결코 용서되지 않고 후에 반드시 재앙의 보를 받는다. 그러기에 세간에는 가난한 자, 홀로 있는 자, 벙어리, 장님, 귀머거리, 어리석은 자, 고집쟁이, 미치광이, 바보가 있고 또 존귀한 자, 부유한 자, 재주가 뛰어나고 슬기로운 자가 있는 것이다. 후자의 중생은 모두 다 지나간 세상에 자비롭고 선을 닦고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상도(常道)로써 나라의 법에 의한 뇌옥이 있지만 감히 두려워하는 바도 없이 죄를 범하여 뇌옥에 갇히고, 벗어나려고 마음 먹더라도 나올 수가 없다. 눈앞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다. 하물며 목숨이 끝난 뒤에는 그 보가 가장 길고 심하여 지옥에 빠져 생을 바꾸어 몸을 받는데, 마치 국법에 의한 괴로운 형벌을 받듯이 혹은 지옥에 태어나 아귀가 되고 축생의 생을 받아 끝이 없는 괴로움에 빠진다. 그 수명은 길거나 또는 짧고 넋은 절로 혼자서 그 정해진 곳에 가지만 전부터 미워하던 자가 서로 모여 보복을 주고 받으며, 언제까지나 그 재앙을 다 치르지를 못하고 서로가 그 괴로움 속에 잠겨 떠나는 일도 없거니와 벗어날 때도 없다. 그 애처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렇듯 인과의 이치라는 것은 자연히 천지의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별안간 그 보가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오는 법이다. 이것을 제일의 악, 제일의 아픔, 제일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그 괴로움은 큰 불 속에서 타는 것과 같다. 만일 중생이 이 속에 있되 오로지 의(意)에 멈추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을 바르게 하여 착한 일을 하며 악을 피한다면, 몸은 망집에서 벗어나고 그 복은 가이없는 증도(證道)를 얻으리라. 이것이 제일의 대선(大善)이다.
그 둘째의 악이라고 함은, 세간의 중생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척 등 모두가 의리가 없고 법도를 따르지 않고 마음은 교만하고 음탕하며 사치를 일삼고, 모두 마음내키는 대로 쾌락을 얻고자 하여 서로가 속인다. 마음은 입과 함께 진실이 없고, 말은 교묘하여 아첨하고, 불충한 마음에서 어진 이를 질투하고 착한 이를 비방하여 사곡된 죄에 빠진다. 임금은 어리석게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멋대로 거짓 계략을 꾀한다. 어쩌다가 어진 신하가 천하의 형세를 잘 알고 정도껏 일을 행하더라도 왕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불충한 신하에게 속고 망녕되이 충성스런 신하를 멀리하여 도에 배반한다. 이리하여 신하는 그 임금을 속이고 형제도 부부도 안팎의 친지도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모두 탐과 진에와 우치의 욕을 품고 단지 자기를 후하게 하고자 행하며, 게다가 또 욕을 거듭하고 있다. 귀한 자도 천한 자도 위도 아래도 그 마음은 바뀌는 일이 없다. 나아가선 집을 망치고 몸을 망쳐 앞의 일도 뒤의 일도 돌아볼 겨를이 없고 연이 닿는 중생도 그 연누(漣累)가 되어 멸한다.
어떤 때는 또 여러 가지의 환경에 처한 중생이 서로 일을 같이하고 이해 때문에 다투어 원한을 맺게 된다. 부한 자는 아까워서 베풀 줄을 모르고, 보물을 탐하고 아껴 마음은 고달프고 몸은 괴로워 이렇듯 몸은 죽음에 이르건만 의지삼을 만한 것이 없다. 홀로 왔다가 홀로 가며 한 사람도 따르는 자가 없다. 선과 악은 목숨을 좇아 저마다 복과 화에 이끌려 혹은 즐거움 혹은 괴로움으로 들어간다. 더구나 괴로움의 보를 받아 뉘우치더라도 마치지를 못한다. 참으로 세간의 중생들은 어리석어 지혜가 적고, 선을 보되 선을 따르고 좇는 대신 도리어 미워하며 헐뜯고 다만 악을 이루는 일에만 매달려 있다. 그리하여 망녕되이 법에 어긋난 짓을 하고 언제나 도둑질할 마음을 품고 남의 이익을 부러워한다. 어쩌다가 얻는 일이 있더라도 마침내 다 써버리고 또 이것을 구하는 마음에 비뚤어진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을 당하여 비로소 뉘우친다. 이리하여 이 세간에 있어서는 나라의 법에 따라 죄의 보를 뇌옥에서 받는다. 그리하여 그 전세에는 도를 믿지 않고 선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또 악을 지어 내세에 다시 악도에 빠지고 스스로 다함이 없는 고에 빠져 세(世)를 거듭하고 겁을 거듭하더라도 벗어나지를 못한다. 애처롭기 이를데 없다. 이것을 제이의 악, 제이의 아픔, 제이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그 괴로움은 불에 타는 것과 같다. 중생이 만일 그 속에 있되 의(意)를 멈추고 선을 이룬다면 미혹을 여의고 증도를 얻으리라. 이것이 제이의 대선이다.
그 셋째의 악이라고 함은, 세간의 중생들은 서로 의지하여 천지의 사이에 살고 있지만, 그 수명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위로 현자, 장자, 귀족, 부자가 있고 아래로 가난한 자, 천한 자, 천치, 어리석은 자가 있다. 그 가운데 좋지 못한 중생이 있어 언제나 비뚤어진 생각을 품고 음탕한 생각으로 가슴을 태우고 애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져 기거도 편안하지 않고, 어떤 자는 아끼고 주지를 않거니와 좀더 얻고자 바란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수상쩍은 낌새를 밖에 나타내고 자기 아내를 싫어하며 은밀히 다른 여자의 집에 살다시피 하고 재물을 소비하여 하는 짓마다 모두 법에 어긋난다.
어떤 자는 패거리를 만들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치거나 공격하거나 죽이거나 하고 강탈을 하는 듯한 악도를 일삼지만, 악한 마음을 멋대로 밖에 드러내어 자기의 생업을 돌보지 않고 작은 것을 훔치므로서 점차 욕심에 사로잡혀 크게 도둑질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물건을 훔치는데 겁을 먹고 괴로움을 느끼는 법이지만, 나중에는 남을 위협하여 처자를 먹여 살리고 마음내키는 대로 몸의 즐거움에 탐닉하여 혹은 친척을 대하더라도 위아래를 가리지 않게 된다. 가족도 친지도 이것을 걱정하며 괴로워한다. 이와 같은 자는 또한 나라의 법률도 두려워하는 일이 없다. 이리하여 그 악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해나 달에 비추어지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악도에 빠져 한없는 괴로움을 받아 겁을 거듭하여도 벗어날 때가 없다. 이것을 제삼의 악, 제삼의 아픔, 제삼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그 괴로움은 불에 타는 것과 같다. 사람이 만일 그 가운데에서 뜻을 제어하고 선을 행한다면 복이 이를데 없는 증도를 얻으리라. 이것이 제삼의 대선이다.
넷째의 악이라고 함은, 세간의 중생들은 선을 하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서로 가르쳐 주며 온갖 악한 짓을 한다. 두 혓바닥을 놀리는 일, 욕설, 망언, 꾸밈말로써 서로가 다투고 서로가 해친다. 선인을 미워하고 어진 이를 헐뜯어 은근히 쾌재를 부른다.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고, 스승을 업신여기고, 벗에게 신용이 없고, 성의라는 것은 조금도 없다. 자기는 귀한자 높은 자이고,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도에 맞는다고 알고 부질없이 권세로써 남을 범하되 반성하는 일이 없다. 악을 행하되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의 강함을 믿고서 남의 공경을 바라고 천지 자연의 도리나 해나 달의 조람(照覽)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는다. 참으로 감화하기 어려운 자이다. 스스로 덕을 행함에 있어서는 앉은뱅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조금도 근심하여 겁내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교만하다.
이러한 죄악은 신들도 명심해 둔다. 그 전세에 쌓은 덕 때문에 잠시 십선(十善)의 도움을 받더라도 이승에서 지은 악한 일 때문에 복은 다하고 선은 떠나버려 몸만 홀로 허무하니 선 채 천지간에 의지할 곳도 없다. 목숨이 끝나면 온갖 악은 찾아들어 자연의 이치에 이끌려, 가야만 할 곳에 가고 죄의 보는 스스로 따라다녀 떠나는 일이 없다. 불타는 애욕의 은애(恩愛) 앞에 기다리려, 몸과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기는 괴로움을 당한다. 이 때에 이르러 뉘우치더라도 소용 없다. 자연의 이치는 어김이 없고 끝없는 악도의 괴로움에 빠져 겁을 거듭하더라도 벗어날 때란 없다. 이것을 제사의 악, 제사의 아픔, 제사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그 괴로움은 불에 타는 것과 같다. 만일 중생이 이 속에서 뜻을 조복하고 선을 짓는다면 복이 이를데 없는 증도를 얻으리라. 이것이 제사의 대선이다.
다섯째의 악이라고 함은, 세간의 중생들이 게으르고 태만하여 선을 쌓지 않고 또 스스로를 닦아 생업에 애쓰려고도 하지 않고 권속들로 하여금 굶주림에 울고 추위에 떨게 한다. 부모가 가르치고 타이르면 눈을 부라리고 말을 거칠게 하며 거슬리고 어기기가 마치 원수지간과 같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자식이 없는 편이 낫다. 출납(出納)신용이 없으니 중생들이 싫어하는 바가 된다. 은혜에 배반하고 의리에 어긋나고 보답하는 마음이 없다. 이리하여 가난에 괴로워하고 구하더라도 얻을 수가 없다. 마침내는 멋대로 남의 것을 빼앗게 되고 마음내키는 대로 유흥비에 써버리고 술에 빠져 맛있는 음식을 탐하고 음식에 분수가 없고 응석을 한껏 부린다. 그런 마음이므로 남과 충돌하고 인정을 모르기 때문에 억지로 남을 찍어 누르고자 한다. 남의 좋은 일을 시기하고 의(義)도 예(禮)도 분별 못하고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간할 수도 없다. 가족을 먹여살릴 밑천이 있고 없음도 마음에 두지 않고 어버이의 은혜도 스승이나 벗의 은혜도 생각하는 일이 없다. 마음에는 언제나 악을 생각하고, 입으로 악을 지껄이고, 몸으로 악행하고 아직껏 한가지 선조차 베푼 일이 없다. 성현의 가르침도 부처의 거룩한 가르침도 믿지 않고 도를 행하면 미혹을 여읜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즉 선행하면 선을 얻고 악을 행하면 악을 얻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깨달은 사람을 죽이고 도를 닦는 중생들의 화합(和合)을 어지럽히고 부모형제 등의 가족까지도 해치려고 한다. 그러므로 친척에게까지도 미움을 받아 죽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와 같은 중생은 마음이 어리석어 어둡고,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인자한 마음도 없이 천지의 이치에 거슬리고 다만 요행을 바라고 장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침내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로운 사람이 가엾이 여겨 교회(敎誨)하고 착한 일을 염하고 생사 선악의 인과와 법의 자연을 아무리 간곡하게 말하더라도 도움되는 바는 없다. 그 사람의 마음은 폐색되어 열리지 않고 목숨이 끝날 때에 뉘우침과 두려움이 번갈아 찾아와 괴롭힌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되면 뉘우쳐도 미치지를 못한다. 천지간에는 오취(五趣)에 이르는 도가 밝게 갖추어져 넓고 아득한 것이 한없이 깊다. 선과 악이 복과 화의 보를 가져다 주고 다만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받되 아무도 대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 가는 바에 따라 재앙은 목숨을 따라가고 떠나는 일이 없다. 선인은 선을 행하여 즐거움에서 즐거움으로 들고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며 악인은 악을 행하여 괴로움에서 괴로움으로 들며 어둠에서 어둠으로 든다. 누구도 아는 자는 없다. 다만 부처만이 홀로 아시고 가르쳐 이끌지만 믿는 자가 적기 때문에 미혹은 쉬는 일이 없고 악도는 끊기는 일이 없다. 이리하여 한없는 악도의 괴로움을 스스로 갖추어 그 가운데를 윤회하고 겁을 거듭하더라도 벗어날 때란 없다. 이것을 제오의 악, 제오의 아픔, 제오의 불태움이라고 이름한다. 만일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여 뜻을 조복하고 몸을 단정히 하여 생각을 바르게 하되 말과 행에 성의가 있고 모든 선을 행한다면 그 몸은 홀로 미혹을 여의고 복이 이를데 없는 증도(證道)를 얻으리라. 이것이 제오의 대선이다.”
세존은 다시 말씀을 계속하셨다.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이 세간의 상(相)을 설했다. 중생들은 참으로 이 괴로움 속에서 태어나, 다만 악을 짓고 선본을 닦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의 이치에 의해 여러 가지 악도에 빠진다. 어떤 때는 이승에서 병에 걸리고, 죽고자 생각해도 죽을 수 없고, 살고자 원해도 살 수가 없고, 죄를 초래하는 것으로 중생들의 표본이 된다. 또 목숨이 끝나면 그 행에 따라 악도에 들고 한없는 괴로움으로 몸을 태우고 오랜 괴로움을 받은 후 인간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서로 원수가 되어 작은 일로 인하여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모두 재물이나 색을 탐하여 중생에게 베푼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욕에 핍박되고 상념에 얽매이고 온갖 번뇌에 계박되어 풀리는 일이 없다. 자기에게만 후하게 하여 이익을 다투고 조금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귀한 몸이 되어 세간의 영화에 영화를 누리고 한 때는 뜻을 즐겁게 하더라도 조금도 구하는 욕념을 참고 누를 수 없으므로 그것에 의해 선을 이룰 수가 없고 위세는 얼마 가지 않아 사라져 버리고 괴로움은 몸에 엉겨 오래도록 심해져 간다.
참으로 천지의 이치는 벼릿줄 마냥, 그물 마냥 쳐져 있어 상하의 구별 없이 온갖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기 혼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안에 들어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애처롭고 애처롭기 이를데 없다.
미륵이여, 세간의 모양은 이러하다. 부처는 이것을 가엾이 여겨 위신력으로써 제악(諸惡)을 멸하고 선으로 이끄는 것이다. 만일 교를 지니고 도를 행한다면 마침내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 반드시 각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내세의 중생들도 부처의 가르침을 만나면 생각을 잘 하여 마음을 단정히 하고 행을 바르게 해야 한다. 위에서 먼저 선을 행하여 아래를 이끌고 서로 이야기하여 전하고, 각자가 스스로를 바르게 지키고 성인을 존중하고 선인을 공경하고 어질고 깊게 널리 사랑하고 부처의 말을 저버리지 않고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 악의 뿌리를 뽑고 끝이 없는 악도의 괴로움과 두려움을 여의도록 하라. 그리하여 온갖 덕의 근본인 부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은혜를 펴고 베풀되 계를 범하지 말고 잘 참으며 부지런히 힘써 외길의 마음과 지혜로써 서로 가르쳐 이끌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생각을 삼가고 청정하게 몸을 지니기를 일주야를 하면, 무량수국에서 백세 동안 선을 쌓는 것보다 수승하리라. 왜냐하면 그 나라에는 선이 절로 행해져 털끝만큼의 악도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세계에서 십주야에 걸쳐 선을 닦는다면 다른 부처의 국토에서 천년 동안 선을 쌓는 것보다 수승하리라. 왜냐하면 그들 국토에는 선을 쌓는 자가 많아 덕이 절로 행해지고 악을 지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세간은 악에 넘쳐 자연스럽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괴로움을 구하여 서로 속이고 마음은 고달프고 몸은 괴로운데 쓴 것을 마시고 독 있는 것을 먹으며 조마조마하니 안정할 줄을 모른다.
나는 그대들을 비롯하여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간곡히 가르치고 깨우쳐서 선을 닦게 하고 그릇에 따라 교도하는데 차별하는 일이란 없다.
그 원하는 바에 따라 똑같이 도를 얻게 하는 것이다. 부처가 가는 곳, 도시도 시골도 모두 가르침을 받지 않을 자는 없다. 하늘 아래 화순(和順)하고 해도 달도 청정하게 밝고 비바람이 시절 따라 알맞고 재난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는 풍부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군사나 무기를 쓸 필요가 없고 덕을 존중하여 인(仁)을 일으키고 예의를 바르게 하도록 애쓰리라.
나는 그대들과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를,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하다. 나는 지금 이 세간에서 부처가 되어 다섯 가지의 악, 다섯 가지의 아픔, 다섯 가지의 불태움을 멸하고 선으로써 악을 쳐서 미혹의 괴로움을 뿌리뽑아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가르침의 빛도 점차 쇠퇴하여 중생들이 또 전과 같이 악을 행하고, 점차 그 심함을 더하리라. 그대들은 이것을 잘 명심하여 서로 가르쳐 타이르고 부처의 가르침을 부셔서는 안 된다.”
미륵 보살은 합장하고 말하기를,
“세존께서 설했듯이 세간의 모양은 참으로 괴로움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처만이 널리 이를 자비롭게 가엾이 여기시고 구해 주시옵니다. 거룩한 가르침을 받들어 어기지 않겠습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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