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마(是甚麼) 화두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대개 마음을 닦는 사람들은 먼저 공부하는 길을 자세히 선택하여 바른 길을 걷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 헛고생을 아니하고 탄탄대로로 걸림없이 간다. 수도인들은 자세히 들어보라. 사람 각자마다 한 물건이 있으니 천지와 허공을 온통 집어삼켜 있고, 또 가는 티끌 속에 들어가도 다 차지 않는다.
밝기는 태양으로도 견주어 말할 수 없고, 검기는 칠통보다 더하다. 이 물건은 우리가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 데 있으되, 이름 지을 수 없고 얼굴을 그려낼 수 없다. 이는 곧 마음도 아니요 마음 아님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니요, 불(佛)도 아니요 불 아님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며 하늘 아님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며 귀신 아님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 아님도 아니요, 한 물건(一物)도 아니며 한 물건 아님도 아니다.
그것이 종종 여러 가지가 아니로되 능히 종종 여러 가지를 건립하나니 극히 밝으며, 극히 신령하며, 극히 비었으며, 극히 크며, 극히 가늘며, 극히 강하며, 극히 유하다.
이 물건은 명상(名相)이 없으며, 명상 아님도 없다. 이 물건은 마음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없고, 마음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며, 말로도 지을 수 없고, 고요하여 말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의심하고 또 다시 의심하되 어린 아이가 어머니 생각하듯이 간절히 하며, 닭이 알을 품고 앉아 그 따뜻함이 끊이지 아니한 것과 같이 하면 참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친다.
수도인들은 또 다시 나의 말을 들어보라. 우리가 공부하며 닦는 것은 삼장십이부경전(三藏十二部經典)에 상관이 없고, 오직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자리의 반을 나누시고,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으시고, 사라쌍수에서 관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시니 이것을 전하여 오는 것이 우리가 믿으며 행하는 바다.
출격장부(出格丈夫)들은 알게 되면 곧 알 것이어니와 모르거든 의심하여 보라. 사리불같이 지혜있는 사람이 모든 세상에 가득하고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상사(上士)라도 조금도 알지 못하며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물건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모든 도인들은 알거든 내어 놓고, 모르거든 의심하여 보라. 부디 공부하는 도인들은 보는대로 듣는대로 모든 경계를 따라 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지 말라. 또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가 하지 말며, 또 생각으로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들여다 보지도 말라. 또 화두할 때에 잘 되고 못되는데 대해서 이해(利害)를 취하지도 말며, 또 고요하고 안락함을 취하지 말라. 또 공부하다가 마음이 텅 빈 것을 보고 견성(見性)하였다고 하지 말라. 이 물건은 모든 깨달음의 말로도 미치지 못하고 모든 팔만대장경에도 그려내지 못하였다.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가?' 이와같이 의심하라.
어떤 사람이 묻되, 어떠한 이유로 보고 듣는 놈이 무엇인가? 하지 말라 하며, 소소영령한 놈이 무엇인가? 하지 말라 하며,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보지 말라 하는가요?
내가 대답하되,
육근(六根)이 경계를 대함에 그 아는 분별이 나타남이 한정이 없거늘 그 많은 경계를 쫓아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찾으면 그 마음이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그 화두도 일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다가 혹 육근으로 아는 놈을 가져 자기의 본면목으로 그릇 알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고요한 것으로 자기의 본성을 삼기도 쉽다. 또는 공한 것으로 본성을 그릇 알기도 쉽다. 또는 말끔한 것으로 자성을 깨쳤다고 하기도 쉽다.
마음이 스스로 내가 소소영령하다고 하지 않거늘 무슨 일로 소소영령하다고 하는가?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비추어 들여다보지도 말라. 혹 맑은 생각으로 맑고 맑은 곳을 보아 그 곳에 집을 짓고 들어 앉기도 쉽다. 설사 일념당처(一念當處)가 곧 공함을 깨쳤더라도 그것으로는 확철대오가 아니다.
육조 혜능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괴었으며 밝기는 일월같고 검기는 칠통과 같아서 항상 나의 동정(動靜)하는 가운데에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시며 또 육조대사께서 회양선사를 대하여 물어 이르되 "무슨 물건이 이렇듯이 왔는가?"하시니 회양선사는 이를 알지 못하여 팔년 동안 궁구하다가 확철대오 하였으니 이것이 화두하는 법이다.
이 물건은 육근으로 구조된 놈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이 없이 항상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상관없이 항상 있으며, 공(空)하고 공하지 아니한 것에 상관없이 항상 있다. 허공은 없어져도 이 물건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밝은 것은 무량한 일월로도 비교할 수 없고, 검은 것은 칠통과도 같다고 할 수 없다. 참으로 크도다. 천지세계와 허공을 다 삼켜도 삼킨 곳이 없다. 참으로 작은 것이다. 가는 티끌에 들어갔으되 그 티끌 속에도 보이지 아니한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고 단지 의심하여 볼지어다. 추호라도 달리 아는 마음을 내지 말고 단지 의심이 큰 불덩어리같이 의심만 할지어다. 단지 은산철벽같이 하여 발 붙이지 못할 곳을 향하여 뚫어 들어갈지어다.
묻기를 천지와 허공을 온통 집어먹고 있다 하니 이것이 나의 본원인 깨달음의 성품(覺性)이 아닌가요? 나의 참마음이 아닌가요?
내가 대답하되,
이것은 너의 지해(知解)가 아닌가? 네가 참으로 증득한 것인가? 비유하건대 어떠 사람이 서울을 보지 못하고 서울을 본 사람에게 서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서울을 자세히 본 사람은 서울에 대해 자세히 말하니 그 서울을 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의 남대문이 어떻고, 종로가 어떻고, 대궐이 어떻다고 하는 말을 들어서 알았다. 그러면 그것이 서울을 친히 본 것이 되는가?
성인(聖人)이 마음이니 성품이니 말씀하셨는데 그 말만 듣고 그 말만 옮기면 성인이 되는 것인가? 본성이 어느 때에 내가 본성(本性)이라고 말하든가? 이것은 사람이 명상을 지어 마음이다, 성품이다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명상을 짓기 전에는 무슨 물건인가? 네가 연구하여 진실히 깨치고 진실히 증득하여서 될 일이 아닌가? 이 일은 말로 지어 꾸며도 될 수 없고, 없는 마음으로도 될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연구하여 보라. 이것은 모든 성현도 알지 못한다 하거늘 네가 아는 것으로 알 수 있는가? 그 의미가 깊도다!
모든 성인이 참으로 몰라서 모른다는 말도 아니며, 알아서 안다는 말도 아니니, 그대가 이 물건을 아는가? 이것은 물건도 아니므로 말로 그려낼 수도 없다. 이 물건을 아는가? 이것을 그려낼 수도 없다고 하나 깨친 자는 분명하다. 비유를 들면 저기 칠보가 있고 철로 위에는 차가 있고 차에는 화통이 있고 화통 속에는 석탄과 물이 있어서 물이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차가 가지 않는다. 어찌하여 차가 가지 아니하는가? 사람이 기계를 부리지 아니하면 차가 가지 않는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 몸을 가지고 동작하여 앉고 눕고 다니니 몸이 능히 동작하는 겁니까? 그렇지 않다. 저 차와 같다. 그러면 동작이 무엇을 하는가요? 그것은 나한테 물을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의 몸을 능히 운동시키는 것을 찾아 보고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의심하여 보라. 어찌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가? 내가 열성으로 권하노니 부디 찾아보라. 몸은 아침이슬과 같고 목숨은 서산에 지는 해와 같지 않은가. 어서 찾아보도록 하라.
출전 : 선문촬요(修心正路)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선문촬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경치 않는 바를 밝힘(明不敬所以) (0) | 2015.03.30 |
---|---|
공경치 않는 바를 밝힘(明不敬所以) (0) | 2015.03.25 |
미혹하면 육취가 나타난다(迷現六趣) (0) | 2015.03.13 |
도는 마음에(道不在山野) (0) | 2015.03.09 |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0) | 201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