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675-53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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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92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5. 발승지락회 ②
그때 미륵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업을 닦는 보살[初業菩薩]이 출가한 뒤에 아직 얻지 못한 지혜의 힘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어떤 법을 버리고 어떠한 법을 닦아야 아직 생기지 못한 지혜의 힘이 생기게 되며, 이미 생긴 지혜의 힘은 더욱 자라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이 출가한 뒤에 지혜의 힘을 더욱 자라게 하려면 마땅히 이익[利養]에 대하여 그 허물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버려 여의어야 하느니라. 만일 시끄러운 세속의 언설을 좋아하고 잠에 즐겨 빠지며 여러 가지 일을 널리 경영하고 쓸모 없는 이론들을 좋아한다면 이와 같은 허물을 모두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이익을 버리고 욕심이 적음[少欲]을 닦으며, 모든 시끄러운 곳을 떠나 고요함을 좋아하며, 모든 세간의 말을 버리고 진실한 이치를 관찰하며, 초저녁과 새벽에 잠을 멀리 여의고 관찰하면서 생각[思惟]하며, 행을 닦아 익히고 여러 가지 일과 모든 쓸모없는 이론을 버리며, 세간 벗어나는 도[出世道]를 닦으면서 중생들을 사랑해야 하느니라.
미륵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이 출가한 뒤에 아직 얻지 못한 지혜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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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고자 하면 이런 법으로 버려야 하고 이런 법으로 닦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미륵아, 그 모든 보살이 출가한 뒤에 아직 얻지 못한 지혜의 힘을 얻고자 하는 이면 이익을 버리지 않고 욕심이 적은 일을 닦지 않고서는 아직 생기지 못한 지혜의 힘이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지혜의 힘을 더욱 자라게 하거나 하는 이런 일이란 없기 때문이요, 시끄러운 곳을 떠나지 않고 고요한 데에 머무르지 않고서는 아직 생기지 못한 지혜의 힘이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지혜의 힘을 더욱 자라게 하거나 하는 일 또한 없기 때문이니라.
또 세간의 말을 버리지 않고 진실한 이치를 관찰하지 않고서는 아직 생기지 못한 지혜의 힘을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지혜의 힘을 더욱 자라게 하거나 하는 이러한 일은 없는 것이요, 초저녁과 새벽에 잠에 즐겨 빠져서 깨어 있는 일이 없고 생각에 얽매여서 여러 가지 일을 버리지 않으며, 쓸모없는 이론을 좋아하면서 세간을 벗어나는 도를 수행하지 않고, 중생들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으면서 아직 생기지 못한 지혜의 힘을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지혜의 힘을 더욱 자라게 하거나 하는 이러한 일은 없느니라.
미륵아, 그러므로 아직 얻지 못한 지혜의 힘을 얻고자 하는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을 버려야 하고, 반드시 버려 여의어야 하며, 마땅히 모든 법을 닦아야 하고,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의 지혜는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니, 만일 인연이 없으면 끝내 생길 수가 없고 인연이 화합하여야만 비로소 생기게 되느니라.”
그때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익 가운데 허물이라 합니까? 만일 관찰하게 되면 보살들로 하여금 욕심이 적은 일을 좋아하고 타오르는 번뇌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이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탐욕이 생기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바른 생각을 잃고 성을 내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그 얻고 잃음을 생각하면서 어리석음을 내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높고 낮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친한 벗의 집에 대하여 인색하고 탐착하여 속고 미혹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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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라.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즐기는 맛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4성종(聖種)을 버리고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모든 부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교만과 방일을 자주 익히면서 높은 체하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수승한 복전(福田)에 대하여 업신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악마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니라.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뭇 악(惡)의 근본이요 모든 선(善)이 파괴되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탐착하는 일이 많아 마치 서리와 우박과 같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친한 벗의 집에서 그의 얼굴빛을 살펴 근심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손상되고 파괴되면 근심하면서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니라.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4념처(念處)에 대하여 잊어버림이 많아 청정법[白法]이 시들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4정근(正勤)에 있어서 물러남이 많아 다른 이론이 이기게 되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스스로가 '이미 신통과 지혜를 얻었다'고 하면서 어긋남이 생기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먼저 얻었다가 뒤에는 잃게 되면 원한과 미움이 생기기 때문이니라.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서로서로 성을 내고 미워하면서 그의 허물을 말하며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이 많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세간 일을 경영하면서 헤아리고 생각하느라 편안함과 즐거움이 줄어들기 때문이며,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선정(禪定)·해탈(解脫)·삼매(三昧)·삼마발저(三摩鉢底)에 이르기까지의 마음이 마치 음녀(婬女)처럼 물러나기 때문이니라.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지덕(智德)과 단덕(斷德)을 여의고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염마라 세계[閻摩羅界]의 모든 나쁜 길에 떨어지기 때문이요, 이익을 관찰해야 함은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오타락가(烏陀洛迦)와 법의 머무름[法住]을 같이하여 나쁜 길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미륵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은 이와 같이 이익의 허물을 관찰하면 욕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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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일을 좋아하고 타오르는 번뇌가 생기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미륵아, 욕심이 적은 보살은 온갖 허물이 모두 다 생기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법 그릇[法器]이 될 수 있으며,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진실하고 가장 뛰어난 의요(意樂)에 머무르며 비굴하게 되지도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나쁜 곳에 떨어지는 두려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광채를 가리울 수 없고 탐착하는 맛을 버리기 때문이며, 여러 악마의 경계에서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되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도 역시 사랑하면서 부러워하며, 모든 선정(禪定)에 대하여 염착하지 않고 맨 끝[邊際]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그 마음이 질박하고 정직하여 아첨과 굽음이 없고, 5욕(欲) 가운데서도 방일하지 않으면서 그의 허물을 보기 때문이며, 말씀한 대로 수행하면서 성종(聖種)에 머무를 수 있고 범행(梵行)을 같이한 이들도 역시 좋아하기 때문이니라.
미륵아, 만일 어떤 보살이 지혜롭고 총명하여 이 공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알 수 있으면 뛰어난 의요로써 마땅히 이익을 버리고 뛰어난 의요로써 욕심이 적은 곳에 머무르며 탐애의 일어남을 끊어야 하느니라.”
그때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시끄러운 가운데 허물이라 합니까? 만일 관찰하게 되면 보살이 혼자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번뇌의 불길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은 마땅히 시끄러운 곳의 허물이 스무 가지가 있음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만일 관찰할 때에는 보살이 혼자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일으키지 않게 되느니라.
미륵아, 어떤 것을 시끄러운 곳을 즐겨서 있게 되는 스무 가지의 허물이라 하느냐 하면, 첫째는 몸의 업을 수호하지 않게 되고, 둘째는 말의 업을 수호하지 않게 되며, 셋째는 뜻의 업을 수호하지 않게 되고, 넷째는 탐욕이 많게 되며, 다섯째는 어리석음이 더욱 자라게 되고, 여섯째는 세상의 이야기[世話]에 탐착하게 되며, 일곱째는 세간을 벗어나는 말을 여의게 되고, 여덟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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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법이 아닌 가운데서 존중하고 닦아 익히며, 아홉째는 바른 법을 버려 여의게 되며, 열째는 하늘·악마·파순(波旬)이 그의 틈을 얻게 되느니라. 열한째는 방일하지 않음을 닦아 익히는 일이 없고, 열두째는 방일하는 행을 항상 염착하게 되며, 열셋째는 여러 각관(覺觀)이 많게 되고, 열넷째는 불법을 많이 들어 앎[多聞]이 줄어들게 되며, 열다섯째는 선정을 얻지 못하게 되고, 열여섯째는 지혜가 없게 되며, 열일곱째는 범행(梵行)이 아닌 일을 빨리 얻게 되고, 열여덟째는 부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며, 열아홉째는 가르침[法]을 사랑하지 않게 되고, 스무째는 승가대중[僧]을 사랑하지 않게 되느니라.
미륵아, 이것이 보살이 시끄러운 곳에 대하여 관찰할 스무 가지의 허물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탐욕과 성냄을 여의고
시끄러운 곳에 머무르지 않는
만일 그런 곳에서만 머무르는 이가 있다면
이런 허물은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교만함과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은
모두가 시끄러움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나니
행을 파괴하고 계율 없는 사람은
이러한 시끄러운 곳을 찬탄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이론을 즐기면서
첫째가는 이치[第一義]에서 물러나게 되며
방일하면서 각관(覺觀)이 많나니
이런 허물은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불법을 많이 들어 앎[多聞]을 버리고
논의하는 말이 법답지 않게 되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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