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670-53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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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서 한량없는 백천의 계경(契經)을 듣게 되고 모두 잘 받아 지녔기 때문에, '나의 이 법문은 아무 화상과 아사리에게 친히 듣고 받은 것이라 의혹이 없다'고 말할 것이니라.
미륵아, 그때 어느 집에 있는 보살들과 출가한 보살들은 지혜와 선교방편이 없기 때문에 이 바른 법을 받아 지닌 보살이 말하는 법에 대하여 도리어 비웃고 업신여기고 비방하면서, '이러한 법은 모두가 그대들의 뛰어난 언사로써 마음대로 지은 것이므로 실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런 것을 믿고 좋아하거나 희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니라.
미륵아, 그러할 때에 한량없는 중생들은 이 법사를 모두 비방하면서 버리고 떠나게 될 것이며 서로가 말하기를, '이 모든 비구들은 궤범(軌範)이 없고 여러 삿된 해설이 많으며, 계경(契經)에 의지하지도 않고, 계율에 의거하지도 않는 것이 마치 여배우[倡伎]가 희롱하는 법과도 같다. 그대들은 그 안의 것을 믿고 좋아하거나 희유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이는 바른 법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니라.
미륵아,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악마에 홀려 있으므로 이 법 안의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므로 '여래께서 연설한 것이 아니다' 하면서, 이 법을 지닌 모든 비구에게 비방을 하고 법의 업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이런 인연으로 당연히 나쁜 길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러므로 미륵아, 만일 지혜와 탁월함이 있는 보살이 바른 법을 보호하고자 하면 마땅히 그 덕을 숨기면서 분별이 많은 중생들에 대하여 모름지기 생각을 수호하며, '그대들로 하여금 착하지 않은 마음이 생기게 하지 말라'고 하여야 하느니라.”
그때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최후의 말세 5백 년 동안에 어느 보살들은 아예 지혜가 없으므로 대중 가운데서 바른 법과 법을 지닌 이를 비방하는 이는 다시 그 가운데서 변재와 다라니에 대해 그 법을 믿고 받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목이 마르므로 물을 찾아 샘물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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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데로 가서 그 물을 마시려 하는데, 이 사람이 전에 왔을 때에 더러운 똥을 이 물에다 던져 넣었으면서도 그런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 물을 마시려 하였으나, 몹시 악취가 나므로 그 물을 마시지 못하면서 그 자신이 더렵혀 놓고서도 다시 그의 허물을 말하였고 한탄까지 하면서, '이상하구나, 이 물에서 아주 악취가 나니 말이다'고 하며, 이 사람은 자기 허물을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고 이 물에 대하여 도리어 원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한 샘물이란 바로 법을 지닌 비구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이것에 대한 법안(法眼)으로 잘 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샘물에다 자신이 더러운 똥을 던져 넣었으면서도 뒤에 그 일을 깨닫지 못하고 물을 마시려 하는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최후의 말세 5백 년 동안에 어떤 지혜가 없는 보살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저 바른 법과 법을 지닌 이에 대항 비방한 뒤에, 다시 그 사람에게서 법의 묘미[法味]를 듣고 받았으나 그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의혹하는 허물 때문에 뜻의 감관을 더럽히고는 그 법을 지닌 이를 희롱하기도 하고 혹은 비웃기도 하고 한탄까지 하면서, '이상하구나, 이 법은 모든 허물에 더럽혀 있으니 말이다'라고 하고, 그 지혜 없는 사람은 이 바른 법과 법사에게서 받아 듣지도 못하고 그의 단점을 엿보면서 헐뜯고 욕을 하다가 싫증을 내며 버리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미륵 보살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미륵아, 이러한 비유를 잘 연설하였으므로 그의 단점을 엿보며 말할 수 있는 이는 없게 될 것이다.
미륵아, 이러한 인연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께서 널리 말씀하시는 네 가지의 변재가 있고, 모든 부처님께서 못하게 하시는 네 가지의 변재가 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온갖 모든 부처님께서 널리 말씀하시는 네 가지의 변재가 있다고 하느냐 하면, 이른바 이익과 상응하면서 이익되지 않는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요, 법과 상응하면서 법답지 않은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며, 번뇌가 없어져 다한 것과 상응하면서 번뇌가 더욱 자라는 것과는 상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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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것이요, 열반의 공덕과 상응하면서 생사의 허물과는 상응하지 않는 그것이니라.
미륵아,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널리 말씀하시는 네 가지의 변재이니라.
미륵아,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설법을 하고자 하는 이면 마땅히 이와 같은 변재에 머물러야 하며,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믿고 수순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 사람에 대하여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고, 가르쳐 주시는 스승이라는 생각을 지으며, 또한 이 사람에게서 그 법을 듣고 받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이 말한 것은 모든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요, 모든 부처님의 성실한 말씀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미륵아, 만일 어떤 이가 이 네 가지의 변재를 비방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고 하며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 사람은 원망과 증오 때문에 저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말씀하는 변재를 모두 비방하는 것이요, 법을 비방한 뒤에는 법의 업을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법을 무너뜨리고 나면 반드시 나쁜 곳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러므로 미륵아, 만일 청정한 믿음이 있는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법을 비방한 업의 인연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이면 미워하고 질투하는 사람 때문에 법을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사람의 과실로 법에 대한 과실을 내지 않으며,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법에 대하여 또한 원망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미륵아, 어떤 것을 모든 부처님께서 막아서 못하게 하는 네 가지의 변재라 하느냐 하면, 이른바 이익이 아닌 것과 상응하면서 이익과 상응하지도 않고, 법이 아닌 것과 상응하면서 법과 상응하지도 않으며, 번뇌와 상응하면서 번뇌가 없어져 다하는 것과 상응하지도 않고, 생사와 상응하면서 열반의 공덕과 상응하지도 않은 것이니, 미륵아, 이것이 온갖 모든 부처님께서 막아 못하게 하는 네 가지의 변재이니라.
그때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만일 어떤 변재가 생사를 더욱 자라게 한다면 모든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닐 것이니,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말씀하시면서 보살의 이익되는 일이라고 하십니까? 또 생사를 칭찬하고 섭취(攝取)하면서도 보리분법(菩提分法)이 원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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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한다면 이와 같은 변재를 어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아,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의 뜻대로 대답하여 보아라. 만일 어떤 이가 말하기를, '보살이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성취하기 위하여 생사를 섭취한다'하고, 또 다시 말하기를, '모든 번뇌로써 이익되는 일을 삼는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익과 상응한 것이냐, 이익이 아닌 것과 상응한 것이냐? 법과 상응한 것이냐, 법이 아닌 것과 상응한 것이냐?”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바르게 말씀한다면 이익과도 상응하고 법과도 상응한다고 할 것이니, 보살로 하여금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생사를 섭취한다'고 말하고, '모든 번뇌가 보살의 이익되는 일이 된다'고 말하면 이와 같은 변재는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미륵아, 이 모든 보살은 얻은 법이 자재하므로 일으키는 번뇌에도 허물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보살의 선교방편이요, 모든 성문이나 연각의 경계가 아니니라.
미륵아, 만일 어떤 번뇌가 다른 이를 위하여 이익되는 일이 될 수도 없고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할 수도 없으면서 일으킨다면 이익과 상응하지도 않고, 법과 상응하지도 않으며, 다만 하열한 선근의 인(因)이 될 뿐이니, 보살은 그 안에서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역시 그 번뇌를 따르면서 행하지 않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미륵아, 어느 다른 보살은 지혜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모든 번뇌에 대하여 실제로 반연함이 있겠지만, 어느 다른 보살은 지혜의 힘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번뇌에 대하여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그때 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 바로는, 만일 모든 보살이 최후의 말세 5백 년 동안에 즐겁게 모든 업장의 얽매임을 여의고, 스스로 손해됨이 없으면서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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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행에 대하여 깊이 믿고 이해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을 분별하지도 말고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미륵아,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보살들은 방편의 행에 대하여 깊이 믿고 이해하여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행이 지혜로운[慧行] 보살의 방편의 행은 믿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미륵아, 비유하면 마치 수다원(須陀洹)의 사람이 범부의 행동을 보일지라도 이러한 범부와 수다원의 지위와 저마다 차별되나니, 범부인 어리석은 사람은 탐냄·성냄·어리석음에 대하여 얽매여 있기 때문에 모든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만, 수다원은 탐냄·성냄·어리석음을 환히 통달하여 있으므로 끝내 3악도에는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미륵아, 행이 지혜로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탐냄·성냄·어리석음에 대한 습기(習氣)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하여도 그는 역시 그 밖의 처음 업을 닦는 보살[初業菩薩]과는 다르니라. 왜냐 하면 그 마음은 번뇌에 가리워지지 않았고, 처음 업을 닦는 보살들과도 같지 않기 때문이니, 행이 둔한[鈍行] 보살은 훌륭한 솜씨가 없어서 모든 범부들과 동일하여 벗어날 수 없느니라.
미륵아, 행이 지혜로운 보살의 중죄(重罪)는 지혜의 힘으로써 모두 다 꺾어 소멸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그로 인하여 나쁜 길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미륵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불 무더기에 계속 땔나무를 던져 넣고 이와 같이 더 넣고 나면 그것이 타면서 그 불길은 더욱 더 왕성해지고 다시 더 밝아지면서 꺼져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미륵아, 행이 지혜로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의 불로써 번뇌의 땔나무를 태울 적에 계속 번뇌의 땔나무를 던져 넣으면 그것이 타면서 지혜의 불은 더욱 더 밝아지면서 꺼져 다함이 없게 되느니라.
미륵아,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행이 지혜로운 보살의 지혜의 힘과 선교방편은 가히 분명히 알기란 어려우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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