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지읒)~ㅊㅋㅌㅍᄒ(히읗)

중아함경(中阿含經)

근와(槿瓦) 2018. 3. 25. 02:17

중아함경(中阿含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六十卷. 東晋瞿曇僧伽提婆의 번역.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용의 경 222경권을 모아 한 경으로 한 것. 四諦·十二因緣 등의 小乘佛敎한 것으로 因緣·譬喩과 제자들의 言行을 기록한 것.

 

참고

사제(四諦) : 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 · 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迷惑의 이 세상은 다 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2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4이와 같이 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 · 苦集聖諦 · 苦滅聖諦 · 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 · 集諦 · 滅諦 · 道諦라고도 한다.

· · · 四諦 가운데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三轉이란 제1이것은 苦諦(· · 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2苦諦(· · )徧知(永斷 · 作證 · 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3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 · · (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四行相假設하고 각각의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 · · 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有部敎學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의 하나를 하는데 4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한다. 苦諦에서 非常 · · · 非我(恒存性이 없는 이며 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四行相, 集諦에서는 · · · (執着의 원인으로 하여 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助緣이다)四行相, 滅諦· · · (苦滅理想境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四行相, 道諦에는 · · · (苦滅聖道聖者實踐正道이고 가 합하여 生存超出하는 것이다)四行相이 그것이다. 四善根位의 다음에 見道에 들어 無漏眞智를 가지고 四諦現觀한다. 見道預流向에 속하는 일로서 預流果 이후로는 修道에 속하는데 이 預流向 · 預流果를 통하여 16으로 四諦現觀한다. 이것을 聖諦現觀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최후의 제16만이 預流果에 속하고 앞의 제15見道에 속한다. 먼저 欲界四諦하는 法智라 하고 2(色界無色界)四諦하는 類智라고 하는데 이 法智類智에 각각 가 있다. 無間道에서 을 가지고 煩惱를 끊고(斷惑) 解脫道에서는 를 가지고 진리를 깨닫는(證理).

苦諦에는 苦法智忍(약하여 苦法忍이라고도 하며 이에 따라 欲界苦諦現觀함으로 苦諦迷惑되어 있는 煩惱를 끊는다)苦法智(이것으로 欲界苦諦現觀함으로 苦諦의 이치를 깨닫는다)苦類智忍(약하여 苦類忍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2苦諦現觀함으로 번뇌를 끊는다)苦類智(이것으로 2苦諦現觀함으로 진리를 깨닫는다)四心을 가지고 苦諦現觀한다. 三諦에도 앞에서와 같이 集法()集法智集類()集類智滅法()滅法智滅類()滅類智道法()道法智道類()道類智의 각각의 4하여 모두 16이 된다. 이것을 八忍八智라고도 한다.

四諦하는 無漏淸淨에 따라 나누면 苦智集智滅智道智가 되어 法智類智 등과 같이 10로 된다.

大乘佛敎에 따르면 顯揚星敎論 卷七에서는 四諦의 내용을 전개시켜 行苦諦壞苦諦苦苦諦流轉諦(이상은 苦諦展開)雜染諦(苦集 2에 해당)流息諦(滅諦에 해당)淸淨諦(滅道 2에 해당)正方便諦(道諦에 해당)라고 하여 8를 들었다. 小乘四諦觀은 불완전하므로 有作四涕라 하여 낮추었으며 大乘四諦觀은 완전하므로 無作四諦라고 하고 이를 八諦라 했다. 天台宗에서는 제1生滅 四諦(四諦因果 그대로 이 있고 이 있다고 하는 四諦觀)2無生四諦(또는 無生滅四諦라고도 한다. 四諦迷悟因果는 다같이 空無하여 生滅하는 일이 없다는 四諦觀)3無量四諦(一切現象無明에서 생기므로 無量의 차별이 있고 따라서 四諦에도 無量이 있다고 하는 四諦觀)4無作四諦(와 같은 對立矛盾 상태 그대로가 矛盾이 아니라고 하는 四諦觀)등을 주장하여 이것을 四種四諦라고 하며, 이것을 또 四敎에 배당한다. 法相宗에서는 四諦 가운데 滅諦自性滅二取滅本性滅三滅諦, 道諦徧知道永斷道作證道三道諦를 세우는데, 이것은 滅諦道諦에 각 三性(遍計所執性依他起性圓成實性)을 갖추고 있는 것에 연유한다(成唯識論 8).

 

십이연기(十二緣起) : 凡夫로서의 有情生存12의 조건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는 것. 또는 12支緣紀 · 12因緣 · 12因緣起 · 12因生 · 12緣生 · 12緣門이라고도 한다.

근본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敎義로서, 원래 아함경전에 설해진 것. 12라 함은 無明 · · · 名色 · 六處(六入) · · · · · · · 老死이고, 이것들은 凡夫로서의 有情生存을 구성하는 12의 요소(十二有支)이며, 이것들이이것이 있을 때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하여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하여 저것이 멸한다라고 하는 相依相對的인 관계를 설하는 것이 12연기이다. 여기에 두 가지 면이 있는 것 같다.

곧 모든 것은 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는 相依的인 것이기 때문에 無常 · · 無我라고 하는 면과,

또 하나는, 凡夫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流轉門), 또 어떻게 해서 그것을 否定하고 깨달음에 이르는가(還滅門)라고 하는 것을 하여, 有情生存의 가치와 意義를 문제로 하는 쪽이다. 阿含經典에서는, 12緣起說 외에, 10 · 9· 8· 7등의 緣起까지도 하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이들도 12緣起에 수용해도 좋다. 雜阿含經 12에는, 연기의 법은 부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를 불구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로, 부처는 이것을 관하여 깨달음을 열고, 또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을 開示한다고 하고 있다. 前述한 제2의 면에 있어서의 12緣起說의 원래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自覺的인 인간의 생존()은 정신의 주체인 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의 활동은 생활경험()이 되어서, 도리어 그 활동의 축적에 의한 의 내용이다.

그런데 의 활동이라 함은, 感覺器官(또는 그 기능)  · · · · · 6를 통하여 인식의 대상인 모든 이나 (名色)과 접촉()하여, 이것을 主觀上感受()하는데 의한다.

범부에 있어서는, 無明(불교진리에 대한 無自覺) 內相으로 하고, 渴愛(구하여 마지 않는 我欲) 外相으로 하는 것이어서, 객관적 대상에 작용하는 식의 根基的인 상은 이 渴愛에 불과하며, 渴愛는 발전하여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하여 하려고 하는 執著()으로 된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은 染汚의 활동()에 의해서 내용지어진 , 그것에 相應하는  · 老死 등에 의해서 대표격이 된 人間苦, 無常苦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반하여 聖者에 있어서는, 無明 渴愛가 없어졌기 때문에 따라서 人間苦도 없어진다.

俱舍論 卷九에는 12緣起에 대해서 4종의 해석을 들고 있다.

(1) 刹那緣起라 함은, 1刹那중에 12지가 갖추어 있다고 하는 것으로, 예컨대 하는 마음으로 殺生하려고 하는 순간의 마음에 대해 말하면, 그 한 찰나의 마음 가운데 일어난 愚癡가 있는 것이 無明, 죽이려고 마음 먹은 것이 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2) 連縛緣起라 함은, 12가 간단 없이 연속해서 前因後果의 관계가 되는 것을 말하고

(3) 分位緣起라 함은, 三世兩重因果에 의한 胎生學的인 해석으로, 12支分有情生死流轉하는 과정에서의 각기의 位態를 가리키는 것이고

(4) 遠續緣起라 함은, 까마득하게 먼 하여 12가 계속해서 緣起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有部에서는 제3分位說을 쓴다.

無明은 과거로 번뇌를 일으키어 을 지었을 때의 有情分位 心身(五蘊)을 가리키고,

이 과거2에 의해서 心識이 비로소 母胎託生하는 1刹那有情分位,

託生의 제2刹那 이후 六根이 아직 갖추지 않은 有情分位名色,

胎內에서 6을 갖춘 分位6,

出胎한 뒤 다만 접촉감각만이 있는 2 · 3까지가 ,

感受性이 빼어난 4 · 5에서 14 · 15까지가 , 이상 에서 까지를 現在世5라고 한다.

다음에 愛欲이 성한 16 · 17이후가 ,

貪著의 마음이 뛰어난 30이후가 ,

이렇게 하여 을 짓는 分位가 有로, 이들 3을 現在世의 3因이라고 한다.

이 因에 의해서 未來世에 태어나는 分位가 生, 그 이후 에 이르기까지가 老死, 이들 둘을 未來世2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과거세 · 현재세 · 미래세의 三世에 걸쳐서, 二重因果를 세우기 때문에, 이것을 三世兩重因果라고 한다. 중에 · 을 포함하고, 는 곧 이기 때문에, 12緣起惑業苦三道에 거두어지고, 因果가 끝없이 계속하여 無始無終이라고 한다. 經部에서는 이 有部을 바르지 않다고 하여, 無明이라 함은 과거의 無智만을 가리키고 결코 五蘊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등으로 한다

成唯識論 卷八에서는, 無明에서 까지를  · 老死 하여, 1因果를 세우는데, 는 반드시 異世이고, 따라서 이것을 二世一重因果라 한다. 無明 · 二支에서 까지의 5를 당겨 일으키는 이기 때문에, 2能引支이고, 5所引支라고 하여 이 7牽引因이라고도 한다 · · 三支이 되어서 미래의 · 老死二支하기 때문에, 3能生支 또는 生起因이라 하고, 이에 대해서  · 老死所生支 또는 所引生이라 한다.

천태종에서는 思議生滅 · 思議不生不滅 · 不思議生滅 · 不思議不生不滅4종의 12因緣을 세워서, 이것을 化法四敎(· · · )에 배속시킨다. 최후의 圓敎에서는 12因緣佛性이라 일컫고 에 의해서 생긴 현상의 그대로가 中道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12緣起하는 것은, 과 같이 중요한 觀法으로 되어, 석존은 이것을 하여 깨달음을 열었다고도 전한다. 雜集論 卷四에는 無明에 의해서 이 있다 등으로 차례로 生起하는 것을 雜染順觀, 老死 등의 각기에 苦集滅道를 세워서 老死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生起하는 것을 雜染逆觀, 無明이 없어지면 이 없어진다 등으로 現成을 차례로 하는 것을 淸淨順觀, 老死한다 등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깨달음의 現成하는 것을 淸淨逆觀이라고 하고, 婆沙論 卷24에는, 迷惑生起하는 流轉門에서는 無明 · 을 버린 10, 깨달음의 現成하는 還滅門에서는 12한다고 함(巴利文大品에 의하면, 流轉門順觀, 還滅門逆觀으로 불러야 하는데, 지금은 이 이 행해지고 있다). 또 천태종에서는 三世兩重 · 二世一重 · 刹那一念3종의 12因緣觀에 의해서 각기 차례로 斷見 常見 · 著我見 · 性實見3종의 잘못된 견해를 깨뜨린다고 한다.

 

소승불교(小乘佛敎) : 대승(大乘)摩訶衍那·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대승·소승이란 말은 釋尊入滅 후 그 言行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聲聞·緣覺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利他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小乘에는 반야경·四分律·五分律 등의 , 婆沙論·六足論·發智論·俱舍論·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法華經·華嚴經 등의 中論·攝大乘論·大乘起信論 등의 이 있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 世親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것(具足大)이라고 했다.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瑜伽2系統과 밀교가 있다.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涅槃·地論·淨土··攝論·天台·華嚴·法相·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예컨대 진언종에서는 顯敎·密敎, 華嚴宗이나 천태종에서는 대승(대승 가운데 方便에 해당하는 五性各別을 세운 대승(대승 가운데 眞實敎. 모든 중생이 成佛하게 된다는 가르침)등으로 나누어진다. 有相大乘·無相大乘2종대승, 혹은 法相·破相·法性3大乘으로 나누는 이 있다.

우리 나라·중국·일본의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이며, 서장불교, 몽고의 라마교 등도 대승의 계통에 속한다. 버마·태국·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대승교도로부터 고래로 小乘으로 불리워 온 계통에 속하는 불교다.

천태종에서는 小乘에는 經律論三藏이 확실히 구별되어 갖추고 있는 점에 비추어 小乘敎三藏敎(藏敎)라 일컫는다.(화엄종에서는 小乘敎라 이름한다). 또 천태종에서는 小乘 가운데 有門(發智論·六足論 )空門(成實論), 그리고 亦有亦空門(毘勒論, 이 논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非有非空門迦旃延經(가전연경),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四門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小乘敎四門 또는 小乘四分이라고 했다.

智顗(지의)金光明玄義에는 理乘(모든 存在本質眞如 理性隨乘(對象隨應해서 작용하는 智慧得乘(스스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證果)三大乘했는데 이것은 順次眞性·觀照·資成三軌에 해당시킨 분류다. 起信論에는 大乘本體衆生心이라고 記述하고 있다.

 

인연(因緣) :  및 결과()를 생기게 하는 내적인 직접원인이 이고, 외부에서 이를 돕는 간접적인 원인이 이다. 이것을 內因 · 外緣이라 하고 親因 · 疏緣이라고도 한다. 廣義로 해석하여 을 합쳐서 이라 하고 이와 같이 이라고도 한다. 일체의 존재는 모두 因緣으로 낳고 인연으로 한다.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을 因緣生 · 緣生 · 緣成 · 緣起 등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因緣으로 生滅하는 道理를 인연생멸의 라 한다. 그와같이  인연에 의해 생멸하는 一切法이 그대로 空的 존재란 뜻으로 道理因緣 이다.

 

비유(譬喩) : , 혹은 라고도 한다. 敎說의 의미 ·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實例寓話 등을 들어 설명하는 것. 釋尊說法에 임할 때 비유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大乘 · 小乘을 통하여 諸經論을 이해하기 쉽게 하고 있다. 원시경전의 분류법인 十二部經에서는 비유적으로 한 설법을 한데 모아 阿波陀那라고 이름했다.

[1] 비유는 일반적으로 현재의 사실로써 하지만, 때로는 假設의 사물로 하는 수가 있다. 또 사람 얼굴이 아름다움을 滿月에 비유하듯이 눈앞의 적은 것으로 큰 것에 비유하기도 하고, 혹은 거친 것을 가지고 세밀한 것에 비유하고 혹은 일부 또는 전체의 유사점을 가지고 비유하는 등 여러 가지 구별이 있다.

北本涅槃經卷二十九 師子吼菩薩品에는 비유를 하는 방법을 분류하여 八種으로 나눈다. ,

順喩(사물의 발생의 순서에 따라 설하는 비유) ·

逆喩(順喩) ·

現喩(현재의 사실을 가지고 하는 비유) ·

非喩(假設한 사물을 가지고 하는 비유) ·

先喩(비유할 사항에 앞서 먼저 비유를 설하는 것) ·

後喩(비유될 사항 뒤에 비유를 설하는 것) ·

先後喩(비유의 앞에도 뒤에도 설하는 것) ·

遍喩(비유의 전 내용이 비유될 사항에 그대로 契合하는 것)의 여덟 가지이다.

[2] 因明(論理學)에서는 命題()例證을 비유라 한다. 三支作法에 있어서는, (모든 SP이다), (M인고로)에 이어 비유를 든다. 여기에모든 MP이다. 이를테면 E와 같다라고 하는 同喩전체의 M이 아닌 것은 P가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E'와 같다라고 하는 異喩도 있다

[3] 여러 經論에 있는 저명한 비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모든 현상적 존재는 다 실체가 없는 이라는 원리를 보이는 비유. 大品般若經卷一에는 이에 대해 열 가지 비유를 한다(괄호안의 설명은 智度論卷六), ,

(1) 如幻喩(마술사가 幻術로서 나타내는 여러 가지 사물처럼 현상계의 諸法은 실재가 아니지만 그러나 보고 듣고 하는 것으로 그 을 식별할 수 있다. 如幻假有 · 如幻卽空 등의 말이 있다).

(2) 如焰喩(陽焰. 熱時焰 · 野馬라고도 하고, 햇빛이 비칠 때 먼지가 바람에 날리어 曠野 가운데 아지랭이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물(목마른 사슴이 보고 물로 오인함)이 있다고 하듯이, 번뇌가 諸行(즉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집착하여 生死曠野 속에 남녀 등의 을 일으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愛著沈淪시킨다).

(3) 如水中月喩(水月喩라고도 한다. 달은 하늘에 있어도 그 그림자가 물에 비치듯, 實相의 달은 깨달음의 하늘에 있지만 그러나, 범부의 마음속에는 · 我所(그림자)만큼 나타낸다)

(4) 如虛空喩(하늘은 이름만 있을 뿐, 볼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푸른 하늘로 보듯이, 범부는 진실한 지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實相을 버리고 차별적인 현상을 본다)

(5) 如響喩(산울림처럼 諸法이지만 범부는 實有로 본다)

(6) 如犍闥婆城喩(犍闥婆城乾闥婆城이라고도 하고 尋香城으로도 번역한다. 蜃氣樓를 말함. 無智한 사람은 陰界入 가운데서 자신과 諸法을 본다) ·

(7) 如夢喩(꿈을 깨면 인 것처럼 번뇌의 집착을 떠나서 를 얻으면 여러 임을 알 수 있다) ·

(8) 如影喩(光影喩라고도 한다. 我相이나 法相의 그림자는 번뇌가 正見의 빛을 가림으로 나타난다) ·

(9) 如鏡中像喩(거울에 비친 얼굴의 모양은 만든 것도 아니고 얼굴이 만든 것도 아니다. 거울에 집착하고 있는 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히 생긴 것도 아니며 인연없이 생긴 것도 아닌 것처럼, 諸法自作 · 他作 · 共作 · 無作이 아니고 이지만 범부는 誑惑한다고 한다) ·

(10) 如化喩(諸天이나 仙人등이 신통력으로 거짓으로 변화하여 인간 등의 모습을 나타낸 것. 化人에게 生滅苦樂이 없는 것처럼 諸法도 모두 이어서 生滅이 없다. 더구나 智度論卷六에서는, 이것을 易解을 가지고 難解을 비유한 것이며, 앞의 九喩하여 諸法하고, 뒤의 一喩空不生不滅로써 한 것이다. 十喩는 여러 般若部經典에도 나오고 있는데 약간의 異同이 있다. 大日經 卷一에는 · 陽焰 · · · 乾闥婆城 · · 水月 · 浮泡 · 虛空華 · 旋火輪의 열 가지 비유를 하여 十緣生句라 일컫고 이것을 하는 것을 十緣生觀, 十喩觀이라 한다.

인간의 육체가 · 無常인 것을 보이는 비유. 유마경卷上에는 열 가지 비유를 들고 있으므로 이것을 유마경의 十喩 혹은 十種喩身이라 일컫는다. 聚沫 · · · 芭蕉 · · · · · 浮雲 · 十喩가 그것인데 고래로 그 해석은 한결같지 않았으니 羅什無常의 비유라 했고, 僧肇의 비유라 했으며, 慧遠은 앞의 五喩를 따로하여 五陰, 五喩는 다 五陰에 대한 에 비유했다고 했다. 특히 諸經論에는 유사한 비유를 설한 예가 적지 않다. 舊譯의 화엄경卷七에는, 水沫 · · 野馬 · 水中月 · · 浮雲六喩, 羅什譯의 금강반야경에는, · · · · · 六喩, 菩提流支譯의 금강반야경에는 · · · · · · · · 九喩, 섭대승론 卷中에는 幻事 · 陽焰 · 所夢(夢境) · 影像(鏡像) · 光影 · 谷響 · 水月 · 變化八喩(이것은 依他起性을 비유한 것이므로 依他八喩라 한다)등이 있다. 또한 楞伽經卷二에는 범부나 외도가 사물의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渴鹿陽焰 · 乾闥婆城 · 夢中諸境 · 畵像高下 · 翳目垂髮 · 火輪非輪 · 水泡摩尼 · 水中樹影 · 明鏡色像 · 風水出聲 · 日照洪浪 · 咒術機發十二喩라고 했다.

釋尊一代의 교화의 순서로 나타내는 비유. 舊譯의 화엄경卷三十四寶王如來性起品에는, 태양이 뜨면 우선 諸大山王(큰 산)을 비추고, 점차로 일체의 대지까지 비추는 것을 이 세상에 나타나서 보살 · 연각 · 성문을 차례로 소질능력의 낮은 자에게까지 골고루 교화가 미치는 것을 비유한다고 했다.

北本涅槃經卷四十聖行品에는, 소로부터 젖을 짜고 이것을 정제하여 차례로 · 生酥 · 熟酥를 얻고, 나중에 熟酥에서 중의 ()醍醐가 나오는 것을, 로부터 十二部經이 나오고, 십이부경에서 修多羅가 나오고, 수다라에서 方等經이 나오고, 방등경에서 반야바라밀이 나오고 반야바라밀에서 大涅槃이 나오는 것에 비유했다. 본래 이 五味의 비유는 전 불교(즉 십이부경)에서 점차로 그 요점을 뽑아내어 열반경이 요점중의 요점이며 가장 훌륭한 가르침임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고래로 많은 교화의 순서를 나타내는 기준으로서, 앞의 화엄경의 三照說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이 때 五味의 해석에는 異說이 많지만 智顗五時에 배당하여, 교가 설해진 순서 및 그 가르침을 받는 (대상)가 얻는 이익의 두 가지 뜻으로부터 해석하여, 華嚴時(乳味) · 阿含時(酪味) · 方等時(生酥味) · 般若時(熟酥味) · 法華涅槃時(醍醐味)로 하고, 법화경을 앞의 五味 중의 後敎後味, 열반경을 뒤의 五味 중의 後敎後味로 했다. 化法四敎에서는 이를테면, 藏敎에서는 범부는 젖과 같고, 須陀洹과 같고, 斯陀洹生酥와 같고, 阿那含熟酥와 같고, 阿羅漢과 벽지불은 호와 같은 것처럼, · · 三敎에 각각 五味가 있는데, 圓敎에는 다만 一味라고 했다. 여기에 灌頂涅槃經會疏卷十三에서, 諸師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에 의하면 소는 열반경의 敎主, 戒聖行, 定聖行, 또한 生酥四諦慧聖行, 熟酥二諦慧聖行, 醍醐一實諦慧聖行이라고도 하고 있다.

三乘斷惑修行(수행하여 번뇌를 없애는 것)深淺이 있는 것에 비유, 優婆塞戒經卷一, · 馬象三獸江河를 건너는 비유를 든다. 이것을 三獸渡河 · 三獸渡水라고 하는데, 三獸는 성문 · 연각 · 보살의 三乘, 강물은 十二因緣의 이치에 비유하고, 토끼는 몸을 물속에 잠그지 않고 헤엄쳐 건너고, 말은 몸이 물에 잠겨 건너지만 역시 발이 밑바닥에는 닿지 않으며, 오직 코끼리는 밑바닥에 발을 부치고 건너는 비유가 그것이다. 특히 法華玄義卷八下에는 이것을 통교의 삼승을 본떠서 는 즉 , 不空을 비유한다.

법화경에 불타는 중생의 힘에 따라 갖가지 같지 않은 하지만, 목적은 동일한 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보이는 비유와, 의 법신은 불멸이며 보편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로서 일곱 가지가 있다. 이것을 法華七喩라 한다.

(1) 火宅喩. 火宅三車의 비유라고도 한다. 비유품에 있다. 三界五濁 · 八苦 등에 괴로움을 당하여 안주 할 수 없는 것을 화재를 당하고 있는 집에 비유했다. 三界(迷惑의 세계)에 애착하고 있는 중생을 幻兒, 長者에 비유했으며, 집안에서 노는 유아는 괴로움이나 위험에서 탈출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장자는 방편(수단)을 마련하여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던 羊車(성문승) · 鹿車(연각승) · 牛車(보살승) 三車(삼승)가 기다리고 있으니, 집밖으로 빨리 나오라고 하여, 문밖에 나오게 하고는 모두 大白牛車(일불승)에 태워 불타는 집에서 구했다는 비유이다. 특히 이 비유에서 방편인 牛車大白牛車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三車로 하는 삼론종이나 법상종의 입장은 三車, 방편의 우차와는 달리 따로 大白牛車가 있다고 하여 四車를 드는 천태종이나 화엄종의 입장을 四車家로 한다.

(2) 窮子喩. 長者窮子의 비유라고도 한다. 信解品에 있다. 원래 장자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유랑하여 자기의 신분을 모르고 비천하다고 믿고 있는 것을 아버지인 장자가 찾아내어 온갖 수단을 써서 점차로 嗣子인 것을 자각케 하는 내용이다. 그와 같이 은 스스로 성문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에게 여러 가지로 방편을 베풀어 보살로서의 자각을 갖게 하는 것에 비유한 것.

(3) 藥草喩. 雲雨喩라고도 한다. 藥草喩品에 있다. 藥草大中小가 있어 다 같지는 않지만 雲雨에 촉촉하게 적셔지면 모두 자라서 약초로서의 효용을 가지는 것처럼 중생의 소질 · 능력의 차별이 있어도, 如來敎化를 받으면 한결같이 깨달음에 들고, 大醫王이 되어 널리 모든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비유. 천태종에서는 여래의 방편의 法雨를 받아야 할 중생을 三草二木으로 하여 小草人天乘, 中草二乘, 上草藏敎의 보살, 小樹通敎의 보살, 大樹別敎의 보살에 하고, 五乘 七方便

에 비유한다고 했다.

(4) 化城喩. 寶處化城喩라고도 한다. 이것이 化城喩品에 있다. 여행자들이 오백 由旬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寶處(진실의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려고 하다가 중도에 지쳐서 멈추어 버렸을 때, 훌륭한 지도자가 삼백유순의 지점에 거짓 化城(방편의 깨달음의 세계)을 나타내어 쉬게 하고, 그 다음에 드디어 寶處에 이르게 한다는 비유.

(5) 衣珠喩. 繫珠喩라고도 한다. 이것은 五百弟子受記品에 있다. 어떤 사람이 친구 집에 가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어, 그 친구가 떠나기 전에 寶珠를 그 사람 옷자락 속에 매어 두었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貧苦에 괴로움을 당했는데, 뒷날 친구를 만나 그 사실을 알고 마침내 풍족한 생활을 했다는 비유. 二乘이 과거세에 大通智勝佛 처소에서 대승의 인연을 맺었으나 무명에 가리어 깨닫지 못하고 生死苦海를 헤매다가 이제 여래의 方便開示에 의해 마침내 一佛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에 비유한 것. 더욱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에 비유하여 옷 속의 보주, 衣內明珠라 한다.

(6) 髻珠喩. 頂珠喩라고도 한다. 이것은 安樂行品에 있다. 여래는 법화경을 설하여 모든 權敎(방편의 )開會하여 일승의 實敎를 나타내므로 二乘도 반드시 이 될 수 있다는 증명을 주는 것. 전륜성왕이 ()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던 구슬을 풀어서 공신에게 주는 것을 비유한 것.

(7) 醫子喩. 醫師喩라고도 한다. 이는 如來壽量品에 있다. 三乘權敎가 방편인 것을 알지 못하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여래가 방편을 강구하여 一乘에 돌아가게 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지도 못하고 독약을 마시고 미쳐 있는데 아버지가 이를 보고 묘약을 주어 그 병을 고치는 비유.

法華 開顯의 종지를 蓮華에 견주어 한 비유. 智顗法華玄義序王에 있는 蓮華三喩 · 迹本三喩라고도 한다. 곧 법화경의 역문에 있어서 施開廢, 본문에 있어서 垂開廢을 연밥과 그 꽃에 비유해서 연밥을 위해 연꽃은 있는 것이고, 꽃이 피어 그 열매인 연밥이 생긴 후, 꽃이 떨어져 연밥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如來藏의 비유. 如來藏經에는 九喩를 설한다.

(1) 봉오리 속에 열매를 맺는 꽃술이 숨겨져 있다.

(2) 꿀을 지키고 있는 벌을 쫓으면 꿀을 얻을 수 있다.

(3) 왕겨를 제거하면 精米(흰살)를 얻을 수 있다.

(4) 不淨處에 떨어져 있는 순금은 언제까지나 변질하지 않으므로 그 있는 곳을 알면 꺼내 쓸 수 있다.

(5) 가난한 집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보물은 찾아낼때까지는 쓸모가 없다.

(6) 菴羅果의 씨는 핵 속에 있어 깨지지 않고 땅에 심으면 大樹王이 된다.

(7) 순금으로 만든 을 낡은 보자기에 싸서 버려 두면,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부정한 것으로 본다.

(8) 한 여자가 轉輪聖王을 잉태했으면서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한 자식이려니 생각하고 있다.

(9) 순금으로 을 주조하여 땅위에 내버려두면 겉은 검고 더러워도 속은 변함 없다. 이와 같이 중생은 번뇌에 가려져 있지만 본래 깨끗한 여래법신을 그 속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북본열반경권칠여래성품의 貧女寶藏의 비유는 (5), 四卷楞伽經卷二大價寶垢衣의 비유는 (7)에 해당하고, 전술한 법화칠유중, 衣珠喩는 여래장을 비유한 것이다. 또한 北本涅槃經卷七에는 佛性을 비유한 額珠의 비유가 있다. 力士가 이마에 金剛珠를 붙이고 씨름(혹은 권투)을 하다 넘어지는 순간에 구슬이 살 속에 박혔는데 그는 구슬을 잃은 줄로만 알고 있다가 종기()를 고치기 위해 名醫의 진찰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의 원인이 구슬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므로 그는 비로소 거울을 보고 구슬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생 스스로는 자신이 본래 가지는 불성을 모르지만 의 가르침을 받고 佛性이 있음을 알게 된다.

念佛三昧의 비유. 觀佛三昧海經卷十에 염불삼매를 장자의 閻浮檀金 · 寶印 · 長者如意珠 · 仙人誦呪 · 力士明珠 · 劫盡時의 금강산에 비유한다.

육체의 無常함을 표시한 비유. 유마경卷上이몸은 丘井과 같다고 했음이 그것. 왕에게 벌 받을 것이 두려워 정신없이 도망가던 사람을 왕은 醉象으로 쫓게 했다. 그 사람은 언덕에 있는 마른 우물로 피했는데 우물 중턱에 있는 腐草(썩은 풀 또는 등나무 덩쿨)를 잡고 매달렸다. 덩쿨 밑에는 惡龍이 독을 내뿜고 벽에는 다섯 마리의 독사가 위해를 가하려 하고 있다. 또 흑백 두마리 쥐는 덩쿨뿌리를 물어 뜯어가고 있으며, 위에서는 코끼리가 으르렁 거리고 있다. 무서워 떨고 있는 머리 위 나무에서 꿀이 입으로 떨어져 오므로 그는 단맛에 취하여 일시적으로 공포감을 잊게 된다는 이 우화는, 丘井生死, 醉象無常, 惡龍惡道, 다섯 마리의 독사는 五陰, 腐草命根, 검고 흰 두 마리의 쥐는 黑月 白日, 단꿀은 五欲樂에 비유한 것이다. 이것을 淨名經(유마경)七喩라고 하기도 하며, 또 다른 여러 경전에도 이 비유가 나온다. 二鼠嚙藤의 비유라고도 하고 후세에는 그림을 그릴 경우, 대개 코끼리를 호랑이로 바꾸어 그려서, 無常의 호랑이라 하고, 또한 두 마리의 쥐는 日月의 쥐라고 말하는 수도 있다.

중생의 · · 번뇌 가운데 청정한 願往生心이 생기도록 하는 비유(이는 善導觀經疏散善義에 나온다). 群賊惡獸에 쫓기는 사람이 서쪽을 향해 도망가는데 갑자기 水火二河 중간에 · 五寸白道가 있는 곳에 당도한다. 그래서 그는 실로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느끼는, 절대절명이 되었을 때, 동쪽 언덕에서는마음을 단단히 먹고 백도로 가라고 권하고, 서쪽 언덕으로부터는一心으로 正念을 가지고 어서 건너 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이에 그는 의심치 않고 백도를 건너서 서쪽 언덕에 이르러 행복을 받았다고 한다. 水河는 중생의 貪愛, 火河는 중생의 瞋恚, 백도는 청정한 願往生心에 비유하고 동쪽 언덕은 釋迦의 권유(發遺), 西岸彌陀의 부름에 의해서, 중생은 청정한 원왕생심을 일으켜 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을 二河白道의 비유, 二河譬라고 한다.

그 밖에 가끔 사용되는 비유에 師子身中蟲(仁王經卷下에 있으며 하여 師蟲이라고도 한다. 獅子는 맹수이므로 죽어도 다른 짐승은 그 고기를 먹지 않지만, 스스로의 몸속에서 생기는 벌레가 그 살을 먹는 것을, 불법 가운데 있으면서 불법을 파괴하는 자의 비유로 쓴다) · 盲龜浮木(雜阿含經卷十五를 비롯하여 諸經에 나온다. 큰 바다 가운데 無量歲의 수명을 사는 애꾸눈의 거북이가 있다고 하고 백년마다 한번 밖으로 머리를 내어 밀고 호흡을 한다. 그런데 이 때 바다 가운데 떠다니던 구멍이 하나 밖에 없는 浮木의 구멍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극히 드문 것처럼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을 만나서 佛法을 듣는 것은 극히 드문 귀중한 일에 비유)등이 있다.

 

() : 범어 buddha音略. 佛陀 · 佛駄 · 浮陀 · 浮屠 · 浮圖 · 浮頭 · 沒駄 · 勃陀 · 馞陀 · 步他 등으로 音譯하고 覺者 · 知者 · 이라 번역하며, 眞理를 깨달은 이의 뜻으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하다는(覺行窮滿) 뜻이 있다. 自覺覺他覺行窮滿의 관계는 凡夫에 있어서는 자가, 二乘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최후의 하나가 모자라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경론에 여러 가지로 설해 있고, 佛身 佛土 등에 대해서도 各宗異說이 있는데 대체로 대승에서는 佛果에 이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데 갖가지 佛號를 세운다. 곧 여래의 十號를 비롯하여, 一切知者 · 一切見者 · 知道者 · 開道者 · 說道者라든가, 世尊 · 世雄(世間에 있어서 一切의 번뇌를 끊는데 雄猛, 雄健) · 世眼(세간의 눈이 되어 이것을 인도하는 ) · 世英(세상에 훌륭하여 뛰어난 자) · 天尊(五天 가운데 가장 훌륭한 第一義天)이라든가, 大覺世尊(하여 大覺尊) · 覺王(覺皇) · 法王 · 大尊師 · 大聖人 · 大沙門 · 大仙(大僊 仙人 중의 가장 높은 仙人) · 大醫王(병에 따라 신묘하게 약을 주는 명의와 같이 마음의 을 자유자재로 설하는 자) · 佛天(五天 가운데 가장 뛰어난 第一義天) ·  佛日(불타를 태양에 비유한 말) · 兩足尊 · 二足尊 · 兩足仙 · 二足仙(이 네 가지 이름은 두 다리를 가진 生類 중에서 가장 높은 이란 뜻. 二足이라 함은 , 혹은 를 갖추었다는 뜻) · 天中天(諸天중의 最勝者) · 人中牛王(불타를 牛王에 비유한 말) · 人雄獅子(人中雄者여서 마치 獸類中獅子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부처를 能化人 곧 가리키는 이, 인도하는 이란 뜻으로 能人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아미타불을 安樂能人(安樂世界能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能人이라 함은 能仁으로, 能仁釋迦의 번역이니 釋迦佛의 이름을 빌어서 일반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하여 그 몸에는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구족하고, 十力 · 四無所畏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 불타의 초월성을 항으로 묶어서 七勝事 · 七種最勝 · 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身勝 · 如法住勝 · 智勝 · 具足勝 · 行處勝 · 不可思議勝 · 解脫勝의 일곱 가지 이름이 그것이다. 불타의 는 공히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大定 · 大智 · 大悲라고 하여 斷德 · 智德 · 恩德三德에 배속하고 합해서 大定智悲라고 한다.

過去世에 나타나신 (過去七佛 · 燃燈佛 )過去佛 또는 古佛이라고 하고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는 불타(彌勒佛 )後佛, 또는 當來佛이라고 한다. 최초의 이라 하면 역사상의 불타는 釋尊뿐이었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過去七佛(釋尊은 그 일곱번 째)의 사상이 생기고 좀 늦게 未來佛로써 彌勒佛을 생각하게 되어, 현재는 釋尊과 미륵불과의 두 부처의 중간에 無佛의 세상이라고도 한다. 小乘에서는 現在世에 있어서 二佛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大乘에 오면 그 세계관은 확대되어 자못 크고 넓게 되고 동방의 阿閦佛이나 西方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 他方세계에 無數(恒河의 모래의 수만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여, 十方恒沙諸佛이라고 일컫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小乘一佛說이고, 大乘多佛說인데, 小乘중에도 大衆部 같은데서는 다른 三千大千世界에 동시에 다른 一佛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며, 一界一佛 · 多界多佛說을 취하고, 有部 등은 多界一佛說을 취한다. 이 경우라 함은 三千大千世界를 말한다. 三世의 모든 부처에 대해서 과거의 莊嚴劫千佛, 현재의 賢劫千佛, 미래의 星宿劫千佛, 합하여 三劫三千佛이 있다고 하며, 佛名三劫三千佛名經에 나와 있다. 佛名會는 이 에 의한 法會이다.

내세에 成佛하기 위한 信佛 등의 인연을 佛因 · 佛緣, 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인연을 佛緣(예컨대 佛緣을 맺는 것 등), 佛恩에 보답하는 것을 佛恩報謝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ㅈ(지읒)~ㅊㅋㅌㅍᄒ(히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의(眞實義)  (0) 2018.03.25
취온(取蘊)  (0) 2018.03.25
탐진치(貪瞋痴)  (0) 2018.03.24
정명(正命)  (0) 2018.03.24
피안(彼岸)  (0)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