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온(取蘊)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取는 번뇌의 異名이니 번뇌로부터 蘊을 내고 五蘊으로부터 번뇌를 내므로 取蘊이라 한 것. 有漏의 다른 이름. 小乘有部에서는 모두 번뇌의 異名으로 하고 大乘唯識에서는 탐애의 別名으로 한다. 탐애의 번뇌가 事物에 取着하므로 取라 이름하고 五蘊은 번뇌를 因으로 하여 생기므로 取蘊이라 하며, 五蘊은 항상 번뇌에 종속되므로 取蘊이라 하며, 五蘊이 능히 번뇌를 생기므로 取蘊이라고 한다. 또 三界의 苦果에 집착하므로 이것이 後世의 果報를 執持長養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하며, 三世에 걸쳐 內外·遠近·優劣의 차별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뜻으로 取蘊이라 한다고도 한다. 俱舍論에서는 「有漏를 取蘊이라 하며, 번뇌를 取라 하는데 蘊은 取(번뇌)로부터 생기므로 取蘊이라 한다. 有漏五蘊의 몸은 번뇌에 시달려 使役되고, 有漏의 蘊으로부터 생긴다」고 했다.
참고
취(取) : 十二因緣의 하나. 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 또 愛의 다른 이름. 번뇌의 총칭.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惑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및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報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의 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惑(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染·漏·結使·結·縛·纒·軛·暴流·取·蓋·繫·使·垢·株杌·燒害·箭·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體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體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온(蘊) : 舊譯에서는 陰이라 번역한다. 쌓아(積) 모여짐의 뜻으로, 많은 것을 類別에 의해서 한 무더기로 모아 놓은 것. 有爲法을 의미한다. 辯中邊論 卷中에는, 非一(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質이나 量등이 가지가지임) · 總略(모두가 하나로 모여져 있다) · 分段(성질별로 분류되어 있다)의 뜻이 있다고 하고, 俱舍論 卷一에는 和合聚(여러가지 類가 하나로 모여 있다) · 肩(果를 짊어지고 있다) · 分段의 뜻이 있다고 한다.
摩訶止觀 卷五上에는, 陰(蘊)에 진리를 덮어 감추는 뜻과, 여러가지의 것이 모여 있다는 뜻이 있다고 했고,
義林章 권五에는 陰이라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① 五蘊을 의미한다.
② 化地部에서는, 一念蘊(순간순간에 生滅하는 것) · 一期生蘊(一生동안 계속하는 것) · 窮生死蘊(미혹한 생존(중생)의 궁극까지 계속하는 것)의 三蘊의 說을 세운다(無性의 攝大乘論釋 권二).
오온(五蘊) : 五陰이라고도 한다. 蘊은 범어 skandha의 번역. 塞建陀라 音譯하며 모인다는 뜻. 가지가지의 종류를 일괄해서 聚說한다는 뜻. 五蘊이라 함은 色蘊(물질) · 受蘊(印象感覺) · 想蘊(知覺 · 表象) · 行蘊(意志 기타의 마음 작용 등) · 識蘊(心)의 총칭. 受 · 想 · 行은 대체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五蘊은 물질계와 정신계의 양면에 걸치는 일체의 有爲法(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五蘊이 有情의 個體를 형성하는 面을 강조한 말로 보면, 五蘊은 心身環境을 가리킨다.
육신은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事物이 모두 인연(온갖 조건)에 의해서 五蘊이 잠정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五蘊假和合이라 하고, 특히 有情의 개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라고 하여 집착할 實體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有漏인 五蘊을 또 五取蘊(五受陰)이라고도 한다. 取(受)는 煩惱의 異名이다. 또 이와 같은 五蘊은 중생에게 종종의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五妄想이라고도 불리운다. 五分法身[無漏의 五蘊이라고도 한다. 無學(최고의 깨달음)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 구비해야 할 다섯 가지 功德. 곧 戒蘊(戒身 · 戒品이라고도 부른다) · 定蘊 · 慧蘊 · 解脫蘊 · 解脫知見蘊의 총칭. 解脫과 解脫知見을 모아서 解知見이라고도 한다. 小乘佛敎해석에 따르면 身業과 語業이 無漏淸淨이 되어(戒), 空 · 無相 · 無願의 三三昧를 성취하고(定), 正見 · 正知(慧) · 盡知 · 無生知 및 正見과 상응하는 勝解를 얻고(解脫), 盡知 · 無生知를 얻는다(解脫知見)고 되어 있으나 근본은 불교교단에 들어가 육체적 · 정신적 욕망을 억제하고 마음을 寂靜하게 하여 智慧를 닦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그 해방된 마음으로 말미암아 편안함을 스스로 의식하는 開悟의 境地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을 無漏의 五蘊이라고도 한다.
유루(有漏) : 漏는 漏泄의 의미로 번뇌를 말함. 번뇌가 있는 것을 有漏라 하고, 없는 것을 無漏라 한다. 有漏는 또 有染 · 有染汚 · 有諍이라고도 한다. 染도 染汚도 諍도 번뇌를 말함. 또 잘못된 견해를 내는 依處이기 때문에 見處라고도 한다. 有部에서는 번뇌를 隨增하는 것(곧 번뇌에 隨順하여, 번뇌를 增長한다)을 有漏法이라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無漏法이라고 한다. 곧 四諦중에서 迷의 果와 因인 苦集二諦의 諸法은 有漏法이고, 悟의 果와 因인 滅道二諦의 諸法은 無漏法이다. 有漏의 육체를 有漏身, 有漏의 境界(迷의 경계)를 有漏路라 하고, 無漏淸淨의 佛身을 無漏身, 無漏淸淨의 境界(悟의 세계)를 無漏路라고 한다.
많은 世俗의 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지혜를 有漏智라 하고, 四諦의 理를 證見하는 見道이후의 聖者의 지혜를 無漏智라 한다. 또 見道에 이르기까지의 범부가 일으키는 善을 有漏善이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서의 聖者가 일으키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善을 無漏善이라 한다. 有漏智를 가지고 행하는 세속의 행위를 有漏行, 有漏智를 가지고 닦는 六行觀을 有漏道라 하고, 無漏智를 가지고 닦는 四諦의 觀行 등을 無漏行, 無漏道라 한다. 有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有漏斷, 無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無漏斷이라고 한다. 有漏行은 人間 · 天上등의 五趣의 有漏果(有漏의 번뇌나 業을 因으로 해서 생긴 有漏의 果報. 곧 人間 · 天上 등 3界와 5趣의 몸과 국토를 말한다)를 초래하기 때문에 有漏因이라 하고, 無漏行은 열반의 깨달음인 無漏果를 얻기 때문에 無漏因이라 한다.
凡夫가 六行觀을 닦아서 住하는 四禪 · 四無色定 · 四無量心定 등의 禪定을 有漏定 · 有漏禪이라 하고, 聖者가 無漏智를 發得하는 禪定을 無漏定 · 無漏禪이라 한다. 無漏定은 無漏의 九地(未至定 · 中間定 · 四根本定 · 下三無色定)에 있어서 일어난다. 法相宗에서는 佛果의 淨識을 無漏識이라 하고, 佛果에 이르기 이전의 識을 有漏識이라고 한다. 단 第六識 · 第七識은 初地入見道에서 1分을 轉識得智하여 無漏識이 되고, 前五識과 第八識은 佛果에 이르러서 비로소 無漏識이 된다고 한다. 無漏의 깨달음의 본래 寂然한 面을 無漏無爲라 하고, 그것이 작용하여 起動하는 面을 無漏有爲라 한다.
탐애(貪愛) : 色·聲·香·味·觸의 5境을 탐하여 애착하는 것.
과보(果報) : 異熟이라고도 한다. 因으로서의 業 곧 業因으로 말미암아 얻는 보답의 결과. 여기에 二報가 있다.
(1) 總報는 引業(總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總體로서의 果報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일단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그 인간으로서의 공통된 생존을 누리게 됨을 말한다.
(2) 別報는 滿業(別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차별의 果報로서 滿果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男 · 女 · 貧 · 富의 차가 있게 되는 등이 그것이다. 또 三時業에 대한 각각의 果報를 합하여 三報라 한다. 곧
(1) 順現報는 現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금생에 받는 果報를,
(2) 順生報는 生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다음生에 받는 果報를,
(3) 順後報는 금생에 業을 지어 次生을 넘어 未來世 이후에 받는 果報를 받는다. 六趣 가운데 人趣와 天趣의 果報는 五戒 十善의 因에 의하여 받는 훌륭한 報이므로 人天勝妙의 善果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凡夫의 迷惑의 경계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顚倒의 善果라 부른다.
집지장양(執持長養) : 집지(執持)→굳게 고집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 아미타경에 「부처님의 명호를 언제나 간직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하였음. .....장양(長養)→약해서 養이라고도 한다. 生長·養育의 뜻. 四食 혹은 飮食·資助·睡眠·等持·梵行 등의 힘에 의해서 身心 등이 生長·養育됨을 일컫는다. 단 五類 가운데 所長養(장양된 것)은 極微(分子)로부터 이루어진 색법(물질)에 한하여 하는 말.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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