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640-52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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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그 모든 선근으로 보리를 수행하였으며, 그 온갖 선근이 위없는 지혜에 미쳤으리니, 그 온갖 선근을 한데 합쳐 모아서 견주고 헤아려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마치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지으셨던 회향처럼 저도 역시 그와 같이 회향하나이다.'
온갖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옵고
온갖 복을 모두 따라 기뻐하오며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공덕으로
위없는 지혜를 이루게 하옵소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은
중생에서 가장 수승하시니
그 한량없는 공덕의 바다시여
저는 이제 귀명하며 예배하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은 마땅히 한 마음으로 이 서른 다섯 분의 부처님을 상수로 삼아 관(觀)하여야 하고, 다시 온갖 여래께 머리 조아려 예배하여야 하며 이와 같이 청정하게 참회하여야 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이런 죄를 없애게 되면 그때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곧 그 몸을 나타내시면서 온갖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갖가지의 모양을 나타내 보이시나, 법의 경계에서는 역시 동요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의 욕락을 따라 모두 원만하게 하고 다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이 만일 대비삼매(大悲三昧)에 들면 곧 지옥·축생·염마라 세계[閻魔羅界]를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고, 보살이 만일 대장엄삼매(大莊嚴三昧)에 들면 곧 장자(長者)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며, 만일 수승삼매(殊勝三昧)에 들면 곧 전륜왕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느니라.
또 만일 치연위광삼매(熾然威光三昧)에 들면 곧 제석(帝釋)과 범왕(梵王)의 수승하고 묘한 형상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고,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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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일 일향삼매(一向三昧)에 들면 곧 성문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며, 보살이 만일 청정삼매(淸淨三昧)에 들면 곧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고, 보살이 만일 적정삼매(寂靜三昧)에 들면 곧 모든 부처님의 형상의 몸[色身]을 나타내 보이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온갖 법이 자재한 삼매[一切法自在三昧]에 들면 그들이 뜻하고 좋아하는 바를 따라 갖가지의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성숙시키나니, 혹은 제석의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범왕의 몸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전륜성왕의 몸을 나타내기도 함은 모두가 모든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나 법의 경계에서는 역시 동요한 것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이 비록 또 중생을 수순하면서 갖가지로 나타내 보인다 하더라도 몸의 모양과 중생의 모양은 보지 못하며 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사자의 왕이 크게 으르릉거릴 때에 모든 작은 야간(野干)들이 자유자재로울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사리불아, 마치 큰 향상(香象)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나귀도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마치 제석과 범천왕의 위덕의 자재함을 빈천한 사람도 능히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마치 큰 힘을 지닌 금시조(金翅鳥) 왕이 빙빙 돌며 나는 것을 그 밖의 작은 새들도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 모든 보살들이 지닌 온갖 선근과 용맹스런 힘은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出離智]에 의지하고, 모든 죄의 때가 깨끗하며, 근심과 뉘우침을 멀리 여의고,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뵈었으며, 삼매를 얻었나니, 역시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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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서 이러한 죄장(罪障)도 모든 범부나 성문이나 연각으로서는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만일 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이 세 가지의 법을 행할 수 있으면 모든 죄를 없애고 근심과 뉘우침을 멀리 여의어 모든 삼매를 얻을 수 있느니라.”
그때 우바리(優波離)가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로 나아가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돌고 물러나 한 쪽에 머물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한 곳에서 혼자 앉아 사유(思惟)하면서 생각하기를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청정한 계학(戒學)은 성문승과 연각승과 보살승들을 위한 것이리라'라고 하고,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은 버리지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시거나 열반한 뒤이거나, 어떤 것을 성문과 연각의 바라제목차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승을 닦는 이의 바라제목차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는 저에게 '계율을 지닌 이 가운데서 제일 으뜸이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비니(毘尼)의 뛰어난 이치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듣고 받아 지녀 두려움이 없는 데에 미치면, 그런 뒤에야 다른 이들에게 널리 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대중에는 여러 보살들이 왔으며 비구승들이 모두 다 모여 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께서는 부디 결정된 비니를 널리 말씀하여 주셔서 의심을 끊어 없애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성문과 보살이 청정한 계율을 배움에는 그 일으키는 마음과 수행하는 바가 상이하느니라.
우바리야, 어떤 성문승이 지닌 청정한 계율을 보살승에 있어서는 큰 파계[大破戒]라 하고, 어떤 보살승이 지닌 청정한 계율을 성문승에 있어서는 큰 파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승의 사람이 비록 청정한 계율을 지닌다 하더라도 보살승에 있어서는 큰 파계라 하느냐 하면, 우바리야, 성문승의 사람은 나아가 한 생각에서라도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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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야 이것을 성문이 청정한 계율을 지닌다고 하지만 보살승에서는 큰 파계라 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지닌 청정한 계율이 성문승에서는 큰 파계라 한다고 하느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대승(大乘)을 수행하면서 한량없는 아승기 겁 동안 견뎌 참고 몸을 받되 싫증을 내지 않는 이것을 보살이 청정한 계율을 지닌다 하지만, 성문승에서는 큰 파계라 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승을 위해서는 수호를 다하지 않는 계율[不盡護戒]을 말하지만 성문승을 위해서는 수호를 다하는 계율[盡護戒]을 말하며, 모든 보살들에게는 허락하거나 혹은 막는 계율[開遮戒]을 말하나 모든 성문들에게는 오직 막는 계율[遮戒]만을 말하며, 보살승에게는 깊은 마음의 계율[深心戒]을 말하나 성문승들에게는 차례대로의 계율[次第戒]을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은 수호를 다하지 않는 계율을 지니고 성문승은 수호를 다한 계율을 지닌다 하느냐 하면, 보살승의 사람은 비록 청정한 계율을 지닌다 하더라도 모든 중생을 수순해야 되지만 성문승의 사람은 수순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수호를 다하지 않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요 성문승의 사람은 수호를 다하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살은 허락하거나 혹은 막는 계율을 지니고 성문승의 사람은 오직 막는 계율만을 지닌다고 하는가 하면, 만일 모든 보살이 대승 가운데에 마음을 내어 수행에 나아갈 때에 아침 무렵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어도 한낮 무렵에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戒身)은 파괴되지 않고, 만일 정오 무렵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더라도 저녁 무렵에 일체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은 파괴되지 않으며, 만일 저녁 무렵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더라도 초저녁에 일체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은 파괴되지 않고, 만일 초저녁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더라도 한밤중에 일체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은 파괴되지 않으며, 만일 한밤중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더라도 새벽녘에 일체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은 파괴되지 않고, 만일 새벽녘에 계율을 범한 것이 있더라도 아침나절에 일체지의 마음을 여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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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면 그러한 보살의 계신은 파괴되지 않느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승의 사람은 허락하고 혹은 막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니, 설령 범한 것이 있다 하여도 생각을 잃고 망령되이 근심하거나 뉘우치면서 스스로 그의 마음을 괴롭히지 말아야 하지만, 성문승에서는 범한 것이 있으면 곧 성문의 청정한 계율을 파괴하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성문은 계율을 지니면서 번뇌를 끊어 없앰이 마치 머리에 난 불을 끄듯 하면서 뜻하고 좋아하는 바가 오직 열반만을 구할 뿐이기 때문이니, 이런 이치 때문에 성문승은 오직 막는 계율만을 지닌다 하느니라.
또 우바리야, 어떤 것을 보살은 깊이 들어가는 계율[深入戒]을 지니고 성문승의 사람은 차례대로의 계율을 지닌다고 하느냐 하면, 보살승의 사람은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 동안 다섯 가지 욕락(欲樂)을 받더라도 유희함이 자재하여 일찍이 보리의 마음을 버리거나 여의는 일이 없나니, 이와 같은 보살은 계율을 잃는다[失戒]고 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보리에 편안히 머무르는 마음을 잘 수호하여 꿈속의 온갖 번뇌[結使]에 이르기까지도 그것을 근심거리로 여기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면서도 이 보살의 모든 번뇌는 점차로 다하고 일생 동안에 곧 모든 번뇌를 다하지 않아야 하지만, 성문승의 사람은 선근을 성숙시킴이 마치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하여야 하고 한 생각에 이르기까지도 생을 받음[受生]을 기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대승의 사람은 깊이 들어가는 계율을 지니고, 허락하거나 또는 막는 계율이 있음을 말하며, 수호를 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문승의 사람은 차례대로의 계율을 지니고, 오직 막는 계율만이 있다고 하며, 수호를 다한다고 한 것이니라.
왜냐 하면 우바리야, 대승을 구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가 심히 어려우므로 큰 장엄을 갖추어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비록 한량없는 아승기 겁 동안 오가며 나고 죽고 하면서도 끝내 싫어하거나 여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여래는 관찰하여 대승에 있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이 싫어하거나 여의게 하는 법을 말하지도 않고, 한결같이 속히 열반을 증득하는 법을 말하지도 않아야 하며, 당연히 그를 위하여 인자하고 기쁘게 하면서 매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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