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 109(151~180)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아름답게 꾸민 왕의 수레도 마침내 썩어 버리듯, 이 몸도 늙는다. 하지만 선법(善法)은 늙음이 없고, 선인은 선인에게 이야기해 주노라. (151)
배운 것이 적은 사람은 소처럼 늙는다. 살은 찌지만 지혜는 증장하는 일이 없어라. (152)
이 괴로움의 집을 짓는 자를 구하되 찾지 못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맴돌며 괴로운 생을 몇 번이고 거듭하도다. (153)
그러나 지금, 그대 집 짓는 분이여, 이제야 찾았도다. 또다시 집을 짓는 일 없으리. 모든 서까래는 부러지고 들보도 망가졌다. 마음은 갈애를 여의고 열반에 들었으니. (154)
젊었을 때 청정한 행을 닦지 않고 부를 누린다면, 물고기 없는 연못 속에 늙은 해오라기가 멸해 버림과 같다. (155)
젊었을 때 청정한 행을 닦지 않고 보물을 얻는다면 옛날을 탓하며 활을 떠난 화살처럼 썩어 넘어진다. (156)
사람이 만일 자애(自愛)하는 생각이 있다면 자기를 잘 수호하라. 삼시[三時=청(靑) · 장(壯) · 노년(老年)]에 있어 현자는 한번은 잠을 깨는 것인즉. (157)
먼저 스스로 바르게 살도록 하라. 그리하여 남을 깨우쳐라. 그러면 어진 자여, 번거로움이 없고 피로하지 않으리라. (158)
남에게 가르치듯이 곧 스스로 행하라. 자기를 조복한 뒤 남을 조복할 수 있다. 조복하기 어려움은 자기이다. (159)
실로 자기는 자기의 주인이다. 남은 자기의 주인일 수 없으므로 자기를 조복한 뒤에야 얻기 어려운 주인을 얻을 수 있으리라. (160)
스스로 지은 악업은 자기에게 생기고, 나로부터 일어나서 금강(金剛)의 주옥을 깨뜨리듯 어리석은 자를 분쇄하리라. (161)
심히 부덕(不德)한 사람은 덩굴풀에 덮힌 사라수(沙羅樹) 마냥 적이 바라는 대로 자기를 움직여 주는 자이다. (162)
좋지 않은 일로써 자기를 불리하게 하는 일은 하기 쉽고, 자기에게 이익되는 좋은일은 참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다. (163)
사견(邪見)으로 어리석게 성자의 법을 지니는 아라한(阿羅漢)과 그 교를 욕하는 자는 카타카의 열매가 익어 스스로를 해침과 같다. (164)
스스로 비뚤어지면 스스로를 더럽히고 스스로 비뚤어짐이 없으면 스스로 청정하다. 청정케 함도 부정함도 자기에게 달렸다. 남이 남을 청정하게 할 수는 없다. (165)
어떠한 일일지라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자기의 이익을 잊으라. 참된 자기의 이 됨을 알고 자기의 이 됨에 전심하라. (166)
비열한 법을 일삼지 말라. 방일에 탐닉하고 사견(邪見)을 품지 말라. 세간의 일을 증장하지 말라. (167)
분발하여 방일하지 말라. 바른 법을 행하라. 법과 같이 행하면 금세와 내세에 즐겁게 잠자리라. (168)
바른 법을 행하라. 악한 법을 닦지 말라. 법과 같이 행하면 금세와 내세에 즐겁게 잠자리라. (169)
이 세상을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염왕을 보는 일이 없다. (170)
이 아름다운 왕의 수레마냥 장엄된 세간을 보라. 어리석은 자는 그곳에서 괴로워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집착함이 없다. (171)
앞서 방일했다가 그 후 그 방일을 여읜 사람은 구름을 벗어나 달처럼 이 세간을 비추리. (172)
앞서 지은 악업을, 선을 행하여 메운 사람은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간을 비추리. (173)
이 세계는 어두워 볼 수 있는 사람(깨달은 사람)은 적다. 그물을 벗어난 새마냥 천계에 들어감은 적도다.
(174)
백조는 해의 길로 가고 신통한 자는 하늘로 난다. 현자는 마와 그 군세를 파하고 이 세계를 벗어난다. (175)
간탐하면 천계에 가지 못하고, 우자는 보시를 기뻐하지 않는다. 현자는 보시를 기뻐하며 저 세계에서야말로 안온을 누리리라. (176)
일법(一法)을 범하고 거짓말을 하고 후세를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177)
지상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느니보다 또 천계를 가는 제석(帝釋)보다도 온 세계의 통신(統神)인 범천(梵天)보다도 예류과(預流果)에 드는 일이 뛰어나도다. (178)
저 부처님의 승리를 뛰어날 자 없고 저 승리에 이를 수 있는 자 이 세상에는 없다. 부처님의 지견(知見)은 가이없다. 그런데도 이 탐욕과 진에와 우치로써 이렇다는 자취조차 없는 부처님을 무슨 도로써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가. (179)
덫과 독으로 비유되는 탐애(貪愛)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부처님의 지견은 가이없다. 이 탐욕과 진에와 우치의 아무런 자취도 없는 부처님을 무슨 도로써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가. (180)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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