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425-48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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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즐겁지만 그 밖의 것은 수호하면서 괴로울 뿐이다. 이미 보시한 것은 번뇌[結]을 여의었지만 그 밖의 것은 번뇌를 증가시킬 뿐이다. 이미 보시한 것은 크고 거대하지만 그 밖의 것은 거대한 것이 아니다. 이미 보시한 것은 바로 장부의 일이지만 그 밖의 것은 장부의 일이 아니다. 이미 보시한 것은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되지만 그 밖의 것은 범부의 칭찬을 받게 될 뿐이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은 견고하게 보시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또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이 만일 구걸하는 이를 보면 세 가지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잘 아는 이라는 생각이요, 다른 세상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이며, 보리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나니,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생각이요, 과보를 바란다는 생각이며, 악마를 항복받는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나니, 구하는 이에 대하여 친우요 권속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4섭법(攝法)으로 거두어 준다는 생각을 일으키며, 그지없는 생(生)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와 같이 이 세 가지의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탐욕을 없앤다는 생각이요, 성냄을 없앤다는 생각이며, 어리석음을 없앤다는 생각이니, 이런 세 가지의 생각을 내느니라. 왜냐하면 장자야, 이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 같이 작아지고 엷어지게 되기 때문이니라.
장자야, 어떻게 세 가지의 일이 모두가 작아지고 엷어지게 되느냐 하면, 만일 재물을 보시할 때에 마음에 탐착함이 없으면 이것을 탐욕이 얇아진다고 하고, 구걸하는 이에게 인자한 마음을 내면 이것을 성냄이 엷어진다고 하며 만일 보시하고 나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회향하면 이것을 어리석음이 엷어진다고 하느니라. 장자야, 이것을 보시하는 이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진다고 하느니라.
다시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이 구걸하는 이를 본 뒤에는 6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어떤 것을 6바라밀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이 보살이 소유한 어느 물건에라도 보시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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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이것을 단나(檀那)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고 하고, 보리의 마음에 의거하여 보시하면 이것을 시라(尸羅)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고 하며, 구걸하는 이에게 성을 내거나 꾸짖지 않으면 이것을 인욕(忍辱)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시할 때에 자기가 모자란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이것을 정진(精進)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 하고, 또 보시하고 나서 마음에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갑절 더 기뻐하면 이것을 선정(禪定)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 하며, 또 보시한 뒤에 모든 법을 얻지 않고 과보를 바라지 않으면서 이 지혜가 밝은 이는 모든 법에 머무르지 않고 머무른 바가 없음에 따라 위없는 도에 향하면 이것을 반야(般若) 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구걸하는 이를 보고 6바라밀을 닦아 나아가면서 만족시킨다고 하느니라.
또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은 세간의 여덟 가지의 법을 놓아 버리겠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그 사람은 집의 재산과 처자에 대하여 근심하거나 기뻐하지 않으면 가령 잃는다 하여도 근심하지 않으면서 관찰해야 하느니라.
'유위(有爲)는 마치 환술과 같아서 이는 허망한 생각의 모양이다. 부모와 처자와 노비와 하인이며 친우와 권속 등은 모두가 나의 소유가 아니므로 나는 이들을 위하여 착하지 않은 업을 짓지 않겠으며 이는 내가 마땅히 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현재의 반려(伴侶)요, 다른 세상의 반려가 아니며, 이들은 즐거울 때의 반려요, 괴로울 때의 반려가 아니므로 나는 그들을 보호하거나 내가 보호할 일이 아니다. 보시로 사람을 조복하고 지혜로 정하면서 방일하지 않는 일과 보리를 돕는 법[助菩提法]과 모든 선근들의 이것이 바로 나의 소유이다.
내가 가는 곳을 따라 그들도 따라갈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처자와 남녀의 권속과 아는 이와 심부름꾼도 나를 구제하지 못하고, 내가 돌아가 의지할 곳도 아니요, 나의 집[舍宅]도 아니고 나의 섬[洲渚]도 아니며, 나를 가려 주는 그늘도 아니요 나와 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음(陰)·계(界)·입(入)은 나와 내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부모와 처자가 나의 소유가 되겠는가? 부모와 처자는 이 업으로 그렇게 된 바라 나의 착한 업과 나쁜 업으로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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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면서 과보를 받는 것이요, 그들도 역시 업을 따르면서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장자야, 이 보살은 가거나 오거나 앉거나 일어나거나 간에 항상 이런 일을 관찰하면서 부모와 처자 권속과 노비·하인들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의 나쁘고 착하지 않은 업은 털끝만큼도 짓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은 자기의 아내에 대하여 세 가지의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무상하다는 생각이요, 변하고 바뀐다는 생각이며, 무너지고 부서진다는 생각이니라.
장자야, 이것을 집에 있는 보살이 자기의 아내에 대하여 세 가지의 생각을 낸다고 하느니라.
집에 있는 보살은 자기의 아내에 대하여 다시 세 가지의 생각을 내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이는 재미있게 즐기는 반려요 다른 세상에서의 반려가 아니며, 이는 음식을 먹을 때의 반려요 업보(業報)의 반려가 아니며, 이는 즐거울 때의 반려요 괴로울 때의 반려가 아니라는 생각이니, 장자야, 이것을 집에 있는 보살이 자기의 아내에 대하여 내는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요, 냄새나고 더럽다는 생각이며, 미워해야 한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원수라는 생각이요, 망나니라는 생각이며, 거짓 친한 이라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나찰(那刹)이라는 생각이요, 비사차(毘舍遮)라는 생각이며, 도깨비[鬼魅]라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이요, 받아들일 이가 아니라는 생각이며, 구걸하는 이라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욕각(欲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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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생각이요, 진각(瞋覺)이라는 생각이며, 해각(害覺)이라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캄캄하고 어둡다는 생각이요, 계율을 더럽힌다는 생각이며, 얽어맨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계율을 장애한다는 생각이요, 선정을 장애한다는 생각이며, 지혜를 장애한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아양을 부리면서 비위를 맞춘다는 생각이요, 덫이고 그물이라는 생각이며, 고양이처럼 틈을 노린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재앙과 우환이라는 생각이요, 뜨거운 번뇌라는 생각이며, 병들고 어지럽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귀여움을 받으려고 애교를 부린다는 생각이요, 쇠퇴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서리와 우박과 같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병들었다는 생각이요, 늙었다는 생각이며, 죽는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악마라는 생각이요, 악마의 딸이라는 생각이며, 두려워할 만하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근심스럽다는 생각이요, 울고 싶다는 생각이며, 괴롭게 군다는 생각이니, 이것을 세 가지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큰 암컷이라는 생각이요, 마갈어(摩竭魚)라는 생각이며, 큰 암고양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흑사(黑蛇)라는 생각이요, 시수어(尸守魚)라는 생각이며, 정기(精氣)를 빼앗는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구제할 이가 없다는 생각이요, 돌아갈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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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다는 생각이며, 보호할 이가 없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어머니라는 생각이요, 누님이라는 생각이며, 누이동생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도둑이라는 생각이요, 죽이는 이라는 생각이며, 옥졸(獄卒)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난폭하게 흐르는 물이라는 생각이요, 작고 큰 물결이라는 생각이며, 돌아 흘러 드는 물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흙탕이라는 생각이요, 진창에 빠졌다는 생각이며, 맑지 않고 흐리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소경이라는 생각이요, 쇠고랑이라는 생각이며, 형틀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불구덩이라는 생각이요, 칼 구덩이라는 생각이며, 풀로 된 횃불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이익이 없다는 생각이요, 가시나무라는 생각이며, 독(毒)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감옥에 갇혔다는 생각이요, 귀양 가서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며, 작고 큰 칼이라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싸우고 다툰다는 생각이요, 말로써 송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가두어 속박한다는 생각이니라.
또 세 가지의 생각이 있느니라. 원수끼리 만났다는 생각이요, 사랑하는 이와는 이별한다는 생각이며, 병이 들었다는 생각이니라.
요약하여 말하건대, 나아가 온갖 다투고 싸운다는 생각이요, 온갖 더럽고 혼탁하다는 생각이며, 온갖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라는 생각이니라.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은 자기의 아내에 대하여 이와 같은 모습으로 관찰하고 생각해야 되느니라.
또 장자야, 집에 있는 보살은 자기의 자식에 대하여 극진하게 사랑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장자야, 만일 자식에 대하여 극진하게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헐뜯는 것이 되나니, 마땅히 세 가지의 법으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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