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2225-445

근와(槿瓦) 2017. 12. 30. 01:25

대보적경-2225-44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221 / 3476]

몸은 바로 거짓임을 알아야 하며
모든 안팎의 입()에 대하여도
모두 그 성품이 공한 줄 알지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알고
안 뒤에는 남들에게 설하나니
이 때문에 이 보살은
지혜가 더욱 높아지고 커지느니라.

또 부루나야, 보살마하살은 결계(結戒)한 그대로 설계(設戒)한 것을 잘 따라 배우면서 빠뜨리거나 범함이 없을 것이니라. 어떤 것이 보살이 계율을 배우는 것이냐 하면, 온갖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보살이 계율을 배우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부루나야, 보살이 온갖 법을 배우면 온갖 법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니, 이 법의 지혜로써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慧]를 얻고 이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온갖 일을 알게 되느니라. 어떻게 온갖 일을 아느냐 하면, 살의 온갖 안의 일과 바깥의 일과 안팎의 일을 모두 아는 것이니라.
 

부루나야, 무엇 때문에 안[]이라 하느냐 하면, 안이라는 이름은 무릇 모든 탐착(貪着)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곳이어서 바로 안의 몸[內身]이니, 12인연으로부터 생기느니라. 이 안에서는 다만 세속에서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니, 이른바 이 눈[]이라는 것과 이 귀[]라는 것과 이 코[]라는 것과 이 혀[]라는 것과 이 몸[]이라는 것과 이 뜻[]이라는 것이니라.
부루나야, 이것을 안이라 하느니라. 이 법은 범부가 탐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이라 하나니, '나는 이러한 눈을 얻고 그러한 눈은 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귀····뜻을 얻고 그러한 귀····뜻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이 안에서는 다만 일으킨 바의 업연(業緣)으로써 과보가 있으면서 생겼을 뿐이니, 이 때문에 안이라 하느니라. 그 안에서의 차별은 범부가 탐착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눈이다. 이것은 귀····뜻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 모두를 안이라 하느니라.
또 부루나야, []을 둘[]이라 하는데 이런 일은 거짓이요, 속이는


                                                                            [2222 / 3476]

것인데도 모든 범부들은 탐착하고 받아 가지면서 다투고 있는 것이니라.
부루나야, 여래는 이것에 대하여 본래부터 사실대로 알아서 탐착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여래는 사실대로 알아서 탐착하지 않는가 하면, 여래는 이런 법 안에서 따라잡지 않는 것이니, 무엇을 따라잡지 않는가 하면 바로 애결(愛結)을 말하는 것이니라. 이 눈을 따라잡지 않으므로 눈을 여의면서 따라잡지 않으며 귀····뜻을 따라잡지 않으므로 귀 내지 뜻을 여의면서 따라잡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부루나야, 여래는 법에 있어서 안을 얻지도 않고 바깥도 얻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여래는 이런 법에 대하여 따라잡지 않느니라. 여래는 바로 진실한 말을 하는 이라 말하나니, '비구들의 눈은 너희들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본 체성(體性)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어느 법이 눈이고 이 눈은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가? 어느 법이 귀····뜻이고 이 귀와 나아가 뜻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본래의 체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부루나야, 눈이란 것을 이제 분별하고 따지면서 추검(推檢)하여 보아야 하고 귀····뜻도 이제 묻고 따지면서 추검하여 보아야 하느니라. 법에서는 탐하고 받아들일 것이 없나니, 왜냐하면 만일 받아들이는 법이 있으면 고뇌가 생기고 고뇌가 생기기 때문에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부루나야, 법에 대하여 받아들임이 있으면 모두 고뇌를 받아들이게 되고 만일 고뇌를 받아들이면 고통을 여의지 못하게 되느니라. 부루나야, 이것을 눈에 대하여 캐고 따지면서 추검한다고 하고, ····뜻에 다하여 분별하고 따지면서 추검하여 들어가는 곳[入處]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부루나야, 만일 들어가는 곳이 있다면 나오는 곳[出處]도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여래는 경 안에서 말하기를 '눈 이것은 공하고 나와 내 것이 없나니 본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다'고 하였나니, 이 성품은 성품이 없고 이와 같이 성품이 없기에 지음[]도 없고 파괴됨[]도 없느니라.
부루나야, 이와 같은 법의 성품은 모든 부처님께서 출생하셨거나 출생하지 않으셨거나 이 성품은 항상 머무르는 것이니, 여래는 모든 법의 생김에 대하여 이것은 생기지 않은 것으로 아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진실된 말씀


                                                                            [2223 / 3476]

을 하는 이라 말하거니와 '부처님이 출생하셨거나 부처님이 출생하지 않으셨거나 이 성품은 항상 머무른다[常住]'고 하느니라.
부루나야, 어떤 것을 생김이 없다[無生]하고 어떤 것을 생김이 없는 지혜[無生智]라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을 생김이 없다 하고 도()를 생김이 없는 지혜라 하며, 괴로움이 다함[苦盡]을 생김이 없다 하고 도를 생김이 없는 지혜라 하느니라. 이것을 바로 여래가 두 가지 진리[二諦]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니, 세속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가 그것이니라.
부루나야, 여래가 말한 괴로움의 모양[苦相]이라 함은 곧 모양이 없음[無相]을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괴로움의 모양이라 하는가 하면, 그것은 무위의 모양[無爲相]인 것이니, 무위인 그것이 곧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지혜가 있는 이는 무위가 바로 모양이 없음임을 아느니라.
 

부루나야, 지혜 있는 이가 어떻게 무위가 바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아는가 하면, 곧 무위법은 공임을 알고 그것은 고요히 사라진 것[寂滅]임을 알며, 그것은 귀의할 곳[歸處]임을 알고 첫째가는 이익임을 알며 뜨거운 번뇌가 없음을 아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무위를 알며 이 지혜 안에서도 역시 모양이 생기지 않느니라.
부루나야, 지혜 있는 이는 모든 모양을 여의면서 제일의(第一義)의 이익을 얻어 조작함도 없고 파괴됨도 없느니라.
부루나야, 만일 사람이 조작함이 있으면 곧 그것은 파괴되며, 만일 조작함이 없으면 파괴됨도 없느니라. 파괴됨이 없는 모양이 바로 공이요 파괴됨이 없는 모양은 바로 모양[]이 없으며 파괴됨이 없는 모양은 바로 원()도 없느니라.
부루나야, 공한 법은 어떤 사람의 조작도 없고 어떤 사람의 파괴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원도 없으면 어떤 사람의 조작도 없고 어떤 사람의 파괴도 없느니라.
부루나야,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파괴되지 않는 모양[不壞相]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가 하면 모든 여래가 얻지 못할 바[所不得]의 그것이니라.”


                                                                            [2224 / 3476]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법이 바로 모든 여래께서 얻지 못할 바입니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 모든 여래께서 얻지 못할 바이니라.”
세존이시여, 그 때문에 온갖 법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보리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부루나야, 온갖 법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보리이니라. 그러나 이 보리를 온갖 법이라고 하지 않나니, 온갖 법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보리라고 말함은 다만 세속에서 이름과 말을 빌어서 말한 것일 뿐이니, 정진하지 않은 이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정진하지 않은 이는 모든 법의 평등함을 닦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니, 만일 평등하지 않으면 부처님과 다투게 되느니라.
부루나야, 어떠한 사람들이 평등함을 수행하지 못하느냐 하면, 부루나야 모든 세간은 평등하지 못함을 행하니 모든 부처님의 보리 안에서는 평등함도 없고 평등하지 않음도 없느니라.
부루나야, 나는 이 도()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이 인연 때문에 나는 경 안에서 말하기를 '모든 법은 바른 자리[正位] 안에서 모두가 필정(必定)에 든다'고 하였나니, 이것을 필정하여 보리의 문(菩提門)에 들어간다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부루나야, 온갖 법은 모두가 보리이니라.”
 

그 때에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또한 일정하기도 하고 일정하지 않기도 하며, 또한 문자에 들어가기도 하고 문자에 들어가지 않기도 하며, 또한 언어에 들어가기도 하고 언어에 들어가지 않기도 하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으로부터 이 경전을 설하심을 듣고 모든 법 가운데서 결정된 광명을 널리 얻었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와 같이 모든 법 가운데서 결정된 광명을 얻어 하나의 일 안에서 온갖 일을 알고 온갖 일 안에서 하나의 일을 알았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부루나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부루나야, 너는 그와 같이 빨리도 모든 부처님의 온갖


                                                                            [2225 / 3476]


법의 이익에 들어가게 되었구나. 너는 이미 일찍이 과거의 세상에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모든 선근을 심었으며 가까이 하여 물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부루나야,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 세상에 이 토지의 허공이 있는 가운데서 너는 이미 일찍이 68천의 모든 부처님에게서 이 경을 얻어 들었나니, 이 선근 공덕의 인연으로 너는 모든 법에서 결정된 광명을 두루 얻었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이미 그 많은 부처님에게서 이 경을 얻어들었다면 저는 어째서 한 생각 동안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의 세상에 너는 일찍이 1겁 동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으나 다른 마음을 여의지 못하여 도로 물러나게 되었느니라. 이 복덕의 인연으로써 나는 이제 너에게 모든 법사(法師) 중에서 맨 첫째라는 것을 말하느니라.”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 무슨 죄장(罪障)을 지었기에 1겁 동안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다가 도로 물러나 잃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루나야, 나쁜 벗을 따르면서 의지했기 때문이요, 또 널리 법을 유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에서 도로 물러나고 잃게 되었느니라.
부루나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 성문승(聲聞乘)이 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이 나쁜 벗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선근을 더욱 싫어하고 멀리 여의게 되는데, 그는 말하기를 '이렇게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고 죽고 하는 것이 길고도 멀고, 고뇌는 한량없어서 5(:세계)를 가고 와서 재난이 없음을 만나기 어렵고, 모든 부처님을 만나기도 어려우며 청정하게 믿는 것도 다시 어렵다. 록 부처님을 만났다 하더라도 출가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대는 지금 재난이 없음을 만나게 되었다면 다시는 잃지 말라. 그대는 모든 부처님에게서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授記)도 얻지 못했고 선근도 아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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