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선정을 닦는 방법 103

근와(槿瓦) 2014. 10. 30. 00:56

선정을 닦는 방법 103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바시리의 사람으로 살바가마(薩婆迦摩)는 뜬세상의 생활에 싫증을 내고 처를 버리고 세존에게 출가했다. 세존으로부터 지관(止觀)을 염하라는 공안(公案)을 받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행을 바로하고 마음을 연마하고 지혜를 닦았다. 유행의 생활로 여기저기 여행을 거듭하고 얼마 후 고향에 돌아가 자기의 집을 찾았다. 아내는 지난날의 모습을 잃고 마르고 여윈 데다가 고뇌로 지친 몸은 애처로웠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인사하고 곁에 앉았다.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 애련의 정이 절로 솟아나 하마터면 침착한 마음을 잃고 환속할까도 했지만, 준마(駿馬)가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 달리기 시작하듯 두려움을 나타내고 다시 도의 심오한 곳을 헤치고 들어갔으며, 이것을 기연(機緣)으로 삼아 행을 힘써 닦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장모 장인은 살바가마가 가까이 오는 것을 기뻐하며 다시금 집에 붙들어 앉혀 딸의 환한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여 딸을 아름답게 단장시켜 함께 정사에 이르러 환속을 권했다. 살바가마는 다음의 게를 보이며 그 청을 물리쳤다.

 

이 두 개의 발이 있는 몸, 남에게 안겨본들 청정하지 못하고 더러운 냄새만 남일세.

온갖 더러움은 가득하여 여기저기서 스며나오네.

사슴은 덫에, 물고기는 낚시에, 원숭이는 끈끈이에 사로잡히고 세간의 중생은 색에 계박되도다.

좋은 빛과 목소리, 맛과 향기와 감촉의 다섯 가지 욕심은 모두 여자의 모습을 지으리라.

마음은 물(物)에 계박되어 세간의 상민은 이와 사귀어 무서운 자기의 무덤을 넓히고 망집의 종자를 거둬들이네.

발로써 뱀의 머리를 차듯, 이것들을 물리치는 바른 사람은 생각도 바르게 세간의 독(毒)을 물리치네.

욕심에서 화(禍)를 보고 출리(出離)에서 안락을 보아 나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더러움을 여의네.

 

아난은 길에서 이 장인 장모와 여인을 보고서 살바가마의 일을 염려하며, 살바가마와 만났느냐고 물었다.

“만났습니다만 만나지 않았음과 다름없습니다.”

‘이야기를 했습니까?”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야기하지 않음과 다름없습니다.”

 

아난은 다음과 같이 게를 송하며 정사로 돌아갔다.

 

불에서 물을 찾고 물에서 불을 찾고, 공(空)에서 유(有)를 구함은 마치 무욕에서 욕을 구함과 같이 어리석도다.

 

살바가마는 아난을 보고서 자기의 깨달음을 밝혔다. 아난은,

 

능히 청정한 행을 지키고 길을 닦아 망집을 끊음은 부처님의 참된 제자이니라.

고 노래하며 살바가마의 깨달음을 칭찬했다.

 

세존은 그로부터 항하를 건너 남안으로 나아가 강물을 따라 베나레스에 이르러 녹야원에 머무르셨다. 어느 날, 세존은 또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제자들이여,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긴 글씨 같은 사람과, 모래에 쓴 글씨 같은 사람과 물에 쓴 글씨 같은 사람이다. 바위에 새긴 글씨 같은 사람이란 곧잘 화를 내고 그 노여움을 오래 계속하는 사람이다. 마치 바위에 새긴 글자가 비바람에도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모래에 쓴 글씨 같은 사람이란 곧잘 화를 내지만 그 노여움이 모래에 쓴 글씨처럼 속히 사라지는 사람이다. 물에 쓴 글씨 같은 사람이란 물위에 쓴 글씨는 찰나에 흘러가 자취도 없듯이 욕설이나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조금도 그 마음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화기(和氣)가 넘쳐 있는 사람이다.

 

제자들이여, 마카티의 섬유로 만든 천은 새 것이나 중고나 낡은 것이나 보기 흉하고 감촉이 나쁘며 값도 싸다. 이 낡은 천은 항아리를 닦는데 쓰거나 쓰레기로 버릴 수밖에 방법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제자로서 신참이건 중간치건 또 상좌이건 계를 지키지 않고 성질이 나쁘다면, 나는 그를 추한 자라고 한다. 그와 사귀고 그 견해를 같이하면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불리 불행이 된다. 이것은 그 촉감이 나쁜 것이다. 또 그는 신자로부터 옷, 음식, 좌구, 약을 받더라도, 그 신자의 보시는 큰 과보를 받을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을 싸구려라고 말한다. 또 이와 같은 상좌인 제자가 승가에서 남을 비방하든가 이끌 경우, 다른 제자는 ‘그대가 비방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너야말로 비방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라고 말하리라. 이 말을 듣고 그는 화를 내며 거칠은 말을 내뱉고 마침내 승가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곧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다고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카시의 비단은 새 것이나 중고나 낡은 것이나 아름답고 보드랍고 값도 비싸다. 헌 비단 조각은 보석을 싸든가 향상자(香箱子) 속에 넣어 둔다. 마치 이처럼 신참이거나 중간치거나 상좌이거나 계를 지키고 착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면, 나는 그들을 훌륭한 자라고 한다. 그와 사귀고 그와 견해를 같이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이것을 감촉이 좋다고 일컫는다. 또 그가 신자로부터 옷, 음식, 좌구, 약을 얻으면 시주는 그것에 의해 큰 과보를 받는다. 이것을 값이 비싸다고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또 이와 같은 상좌인 제자가 승가에서 무슨 일이든가 얘기하고자 하면, 제자들은 모두 말한다. ‘대중들은 조용히 해 주십시오. 상좌되는 분이 법과 계율을 말씀하고자 합니다’고. 제자들이여, 그러기 때문에 ‘나는 마카티 천으로 비유한 것처럼 되지 말고 카시의 비단으로 비유한 것처럼 되리라’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여, ‘이 사람은 자기가 한 업(業)대로 보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자가 있어, 그것이 또 참된 사실이라면 청정한 행을 닦을 필요도 없고 고뇌를 멸할 기회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제자들이여, 작은 죄업을 범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자도 있다. 또 같은 죄업을 범하더라도 그 보를 이 세상에서 다 받고 내세에는 무거운 고보(苦報)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금도 괴로움을 받지 않는 자도 있다. 그래서 앞서의 경우는 어떠한 때에 생기는가 하면, 여기에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를 지키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고, 덕이 적으며 마음이 작고 따라서 작은 일에도 괴로워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러한 사람은 작은 죄업을 쌓아도 그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몸을 닦고 계를 지키고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고 덕도 풍부하고 마음도 넓고 무량한 선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조그마한 죄업을 범해도 그 보를 현세에서 받고 내세에는 무거운 고보(苦報)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금도 괴로움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비유컨대 소금 한 덩어리를 작은 바리때의 물에 넣으면 그 바리때의 물은 짜고 항하의 물에 넣으면 짜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겨우 한 푼의 돈으로 옥에 들어가야만 하고, 어떤 자는 그것만으로는 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즉 가난한 사람은 불과 한 푼으로 감옥에 갇히고 재물이 풍부한 부자는 그 근소한 한 푼 때문에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가난으로 괴로워하는 사나이는 한 마리의 양을 훔쳤다 하여 옥에 갇혀 자유를 빼앗기고, 부자나 귀족이 훔쳤을 경우에는 오히려 임자 쪽에서는 빌어 그 댓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자들이여, 그러므로 작은 죄업을 범하더라도 어떤 자는 지옥에 들고 어떤 자는 이 세상에서 그 보를 다하고 내세에는 그 고과(苦果)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룬 업대로 보를 받는게 아니라 업을 지어 보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 보를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비로소 청정한 행을 닦을 필요가 있으며 괴로움이 끝날 기회도 나타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황금은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그 광석은 흙이나 모래나 조약돌이 섞여 있어 지저분한 것이다. 이 지저분한 광석을 그릇 속에 담아 몇 번이고 씻는다. 이렇게 지저분한 것을 여러번 씻어내어 깨끗하게 한다. 이리하여 점점 더러움을 제거하면 금사(金砂)만이 남는다.

 

이 금사는 금공(金工)이 도가니 속에 넣고 풀무질을 하여 녹인다. 처음에는 잘 녹지 않고 더러움이 제거되지 않아 유연해지지 않고 광택이 없으며 단단하지도 못하여 별반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풀무질을 하면 드디어 불순물이 제거되고 광채가 나며 작업할 수 있도록 유연해진다. 이것을 가지고서 세공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길이를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여 귀고리, 팔찌, 금사슬을 만드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마치 이와 마찬가지로 선정을 닦는 자도 처음에는 신, 구, 의의 세 가지 악으로 몹시 더럽혀져 있는 법이다. 마음 있는 현명한 자는 차례로 그것을 제거하고 멸하여 없앤다. 더구나 아직 욕과 진과 해(害) 의식의 더러움이 있으므로 이것도 제거하여 멸하지만, 그런데도 친척이라든가 나라라든가 남이 자기를 얕보게 하지 않는다는 등의 생각이 붙는다. 이 더러움을 제거하되 법의 의식이 남아 아직도 이 때문에 청정해지지 않으며 마음이 바르게 한곳에 모아지지 않는다. 그 선정은 아직도 무리가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마음이 있는 현명한 자는 차례로 이 같은 더러움을 멸하여 바른 선정을 얻고 신변(神變)을 얻고 지혜를 얻어 번뇌를 멸하여 깨달음을 얻으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선정을 닦는 자는 전심(專心)으로 하며 면려하여 차별의 염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전심할 것을 생각하면 그 마음은 게을러질 염려가 있으므로 면려할 것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면려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두렵게 될 염려가 있으므로 차별의 염을 버릴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차별의 염을 버리는 일에 얽매이면서 번뇌를 멸하는데에 향하지 않을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시종 이 삼상(三相)을 염두에 두면 마음이 부드러워져 일에 도움이 되고 광채가 나며 튼튼해지는 것이다. 마치 세공이 금을 도가니에 넣어서 불로 달구고 물로 적시어 때때로 시험하고 있는 것과 같다. 오직 불로 가열만 한다면 금이 재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로써 적시기만 한다면 식고 말 것이다. 시험만 하고 있으면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불로써 가열하고 물로써 식히고 때때로 시험해 보아야 그 금이 부드러워지고 광채가 나고 일하는데 쓸모가 있게 되고 금공이 뜻대로 세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그러므로 선정을 닦는 자는 이 세 가지 상(相)을 아울러 생각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세 가지 상을 생각하며 나아가면 자기의 뜻대로 갖가지 신변(神變)이나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