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전연(大伽旃延) 101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 무렵 대가전연은 와라나 고을의 가트다마 호수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라문인 아라마난다가 대가전연에게 나아가 인사하고 물었다.
“존자여, 찰제리가 찰제리와 서로 다투고 바라문이 바라문과 서로 다투고 비사(毘舍)가 비사와 서로 다투는 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탐욕에 계박되어 그것에 빠지고 자격(刺擊)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자여, 이 세상의 탐욕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지금 이곳 동쪽의 사위성에 이 세상의 세존이신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지만, 그분이 바로 이것에서 벗어나신 분이다.”
이 말을 듣더니 바라문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세존이 계신 쪽을 향해 합장하며,
“그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받들겠습니다.”
라고 삼귀의를 하고 ‘아아, 세존은 이 탐욕에서 벗어나셨다’고 찬양했으며 대가전연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평생 신자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또 어느 때 대가전연은 마도라야의 군다 숲에서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간다라야나 바라문이 그를 찾아와서 말했다.
“존자여, 저는 대가전연께서 기숙이신 바라문을 배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지 않으며, 자리도 내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옳은 일일까요?”
“바라문이여, 세간의 세존이신 부처님이 설하신 늙은이와 젊은이는 정의가 있다. 그것에 의하면 가령 나이가 많아 팔십 구십의 바라문이라 할지라도 애욕에 탐닉하고 애욕에 불타고 애욕을 구하여 마지 않는다면 그는 젊은이다. 또 가령 젊은 바라문일지라도 애욕에 탐닉하지 않고 애욕을 구하는 일이 없다면 그는 현명한 노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을 듣더니 간다라야나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곁에 늘어서 있던 젊은 불제자의 발에 자기 머리를 붙이고 말하였다.
“당신들은 참된 장로이시다. 나는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는 이후 평생 신자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세존은 아직도 기원 정사에 내내 머물러 계셨는데, 어느 날 사이타와 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는 사리불의 거처에 가서 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리불이 말했다.
“세간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즉, 스스로 체험하는 신증(身證)의 사람과 지혜에 의해 도달하는 견지(見地)의 사람과 신심에 의해 해탈하는 신해(信解)의 사람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가?”
사이타가 말했다.
“나는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신해가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신심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마하구치라가 말했다.
“나는 신증을 가장 뛰어난 걸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선정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러나 사리불이여, 당신은 이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어느 것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견지가 가장 뛰어난 걸로 생각하지요. 왜냐하면 이 사람의 지혜는 우수하므로. 그런데 벗이여,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 의견을 말했다.
이제부터 세존께 가서 이 일을 말씀드리고 세존이 말씀하신 대로 알아 두자.”
하고는 함께 세존을 뵙고 사실을 아뢰었다.
“사리불이여, 이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이 사람이 뛰어났다고 분명히 말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신해의 사람이 성자에 도달하고 신증과 견지의 사람이 그곳에 이르지 못하는 일도 있다. 이와 반대로 신증의 사람이 성자가 되고 견지와 신해의 사람이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일도 있다. 때문에 세 종류의 사람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뛰어났다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세존은 또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다.
“제자들이여, 세간의 병자를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좋은 음식, 효험이 있는 약, 알맞은 간호인 등을 얻지 못하면 낫을 수 없는 병자이다. 둘째는 좋은 음식, 효험이 있는 약, 알맞은 간호인 등을 얻든 얻지 못하든 낫을 수 있는 병자이다. 셋째는 좋은 음식, 효험이 있는 약, 알맞은 간호인 등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살지 못 한다는 병자이다. 제자들이여, 이 세 번째 병자가 있기 때문에 첫째의 병자와 둘째의 병자도 음식, 약, 간호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법상으로도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부처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부처의 가르침을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 불구하고 선법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둘째는 부처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부처의 가르침을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를 불구하고 선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셋째는 부처를 만나지 못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받으면 도로 나아가고, 부처를 만나지 못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도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제자들이여, 이 셋째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른 첫째와 둘째의 사람에 대해서도 법을 설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세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는 상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둘째는 번갯불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셋째는 금강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상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성내기 쉽고 자포자기하기 쉽고 짜증스런 마음을 갖는 것이 마치 상처가 막대나 토기 조각에 스치면 고름이 나듯 한 경우를 이름이다. 번갯불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이것은 고(苦)이다, 이것은 고의 인(因)이다, 이것은 고의 멸이다, 이것은 고의 멸에 이르는 도라고 여실히 아는 사람으로 마치 어둠 속에 번갯불이 번쩍이면 그 빛으로 사물의 모양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를 이름한다. 금강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번뇌를 멸하여 각을 얻은 사람으로 마치 금강은 구슬이든 돌이든 무엇이든 끊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를 이름이다. 이 세간에는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느 때 아난이 세존께 나아가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나는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의 악한 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엄하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 금욕을 범하여 세 가지 악한 행을 한다면 어떠한 보가 있을까요?”
“아난이여, 세 가지의 악한 행을 하면 스스로 몸을 책하고, 마음 있는 사람의 비난을 받고 나쁜 이름을 얻게 되며, 마음이 어지럽혀져 목숨이 끝나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리라. 이것이 그 보이다. 아난이여, 나는 몸과 입과 뜻의 착한 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엄하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세 가지의 착한 행을 하면 어떠한 보가 있사옵니까?”
“아난이여, 스스로 자기를 책하는 일이 없고 마음 있는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으며 명예를 얻고, 목숨이 끝날 때에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죽어 천계에 태어나리라. 이것이 그 착한 보이다.”
다시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두 가지의 뛰어난 법이 있다. 그것은 지(止)와 관(觀)이다. 지를 닦으면 마음이 조복되어 욕의 더러움을 여읠 수가 있고, 관을 닦으면 지혜가 증장하여 무명을 여읠 수가 있다. 욕에 더럽혀지면 조복되지 않고, 무명에 더럽혀지면 지혜가 증장하지 않는다. 욕을 여의는데는 마음을 조복해야 하고 무명을 벗어나려면 지혜가 증장해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악인과 선인이 의거해 설 땅을 설하겠다.
악인이 설 땅은 어디인가. 악인에게는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란 없다. 이 은혜를 알고 감사를 갖지 않으니 나쁠 수밖에 없다. 선인이 설 땅은 어디인가. 선인에게는 은혜를 알며 감사가 있다. 이 은혜를 알고 감사를 갖는 것이 선한 일이다.
제자들이여, 아무리 애쓰더라도 두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다. 비록 백년을 사는 사람이 백년 동안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왼쪽 어깨로 아버지를 업고 걷더라도, 또 향수로써 부모의 몸을 문질러 주고 깨끗이 씻어 주고 주물러 주고 부모의 분뇨를 처리해 주더라도, 그 은혜는 아직도 갚기에 모자란다. 부모를 왕자(王者)의 자리에 오르도록 애쓰더라도 그 은혜를 갚기에는 모자란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자식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이를 양육하고 이 세계를 자식에게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의 불신(不信)을 깨우쳐 신앙으로 이끌고 악한 계를 버리고서 바른 계에 서도록 하고 탐욕을 여의고서 보시로 이끈다면, 부모의 은혜를 갚는데 족하고 또한 그보다 위로 나설 수도 있다.
제자들이여, 이 세상에 수승하고 존귀한 두 가지의 노력이 있다. 하나는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옷, 음식, 좌구, 약을 공양하는 노력이고, 그 밖에 출가자 자신이 번뇌를 없애는 노력이다. 너희들은 번뇌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비록 피와 살이 다 마를지라도 가죽과 심줄과 뼈가 남는 한은 남자다운 힘, 남자다운 정진을 다하고, 이르고야 할 곳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결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결심에 의해 그대들은 멀지 않아 집을 버리고 출가의 목적을 달성하고 청정한 행을 이 세상에서 이룩하게 되리라.
제자들이여, 여기에 두 가지의 법이 있다. 하나는 계박의 법에 대한 애착의 견해, 또 하나는 계박의 법에 대한 염오(厭惡)의 견해이다. 애착의 견해에 의하여 탐욕도 진에도 우치도 버리지 못하고 따라서 생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 뇌(惱), 민(悶)을 벗어날 수 없고 항상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염오의 견해에 의해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여의고 따라서 생과 노와 사와 근심, 슬픔, 괴로움, 뇌, 번민도 벗어나, 아아, 즐겁다고 기쁨의 소리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두 종류의 흑법(黑法)과 백법(白法)이 있다. 백법은 세간을 수호하고 흑법은 세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두 종류의 흑법이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고, 두 종류의 백법이란 참(慚)과 괴(愧)인 것이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두 종류의 힘이 있다. 사유의 힘과 수습의 힘이다. 사유의 힘이란 사람이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악업에는 각각 현세 및 내세에 나쁜 업보가 있다고 생각하고서 세 가지의 악업을 여의는 일이다. 수습(修習)의 힘이란 실제로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여의는 행을 닦고 깨달음의 도와 선정(禪定)을 닦고 악을 여의고 선을 좇는 일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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