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인과(因果)의 업(業) 105

근와(槿瓦) 2014. 11. 14. 01:39

인과(因果)의 업(業) 105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또 교사라국을 유행하신 뒤 사위성으로 돌아가신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다.

“제자들이여, 중생들은 누구나 나쁜 일이 없어지고 소망하는 일이 많아지게끔 원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가 되는 까닭은 어째서인가?”

“세존이시여, 세존은 법의 근본을 깨닫고 계시므로, 모쪼록 그 까닭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들은 가르침을 그대로 믿겠습니다.”

 

“제자들이여, 그렇다면 잘 듣도록 하여라. 여기에 성자를 보지 않고 선한 사람을 보지 않고 성법(聖法)을 알지 못하고 선한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행해야 할 법과 행해선 안 될 법을 모르기 때문에 행해야 할 법을 행하지 않고 행해선 안 될 법을 행한다. 이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증장하고 바라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르치는 제자는 성자를 보고 행해야 할 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줄고 바라는 일이 증장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네 가지의 법이 있다. 그것은 현재에 괴로움을 줌과 동시에 미래에도 괴로움을 낳는 법, 현재에는 괴로움을 일으키더라도 미래에는 즐거움을 낳는 법, 현재에는 즐거움을 낳지만 미래에는 괴로움을 낳는 법, 현재에도 미래에도 즐거움을 낳는 법이다. 무명에 덮여 있는 자는 이 현재도 미래도 괴로운 법과, 현재는 즐겁고 미래는 괴로운 법이 있는 것을 모르는 까닭에 피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증장하고 바람직한 일이 준다.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당연한 일이다. 또 현재는 괴롭고 미래는 즐거운 법과 현재도 미래도 즐거운 법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피하여 행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 증장하고 바람직한 일은 준다. 이것도 어리석은 자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제자들이여, 이것과 반대로 지혜 있는 자는 이 네 가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행해선 안 되는 일을 행하지 않고 행해야만 할 일을 행한다. 그 때문에 바람직한 일은 증장하고 바람직하지 않는 일은 준다. 이것은 지혜 있는 자의 당연한 행위이다.

 

제자들이여, 현재도 미래도 괴로운 법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어떤 사람이 살생, 투도, 사음 등 나쁜 행을 하면 그것이 자기의 고뇌가 된다. 이 행 때문에 현세에서 이미 고뇌를 받고 또 내세에서도 악도에 태어나게 된다. 또 현재도 미래도 괴로운 법이란 살생, 투도, 사음 등 나쁜 행을 하고도 그것이 고뇌를 일으키지 않고 즐거움과 기쁨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악한 자도 있다. 그러나 비록 현재에 즐거움과 기쁨을 얻더라도 미래에는 반드시 악도에 태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현재는 즐겁고 미래는 괴로운 법이다.

 

현재는 괴롭고 미래는 즐거운 법이란, 앞서 예거한 나쁜 행(惡行)을 금하고 탐욕과 진에를 여의고 바른 견해를 품고 더구나 이 도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이 이 세간에 있어서는 고뇌를 일으켜 미래에 있어서는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현재도 미래도 즐거운 법이란, 이 도의 생활이 이 세간에 있어서 이미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미래에도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이것을 비유해서 말한다면 여기에 어떤 사람이 독이 섞여 있는 호리병박을 꺼내어 목숨을 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나이에게 말한다. ‘여기에 독이 든 호리병박이 있는데 마시고 싶으면 마셔라. 그러나 맛도 향기도 나쁘고 마시면 죽게 된다’고 하면서 권한다. 그렇지만 마실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재도 미래도 괴로운 법을 행하는 사람은 이 호리병박을 마시는 사나이와 같다.

 

또 여기에 아름답고 맛좋은 요리에 독이 섞여 있다고 하자. 그곳에 목숨을 아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내가 와서 ‘맛은 좋지만 독이 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먹었다고 하자. 이는 곧 현재는 즐겁고 미래는 괴로운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또 여기에 여러 가지 약을 섞은 물이 있는데, 황달병자가 권유에 따라 마셨다고 하자. 맛도 향기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긴 하지만, 병은 이것에 의해 참으로 평안해진다. 이것이 현재는 괴롭고 미래는 즐거운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끝으로 여기에 이질을 앓는 사람이 권유에 의해 버터와 당밀과 설탕을 반죽한 젖을 섞은 약을 복용했다고 하자. 이 약은 맛도 향기도 나무랄 데 없고 마시면 병이 낫는다. 이것이 현재도 미래도 즐거운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제자들이여, 맑게 개인 한 점 구름도 없는 가을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온갖 어둠을 불식하여 남김없이 비추듯이 현재도 미래도 이 즐거운 법은 범상한 출가자들의 논의를 떨쳐 버리고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또 어느 날, 세존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염색공이 더러운 천을 노랑이나 빨강이나 파랑 빛깔로 물들이더라도 아름답게 염색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본바탕이 더럽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러워진 마음의 결과는 나쁠 것이 뻔하다. 제자들이여, 깨끗하게 천을 빨고 그런 뒤 노랑이나 빨강이나 파랑 빛깔로 물들이면 아름답게 염색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이 깨끗하게 세척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깨끗한 마음의 결과는 좋을 게 당연하다.

 

제자들이여, 탐욕, 진에, 원한, 덮어 감추는 마음, 자부심, 질투, 아첨, 속임수, 대담성, 복수심, 만(漫), 과만(過漫), 교(憍), 방일은 마음의 티끌과 때(垢)인 것이다. 이 마음의 티끌과 때를 알고 이것을 씻어 청정하게 하고 부처와 법과 승가에 움직이지 않는 신심을 심어 이기심을 멸하고 마음이 열려 기쁨을 낳고 몸은 화창함을 느끼고 마음이 한곳으로 모여 진정된다. 이와 같은 것은 숱한 채소와 카레이와 정백미(精白米)로 된 미식(美食)을 먹더라도 아무런 해도 입는 것이 아니다.

 

마치 깨끗한 물에서 더러운 천을 빨면 깨끗해지듯이 황금을 가마 속에 넣으면 더욱더 광채가 나듯이 이 사람에게는 온갖 티끌도 때도 청정해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 상념을 초월하여 출리(出離)를 알고 번뇌를 멸하여 각을 얻는다. 이것이 안(內)의 욕법(浴法)에 의해 목욕하는 자라 일컫는 것이다.”

 

이것을 곁에서 듣고 있던 바라문인 슨다리카바라드와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바프카 강에 목욕을 하러 나가십니까?”

“바라문이여, 바프카 강에 무슨 일이라도 있다는 거냐?”

“세존이시여, 바프카 강은 많은 중생들의 거칠은 행을 깨끗이 하고 공덕을 주며, 악업을 씻어 버린다고 하옵니다.”

 

“바라문이여, 바프카 강이니 가야강이니 슨다리카마 강이니 하는 강에는 모두 그와 같은 부질 없는 전설이 있지만, 그것이 중생들의 악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바라문이여, 이 가르침에 목욕하여 모든 중생들이 안존이 되고 생물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고 신심을 가지고 탐하는 일이 없다면, 이것이 참다운 목욕이다. 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바라문은 세존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허락을 얻어 제자가 되었으며 얼마 후 각을 얻었다.

 

 

또 어느 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다섯 가지 마음의 사마(邪魔)를 제거치 않고 다섯 가지 마음의 계박을 풀지 않으면, 그는 이 가르침의 도에 나아갔다고 할 수 없다.

 

다섯 가지 마음의 사마란,

첫째, 스승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신심을 갖지 않는 일,

둘째, 법에 미혹하여 신심을 갖지 않는 일,

셋째, 승가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신뢰하지 않는 일,

넷째, 수도에 미혹하여 신념이 없는 일.

다섯째, 동학자에 대하여 마음으로 짜증을 내고 음울해지는 일.

이 다섯 가지 마음의 사마(邪魔)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열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인내심이 없고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 자이다.

 

또 다섯 가지 마음의 계박이란,

첫째, 세간의 물욕(物欲)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목마름과 같은 욕심을 느끼는 일,

둘째, 자기의 신체에 관해 탐욕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일,

셋째, 물질에 관해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일,

넷째, 위장에 가득히 음식을 넣고 누워서 상쾌한 낮잠을 즐기는 일.

다섯째, 청정한 행을 닦아 천계에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얽매어 있는 일이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의 계박을 풀지 않으면 열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인내심이 없으며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제자들이여,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마음의 사마를 끊어 버리고 다섯 가지 마음의 계박을 풀며 이것에 소원과 정진과 사유와 검찰(檢察)의 여의족(如意足)을 닦고 마지막으로 노력을 더하여 도에 나아가면, 깨달음을 얻어 더할 데 없는 안존에 다다를 수가 있다. 마치 암탉이 달걀을 품고 주의깊게 기르고 있을 때 ‘달걀 속의 병아리가 부리나 발가락으로 달걀 껍질을 깨고 편안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때에는 병아리는 부리나 발가락으로 자연스럽게 달걀 껍질을 깨고 편안히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는 법이다. 이렇듯 노력을 더하여 이 열 다섯 가지의 법을 갖추고 있으면, 번뇌를 멸하고 각을 얻어 더할 데 없는 안온에 다다를 수가 있다.”

 

 

어느 날 생문(生聞) 바라문은 기원 정사로 세존을 찾아 뵙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죽어야만 할 자로서 죽음을 겁내지 않는 자는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바라문이여, 죽지 않으면 안 될 자로서 죽음을 겁내는 자도 있거니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자도 있다. 죽음을 겁내는 자란 오욕에 관해 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집착을 여읠 수 없는 자가 중병에 걸리면, 그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괴로워 번민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슬피 울부짖는다. 또 이 육신에 관해 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집착을 여의지 못한 자도 중병에 걸리면 이 육신을 버리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고뇌한다. 또 이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지 않고 피난처를 만들지 않고 나쁜 짓만 한 사람도 죽음을 대하면 고뇌한다. 그리고 정법에 관해 의심을 품고 미혹하는 자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겁낸다. 그렇지만 바라문이여, 오욕에 관해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집착을 여의고 이 육신에 관해서도 탐하는 마음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하여 피난처를 마련하고 이 정법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미혹함이 없는 중생들은 중병에 걸리더라도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또 어느 때 불제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는 무엇에 의해 끌려가며 어떠한 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옵니까?”

“너의 물음은 참으로 훌륭하다. 이 세계는 마음에 이끌리고 마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많이 듣고 교법을 지니는 자라고 일컫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떠한 것이옵니까?”

“너의 물음은 참으로 좋다. 경(經), 기야(祇夜), 수기(授記), 게(偈), 환희송(歡喜頌), 본사(本事), 본생(本生), 미증유(未曾有), 방광(方廣) 등 나는 많은 가르침을 설했다. 그러나 겨우 사구(四句)의 게에 의해 의를 알고 법을 알고 법에 맞는 행을 하더라도, 많이 들어야 교법을 지니는 자라고 일컫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배워 꿰뚫는 지혜를 가진 자란 어떠한 것을 의미합니까?”

“그대의 물음은 참으로 훌륭하다. 여기에 한 제자가 있어, 이것은 고(苦)이다, 이것은 고의 인이다, 이것은 고의 멸이다, 이것은 고의 멸에 이르는 도임을 듣고 스스로 지혜에 의해 그 의를 꿰뚫어 안다면 가르침을 배워 꿰뚫는 지혜를 갖는 자라고 일컫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현명하고도 큰 지혜자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그대의 물음은 참으로 훌륭하다. 스스로 해치는 것과 남을 해치는 것과 자타를 함께 해치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과 자타를 함께 이익되게 하는 모든 세간의 이익을 생각하는 자를 일컫는다.”

 

 

기원 정사에 머물러 계신 동안에 세존은 자주 사위성의 동원(東園)에 있는 녹자모 강당(鹿子母講堂)에 가시곤 했지만, 어느 포살의 날,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자리를 정하시고 조용히 승가를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이 모임에는 소리를 내는 자가 없다. 청정한 선(善)에 입각하고 있다. 이 승가는 세간에서 보기 드문 모임이다. 공양할 값어치가 있고 합장 배례할만 하며 세간의 더할 위 없는 복전(福田)이다. 몇 십리의 먼 길이라도 양식을 지고 가서 참여해야 할 집회이다. 이 승가에는 신들의 지위에 이른 자도 있거니와 범천(梵天)의 지위에 이를 자도 있고 부동의 지위에 든 자도 있는가 하면 성자의 지위에 이른 자도 있다.

 

신들의 지위에 이른 자란 악불선(惡不善)의 법을 떠나 초선(初禪)에서 2선, 3선, 4선에 들어가 있는 자이다. 범천의 지위에 이른 자란 자, 비, 희, 사의 사무량심을 닦고 있는 자이다. 부동의 지위에 든 자란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와 무처유처(無處有處), 비상비비상처(非相非非想處)의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든 자이다. 성자의 지위에 든 자란 이는 고이다, 이는 고의 인이다, 이는 고의 멸이다, 이는 고의 멸에 이르는 도라고 여실히 알게 된 자를 말함이다.”

 

 

어느 때 아난은 세존의 허락을 받아 혼자서 구리족(拘利族)을 방문하고 그 사프카라는 고을에 머물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폈다.

“구리의 대중들이여, 사람의 몸을 청정히 하고 슬픔을 없애며 괴로움을 여의고 각을 얻기 위해, 네 종류의 청정한 의무가 부처에 의해 설해지고 있다.

 

첫째, 계(戒)의 의무란 계를 잘 지닐 것.

둘째, 심(心)의 의무란 욕심을 여의고 불선을 여의고 모든 선정에 들어가는 것.

셋째, 견(見)의 의무란 이는 고이다, 이는 고의 인이다, 이는 고의 멸이다, 이는 고의 멸에 이르는 도라고 여실히 아는 것.

넷째, 해탈의 의무란 이 계와 심과 견의 청정한 의무를 갖추고 더러움에서 마음을 해탈시키는 것.

이 네 종류의 청정한 의무가 중생의 몸을 청정히 해주고 슬픔을 없애고 괴로움을 여의어 각을 얻기 위하여 부처에 의해 설해진 것이다.”

 

 

어느 날 말리 왕비는 세존을 기원 정사에서 찾아 뵙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여자는 추하고 가난하며 어떤 여자는 추하지만 부유하고, 어떤 여자는 아름답지만 가난하고 어떤 여자는 아름다운 데다가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까닭에 의한 것이옵니까?”

“왕비여, 어떤 여자는 잘 노하고 잘 낙담하고 화를 잘 내며, 토라져 증오의 빛을 나타내고 출가자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남의 이양(利養), 명예를 얻는 것을 보면 질투한다. 이 여자는 후세에 추하고 가난한 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또 어떤 여자는 역시 이 같은 악덕을 갖추고 있지만 출가자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이양이나 명예를 얻는 것을 보고서도 질투하는 일이 없다. 이 여자는 내세에 태어나되 추하긴 하지만 부유하고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여자는 마음이 넓고 커, 무슨 일에도 화를 내지 않고 토라지지 않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지만, 출가자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남의 명예나 이양에 대해서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 이 여자는 내세에 용모는 아름답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나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어떤 여자는 역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덕을 갖춘데다가 또한 출가자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이익이나 명예를 얻는 것을 보더라도 질투하는 일이 없다. 이 여자는 내세에 얼굴도 아름답고 부유하여 큰 세력있는 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왕비여, 이것이 이 세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여자가 있는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생에 잘 노하고 비뚤어진 좁은 마음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추한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출가자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고 남이 가진 물건에 대하여 질투심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부유하고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왕궁에서 수많은 시녀를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부드럽게 무슨 일에도 화를 내지 않고 삼가겠습니다. 또 출가자에게 공양하고, 남을 시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왕비는 세존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궁으로 돌아갔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