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605-321

근와(槿瓦) 2017. 7. 23. 01:05

대보적경-1605-32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601 / 3476]

건남(健南)과 발라사거(鉢羅奢佉)의 부정하고 더러운 물건에서부터 자란 것이요, 젖먹이로 유전(流轉)하여 나아가 늙어 죽음의 윤회(輪廻)에 얽매인 것은 마치 검고 어두운 구덩이와 같고 마치 냄새나고 무너진 우물과 같은데 항상 짜고 싱겁고 쓰고 맵고 신 음식의 맛으로써 돕고 기르고 있느니라.
또 어머니 배 안에서 몸을 태우고 볶이며, 더러운 똥 속에다 항상 뜨거운 고통이 가()해지며, 어머니가 가고 서고 앉고 누울 때에는 마치 다섯 개의 줄로 묶인 것과 같고 또한 불로 지지는 것과 같아서 참고 견디기 어려움은 비유조차 할 수 없느니라.
난타야, 저 태 안에서 비록 이러한 똥 찌꺼기의 구덩이 속에 수많은 고통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예리한 근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니라.
또 어느 한 무리의 박복(薄福)한 유정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혹은 가로로 혹은 거꾸로 있게 됨은 그가 전생에 지은 업의 인연의 힘 때문이요, 혹은 어머니가 먹은 차고 덥고 짜고 시고 달고 맵고 쓴 음식이 잘 조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혹은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셨거나 혹은 음행을 많이 하였거나 혹은 질병이 많거나 혹은 수심을 풀었거나 혹은 때로 땅에 넘어졌거나 혹은 타박을 당해서이니, 이러한 일들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몸에 심한 열이 나고 몸의 열 때문에 태 속도 불이 타게 되며 불이 타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받고 이런 고뇌 때문에 곧 움직이게 되며 움직였기 때문에 혹 몸이 가로놓여져 나올 수 없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면 잘 아는 어떤 여인이 소유(蘇油)를 손에 바르고는 어머니의 뱃속에다 넣어 천천히 태를 만지면서 본래 있던 자리로 놓이게 하나 그 손이 닿을 때에 태 속의 아이는 곧 큰 괴로움을 받게 되느니라.
난타야, 비유하면 마치 어린 사내아이나 계집아이가 날카로운 칼로써 살을 베어 놓고 그 위에다 재를 뿌리면 이로 말미암아 곧 큰 고통이 생기는 것처럼 태 속의 아이의 모진 고통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비록 이런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예리한 근기이기 때문에 바른 기억이 흩어지지 않느니라.
난타야, 이 태아(胎兒)는 이와 같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지만, 또 해산(解産)하려 할 때에도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 나오


                                                                            [1602 / 3476]

는 것이니, 그 업의 바람[業風]으로 말미암아 손이 합쳐지고 팔다리를 오므리게 되며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또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려 할 때에 몸에 푸른 어혈이 있어서 마치 처음에 난 종기를 따기 어려운 것과 같으며, 배고픔과 목마름이 핍박하여 마음은 뜨겁게 시달리고 있는데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바람에 밀려나오게 하느니라. 그리하여 태에서 나온 뒤에는 바깥바람과 접촉하여 마치 깎아 놓은 살에 재를 바른 것과 같으며 손이나 옷이 닿을 때에도 모두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예리한 상근(上根)이기 때문에 바른 기억이 산란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태 속에 알면서 들어가고 머무르며 나오는 것이지만 모두가 다 고통인 것이니, 난타야, 그 누가 이러한 태 속으로 들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그 누가 어머니의 태 속에 바른 기억으로 들어가서 머무르다가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나오느냐 하면, 난타야,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그 성품이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아 익히며 항상 훌륭한 일을 하여 복된 일들을 짓고 그 마음이 질박·정직하여 방일하지 않으며 지혜는 적어도 죽으려 할 때에 후회함이 없나니, 혹 그는 일곱 번 오가면서 생()을 받는 예류이기도 하고 혹은 가가(家家)로서 혹은 일래(一來)이기도 하고 혹은 일간(一間)이기도 하느니라.
이 사람은 먼저 착한 행을 닦은지라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비록 괴로움이 와서 핍박하고 여러 시달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며 또 바른 기억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며, 모든 법은 업으로부터 나고 모두가 인연을 따라 생기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아나니(이외의 자세한 설명은 위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나아가 태에서부터 나오느니라.
비록 이와 같이 모든 극심한 고초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는 중근(中根)이기 때문에 들어가고 머무를 때는 바른 기억이지만,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나오게 되나니(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 누가 이와 같은 태 속으로 들어가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어떤 것이 바른 기억으로 태 속으로 들어가고 바르지 않은 기억으


                                                                            [1603 / 3476]

로 머무르다가 나오느냐 하면, 난타야,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성품이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아 익히며 항상 훌륭한 일을 하여 모든 복된 일을 지으며(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목숨을 마칠 적에는 후회함이 없나니, 혹 그는 일곱 번 오가면서 생을 받는 예류 등이니라.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갖가지 고통이 핍박하지만 비록 이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며 다시 바른 기억이 돌아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나니, 그는 하근(下根)이기 때문에 태로 들어갈 때는 알지만 머무르다가 나오는 것은 모르느니라(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 누가 이와 같은 태 속을 들어가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어떤 것이 들어가고 머무르다가 나오는 것이 모두 바르지 않은 기억인가 하면,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깨끗한 계율을 헐뜯기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지 않으며 항상 나쁜 일을 하면서 모든 악행을 짓고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고 방일한 행을 많이 하며, 지혜가 없어서 재물에 간탐을 부려 손을 항상 오므리고 펴지 못하며 구제하고 베풀어야 할 사람에게 늘 바라는 것은 있으면서도 마음이 순조롭지 못하여 견해와 행실이 뒤바뀌다가 목숨이 마치려 할 때에는 후회하게 되며, 모든 착하지 않은 업이 모두 다 앞에 나타나 죽게 될 때에는 맹렬한 고통과 시달림에 핍박되므로 그 마음이 산란하여지고 모든 고뇌로 말미암아 스스로 '나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서 와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난타야, 이것이 세 때의 바른 기억이 없다는 것이니,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니라.
 

난타야, 이 모든 유정들이 인간 세계에 태어난다면 비록 이러한 한량없는 고뇌는 있으나 그러나 여기는 훌륭한 곳이니, 한량없는 백천 구지(俱胝) 겁 동안에 사람 몸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니라. 만일 천상에 나게 되면 항상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별하는 고통이 있으므로 그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다른 하늘이 말하기를 '당신은 장차 세간의 착한 세계[善趣]에 나기를 원하시오'라고 하느니라.
어떤 곳을 세간의 착한 세계라 하는가 하면, 이는 곧 인간과 천상을 말하


                                                                            [1604 / 3476]

는 것이니라. 사람의 세계[人趣]는 얻기 어려우므로 이 어려운 곳을 멀리 여의게 되면 또다시 그것은 어렵게 되느니라.
 

어떤 곳을 나쁜 세계[惡趣]라 하는가 하면, 곧 세 가지 나쁜 길[三惡道]이니라. 지옥의 세계에서는 항상 모진 고통과 극히 뜻대로 되지 않은 맹렬한 고초를 받는 것이니, 비유하기조차 어렵느니라.
 

아귀의 세계란 성을 많이 내고 부드러운 마음이 없으며 아첨을 내고 부드러운 마음이 없으며, 아첨하고 속이고 살해하며 피를 손에 바르고 자비가 없으며 형용이 누추하여 보는 이들이 두려워하나니, 설령 사람을 가까이 하였다 해도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받아 항상 장애를 입느니라.
 

방생(傍生)의 세계란 한량없고 끝이 없나니, 의리[] 없는 행동과 복이 없는 행동과 법이 없는 행동과 선()이 없는 행동과 순박(淳朴)함이 없는 행동을 지어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강한 것이 약자를 업신여기느니라.
어떤 방생들은 나고 자라고 죽고 하는 것이 모두 부정하고 똥·오줌이 있는 더러운 곳에 있고 혹은 때로는 잠시 동안 밝은 데로 나오기도 하나니, 이른바 벌과 나비·모기·개미··벼룩 및 구더기의 무리들이며 그밖에도 한량없고 끝없이 나고 자라고 하는 항상 어두운 곳에 있는 것들도 있느니라. 그들은 전생에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경법(經法)을 듣지 않고 몸과 말과 뜻을 멋대로 하여 5()에 탐착하고 많은 악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이런 무리 속에 태어나서 어리석고 미혹한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유정으로서 나고 자라고 죽는 동안 물 속에만 있는 것들도 있나니, 이른바 고기·자라·악어·드렁허리·거머리·조개 및 개구리 등의 무리이니라. 전생에 지은 몸··뜻의 악업으로 말미암아(위와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어리석고 미혹한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유정으로서 똥·오줌의 냄새만 맡으면 재빨리 그곳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하는 것들이 있나니, 이른바 돼지····여우·담비·수리·까마귀·파리 및 쇠똥구리 등의 길짐승·날짐승의 무리이니라. 모두가 전생의 악업으로 말미암아 불러서 이런 과보를 받고 있느니라.


                                                                            [1605 / 3476]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무리로서 항상 풀과 나무와 모든 부정한 것을 음식으로 충당하는 것들이 있나니, 이른바 코끼리··낙타··나귀 및 노새 등의 족속이니라. 이러다가 목숨을 마치는 것이니, 전생의 악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보를 받고 있느니라.
또 난타야, 나고 죽고 하는 존재의 바다[生死有海]는 괴롭고도 쓰라린 것이니, 맹렬한 불길에 타는 아주 큰 뜨거운 열은 어느 한 중생도 타고 삶기지 않는 자가 없느니라. 이들은 모두가 눈·····뜻의 왕성하게 타는 맹렬한 불이 앞 경계인 빛깔·소리·냄새··접촉·법을 탐하고 구하는 까닭이니라.
난타야, 어떤 것을 왕성하게 타는 맹렬한 불이라 하느냐 하면, 바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불이요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불이며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독해(毒害)의 불이니, 항상 스스로 타고 있으므로 면할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느니라.
난타야, 게으름을 피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받고 번뇌에 얽히어 착하지 않은 법을 지으며 윤회(輪廻)가 쉬지 않아 나고 죽음을 마침이 없지만, 부지런히 경책하는 사람은 안락을 많이 받고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번뇌를 끊어 없애며 착한 법을 닦아 익히고 착한 멍에를 버리지 않으면서 쉬는 때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이제 이 몸의 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와 피와 맥이며 그리고 골수가 오래지 않아 흩어지고 무너질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며, 언제나 한 마음으로 게으르지 말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이면 힘써 증득하려고 해야 하리니, 이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니라.
 

난타야, 나는 세간과 함께 모든 논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러나 세간이 나에게 억지로 논쟁을 하려 하나니, 그 까닭은 모든 법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와는 다투지 않기 때문이니라. 나와 내 것을 떠났거늘 누구와 함께 다투겠는가마는 바른 견해(見解)가 없으면서 허망한 고집을 일으키는 까닭이니, 나는 정각(正覺)을 증득하고서 '나는 모든 법을 환히 알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였느니라.
난타야, 내가 하는 말에 차이가 있느냐?”난타가 말하였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보적경(大寶積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적경-1615-323   (0) 2017.07.26
대보적경-1610-322   (0) 2017.07.24
대보적경-1600-320   (0) 2017.07.21
대보적경-1595-319   (0) 2017.07.20
대보적경-1590-318   (0) 2017.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