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440-28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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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마땅히 이와 같이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정중하게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그 뜻을 생각하고 미묘한 법을 통달하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분별하여 설명해야 하나니, 이것은 자량(資糧)을 수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법에서 바른 행을 일으키느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이 법에 있어서 바른 행을 일으킨 이는 이미 말씀한 대로 수행하고 건립하면서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법에 있어서 바른 행을 일으킨다 하느니라. 또 모든 것에서 취하지 않을 수 있으면 이것을 법에 있어서 바른 행을 일으키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 하면 사리자야, 만일 법에서 취하면 곧 삿된 행[邪行]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법(法)이나 사람[人]에게서 잡아 취할 처소도 없고 자리도 없나니, 이러한 법을 연유하여 벗어날 수 있다 한다면 반드시 옳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행(行)을 취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 법에서 행이 없는 것조차도 오히려 의심을 내어야 함은 작용(作用)이 없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법의 행을 취하며 삿된 행을 함이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을 취하지 않고 바른 행을 행해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법에 장애가 없으면 그것을 바른 행이라 하며, 또 모든 법에 대하여 경멸하지 않으면 그것을 바른 행이라 하며, 단 모든 법에서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면 그것을 바른 행이라 하며, 나아가 모든 법에서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 그것을 바른 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내가 말한 것들이 만일 옳다고 한다면 조그마한 법도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없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나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은 얻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잡아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하나의 모양[一相]인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無相]이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법의 성품은 본래 모양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모양이 없는 것에 대해 말을 한다면 이것은 곧 모양이 없기는 하나 도리어 말은 할 수 있어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양이 없거나 모양이 있거나 간에 모두가 모양이 없는 까닭에 이것은 모양이 있다, 이것은 모양이 없다고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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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든 법의 모양이 곧 모양도 없고 얻어 볼 수도 없고 잡아 취할 수도 없다 함을 잘 깨치고 법답게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바른 법의 행을 부지런히 닦은 뒤에는 마땅히 모든 법에서 장애 없이 밝게 비추는 지혜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의 바른 행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른 행에 머무르는 총명한 이면
보살장에 있어서 잘 결정하며
이 사람은 법에서 집취(執取)하지 않나니
집취함이 없는 행과 모양은 이와 같다.
모든 법을 증득하되 공이 되지 않고
모든 법의 공에서도 평등한 것 아니며
또 공한 법에서 집취할 바 없나니
집취 없는 바른 행과 모양은 이렇다.
법에서는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고
또한 집취하지 않는 법으로써 법을 삼으며
취할 것이 없는 이것을 법 모양이라 하나니
취함 없는 바른 행과 모양은 이렇다.
모든 법에서 지혜가 걸림 없으면
이 지혜는 불에 타지 않음이 없으며
불에 타는 지혜에선 집취할 바 없나니
모든 법의 바른 행과 모양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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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智者)는 멀리 여의는 덕(德)에 머무르고
법에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리니
이에 의지하여 법칙대로 행하면
그 때에는 청정한 문에 들어가리라.
이 청정한 문은 모든 법을 통달하고
유정의 모든 욕해(欲解)도 환히 아나니
지자는 관(觀)할 것이 없음을 알더라도
이와 같은 법을 널리 연설한다.
아주 깊은 법에서 으뜸가는 이치[勝義] 알고
항상 깊은 이치에서 훌륭하게 결택(決擇)하면
그지없는 공덕의 행이 솟아나서
지혜가 밝고 견문이 많아져서 큰 바다 같으리라.
저 말한 모든 글과 뜻에서
마지막까지 증득할 수 있는 이 없으며
저 글과 뜻은 다 함께 끝이 없고
진실한 바른 행은 항상 동요가 없다.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은근하고 정중하게 듣고, 다른 이에게 법답게 연설까지 하고 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서 광명을 획득하여 능히 모든 무명(無明)의 어두움과 가려진 꺼풀을 깨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광명이 곧 지혜이니, 왜냐 하면 착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모두 똑똑히 사실대로 알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법을 닦아서 밝은 지혜를 얻게 된 뒤에는 생명에 대한 재난과 많은 고통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기필코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짓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착하지 않은 법을 영원히 소멸시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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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법을 따라 지극히 잘 통달하며 이미 통달하고 나면 이를 곧 모니(牟尼)의 고요함[寂靜]이라고 말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바른 행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이 캄캄한 방으로 들어가면
빛이 가려져 광명이 단절되므로
비록 많은 색상이 있다 하더라도
밝은 눈으로 볼 수가 없느니라.
이와 같아서 비록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밝은 견해 갖추었다 하더라도
바른 법을 듣지 못했다면
선과 악을 어찌 환히 알 수 있으랴.
견문이 많으면 법을 환히 알고
견문이 많으면 악을 짓지 않으며
견문이 많으면 의(義) 없는 것 버리고
견문이 많으면 열반을 얻는다.
잘 들으면 견문이 자라고
견문이 지혜를 자라게 하며
지혜는 청정한 이치를 닦게 하고
이치를 얻으면 즐거움을 부른다.
슬기로운 이면 이치를 얻고 나서
현재의 법에서 열반을 증득하며
청정하게 깨달은 법과 상응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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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는 즐거움[第一樂]을 증득하게 된다.
보살장을 듣고 나서는
바른 법에 잘 머무르게 되면
세간의 큰 광명이 되어
보리의 묘한 행을 행하게 된다.
다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보살장의 경전을 받아 지니고 바른 행을 하는 사람에게 깊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선지식(善知識)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이미 이런 생각을 낸 뒤에는 또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에 대하여 갑절 더 찾고 구하여 이 법문으로 하여금 한층 더 밝고 깨끗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신심과 의욕을 일으켜 계책하고 장려하면서 바르게 노력하고 그의 마음을 껴잡아 편안히 머무르게 하며, 이 보살마하살은 4정단(正斷)을 방편으로써 닦아 이루어 온갖 법 중에서 장애가 없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에서 닦는 바른 행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른바 법을 설하는 이는
곧 선지식이 되나니
공경하면서 법을 들으며
바른 행에 편히 머물러라.
알려고 하면 항상 물러남이 없고
정진하면 아주 용감해지나니
청정한 지혜를 항상 닦고 다스려
지혜에 항상 편히 머물러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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