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425-285

근와(槿瓦) 2017. 5. 30. 03:44

대보적경-1425-28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421 / 3476]

...어 마치고 모든 부처님의 바른 교법을 원만히 하며 시방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널리 불법을 구하느니라. 비록 뜻하여 구하는 것이 있더라도 취함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모든 불법을 따라 들어감은 곧 모든 법을 위해서요, 모든 법을 따라 들어감은 곧 모든 불법을 위해서이니, 이와 같이 보살은 불법과 모든 법을 따라 들어가되 그 법()과 법 아닌[非法] 행을 따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모든 법을 사실대로 구할 때에 취함도 없고 얻음도 없음에 편히 머무르는 것은 이는 곧 한 법도 산수(算數)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은 산수의 길을 초월했기 때문이니라. 만일 법의 평등한 성품을 분명히 통달하면 이는 곧 법과 법 아님을 고집하지 아니 하리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성품은 고집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 가운데서 이치[]가 있다고 헤아리면 이는 곧 광대한 이치가 있음을 획득하게 되지만, 만일 이치에 대하여 잘 헤아리지 못한다면 이는 곧 이치와 이치 아닌 것이 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니, 이치가 나타나지 않으면 모든 처소에서 깨달음의 지혜[覺慧]가 걸림이 없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걸림이 없음을 분명히 깨달으면 곧 장애 없는 깨달음을 획득하게 되고, 장애 없는 깨달음이 있으면 곧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함이 없으면 곧 머무를 곳이 없고, 머무를 곳이 없으면 곧 모자랄 것이 없으며, 모자랄 것이 없으면 곧 어리석음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고 구함도 없으면 곧 미혹됨도 없고, 미혹이 없으면 곧 내 것[我所]이 없으며, 내 것이 없으면 곧 받아들임이 없으며, 받아들임이 없으면 곧 고집함이 없으며, 고집함이 없으면 곧 다투어 논란함도 없느니라.
 

만일 다투어 논란함이 없으면 이는 곧 다툼이 없는 사문의 법이요, 다툼이 없는 사문의 법이 있으면 이는 곧 모든 것이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어서 허공과 같이 구하게 되며, 저 허공과 같이 구할 수 있으면 곧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얽매이지 않으며, 모든 처소에 얽매임이 없으면 곧 색상(色相)과 형량(形量)이 없으며, 그 색상과 형량이 없으면 곧 이와 같이 따라 깨달을[隨覺] 수 있으며, 만일 이와 같이 따라 깨달을 수 있으면 곧 이와 같이 통달(通達)할 수 있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따라 깨닫고 통달한다고 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1422 / 3476]

살마하살이 만일 따라 깨닫고 통달할 수 있으면 이곳에서는 조그마한 법도 얻을 것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따라 깨닫고 통달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따라 깨닫고 통달함에 평등하게 증득하여 들어가기 때문에 이 보살마하살은 정려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매우 드물고 기특한 전에 없었던 법을 성취한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드물고 기특한 전에 없었던 법을 성취한다 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정려바라다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비록 대자(大慈)를 행한다 하더라도 항상 나 없음[無我]을 관찰하고 비록 대비(大悲)를 행한다 하더라도 중생이 없음을 알며, 비록 대희(大喜)를 행한다 하더라도 목숨[命者]이 없음을 알고 비록 대사(大捨)를 행한다 하더라도 삭취취(數取趣)가 없음을 아느니라.
비록 널리 큰 보시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순조롭고, 비록 대경을 반연하여 계율을 깨끗이 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고요하며, 비록 모욕을 받아들이며 인욕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다함이 없고 비록 부지런히 정진을 다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가려서 쌓고, 비록 모든 선정에 든다 하더라도 바른 마음으로 자세히 살피며, 비록 두루 지혜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행하는 것이 없느니라.
 

비록 4념주(念住)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반연하는 생각도 없고 또한 뜻을 일으킴[作意]도 없으며, 비록 4정단(正斷)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나거나 없어짐이 없으며, 비록 여의족(如意足)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쓸데없는 다른 논란이 없고, 비록 깨끗한 믿음[淨信]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매이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비록 바른 노력[正勤]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항상 멀리 여의고, 비록 기억[]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자유로우, 비록 삼마지(三摩地)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평등함을 증득하고, 비록 반라야(般羅若)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본래 근본이 없느니라.
비록 모든 힘[]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꺾거나 조복함이 없고, 비록 각분(覺分)을 행한다 하더라도 보리(菩提)를 상세히 풀어서 밝히며, 비록 도분(道分)을 닦는다 하더라도 마음에서는 닦는 것이 없고, 비록 사마타


                                                                            [1423 / 3476]

(奢摩他)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고요히 사라지며, 비록 비발사나(毘鉢舍那)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정해진 관()이 없고, 비록 거룩한 진리[聖諦]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두루 알며, 비록 중생을 성숙시킨다 하더라도 마음은 본래부터 깨끗하고, 비록 바른 법을 포섭하여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법 성품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비록 불국토를 깨끗하게 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허공과 같이 하고, 비록 생멸없는 법을 증득한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얻는 것이 없으며, 비록 물러나지 않는 경지[不退轉地]를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성품에는 물러남이 없고, 비록 모든 묘한 몸매[]를 얻는다 하더라도 성품에는 몸매가 없음을 알며, 비록 도량(道場)을 장엄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3()에서 놀되 항상 주륜(周輪)에 있고, 비록 마군을 항복한다 하더라도 모든 중생들을 꺾거나 조복함이 없느니라.
비록 모든 법이 곧 보리의 성품임을 안다 하더라도 마음은 따라 깨닫고 알며, 비록 법륜(法輪)을 굴린다 하더라도 마음은 법 성품에 머물러 돌아가거나 옮겨감이 없으며, 비록 또 큰 열반을 나타내 보인다 하더라도 나고 죽는 성품에 대하여 마음은 항상 평등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따라 깨닫고 통달함에 평등하게 증득하여 들어간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희귀하고 전에 없었던 법은 정려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데서 성취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정려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닦고 배우는 보살의 정려의 모양[靜慮之相]이라 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의 정려는 제 성품[自性]에 머무르지 않나니 이러한 삼마지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보살의 정려는 애욕의 재미[愛味]가 없나니 자신의 안락에 탐착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대비(大悲)를 반연하나니 온갖 번뇌를 끊기 위해서이니라.
보살의 정려는 기필코 물러남이 없나니 탐욕의 성품에서 주장하는 성품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신통을 꾸며서 일으키나니 중생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환히 통달했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마음에 기뻐하고 좋아함이니 마음을 자유로이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모든


                                                                            [1424 / 3476]

삼마발저(三摩鉢底)를 분명히 아나니 온갖 색계와 무색계를 압도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의 정려는 바로 고요하고 가장 뛰어나며 고요함을 가까이 하나니 성문이나 독각의 선정을 압도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분별함이 없나니 극히 마지막까지 원만하고 묘하면서 깨끗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행품(行品)이 가장 뛰어나나니 습기(習氣)의 상속함이 영영 제거되고 없어졌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지혜로써 초월하고 건너나니 모든 세간을 초월하고 건넜기 때문이니라.
보살의 정려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알려고 하는 길잡이이니 모든 중생들을 잘 제도하고 해탈시키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3()의 종자를 이어서 끊어지지 않게 하나니 부처님의 정려는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가장 높게 드러나나니 삼마희다(三摩呬多)가 항상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자유자재하게 옮겨다니나니 모든 하는 일이 잘 되고 원만해지기 때문이며, 보살의 정려는 바로 큰 나[大我]가 되나니 묘한 지혜로써 큰 나를 삼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의 정려가 한량없나니 이 모두는 보살마하살의 정려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쌓아 일어나게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정려바라밀다는 어떠한 법으로 길잡이를 삼는가 하면, 사리자야, 정려바라밀다란 마음으로 고요히 관하는 지혜[靜觀智]로써 길잡이를 삼고 마음이 한 연[一緣]에 머무르는 것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마음이 흩어지거나 동요함이 없는 것으로써 길잡이를 삼고 그 마음이 편안히 머무르는 것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마음의 사마타로써 길잡이를 삼고 마음의 삼마지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삼마지의 뿌리[]로써 길잡이를 삼고 삼마지의 힘[]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삼마지의 각분(覺分)으로써 길잡이를 삼고 바른 삼마지로써 길잡이를 삼느니라.
정려(靜慮)와 해탈(解脫)로써 길잡이를 삼고 9차제정(次第定)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9멸제법(滅除法)으로써 길잡이를 삼고 모든 착한 법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번뇌의 원수를 조복하는 것으로써 길잡이를 삼고 삼마지의 쌓임[]이 구족하고 원만한 것으로써 길잡이를 삼으며, 보살마하살의 모든


                                                                            [1425 / 3476]

삼마지로써 길잡이를 삼고 부처님·박가범의 모든 삼마지로써 길잡이를 삼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등의 한량없는 정려는 모두가 정려바라밀다의 길잡이가 되는 법이니라.
사리자야, 다시 한량없고 그지없이 고요함[寂靜]을 증득하는 법이 있나니, 이 모두가 정려바라밀다의 앞잡이가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정려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구족히 닦고 배우면서 보살행을 행해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려와 해탈로써 저 언덕에 이르므로
부지런히 여러 겁에 이 행을 행하여
그 마음이 깨끗하고 흐림이 없으면
연꽃같이 세간법에 물들지 않으리라.

두루 비춤[遍照]이라 하는 크고 고요한 정()이 있나니
이 정을 수행하면 저 언덕에 이르며
또 달빛으로 깨끗하게 장엄한 정이라 하고
번갯불로 엄정하게 꾸민 정이라고도 한다.

또 높은 행의 정()이 있고
마음이 씩씩해지는 정이 있으며
[] 없는 광명의 정이 있고
계율의 덕이 갖추어진 정이 있으며
근심이 없는 정이 있고
모든 법을 자재하게 굴리는 정이 있다.

또 법의 횃불이라는 정이 있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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