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250-25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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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에 편안히 머물러
모든 불법을 닦고 배우는 이
그가 바로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이니
하늘이나 세상에서 응당 공양 받으리.
온갖 법에서 의심이 없고
모든 공교(工巧)를 잘 통달하며
중생의 뜻을 깊이 알아서
아름답고 묘한 법을 널리 드날린다.
계율이 이미 청정하면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편안히 앉아
악마의 군사들을 항복 받은 뒤에
위없고 바른 깨달음[無上正覺]을 깨친다.
빛을 드날려 세계에 가득 참이
마치 해와 달의 광명과 같나니
보살은 유정 가운데 높은 분이라
성스러운 지혜의 눈[慧眼] 능히 뜨게 하리라.
손을 주어서 중생을 인도하고
도(道)를 물으면 모두 열어 보이며
항상 기쁜 듯 웃고 먼저 말하면서
질투나 성냄을 품는 일이 없다.
한량없는 자기의 몸을 버렸고
많은 재보(財寶)를 보시하였으며
부처님의 최상의 보리를
아직 일찍이 멀리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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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계율을 원만히 갖추었고
진실한 말에 잘 머무른지라
요술과 같은 거짓이 없이
시라(尸羅:戒)에 편히 머무른다.
모든 사람이 보살에게로 와서
혹은 허망한 말을 한다 해도
듣게 된 것은 모두 믿고 받으면서
한결같이 진실한 말에만 의지한다.
설령 어떤 이가 보살에게 거짓말로써
옷과 밥을 주겠다고 허락해 놓고
끝내 보시하는 일이 없다 해도
보살은 성을 내는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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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44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⑩
7) 시라바라밀품 ③
"다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청정한 시라를 완전히 갖추고서 모든 행 가운데서는 항상 즐거울 수 없다는 생각[不可樂想]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에 대해서는 부모라는 생각[父母想]을 일으키며, 저 유정들에게는 보존하기 어렵다는 생각[難保想]을 일으키고, 묘한 5욕(欲)에 대해서는 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非妙想]을 일으키며, 느끼어 분별하여 아는 일에 대해서는 앎이 없다는 생각[無識想]을 내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는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관찰하기를 '만일 마음에 평등함을 일으켜야 한다면 마땅히 마음을 뛰어나서 적멸(寂滅)에 들어가야 하며, 만일 마음에 평등하지 않음을 일으켜야 한다면 마땅히 더러워진 마음[染心]으로 하여금 바꾸어져서 평등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눈의 빛깔이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을 내지만, 물든 마음의 일어남과 없어짐은 수면(隨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저 마음의 바탕[體]이 생김은 반연할 대상인 경계에 대하여 허망한 마음으로 청정하다고 헤아리는 것이라 만일 그것이 이치답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 바탕은 청정하지 않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알고 나면 곧 해탈하게 될 것이요 만일 그것을 해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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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다하게 되리니, 거기서 어느 것을 다하느냐 하면, 이른바 탐냄[貪]이 다하고 성냄[瞋]이 다하고 어리석음[癡]이 다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다하면 곧 탐냄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한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만일 찰나 동안의 탐냄이 사라지거나 다함이 있다면 곧 탐냄과도 다르고 다함과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탐냄은 이것이 진실이어야 하고 다함도 이것은 진실이어야 하리니, 만일 탐냄 이것이 진실이라면 없어지거나 다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사리자야, 온갖 유정은 모두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이치답지 않은 생각 때문에 탐욕을 내는 것이다. 탐욕이란 분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만일 분별이 없다면 헤아리거나 집착함이 끊어지는 것이요, 만일 헤아림과 집착함이 끊어지면 곧 진실함이 없느니라. 진실함이 없기 때문에 그 중에서는 탐내는 것이 없고 탐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곧 진실이요,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 가운데서는 괴로움이 없고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불에 타는 듯한 시달림이 없으며 불에 타는 듯한 시달림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곧 진실이니라.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 가운데서는 뜨거운 열이 없고 열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곧 맑고 시원한[淸凉] 것이요 이것이 곧 열반이니, 열반 가운데는 탐애(貪愛)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열반이란 '나는 이와 같은 탐애를 마땅히 제거하고 소멸시켜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 탐애가 다했기 때문에 열반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곧 능히 탐내는 이[能貪]와도 다르고 탐할 바[所貪]와도 다르며 열반과도 다르니라.
이것이 만일 다르다면 곧 그것에서 그것이 되나니, 만일 그것에서 그것이 된다면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그것의 진실을 찾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구한 뒤에는 견고한 진실을 얻지 못하리니, 만일 견고한 진실이 없다면 곧 그것은 바로 공허한 것이요, 그것이 공허한 것이라면 곧 고요할 것이며, 만일 고요하다면 곧 그것은 공일 것이라서 공하여 없거늘 어느 법을 나라거나 내 것이라 하겠느냐? 만일 항상하거나 한결같거나 머무르거나 변하면 곧 유정(有情)도 없고 목숨[命者]도 없나니, 이와 같기 때문에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일으킴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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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야, 어떤 것이 나와 내 것이기에 이것은 나요, 이것은 내 것이라고 헤아리고 나와 내 것을 일으키느냐 하면, 뒤바뀌어서 나를 헤아리기 때문에 내 것을 집착하고 내 것을 집착하기 때문에 곧 작용[所作]이 있나니,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네 가지 행을 일으키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으로 짓는 것이요, 말과 마음으로 짓는 것이며, 뜻으로 생각하여 추악한 말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로부터 몸을 움직이며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온갖 어리석은 범부는 나와 남이라는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각에 집착하게 되고 생각에 속박을 당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러한 일에 대하여 뒤바뀌었음을 알고 나서 모든 행과 함께 서로 익히거나 가까이 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익히고 가까이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내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두려움 없음[無畏]을 구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나는 마땅히 그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하고 그들과 함께 친하고 사랑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의지하기에 일체 중생에 대하여 부모라는 생각을 일으키는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중생은 저 과거의 오랜 세상으로부터 아버지가 아니거나 어머니가 아닌 이를 쉽게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은 틀림없이 일찍이 나의 아버지거나 어머니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탐내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생각을 버렸고 성내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생각을 버리고서 생사에 헤매며 끊지 못한다'고 하나니,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런 일로 말미암아 깊이 생각한 뒤 모든 중생에 대하여 권속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사리자야, 저 과거의 아승기야를 더 초월하여 광대하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겁 때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명호는 최승중(最勝衆) 여래·응공·정등각·명행원만·선서·세간해·무상장부·조어사·천인사·불 박가범이었느니라. 그 부처님은 세간에 9구지(拘胝) 년 동안 사셨고 9구지 나유다의 대성문들이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는 그 때에 득념(得念)이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왕궁에서 태어났고 형모가 단정하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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