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타타타(tathata)

근와(槿瓦) 2017. 3. 4. 00:30

타타타(tathata)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우선 위의 제목인 타타타가 어디에서 언급이 되어 있는지와 그리고 그 타타타에서 이끌어내어 다()라는 글자로 번역 되어 실려 있는 것을 주된 줄거리로 하여 계속 이어볼까 합니다. 여기에서 실려 있다 함의 전거(典據)는 불교학대사전(佛敎學大辭典. 弘法院 발행)을 가리킵니다.

 

*** 먼저 다()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梵字 (ta). 실담 50자문의 하나. 一切法如如不可得의 뜻이다. 眞如無間斷의 소리라 한다. 이것은 진여(眞如)의 뜻을 가진 범어(梵語) tathata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러면 먼저 범자(梵字)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梵天에서 만든 文字의 뜻으로 고대 인도에서 사용된 字母를 말한다. 梵書(brahmi-[lipi])라 부르는 자모에서 발달한 悉曇文字를 말한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라고 되어 있고......실담(悉曇)범어 siddham의 음역. 悉旦 · 肆曇 · 悉檀 · 七旦 · 七曇이라고도 쓰고 成就 · 成就吉祥이라 번역하며, 일종의 梵字字母를 말한다.(아래 참조)”, ......또 다음의 일체법(一切法)一切諸法 · 萬法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 一切事物, 모든 現象, 정신적 · 物質的인 것. 일체 現象的 존재를 말함.(아래 참조)”로 되어 있으며.......여여(如女)“5의 하나. 眞如를 가리킴.(아래 참조)”로 되어 있고, .......불가득(不可得)범어 an-upalambha의 번역. 推察하여 구하여도 了得 · 認知할 수 없는 것.(아래 참조)”로 역시 되어 있으며, ........진여(眞如)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등으로 부르며, 대승(大乘)에서는 萬有本體를 일컫는다.(아래 참조)”라고 하며, .......간단(間斷)서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어짐을 말함.”을 의미하는 것 등으로 되어 있고 이들은 그대로 위에서 언급한 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타타라는 소리를 듣고서는 언뜻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노래로 표현된 가수 김국환님의  타타타바로 그 노래입니다. 블로그에 올릴 자료를 작성하던 도중 우연히 부분을 펼쳐보던 중 그냥 확 눈에 들어오길래 작성을 하다보니 위에서와 같이 보이듯이 거의 끝부분에 “tathata”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곧이어 언제인가 여러 번 들어봤던 노래인 타타타가 기억이 났으며 혹시 그타타타가 이 “tathata”를 읽을 때 소리나는 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가수 김국환님의 타타타를 두드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노래 제목인 타타타가, 다()라는 제목에서의 내용을 거의 끝부분쯤에 두드렸던 그 “tathata”에서 따온 것이라고 실려 있더군요. 그래서 이 참에 김국환님의 노래인 그 타타타의 내용을 실어볼까 합니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 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게 덤이잖소. .........

 

그러면 위의 노래를 등장시키려고 얘기를 위로 아래로 길게 늘여놓은 것은 아니고요, 산스크리트어인 tathata그래, 그거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위 노래의 작사가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래, 그거야라고 하는 말은 대체 어느 상황에서 튀어나온 것인지가 사실 궁금해지기는 합니다만, 산스크리트어를 쓰면서 어떠한 대화 도중이었거나 아니면 자기 혼자서 스스로 명상(명상의 나라인 인도에서)이라든가 또는 그 밖의 나름대로의 수행을 하면서 단박에 얻어낸 그 무언가를 드러내고자 하여 내뱉은 바로 그래, 그거야일 수도 있음직하다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쩌면 지루하다고 할 수도 있는 얘기를 질질 끌고 가고자 하는 목적은, 짧지 않은 스토리의 주된 제목이라고 이미 언급하였지만, 그 다()라는 외자의 뜻은 一切法如如不可得의 뜻이다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결론의 얘깃거리로 삼기 위하고자 함이며, 위의 한자(漢字)로 된 구절을.....일체법은 여여해서 불가득이라고 분리 및 나열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일체법이란 당연히 조그만 티끌조차도 제외될 수가 없는 몽땅의 모든 법(물질과 비물질 즉 유와 비유)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고, 여여(如如)는 틀리다 또는 다르다 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모든 것이 평등하여 똑같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가득(不可得)은 글자의 뜻 그대로 얻을 것 또는 얻어낼 만한 것이 없다 라는 뜻임은 분명한 것 같기에......우리들 불자들이 흔히 말하는 그 바라밀(波羅蜜).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로 번역하기도 하는 바라밀. 그리고 여섯 가지의 육바라밀(六波羅蜜). 그 바라밀(波羅蜜)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조하시기 바라오며, 사전에서는 바라밀을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도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바라밀다"라는 단어의 맨 끝부분에 등장하는 다()는 위에서의 나름의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너나 나나 우리나 몽땅의 모든 것이 다같이 평등하다는, 다름이 없이 똑같다 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아서 어떠한 숫자로도 표현될 길이 없는 수많은 뭇 중생들에서, 단지 단 하나라도 다름이 있는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없기에, 즉 뭔가 단 하나라도 다른 것이 있다면 얻을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다르다고 할만한 것이 없어서, 그래서 얻을 것이 없음이라는 뜻의 불가득이라고 함이 이 얘기의 끝부분에 어울리는 맺음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나름의 열거된 내용들(不可得)을 뒷받침하고 있는 내용의 말씀이 블로그에서 지금 한참 실리고 있는 카테고리 “대반야경895에서부터와 1286쪽에서 뚜렷이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우리들 불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라도 암송하는 반야심경의 첫머리에.....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이렇게 시작되면서, 중간부터 거의 마무리 짓는 부분까지에....., ~무명도 없고 무명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 다함 역시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이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 얻을 것 없음으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 없이 뒤바뀐 생각 아주 떠나 마침내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함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라고 되어 있음을 볼 때, 얻을 것 없음이란 뜻을 담고 있는 불가득(不可得)의 다(多)를, 바라밀과 바라밀다의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이 혹시라도 있었던 분에게는 진정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리라 저 스스로 판단해 봅니다. 물론 반야심경의 첫머리에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라고 되어 있듯이 "모든 법이 공(空)하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고 함을 역시 물론 아실 줄로 믿습니다. 


끝으로 감히 제가 이 뭐 하나 제대로 하나라도 안다고 할만한 것이 없는 못난 제가 언급하기가 부끄럽기는 합니다만, 부처님!!! 참으로 참으로 정말 참으로 대단하시고 너무 대단하셔서 위대하신 부처님!!! 동시에 스승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으셨더라면 이 금쪽같은 인생을 어쩔 뻔 했을까 라고 재삼 재사 곱씹으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감탄과 동시에 절대적인 찬탄을 드리면서 글을 끝낼까 합니다.

 

첨언 : 노래의 가사 중에서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을 건졌잖소 라고 하였는 바.....그 옷한벌이 알몸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알몸으로 태어났기에 그 알몸을 가리고자 하여 걸치게 되는 그 배내옷인지 가가 자못 궁금하여지긴 하고요...어찌됐든 물질인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고 하는 반야심경의 말씀에서 비롯해 보건대 알몸이든 색깔을 띤 배내옷이든지 간에 모두 다 물질인 것이기에 공()이라고 하는데 말이죠...알몸으로 태어났기에 뭔가를 얻었다고 하는 그 알몸의 얻음 이전의 "주체"는 과연 무엇인지가 우리 모두의 화두가 될 것이 아닌가 라고 할 수 있고 또는 그리 되어야만 마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음이......, 그 각기 개인마다의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진정한 인생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옳은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범자(梵字) : 梵天에서 만든 文字의 뜻으로 고대 인도에서 사용된 字母를 말한다. 梵書(brahmi-[lipi])라 부르는 자모에서 발달한 悉曇文字를 말한다. 인도 전설에서는 梵天이 이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므로 일반적으로는 인도 고유문자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연구로는 현재 유럽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원형인 페니기아문자와 같이 셈에 속하며 B.C. 800년경에 인도 상인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아라멕크 사람과 접촉한 결과 셈의 22로부터 이루어진 자모를 인도에 전하여 이것이 바라문 등에 의하여 정비되어 B.C. 500년경에 47자모가 완성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 아리안족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6세기 이후라고 추측한다.) 書法은 원래 오른쪽으로 가로 썼던 것을 왼쪽으로 가로 쓰기로 바꾸고 書體도 시대와 지방에 따라 차차 다르게 변하여 A.D. 1세기경에는 북방에서는 方形, 남방에서는 圓形으로 쓰는 경향이 생겨 드디어 A.D. 4세기경에는 남방문자와 북방문자의 구별이 생겼다. 북방계는 A.D. 4~5세기에 gupta문자가 발달했다. 다시 A.D. 6세기경에는 悉曇文字가 만들어졌고 이외에 여러 가지 문자가 나타나 A.D. 11세기경에는 요즘 梵本에 사용되는 데바나가리 문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A.D. 6세기 이후 서역·서장에 전하여져 각기 독특한 문자로 발달했다. 이는 다 북방계 梵書(梵字)에 속한다. 남방계도 여러 가지 文字가 발달하여 요즘 寫經이나 刊行本에 사용되는 스리랑카·버마·타이·캄보디아 등의 문자는 모두 남방 梵書系에 속한다. 이를 巴里語(palibhasa)라고 하는데 범어에 비하면 수량이나 음조의 변화가 적다. 梵書이외의 계통에 속하는 文字도 시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담(悉曇) : 범어 siddham의 음역. 悉旦·肆曇·悉檀·七旦·七曇이라고도 쓰고 成就·成就吉祥이라 번역하며, 일종의 梵字字母를 말한다. 梵字字母表綴字法 18처음에는 歸敬句를 들고 있으나 그 중에는 성취시킨다는 의미로 悉曇(siddham) 또는 悉地羅窣覩(범어 siddhir-astu의 음역)라고 서술한 것을 보아 悉曇字母의 총칭이고 悉地羅窣覩悉曇章(後述)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空海스님이 지은 字母表悉地羅窣覩(siddhamrastu)라 한 것은 잘못으로 안다. 悉曇文字A.D. 7세기 이전부터이며 인도에서 행해져 中國에서 佛敎의 전래와 때를 같이하여 南齊때부터 이 문자를 배우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梵字書體 字母悉曇, 梵語文法이나 語句의 해석 등을 梵音 또는 梵語라고 하여 구별했다. 智廣悉曇字記에는 悉曇이란 廣義로는 摩多體文의 총칭으로, 狹義로는 摩多12을 가리킨다. 摩多는 범어 matrka의 음역으로 의 뜻을 갖는다. 이라고도 하고 母音字라고도 한다. 여기에 16가 있다. ........이 가운데 사용 빈도수가...

 

일체법(一切法) : 一切諸法·萬法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 一切事物, 모든 現象, 정신적·物質的인 것. 일체 現象的 존재를 말함. 원 뜻은緣起로 된 모든 존재有爲法을 가리켰으나 뒤에 이와 對立하는 無爲法도 추가되었다. 에 관하여 여러 가지 분류방법이 있다. 그러나 일체법은 모두 所緣이 된다.

 

유위법(有爲法) : 인연법에 의해 爲作·造作되는 . 곧 인연에 의해 離合集散하는 생멸하는 을 말한다.

 

유위(有爲) : 爲作·造作의 뜻으로 有爲法이라고도 한다. 모두 인연의 화합에 의해서 造作되어진 現象的 존재를 말하고, 영구불변의 절대적 存在無爲相對語.

일반적으로 말하면 五蘊有爲法인데, 俱舍宗에서는 일체법을 七十五法에 분류하는 가운데 七十二法, 唯識宗에서는 百法 중에서 九十四法有爲法이라고 한다. 대별하면 色法(물질)心法()非色非心法3종이 되므로, 이것을 三有爲라고 한다. 有爲無常하여 항상 轉移하고 변하므로 無常有爲轉變이라고도 한다. 有爲法無常하다는 論理的 근거는, ···四相에 있으므로 이것을 四有爲相이라고 한다. 俱舍論 에는 有爲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4개의 다른 이름을 들고 있다. (1) 世路라 함은 有爲法이 과거·미래·현재의 三世所依로 함을 나타낸 것으로, 破壞·無常의 뜻으로, 無常所依가 됨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2) 言依라 함은, 言語·音聲所依라는 의미로, 有爲法은 잘 詮表되는 명사에 의해서 詮表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3) 有離라 함은, 涅槃의 깨달음으로, 有爲法을 마침내는 捨離하여야 열반에 이르게 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4) 有事라 함은, 의 뜻. 有爲法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有爲法因果的 관계에 있어서 성립되는 것으로 반드시 가 있기 때문에 有果라고도 한다.

 

무위법(無爲法) : 無爲品物. 生滅變化가 없는 것을 뜻한다.

 

무위(無爲) : 범어 asamskrta의 번역으로 有爲에 상대된다. 因緣에 의해서 作爲되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를 여읜 常住絶對을 일컬으며, 자세히는 無爲法이라고 한다. 본래는 涅槃異名이지만 뒤에는 열반이란 말 이외에도 여러 가지 無爲를 세워서 三無爲·六無爲·九無爲 등의 이 있게 되었다. 三無爲有部 등의 로서 擇滅·非擇滅·虛空을 가리키며, 六無爲唯識宗로서 三無爲不動無爲·想受滅無爲·眞如無爲를 더한 것을 말한다. 다만 종의 無爲法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眞如法性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거짓으로 종의 이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眞如無障礙임을 허공에 비유해서 虛空無爲라고 한다. 본래 自性淸淨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非擇滅無爲라고 한다. 第四靜慮滅盡定에서 나타나는 眞如不動無爲·想受滅無爲라고 하는 것과 같다. 眞如는 말이나 생각을 초월한 것으로 더구나 有爲法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뜻에서 假設이지만, 다만 眞如에 의해서 眞如의 뜻 위에 이러한 六無位를 세운 것을 依如六無爲라고 했다. 六無爲를 가끔 듣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 속으로 六無爲와 같은 相分이 일어나는 것을 識變六無爲라고 한다. 大衆部에서는 三無爲四無色處(無色界五蘊이 깃드는 곳)緣起支性(十二緣起의 원리)聖道支性(八聖道의 진리)無爲를 더해서 九無爲라고 한다. 化他部에서는 四無色處대신 不動·善法眞如·不善法眞如·無記法眞如를 더해서 九無爲로 하고 있다.

 

여여(如如) : 5의 하나. 眞如를 가리킴. 萬有諸法理體는 동일 평등하므로 , 하나의 一法界萬差諸法을 갖추어 어느 것이든지 로 말하면 , 의 뜻이 하나만이 아니므로 如如라 한다. 하고 하다는 뜻.

 

오법(五法) : 迷悟의 본질이 되는 다섯가지. 5라고도 한다. 入楞伽經卷七 등에 있고 ··分別·正智·眞如의 다섯가지다. 現象에 거짓 붙인 이름, 現象의 차별적인 모습, 分別은 생각하는 妄想, 正智眞如에 맞는 智慧, 眞如萬有本體로 사실 그대로의 평등한 진리를 일컫는다. 앞의 세가지는 , 뒤의 두가지는 이다. 佛地五法. 佛地經淸淨法界大圓鏡智·平等性智·妙觀察智·成所作智 등의 4를 가리킨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眞如(前一)와 이것을 깨닫는 菩提(後四)5중에 3(自性身·受用身·變化身)이 담겨진다고 한다. 色心 등의 5. 5. 摩訶止觀에 주장하는 二十五方便중에 ·精進··巧慧·一心.

 

불가득(不可得) : 범어 an-upalambha의 번역. 推察하여 구하여도 了得·認知할 수 없는 것. 모든 것이 고정불변한 독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不可得空이라고 한다.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如實·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本體를 일컫는다. 阿含에서는 緣起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不善法眞如·無記法眞如·道支眞如·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無記三性이나 八聖道緣起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實性이라고 하고 그 一味이지만 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減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法界·法性·不虛妄性·不變異性·平等性·離生性·法定·法住·實際·虛空界·不思議界十二名이라 함.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에는, 眞如·空性·無相·實際·勝義·法界六名, 法華玄義卷八下에서는, 實相·妙有·眞善妙色·實際·畢竟空·如如·涅槃·虛空·佛性·如來藏·中實理心·非有非無中道·第一義諦·微妙寂滅14종의 이름을 들고 있다. 一如·一如法界·一法界·眞如實相·眞如一實·眞實際·眞勝義諦등으로도 이름하며 그 모습이 절대평등함을 뜻하며 一相이라고도 한다.

 

간단(間斷) : 서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어짐을 말함.

 

바라밀(波羅蜜) : 범어 paramita의 음역. 波羅蜜多라고도 쓰고, 到彼岸· 度無極· 라 번역함.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보통 보살이 그것에 의지해 닦는 을 말함. 六波羅蜜. 六度라 번역한다. 大乘의 보살이 實踐修行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섯 가지 으로 六度이라 한다. 布施波羅蜜(檀波羅蜜. 완전한 자비를 베풀음持戒波羅蜜(戒波羅蜜. 敎團의 규정을 완전히 지키는 것忍辱波羅蜜(羼提波羅蜜. 완전한 인내精進波羅蜜(毘梨耶波羅蜜. 완전한 노력禪定波羅蜜(禪那波羅蜜. 완전한 마음의 통일智慧波羅蜜(般若波羅蜜. 완전한 지혜. 곧 인간적인 理性을 초월한 무분별의 지혜. 이것은 布施를 하여 布施波羅蜜답게 하는 것. 五波羅蜜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 일컫는다). 十波羅蜜. 十度라 번역하고 十勝行이라고도 함. 六波羅蜜을 얻기 위한 도움이 되는 다음의 四波羅蜜六波羅蜜에 더한 것. 方便波羅蜜(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완전한 수단방법願波羅蜜(깨달음의 지혜[菩提]를 얻어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는 훌륭한 力波羅蜜(바르게 판단하여 수행하는 완전한 힘智波羅蜜(깨달음의 즐거움을 받고서 또 중생을 깨달음에 인도하는 완전한 지혜). 四波羅蜜이라 함은 常波羅蜜(완전한 영원성樂波羅蜜(완전한 안온성我波羅蜜(완전한 주체성淨波羅蜜(완전한 淸純性)의 넷으로, 涅槃(깨달음)에 갖추어진 네 가지 훌륭한 특질(四德). 密敎에서는 金剛界曼茶羅의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金剛波羅蜜(東方寶波羅蜜(南方)을 중심으로 하는 法波羅蜜(西方業波羅蜜(北方)보살을 四波羅蜜(보살)이라 한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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