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물(錢. 돈)

근와(槿瓦) 2017. 3. 13. 00:20

재물(.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먼저 주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시대를 염려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시대적 화두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결론을 내어주신 최후의 법의 수호자분들께 진심(眞心)어린 감사를 드림과 아울러 그러한 결단이 진정한 애국심에서 나온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이어갈까 합니다.

 

제목으로 삼아버린 재물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돈을 즉각으로 가리킴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그 돈의 양면중의 하나인 어두운 측면이라고 할 수도 있는 속성을 알고 있기에 돈을 좋아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하고 그리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물건이라고까지 정의를 내리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음을 볼 때, 이 또한 자기 자신이 행하는 언행의 일체가 앞으로의 자기에 대한 방향과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는 업(. 행위·所作·의지에 의한 身心의 활동, 의지에 의한 身心의 생활을 의미함)이라는 총칭을 몸()과 말()과 생각()이라고 하는 셋으로 나누고 이러한 각 부분을 활용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하는 부분에 이어서, 역시 이 돈이란 것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영역의 물건이라고 함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곤 하죠.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합니다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입니다. 많고 많으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 및 적용이 될 수 있는 바라 함은, 많으면 많으면 좋다라고 하는 그 돈을..., 돈이 없어서 자주 끼니를 굶고 그 굶는 삶이 지속되며, 어느 누구에게는 주체할 수 없이 많아서 오히려 걱정이 되어버리는 그 돈이 없어서 학업을 지속하고 싶어도 지속할 수 없는데다가 입에 풀칠하기조차도 버거운 수준의 삶의 연속으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는 정도에 이른 삶의 분들에게..., 위에서 아래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인 물의 흐름과 같이 쓰여진다면 그야말로 많고 많고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될 정도의 많음이라도 감당이 되겠지만,

 

그러한 방향이 아닌 삶을 주제로 삼고 사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그 많고 많은 돈이 자신에게는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정도의 부()라고 판단되어 그 자체만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순간들이겠지만, 과연 그러한 일순간일순간의 다물어지지 않음이 행복의 절대적 담보의 보장이라고는 결정지을 수 없다고 보는 수많은 일반 뭇 사람들의 시각으론 일순간일순간의 오판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착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착각을 모르는 오판으로 인하여 그 많은 돈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돈이 아니라 그 피와 살을 해치는 독()이 된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임과 동시에 그렇게 독이 되고야마는 사례가 오늘만의 일이 아님이요 잠깐의 어제일도 아님이요, 수없이 많은 어제일들이었기에,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은 사례가 있어서인지 그 사례가 짚어주는 것에 이상하게 익숙해져서인지는 아니면 감각이 무디어져서인지는 몰라도 까마득하게 잊고 살고 있었고, 잊지는 않고 살았더라도 그러한 독이 되는 사례가 자기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불분명한 자기 수준의 확신에 사로잡혀 마냥 남의 일로만 삼아버려 살아왔음을 상기하여 본다면, 이번 법-수호자분들의 결단은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없다고까지 할 수 있을만큼의 소중한 우리나라의 제일(第一)의 국보급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러한 판단 및 결단은 물질적인 측면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판단과 결단이었기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물질의 세상인 우리들의 삶에 있어 이 돈이란 녀석은 참으로 소중하기도 합니다만, 그 소중하기도 한 돈이란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알맞음이란 표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맞음이라는 표현이 어디까지가 알맞다고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세히 알맞음을 들여다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재차 반문하신다면요.....,

 

자기 자신이 그 돈이란 녀석을 적든 많든 여하튼 가지고 있는데, 불확실한 그 어떤 때부터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어지는 시점이 있게 된다라고 볼 수 있으며, 이상하게 생각되어지는 시점이라 함은, 그 돈의 쓰임의 방향이 평소 자기가 생각지도 않았던 다소 어둡고 부정스러운 쪽으로 쏠리게 되어짐을 느끼게 되면 바로 그 시점이 평소의 긍정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자기 자신이 아님을 알아차려야만 하는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시점에서 느끼게 되는 어두운 측면에서의 예상되는 어두운 결과를 콩 심은데서 콩이 나온다라는 말씀을 떠올리면서 즉각 물리치고 평소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되돌아오지 않고 그냥 어두운 쪽의 나름의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을 주저없이 맞으면 이후로의 전개되는 상황은 손바닥의 손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되는 바에 따라, “알맞음과 매취되는 그때그때의 적정한 돈의 보유와 쓰임새의 파악 가능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느 누가 어느 장소에서 소정의 장사를 하며, 위에서 말하고 있는 그 돈을 벌고 그리고 그 돈으로 삶을 이어가는데, 어디서인가에서 뜬금없이 이치에 맞지 않는 힘으로 그 돈을 달라고한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대번에 왜 돈을 적정한 이유없이 달라고 하느냐고 따져보게 되는 것이 자동적인 제일 먼저의 반응일 것이며, 이후로 강제적인 힘이 상대로부터 자기에게 쓰여진다면 몸으로든 법으로든 불의로운 일에 맞상대하여 자기를 지켜내려 할 것입니다. 이어 이러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상대의 까닭없는 힘에 대해 자기의 힘이 너무 못미쳐서 그냥 아니꼽고 더럽기는 하지만 이에 그냥 응해버리는 것입니다. 아더메치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이러한 두 번째의 사례는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긴 하여도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나긴 하였고, 그러한 약함을 어쩔 수 없이 보이기는 하여 주기는 했지만, 그냥 달라고 하기에 그냥 줬다고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뜯기기는 했지만..., 그런 약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약점을 읽은 그 사악하기 짝이 없는 꾼들은 그럼에도 그러한 갈취 행위를 통해 재미를 보고 그 재미난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짓을 재차 범하게 되는 것이기에 한번 그러한 경험을 겪은 피해자는 재차 또 언제 어떻게 당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고 그 편치못한 불안에서 벗어나고파 향후 전전긍긍하게 됨에 따라 그나마의 마음 편안해야 할 나머지 생활조차도 영위할 수가 없게 된다고 하는 점을 고려하여 보는 측면에서, 이는 그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는 단발성의 염려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 이를 단박에 끊을 수가 있는 방법은 오로지 명장(名將)이요 지장(智將)이요 용장(勇將)인 관우(關羽)의 청룡언월도와 같은 푸르다 푸르디 못해 시푸르뎅뎅한 칼날의 일필휘지로 아무리 거대한 나무라도 단박에 싹뚝 잘라 끊어버리는 단죄를 행함으로써만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작금의 그릇된 행위들을 일소할 수 있음과 동시에 뚜렷하고도 명확하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이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며, 바로 그런 뚜렷하고도 명확한 결단의 일필휘지가 우리들의 법-수호신인 그 분들이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사자(四字)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 개 정도를 들어볼까 합니다만, 그 첫째는 유유상종(類類相從)입니다. 끼리끼리 논다 즉 어울린다 라는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뜻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 두 번째의 사자인데, 그 사자는 근묵자흑(近墨紫黑)이라고 사람들은 말들 합니다. ()과 가까이하면 까마워진다 즉 검게 된다 라는 뜻이겠죠.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과 묵과 가까워지면 검게 된다 라는 두 개의 사자가 언뜻 어울리는 말씀이 아닐 것이라고 보여지지만, 부정(不淨)한 자와 또는 그릇된 즉 어긋난 자()와 어울리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부정해졌고 그릇되어졌음을 느끼게 되고 어느덧 더러움과 삿됨에 상당히 길들여진 자기인 것을 깨닫게 된다 라는 점이라고 볼 때..., 맹자의 엄모(嚴母)가 거주지를 세 번이나 옮김으로써 맹자로 하여금 이상야릇한 언행을 배우지 못하게 하도록 만든 그 세 번의 옮김이 바로 유유상종의 깊은 뜻을 이해한 차원에서의 옮김이라고 본다면, 유유상종과 근묵자흑의 상통됨이 이해가 되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제목으로 삼은 그 돈이란 것의 실체를, 여러 가지로 거론한 예에서 신중을 기해 읽어내고 또한 그 읽어냄을 향후의 삶에 신중히 적용하여야 종내에 그리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리 튼실하였다고 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많고 많은 돈의 소유가 어디에선가 주장하는 영원한 내세라고 하는 천국으로의 보장이 절대 아님을 우리들은 확실히 인식하여야 하며..., 단맛인지 꿀맛인지를 좋아하고 그 단맛을 잊지 못해 자꾸 들이켜대면 결국 쉽게 퇴치가 되지 않는 골치아픈 병을 낳게 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대다수가 또한 좋아하는 그 과학에서 깊이 있게 증명된 마당인 만큼, 단맛이라고 느껴지는 유유상종과 근묵자흑이라면 애시당초 발길을 확실하게 끊어서 앞으로의 건전한 나날을 기약함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만좀 해도 되는데 라고 하실 것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조금만 더 이어가자면 과거의 오랜 옛날에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서 여실히 증명이 되고도 남음직한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이왕 내친 김에 과거의 기억에서 지금의 현실로 드러내 본 것이며,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견해의 내분(內分) 뿐만 아니라 후발국들로부터 추격당하여 동등으로의 또는 추월당하는 입지에 서있는 우리들이기도 하여 이를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추월당하기 싫어 앞으로의 나아감에 있어 실질적인 한계까지 보여지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외부에서의 이리저리 생채기를 내려는 찔러옴도 있는 위기상황에 처해있기에, 실컷 주장하다가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한가한 견해 싸움은 더욱 아닌 것이기에 우리들은 더더욱 뭉쳐야만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임을 누차 말씀드려 보는 것으로 이만 마치겠습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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