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095-219

근와(槿瓦) 2017. 2. 20. 00:33

대보적경-1095-21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91 / 3476] 쪽
교훈으로 능히 여러 보살의 미묘한 삼마지를 열어 인도하느니라. 모든 여래는 여실히 알고는 곧 이러한 가르침과 교훈을 드리우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정려 · 해탈 · 삼마지 · 삼마발저와 물들고 청정함을 일으키는 인연을 아는 지혜의 힘은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나니, 만일 여래의 선정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 모든 선정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중생이 번뇌를 일으키고  이런 까닭에 중생이 청정함 얻는 것을 대웅(大雄)은 이렇게 훤히 알고는 널리 미묘한 법을 선양하네. 그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 인이 되고 무명이 연이 되어 물든 번뇌를 내며 다시 무명은 인이 되고 행은 연이 되어 이렇게 잇달아 온갖 괴로움 내나니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과 무명은 저 12유지(有支:緣起)의 근본이 되나니 모든 부처님은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그에 맞도록 묘한 법 연설하네. 모든 번뇌의 근본은 업행(業行)과 무명이니


                                                                                                                 [1092 / 3476] 쪽
다시 이로 인연하여 식을 내며 이렇게 잇달아 모든 괴로움 일으키도다. 그 말씀한 교법의 음성을 따라 마음으로 이치답게 생각한다면 이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으로 말미암아 온갖 중생이 다 청정을 증득하리라. 사마타(奢摩他)는 이치다운 원인이 되고 비발사나(毘鉢舍那)는 연이 되어서 이렇게 중생이 해탈을 얻는 것 큰 스승은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행자가 조용히 깨끗한 시라(尸羅:戒)에 머물러 모든 법이 다 공적(空寂)한 줄을 관찰하고 이미 해탈문을 잘 닦아 익히면 세간의 핍박과 고통 멀리 여의리니 이것을 부처님은 여실히 알아 모든 중생의 청정한 행위와 공 · 무상 · 무원의 해탈문을 선서(善逝)는 근기 따라 나타내 보이네. 독각이란 성자와 성문의 순으로 역으로 노니는 모든 정려를 여래는 그들의 증득한 것이 독침과 원수 같다 선언하였네.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선정 · 해탈은


                                                                                                                 [1093 / 3476] 쪽
마침내 원수 없고 독침 없나니 일곱 번째 여래의 힘은 다른 깨달음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음을 알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일곱 번째 모든 선정 지혜의 힘[如來第七諸定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가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이는 법답게 굴리는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如來宿住隨念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 · 응공 · 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생각하는 대로 여실하게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이렇게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저나 남이나 모든 중생의 한량없는 숙명[宿住]을 혹 1생 · 100생 · 1,000생에서 나아가 한량없는 구지 나유다(那庾多) 백천 생의 일을 다 생각하는 대로 능히 아느니라. 또 생각하는 대로 겁이 무너지고 겁이 이룩되거나, 혹 한 겁이 이룩되고 무너지는 것이나 혹 한량없는 겁의 무너지고 이룩되는 것이며, 혹 생각하는 대로 백 구지 겁 나아가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다 겁을 다 능히 훤히 아느니라.


또 능히 생각하는 대로 내가 지나간 세상에 일찍이 저곳에서는 이러한 이름, 이러한 성씨, 이러한 종족, 이러한 음식, 이러한 빛깔, 이러한 형상, 이러한 모양, 이러한 수명, 이러한 머묾,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이며, 내가 저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났으며 다시 저곳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난 것에 대해, 이렇게 저나 남이나 온갖 형상, 처소, 종류의 한량없는 숙명을 다 능히 생각하는 대로 단번에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일체 중생이 그 과거의 인을 따라서 이 인으로 이곳에 와서 났다는 것을 여실히 아느니라. 이러한 원인을 알고는 그에 맞도록 법을 설하느니라. 또 능히 일체 중생이 과거세에 여러 가지 마음이 서로 이어서 끊임없이 이러한 경계에 반연하여 이러한 마음이 생기며 이 반연한 인연이 갖추어지지 못하므로 이러한 마음이 소멸하였다는 이러한 일체를 여래가 여실히 생각하는 대로 훤히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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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리자야, 만일 한 중생이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켜 이 마음이 끊임없이 잇달아 나감을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겁에 갖가지로 말하더라도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한 중생의 마음 모양이 이렇듯이 일체 중생의 마음도 그러하나니, 여래가 그 온갖 마음 모양을 따라서 생각난 대로 다 능히 여실히 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나 모든 중생의 모든 마음이 서로 되풀이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구지 겁 수만큼 말하여도 다할 수 없듯이 여래의 지혜도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고 동등한 데 없으며, 견줄 데 없고 한량없고 무수하며, 이루 다 형언할 수조차 없으며 또한 경계가 있고 끝이 다함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써 모든 중생을 가피하여 숙명을 생각하게 하리니, 너는 이제 마땅히 과거세에 이미 이러한 모든 착한 법의 종자를 심은 것을 생각하라. 혹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혹은 성문의 처소에서 혹은 독각의 처소에서 혹은 바른 법 가운데서 모든 선근을 심고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다 생각하라. 저 모든 중생이 여래의 힘으로 생각하는 대로 다 알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여래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가피함으로써 저 중생에게 전세에 한량없는 선근의 인연한 경계를 알게 하고는 그에 맞도록 위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음을 얻어서 그 욕구와 견해에 따라 벗어나기를 구한다면, 혹 성문승(聲聞乘)에 의지하거나 혹은 독각승(獨覺乘)에 의지하거나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면 이와 같이 여래는 따라 생각하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하게 훤히 아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한량없고 무수하고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나니, 그 누가 여래의 숙명을 따라 생각하는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1095 / 3476] 쪽
허공의 경계와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 숙명을 아는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못할 나유다 구지 겁을 세상을 비추는 등불은 다 기억하도다. 또한 지나간 세상에 나와 남의 생(生)을 손바닥 안의 암라과[五菴果][과실수의 음역으로 팔리어로는 amba라고 하고, 산스끄리트어로는 amra라고 한다. 또는 내수(柰樹)라고도 하며, 그 열매는 내과(柰果)라고 하는데 오늘날 흔히 말하는 망고를 의미한다. 열매의 색이 푸른 채로 익은 것도 있기 때문에 경전에서 비유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겉과 속이 다른 경우라든지, 불성(佛性)의 비유, 수행자의 수행 깊이를 판단하는 경우 등등. 또한 아말라카(amalaka)의 음역어인 아마륵(阿摩勒)과 비슷하여 곧잘 혼동되기도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나무이다.] 보듯 한다네. 생각대로 이름 성씨 · 형색의 구별이며 그 수명과 여러 갈래 길에 나는 것 중생이 이러한 원인을 두루 갖추는 것을 알고는 그에 맞도록 법을 설하네. 지난 과거의 경계와 끝이 없는 세상에 중생들이 지닌 마음[心]과 심법(心法)이 마음이 끊임없이 이 마음으로 생겼나니 거룩한 큰 지혜로 능히 다 아시느니라. 선서(善逝)는 한 중생이 지나간 세상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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