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090-21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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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혹 어떤 행위는 몸과 말과 마음이 함께 청정한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나아가 모든 중생이 지닌 온갖 행위는 혹은 흘러 옮겨가는 것에 인한 것인지, 흘러 옮겨가지 않는 것에 인한 것인지, 혹은 흘러 옮겨가는 것과 혹은 옮겨가지 않는 것에 인한 것인지를 여래는 걸림 없는 지견[無碍智見]으로 이러한 일체 것을 통달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가 두루 갈래 길로 나아가는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遍敎行智力]은 불가사의하며 경계가 없고 끝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나니,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선서(善逝)는 여실히 온갖 행위 알아서
능히 결정된 유정(有情)의 근기를 알고
또 부정취 중생의 성숙될 모양을 알며
모든 근기에 서로 맞는 법을 아나니
모든 행위가 세 가지의 탐욕과 상응하는 것과
세 가지의 성냄·어리석음과 합하는 것
끝없이 넓은 미혹과 상응하는 행위며
그 인연을 큰 스승[大師]은 여실히 안다네.
어떤 고행을 하면 근기가 영리해지고
어떤 이는 이런 행을 해도 근기가 둔하며
어떤 즐거운 행으로 근기가 영리하고 둔한지
세상의 큰 의지처는 여실히 아네.
어떤 둔한 행위와 둔한 닦음과
혹은 행은 둔해도 닦기에는 영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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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행은 재빨라도 닦기는 느리며
혹 함께 재빨라도 그 성품이 아니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으로 난 것이요,
닦아 익힌 도력으로 일어남이 아니며
혹은 닦음으로 난 것이요, 간택이 아니며
함께 차별과 공통됨이 상응하여 생겨남이며
혹 어떤 행은 믿음의 욕구는 갖추었지만
그 청정함이 방편정(方便淨)이 아니며
혹 그 반대로 함께 함과 함께 하지 아니함을
온갖 지혜 갖춘 부처님께서는 다 훤히 아네.
다시 깨끗이 몸의 행위[身業]를 닦으나
말과 마음의 업은 청정하지 않으며
혹 다시 말과 몸은 청정하지만
그 마음 바탕은 청정하지 않으며
혹 속마음은 항상 청정하지만
몸과 말 두 행위는 청정하지 않으며
혹 다시 말과 마음은 청정하지만
그 몸의 행위는 청정하지 않으며
혹 몸·말·마음의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음과
모든 행의 유전함과 적멸함을
두루 알고 보는 이는 여실히 아나니
이것이 여래의 여섯 번째 힘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섯 번째 두루 갈래 길로 나아가는 행위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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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혜의 힘[如來第六遍趣行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는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이는 법답게 굴리는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정려(靜慮)·해탈(解脫)·삼마지(三摩地)·삼마발저(三摩鉢底)와 물들고 깨끗한 것을 일으키는 인연을 아는 지혜의 힘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나나 남이나 일체의 정려·해탈·삼마지·삼마발저와 물들고 깨끗한 것을 일으키는 법을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양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자면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능히 물들게 됨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능히 청정하여짐을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능히 물들게 되는가?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인이 되고, 무명(無明)이 연이 되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물든 번뇌를 일으키게 하느니라. 이렇게 무명이 인이 되고 행(行)이 연이 되며, 행이 인이 되고 식(識)이 그 연이 되며, 식이 인이 되고 명색(名色)이 연이 되며, 명색이 인이 되고 6처(處)가 연이 되며, 6처가 인이 되고 모든 감촉[觸]이 연이 되며, 감촉이 인이 되고 느낌[受]이 연이 되며, 느낌이 인이 되고 애착[愛]이 연이 되며, 애착이 인이 되고 집착[取]이 연이 되며, 집착이 인이 되고 유(有)가 연이 되며, 유가 인이 되고 남[生]이 연이 되며, 남이 인이 되고 늙고 죽음[老死]이 연이 되며, 번뇌가 인이 되고 행위[業]가 연이 되며, 모든 견해[見]가 인이 되고 애착이 연이 되며 번뇌[隨眠]가 인이 되고 얽매임[纏]이 연이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든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물든 행위를 일으키게 하느니라. 이러한 모습을 또한 여래가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는가? 사리자야,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 연으로 능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느니라. 두 가지의 인연은 다른 교훈의 음성을 잘 따르는 것과 안으로 이치답게 생각하는 것이니라. 또는 사마타(奢摩他)의 관행(觀行)으로 마음을 한 경계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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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는 것과 비발사나(毘鉢舍那)의 선교방편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말하자면 오지 않는 지혜[不來智]와 가지 않는 지혜[不去智]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생사가 없는 관법[無生觀]과 정정(正定)을 증득함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행의 두루 갖춤과 명(明)과 무명(無明)에서 해탈하는 도를 얻음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해탈문(解脫門)을 닦는 것과 해탈지(解脫智)의 성품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따라서 진실을 깨침과 진실을 얻음이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인과 연으로 능히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모든 중생의 물든 경계를 알며 모든 중생의 청정한 경계를 아느니라. 혹은 물든 경계에서 청정한 경계에 들어가며 혹은 청정한 경계에서 물든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나니, 이러한 것은 다 여실한 관찰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혹 물든 경계에서 물든 경계로 들어가며 혹 청정한 경계에서 청정한 경계로 들어가는 이러한 것이 다 증상만(增上慢)의 집착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 여래가 그 가운데 여실한 지혜로 인도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한 지혜로 모든 정려를 사이사이 바꾸어 온갖 단계적인 차별을 경험하며 초월하였느니라. 말하자면 욕심의 나쁜 법을 여의고 찾아 생각함이 있어 욕계의 삶을 여읜 기쁨[離生喜樂]으로 고요히 초정려(初靜慮)에 머무느니라. 여래는 초정려에 머물고 나서 멸진정(滅盡定)으로 좇아 나오며 나아가 이와 같이 멸진정에 들고 나서는 초선정으로 좇아 나오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가 여실한 지혜로 저 8해탈(解脫)에 혹은 순차(順次)로 들어가고 혹은 거슬러 들어가며 혹은 다시 순으로 역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사이사이 바꾸어 들어가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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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색욕(色欲)의 생각이 있으면서 밖으로 몸의 모든 것을 관찰하나니 이것은 초해탈(初解脫)이니라. 마음으로 색욕의 생각이 없지만 밖으로 몸의 모든 것임을 관찰하나니 이것은 제2의 해탈이니라. 안과 밖이 다 깨끗하게 해탈되고 혹 그 깨끗한 성질에서 깨끗하다는 견해를 일으키나니 이것이 제3의 해탈이니라. 모든 경계가 허공에 들어간 선정[虛空想處定], 이것이 제4의 해탈이니라. 오직 식(識)의 생각만이 존재하는 선정[識想處定], 이것이 제5의 해탈이니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 들어간 선정[無所有處定], 이것이 제6의 해탈이니라. 생각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 없는 것도 아닌 곳에 들어간 선정[非有想非無想處定], 이것이 제7의 해탈이니라. 만일 생각의 느낌이 다 소멸한 경계에 들어간 선정[想受滅定], 이것이 제8의 해탈이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가 여실한 지혜로 하나의 삼마지에 고요히 머물러서 다시 나머지 삼마지와 삼마발저를 나타내어 보이며 또 다시 온갖 관해(觀解)를 나타내어 보이지만 여래는 모든 등지(等持) 등에 일찍이 혼란된 적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삼마지에 인연하지 않는 까닭에 삼마지에 들어가며 혹은 하나의 삼마지에 의지하므로 나머지 모든 삼마지를 성취하며 혹은 하나의 삼마지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능히 두루 모든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또 모든 여래는 마음이 항상 정(定)에 머물러서 되풀이하는 인연이 없으며, 또 모든 여래는 부정(不定)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 여래는 선정의 깊고 묘한 데 머물러서 능히 여래가 얻은 삼마지를 볼 자가 없느니라.
사리자야, 성문이 얻은 삼마지는 독각(獨覺)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으며, 독각이 얻은 삼마지는 보살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으며, 보살이 얻은 삼마지는 부처님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지만 여래가 얻은 삼마지는 가릴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여래는 가려질 수 없는 지혜로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도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이렇게 가르쳐 주며 이렇게 교훈하여 능히 성문·독각의 삼마지를 열어 인도하느니라. 또 이러한 가르침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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