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100-220

근와(槿瓦) 2017. 2. 21. 02:27

대보적경-1100-2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96 / 3476]

끊임없이 마음이 잇달아 남을 아심은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구지 겁에
그 경계와 끝을 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나아가 오는 세상의 구지 겁이 다하도록
모든 중생의 지난 세상 숙명을 연설함과 같아서
견줄 데 없는 지혜는 다함이 없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지혜 바다라 하도다.

일체 중생이 착한 믿음의 욕구를 내어
일찍이 모든 세존을 공양했나니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에 힘입어
과거에 정행(淨行)을 닦음을 반연케 하느니라.

큰 스승[大師]은 그 받은 것을 다 기억하나니
과거에 일찍이 온갖 복행 닦은 것과
3승에 머문 지혜며
해탈의 소의처(所依處)에서 물러나지 않음 등이니라.

선서의 숙명지는 끝이 없는 것
모든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나니
다함 없는 명칭을 여덟 번째의 힘이라 한다네.
거룩한 장자는 능히 믿어 받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덟 번째 숙명을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八宿住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누구도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천안통으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天眼通


                                                                           [1097 / 3476]

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깨끗한 천안(天眼)이 사람보다 뛰어나서 모든 중생이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나되 혹은 못나고 혹은 잘났으며, 혹은 좋은 용모이고 나쁜 용모이며, 그 익힌 업대로 혹은 좋은 곳에 가거나 혹 나쁜 곳에 가는 이러한 형상을 여래는 밝게 보고 여실히 훤히 다 아느니라.
또 능히 여실히 모든 중생의 지은 업의 행위를 아나니 이러한 중생이 몸으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말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뜻으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성현을 비방하고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켰는지, 그는 이러한 삿된 소견의 원인으로 몸이 무너지고 숨이 멈추면 나쁜 곳에 떨어지되 혹은 지옥에 나거나 혹은 축생에 나거나 혹은 귀신 세계에 나거나 하는지를, 여래는 또 이러한 중생이 몸의 묘한 짓을 성취하며, 말의 묘한 짓을 성취하며, 뜻의 묘한 짓을 성취하고 성현을 비방하지 아니하고 바른 소견을 닦아서, 그가 이러한 바른 소견의 원인으로 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좋은 세계에 가서 혹은 천상의 즐거운 세계에 가 나는 것을 아느니라.


또한 여래는 깨끗한 천안으로 시방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허공 끝을 다하고 법계의 양()을 다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의 형상을 보느니라.
혹은 다시 모든 부처님 세계[刹土]가 치열하게 불타는 것을 보며 혹은 어떤 세계는 막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어떤 세계는 막 이룩되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또 다시 일체 중생의 죽는 것과 나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여러 큰 보살이 도사다천(覩史多天)을 좇아 어머니 태에 강신(降神)하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어머니 태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혹은 사방으로 각기 일곱 걸음씩 걷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내전(內殿)에 들어가 처하는 것을 보며, 혹은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것을 보며, 혹은 모든 부처님이 큰 보리를 깨닫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는 것을 보며, 혹 다시 수명을 버리고 대열반에 드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성문들이 할 일을 마치고 반열반에 드는 것을 보며, 혹은 모든 독각이 온갖 신통을 나타내어 깨끗한 시주들의 복을 갚고 열반에 드는 것을 보느니라.


                                                                           [1098 / 3476]

또 모든 중생들이 현재 보지 못하는 것을 여래의 천안으로 보나니, 또한 다른 외도의 5통의 선안(仙眼)으로는 능히 보지 못하고 또한 성문·독각·보살들의 눈으로는 능히 보지 못하는 것을 모든 여래들의 천안으로 다 능히 보느니라. 이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중생들을 수레바퀴만큼 크게 여래는 천안으로 보느니라.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인간·천상 등 이러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여래는 다 능히 여실히 훤히 보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깨끗한 천안으로 한량없는 세계의 모든 중생의 성품을 관찰하되 어떤 중생을 여래가 교화할 것이며 어떤 중생이 여래를 보면 비로소 조복될 것인가를 관찰하고 여래는 그 때에 곧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깨우쳐 알게 하나니 다른 중생은 능히 알 바가 아니니라.
이렇게 사리자야, 여래가 천안으로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으니라. 그 누가 여래의 천안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힘의 불가사의함이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며 나아가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선서의 천안은 티 없이 깨끗하여
맑은 도업[淨業] 한량없는 겁 동안 닦았으니
거룩한 이 이로 말미암아 시방 세계의
티 없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든 불국토를 관하네.

혹 무너지고, 이룩되고, 이룩되고 무너짐이며
나아가 머물거나 불타고 있는 것
혹 부처가 계시거나 아니 계심을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중생 성품 각기 달라 헤아릴 수 없나니


                                                                            [1099 / 3476]

빛깔이 있거나 빛깔이 없거나
혹 나쁜 곳에 나는 것과 좋은 곳에 나는 것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혹 많은 구지(拘胝) 부처님께서 현재 계시거나
혹 여래가 열반에 드시거나
아울러 연각 및 성문을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혹 중생을 건지려는 모든 보살과
혹 미묘한 보리행을 닦거나
여래의 걸림 없는 곳에 머무는 것을
길잡이는 저절로 모두 본다네.

선서의 이러한 티 없는 눈으로
극히 자세하게 모든 중생 능히 보나니
아홉 번째 눈의 능력[眼力] 부사의 함을
거룩하고 총명한 이만이 깨달아 능히 믿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아홉 번째 천안의 지혜의 힘[如來第九天眼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누구도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번뇌를 다한 도를 증득한 지혜의 힘[如來流盡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모든 번뇌[]를 다하여 번뇌가 없으며 마음이 해탈되고 지혜가 해탈되어 저절로 통달한 지혜로써 도를 증득하여 다 갖추어진 자리에 머무는 줄을 훤히 알며, 또 나의 남[我生]이 이미 끝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미리 판단하여 뒤의 태어남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하게


                                                                            [1100 / 3476]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번뇌를 다한 지혜의 힘은 깨끗하고 티가 없으며 순수한 빛이 뚜렷이 비치어 일체의 상속하는 습기(習氣)를 영원히 끊느니라. 모든 성문승은 비록 번뇌가 다하였다 하지만 오직 능히 어느 부분의 습기를 끊을 뿐이며, 모든 독각승은 비록 번뇌가 다하였다 하지만 또한 능히 어느 부분의 습기만 끊었을 뿐, 대비(大悲) 및 모든 변재(辯才)를 멀리 여의었느니라. 오직 여래만이 모든 번뇌를 길이 다하여 온갖 미묘한 불법을 두루 갖추었으며 일체의 상속하는 습기를 끊어 버리며, 대비로 감싸주는 것이며 두려움 없는 변재로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을 보살펴 주나니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은 너무 빛이 나서 바라볼 수 없으며 한 찰나 동안이라도 항상 구족하게 서로 응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업이 없고 번뇌가 없으며 잘못된 거동의 모든 습기가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마치 깨끗한 허공이 일체의 연기와 먼지·구름·안개와 함께 머물지 않듯이 여래가 번뇌를 다한 지혜의 힘은 모든 번뇌의 습기와 함께 머물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러한 번뇌가 다한 지혜에 머물고는 다시 능히 저 유의 번뇌[有流]와 유의 집착[有取]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번뇌가 다하는 법 및 길이 일체의 집착을 끊는 법을 설하느니라.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와 집착함이 다 허망한 분별을 좇아 일어났음을 여래는 여실히 관찰하고는 그 모든 것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에 맞도록 여러 가지 비유로 법을 설하여 여실히 모든 번뇌의 허망함을 알게 하느니라. 이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집착하지 않게 되나니 집착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마침내 반열반에 들어가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모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일으키거나 모든 번뇌를 멸하여 열반을 향해 가는 길을 훤히 여실히 아느니라. 이렇게 알아서 모든 중생에 맞도록 법을 설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여래의 번뇌가 다한 도를 증득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으니라. 만일 어떤 이가 여래의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으려 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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