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085-21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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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장차 알 근기[未知當知根]인지, 알 것을 이미 안 근기[知根知已根]인지 이러한 모든 근기의 차별적인 모양을 이것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저 모든 근기를 알고는 눈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귀의 감관에 머물러 코 · 혀 · 몸의 감관에는 머물지 아니하며 혹 귀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코의 감관에 머물고 혹 코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혀의 감관에 머물고 혹 혀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몸의 감관에 머물고 혹 몸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눈의 감관에 머무나니 이러한 근성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만일 중생이 보시의 근기를 지니고서 계 지키는 방편을 닦는다면 여래는 어느 편이 더 우수하고 하열한 근기인지를 아는 지혜로써 보시를 설하며, 만일 계의 근기를 지니고서 보시하는 방편을 닦는다면 계를 설하며, 만일 참는 근기[忍根]를 지니고서 정진[勤]의 방편을 닦는다면 참는 법[忍法]을 설하며, 정근(正勤)의 근기를 지니고서 참는 방편을 닦는다면 정근을 설하며, 정려(靜慮:禪定)의 근기를 지니고서 지혜의 방편을 닦는다면 정려를 설하며, 만일 지혜의 근기를 지니고서 선정(禪定)의 방편을 닦는다면 바른 지혜를 설하느니라.
이렇게 일체의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모든 근기의 차별을 여실히 알고 그에 맞도록 설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중생이 성문의 근기를 지니고서 도리어 독각(獨覺)의 방편을 닦는다면 여래가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성문승[下乘]을 설하며, 독각의 근기를 지니고서 성문(聲門)의 지혜 방편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독각승[中乘]을 설하며, 대승의 근기를 지니고서 2승(乘)의 지혜 방편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대승을 설하며, 열등한 근기를 지니고서 대승행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 이승을 설하느니라. 만일 중생이 견뎌 낼 만한 근기가 없고 견뎌 낼 만한 모양이 없으면 여래가 여실히 견뎌 낼 수 없고 법의 그릇이 아닌 줄을 알고 곧 버려 두느니라. 만일 중생이 견뎌낼 만한 근기가 있고 견뎌 낼 만한 모양이 있으면 여래는 여실히 견뎌 낼 수 있는 법의 그릇인 줄을 알고 곧 은근히 법을 설하여 깨달아 들어가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는 일체 중생의 근기가 잘 성숙하고 성숙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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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과 모든 근기가 세간을 벗어날 것인지 벗어나지 못할 것인지를 아느니라. 사리자야, 중생들의 근기를 여래는 여실히 알고 이러한 모양을 지니고 이러한 방편이며, 이러한 믿음과 이해며 이러한 본래의 인행[本因]이며 이러한 인연이며 이러한 번뇌며 이러한 마지막 결과[究竟]임을 환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갖가지 근기를 아는 지혜는 불가사의하며 경계가 없고 끝이 없어 허공과 같나니, 만일 여래의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으려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찾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들은 이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근기의 피안에 이른 세간의 높은 이 중생들의 뜻과 성품의 행 잘 통달하여 중생들의 근기에 견딜 만한 것을 따라 사람 가운데의 사자가 설법하였네. 하 · 중 · 상품의 근기가 견딜 만한 것 선서(善逝)의 뛰어난 지혜도 그 속에서 일어났네. 해탈할 그릇이고 마음인가를 관찰하고는 그 슬기에 맞추어 법을 설하네. 어떤 사람이 모든 근기를 능히 일으켜 부지런하고 쉼 없어 번뇌 적으면 그 사람의 근기를 잘 통달하여 알고 행함에 수순하여 법을 설하네. 만일 장부로서 착한 근성 있으면 근(勤) · 신(信) · 욕(欲)에 따라서 열어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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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근기와 행위의 차별 상(相)에 따라서 여러 훌륭한 뜻과 정혜(定慧) 등을 설하네. 그 사람이 믿음의 욕구 일으켰으면 지혜로운 이는 근기를 따라 정도(淨道)를 설하며 저들이 행하는 온갖 행위 알고는 거룩한 법 설하여 괴로움을 벗겨 주며 결정코 불보리(佛菩提)의 근기에 안주하게 하며 거꾸로 성문의 지혜 익히는 이는 대승법을 설하여 정각을 이루게 하나니 이것이 부처의 굴복시키기 힘든 다섯 번째 힘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다섯 번째 갖가지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五種種根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여래가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능히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사문 · 바라문과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여러 갈래 길로 나가는 온갖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遍趣諸行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 · 응공 · 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러 갈래 길로 나아가는 온갖 행위를 능히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양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자면 중생의 성품에 있어서 정정취(正定聚)의 성품인지, 부정취[不正定聚][고려대장경 본문에는 '부정정(不正定)'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앞뒤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3정취(定聚)의 중생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3정취란 중생의 수도하는 자세를 미래와 연관시켜 세 부류로 구분한 것으로 미래의 운명을 바르게 결정하는 정정취(正定聚), 미래의 운명을 그릇되게 결정하는 사정취(邪定聚),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부정취(不定聚)를 말한다. 이 가운데 정정취는 깨달음에 이를 것이 확정되어 있는 사람이고, 부정취는 인연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없으면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이며, 사정취는 성불할 만한 근기가 없어 점점 더 타락해 가는 부류의 중생을 뜻한다.]의 성품인지, 사정취(邪定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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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품인지를 환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정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지나간 세상에 닦아 익힌 방편으로 인하여 깨우친 지혜와 예리한 근기가 생긴 것이다. 또한 모든 여래가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든 설하지 아니하든 여래는 여실히 그 중생이 전세의 인과로 견뎌 낼 만한 법의 그릇인지 알고 그에 맞도록 설법하여 빨리 해탈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부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그는 바깥 인연의 힘으로 말미암아 성숙되는 모습이니 만일 법답게 가르쳐 지도하면 해탈을 얻을 것이고 법답게 가르쳐 지도하지 않으면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니 여래는 인연 따라 서로 맞는 법을 설하여 그 중생들이 바른 법을 듣고는 이치에 맞게 수행하여 해탈의 과를 얻게 하느니라. 이러한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사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중생의 성품이 번뇌에 가리워 깨끗한 업을 닦지 않고 식성(識性)이 박약하며 어리석음이 깊고 두터워서 삿된 소견의 그물에 걸려 바른 법의 그릇이 아닌 것은 만일 여래가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든 법을 설하지 아니하든 간에 결코 견뎌 내어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니라. 여래는 여실히 저 중생이 법의 그릇이 아닌 줄을 알고는 곧 놓아두느니라. 그러므로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런 중생을 민망히 여기어 이익을 주기 위한 까닭에 넓은 서원의 갑옷을 입고 삿된 소견의 군사 가운데 들어가서 교화하여 꺾어 굴복시키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세 가지의 탐욕 행위를 여실히 훤히 아느니라. 혹은 제 몸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거나, 혹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거나, 혹은 전세의 인연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는 것 등이니라. 또 능히 세 가지의 성내는 짓을 훤히 아느니라. 혹은 저에게 손해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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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성내거나, 혹은 제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성내거나, 혹은 전세의 습성으로 번뇌를 일으키는 것 등이니라. 또 세 가지의 어리석은 짓을 훤히 아느니라. 혹은 어리석은 짓이 무명으로 인하여 나는지, 혹은 어리석은 짓이 망령되이 몸이 있다는 견해로 인하여 나는지, 혹은 어리석은 짓이 의심으로 인하여 나는지, 이러한 일체를 여래는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는 모든 행이 괴로움과 즐거움, 두 가지의 행위에 모두 능히 빨리 통달함은 근기가 영리한 까닭이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가지의 행위에 모두 느리게[遲] 통달함은 근기가 우둔한 까닭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느린 행위에 느리게 통달함은 반연한 것을 버린 까닭이며, 느린 행위에 빨리 통달함은 도중에 쉬지 아니한 까닭이며, 재빠른 행위에 느리게 통달함은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정진한 까닭이며, 재빨리 행하여 재빨리 통달하려 함은 그 근기가 아닌 까닭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한 혹 어떤 행위는 간택하는 힘[簡擇力:智力]은 충분하지만 닦아 익히는 힘은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닦아 익히는 힘은 충분하지만 간택하는 힘이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과 닦아 익힘의 두 가지 힘이 함께 충분하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과 닦아 익힘의 힘이 모두 충분하지 못한 줄을 아나니, 이러한 모든 모양을 여래는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또한 혹은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는 두루 갖추었지만 방편은 두루 갖추지 못하며, 혹 어떤 행위는 방편은 갖추었지만 믿음의 욕구가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와 방편이 함께 만족하게 갖추어지지 못하며, 혹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와 방편이 둘이 다 만족하게 갖추어지는 이러한 것을 여실히 능히 다 아느니라. 또 혹 어떤 행위는 몸으로 하는 짓[身業]은 청정하지만 말과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며, 어떤 행위는 말로 하는 짓[語業]은 청정하지만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며, 혹 어떤 행위는 마음으로 하는 짓[心業]은 청정하지만 몸과 말은 그렇지 아니하며, 혹 어떤 행위는 몸과 말과 마음이 다 청정하지 아니...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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