僧(스님)

보덕(普德)

근와(槿瓦) 2017. 2. 15. 00:04

보덕(普德)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고구려 승려. 智法이다. 용강 사람으로 평양 서쪽의 대보산에 영탑사를 짓고, 반룡산 연복사에 있을 때에 보장왕이 중국으로부터 道敎를 구하여 오므로써 나라가 장차 망할 줄 알고, 백제의 완산주 고대산으로 그의 方丈을 옮기니, 지금 고달산 경북사의 비래방장이 그것이다. 門下에 명덕 · 무상 · 적멸 · 의융 · 지수 · 일승 · 수정 · 사대 · 개원 · 개심 · 보명의 11제자가 있었다. 각각 절을 짓고 衆生을 교화하였다.

 

참고

도교(道敎) : ·를 가리킴.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중국고유의 토착종교.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꾀하는 신선술(神仙術)과 민간종교가 결합한 토대위에, 노장사상(老莊思想. 무위자연을 도덕의 표준으로 하고, 허무를 우주의근원으로 삼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과 불교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으로 유교, 불교에 버금가는 삼교(三敎)의 하나이다. 황제(黃帝. 아래 참조)

 

노자(老子) : ()은 이(), 이름은 이(), 자는 백양(伯陽),또는 담(). 노군(老君)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성화되었다. 도교경전인 도덕경 道德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현대 학자들은 도덕경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저술되었을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으나, 도교가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는 철학자로, 일부 평민들 사이에서는 성인 또는 신으로, (618~907)에서는 황실의 조상으로 숭배되었다. -Daum 백과

 

장자(莊子) : 장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저서 <장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사상은 중국 불교의 발전과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편(1~7)은 대부분 장자 자신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외편(8~22)과 잡편(23~33)은 그 자신이 쓴 것도 일부 있는 듯하나 대부분 위작으로 보인다. -Daum 백과

 

방장(方丈) : 사방이 1(十尺, 3미터)의 방이란 뜻으로 方丈室 또는 丈室이라고도 한다. 禪寺에 있어서의 주지의 거실. 또는 客殿. 函丈 · 正堂堂頭라고도 한다. 維摩禪室이 사방 1이었다고 하는 설에 유래한다. 이에서 와전이 되어 주지를 方丈 · 丈室이라 한다. 유마(維摩. 부처님의 속세 제자이다. 維摩詰 · 毘摩羅詰 등이라고 음역. 번역하여 淨名 · 無垢稱이라 한다. 부처님이 계실 때 비야리성의 居士였다. 妙喜國에서부터 이곳에 化生하여 속가에 몸을 맡기고 석가의 교화를 도왔다는 法身大士라고도 전한다. 속가에 있으면서 보살행업을 닦은 거사로 그 수행이 대단하여 어떤 불제자라도 그에 미칠 수 없었다고 한다).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 · · · · 六根(여섯 感官) · · · · ·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라고 한다.

 

황제(黃帝) : 고대 중국 역사의 기원-출처(Daum 백과)

아득히 먼 옛날 중국 대지에 살았던 원시인 가운데 북경원인이 가장 오래된 인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1963년 고고학자들이 섬서성(陝西省)에서 남전(藍田)원인을 발견함으로써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섬서성에서 발견된 남전원인의 추측 연대는 무려 1백만 년 전의 것으로 4, 50만 년 전의 북경원인보다 훨씬 옛날의 것이고, 그 다음해 운남성(雲南省)의 원모(元謀) 분지에서 발견된 이빨 두 개는 감정 결과 지금으로부터 무려 170만 년 전의 선사 시대 인간의 이빨임이 판명되었다. 이 원시인을 원모원인이라 부르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한족의 최초 역사가 이 원모원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렇게 시작된 역사는 쉬지 않고 흘러 지금으로부터 거의 5, 6천 년 전의 중국 대지에는 동쪽에 이족(夷族), 서쪽에 강족(羌族), 남쪽에 묘족(苗族), 북쪽에 적족(狄族)들이 각기 살고 있었다. 동쪽의 이족에는 치우(蚩尤)라는 유명한 두령이 있었는데 그는 네 개의 눈, 여섯 개의 손, 구리로 된 머리, 쇠로 된 이마를 가진 요괴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사람처럼 말하고 모래나 돌 따위를 먹으며 금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위에 안개를 뿜어낼 수 있는 조화를 가지고 있어 전쟁을 할 경우 누구에게나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황하 중류 일대에 살고 있던 강족 가운데도 공공(共工)이라는 뛰어난 두령이 있었다. 강족들은 이따금 홍수를 일으켜 하류에 살고 있는 이족을 괴롭혔다. 화가 난 이족의 두령 치우는 그의 독특한 신체적 조건과 안개를 뿜는 조화를 부려 공공 일족을 마구 두들겨 부수니 공공은 화가 나 그의 머리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을 얽어매고 있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땅덩어리가 기울어져 이때부터 중국의 지형이 서북쪽은 높아져 산이나 고원 지대가 되고 동남쪽은 우묵해져 평야 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삼황(三皇) 시대 복희씨(伏羲氏)의 뒤를 이은 여와씨(女媧氏) 시대에, “하늘을 받치고 있던 네 기둥이 무너지면서 천지가 무너지고 불기둥이 치솟고 홍수가 범람하였으며 맹수들은 양민을 잡아먹고 맹금은 노약자를 채가는 등 아주 혼돈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에 여와씨는 오색의 돌을 갈아 하늘을 짓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네 기둥을 세우고 흑룡을 죽여 기주(冀州)를 건너고 갈대의 재를 쌓아 홍수를 막았다.”한다. 질서를 잃은 혼돈의 세계를 그의 노력으로 원상복구시켰다는 일종의 천지창조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여와씨 다음에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천하가 8530년 동안 계속되다가 오제(五帝)의 첫째 황제인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천하가 되었다. 옛날부터 중국의 역사는 삼황(三皇) · 오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삼황은 복희씨 · 여와씨 · 신농씨, 혹은 천황씨(天皇氏) · 지황씨(地皇氏) · 인황씨(人皇氏)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와씨 대신 축융(祝融) 또는 수인(燧人)으로 기록한 문헌도 있다. 남녕 외곽의 공원 바닥에 그려진 팔괘. 팔괘는 복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삼황의 시대는 잘라 버렸다. 그리고는 오제본기(五帝本紀)로부터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삼황 시대를 역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제란 황제(黃帝) · 전욱(顓頊) · 제곡(帝嚳) · 제요(帝堯) · 제순(帝舜)을 말한다. 황색의 물결이 유유히 흐르는 황하와 그 주변을 메운 비옥한 황토의 평야, 이것은 고대 중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한 것이다. 황제가 노란빛의 나라인 중국의 첫째 제왕으로서 중국 민족의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황제는 유웅국(有熊國)의 임금 소전(少典)의 아들로서 나면서부터 신령스럽고 총명하여 태어난 지 칠십 일이 채 못되어 능히 말을 하였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장성하매 더욱 총명하고 민첩하여 주위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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