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고증편)-5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3장 諸宗敎信仰에의 영향
1. 道敎의 최고女神인 西王母와 관세음보살은 同一人
관세음보살의 성탄지와 정확한 연대를 종종의 중국고대문헌과 문서를 조사중에 전연 의외의, 더욱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중국고래로부터 신앙하고 있는 서왕모의 출생지와 연대가 특히 아주 상사한 사실이다.
혹시 중국명의 서왕모가 실은 불교명의 관세음보살이 아닌가 하고 직감하게 되었고, 서왕모란 고유명사가 아닌 서역왕국성모(西域王國聖母)가 틀림없으리라 직감했다.
점차 깊이 탐구해 감에 따라 동일인물의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서왕모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31)의 실제인물로서 중국에서는 아득히 먼 서방의 사막 또는 곤륜산의 보옥이 나오는 곳에 사는 절세의 미인이라 전하여 그와 같이 기재되어 있다.
⑧ 진(晋)의 태강(太康) 2년(기원 281) 하남성흡현(河南省汲縣)의 고분[전국위(戰國魏)의 국왕묘]에 발굴된 목천자전(穆天子傳)에 목왕(穆王)이 중국서방의 황하의 수원지에 여행하여 황하의 신랑(神娘)의 안내로 일몰지에 도달하고 천제의 낭자 서왕모와 회견했다고 되어 있다.
⑨ 전한서 회남자(前漢書淮南子,기원전 122)에 영웅신(神), 예(羿)가 서왕모로부터 불사약을 얻었다고 되어 있고,
⑩ 후한(後漢,1세기)의 상서제험기(尙書帝驗期)에는 선도(仙道)의 수행을 필료(畢了)한 자는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인가장을 받는다고 한다.
⑪ 한서(漢書)에는 건평(建平) 4년(기원전 3년)에 서왕모의 패찰(牌札)이 수없이 내려 천하백성이 격고호호(擊鼓號呼)하며 제례를 올렸다 한다. 문헌에 의하면 저작연대에 다소의 오차가 있으며 언어, 풍습, 지역의 상이에서부터 일화적삽입으로 보여지는 구절도 있으나 관세음보살의 성탄(기원전 250~220경)을 중심으로 한 즈음에 중국에는 서왕모로서 그 실재를 확인하면서 신앙하고 있는 점을 아울러 고찰하건대 나는 감히 그 지역을“코탄”이라 단정하며 보살과 서왕모는 원래 동일인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보살의 존재가 서역에서 인도에 유전된 바와 서역에서 중국에 직접 유전된 것으로 인해서 이 존칭에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점은 없다.
단지 불교의 보살명으로서 동방아시아에 전파되어 옴에는 약간의 세월이 경과된 때문에 일반민중에 있어서는 서왕모와 동일시하지 못해서 두 신불(神佛)이 전혀 다른 각자인 것처럼 느껴졌음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된다.
이 때문에 더우기 서왕모의 출생지를 명백히 해두기 위해서도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바이다.
⑫ 회남자(淮南子)의 지형훈(墬形訓)에「서왕모는 유사(流沙)의 빈변(瀕邊)에 있다」고 하며,
⑬ 산해경(山海經)의 서산경(西山經)에「옥산(곤륜산)은 이 서왕모의 거소라」했으며
⑭ 위략중(魏略中)에 「백옥산(白玉山)에 서왕모 있고 서왕모의 서편에 유사(流沙)있고 유사의 서에 박트리아국(大夏國)이 있다」고 한다. 결국 사막과 백옥이 채취되는 곤륜산은“코탄(Khatan)을 따로 두고 생각할 수는 없다.
⑮ 또 사기(史記)의 대원정중(大宛傳中)에「漢使窮河源, 河源出于闐, 其山多, 玉石, 采來, 天子按, 古圖書 名河所出山曰, 崑崙山」이라고 중대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한(漢)의 무제(기원전 140~88)가 서방에 서왕모의 선경이 있음을 깊이 믿고 당시 서역에 사신으로 가는 장건(張騫)에게 반드시 이 나라의 사정을 널리 조사해 사왕모궁(西王母宮)에 참례(參禮)하고 돌아오도록 당부해서 보냈다.
응당 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자는 돌아와서도, 서왕모는 일몰처에 가까운 데에 있다는 막연하기 짝없는 보고가 있을 뿐으로 하등의 확실한 사실을 얻지 못했다. 그때 마침 서역에서 같이 돌아온 사자중에 우전국(于闐國)의 옥석을 가지고 온 자가 있어서 이 보석이 산출되는 고산(高山)의 사정일체를 아는대로 진상함으로 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이야말로 서왕모가 주거하는 옥산(玉山)에 틀림없다 하고 옛지도 등 諸자료를 찾아내 이를 참고로 드디어 이 산을 곤륜산이라 결정한 것이다.
⑯ 무제와 시대를 같이한 사마천(司馬遷)도 일찍이 도학에 경도하고 있었으나 서왕모의 일을 대원전(大宛傳)에 써서 그 논찬(論贊)에는「禹本紀言 河出 崑崙, 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 日月所相避隱爲光明也, 其上有醴泉瑤池」라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이라 할지라도 서왕모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고귀한 신분인 황제 무제도, 학식이 깊었던 박학자 사마천까지도 서왕모를 믿고 있을 정도였으므로 당연히 일반민중이 크게 그를 믿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약수(弱水)라 함은 곤륜산에서“타리므”분지에 흘러 들어가는 수개의 하천을 말하는데 우전국(于闐國)에서 나와 사막에 흡수되어 가면서 없어져 약수라 일러진 것이다.
약수의 명칭은 서경(書經)의 우공(禹貢)의 편으로 곤륜과 같이 병기되어 있으며 약수와 곤륜은 당시에 중국인에 알려진 서극에 위치하는 곳이며 일몰처에 해당하는 곳이다. 필경 서왕모가 있는 곳은 확실히“코탄(于闐)”의 땅이며 관세음보살에 틀림이 없다. 동서의 기세(期世)를 막론하고 이 보살의 역능을 별도 명칭으로 표시된 것으로도 대성보살의 고덕무궁을 감득할 수 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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