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고증편)-55

근와(槿瓦) 2016. 11. 29. 00:21

관세음보살(고증편)-5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 觀音濟度本願眞經의 유래


유래의 연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희 병오년(기원 1666)광야산인인 월백시(月魄氏)가 본권의 서문에(; )가 일일 아침 보타산(普陀山)에 가는 도중 배가 남해에 이를 때, 미리 진무조사(眞武祖師)의 보혜(報惠)를 얻지 못함인지 배가 곧 해안에 도달하려 할 즈음 광풍이 크게 일어나 파랑이 도용하여 배가 거의 침몰케 됐다.


()는 신불의 비우(庇佑)를 피몽(被蒙)하여 겨우 급히 타장(舵漿)을 조정, 진애(津涯)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로 배를 해안에 정박하고 주위를 산보 한유하는 중에 어느 사이에 홀연히 한 석문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벽에 패방(牌牓)이 삼렬(森列)히 세워져 있고 조문(朝文)의 전전(篆鐫 ; 彫刻)이 있었다. ()을 향해 몇 보 걸어가니, 안에 한 암자 있어 영통사라 써 있었다. 더 들어가 내부를 보다 한 도동(道童)을 만났다. 소쇄(瀟洒)하여 속됨이 없고 나에 말을 이르되거사여, 이번 풍파에 만났음은 실로 상천(上天)의 정수(定數)한 현기응보(玄機應報)인 것이다. 이제 이곳에 이르름은 진실로 시기에 적합했음이다.


이 중에 한권의 제도(濟度)의 자항(慈航)이 있으니 거사에게 부탁하건대 이 공덕을 부디 성취함으로써 내가 불타의 도인(度人) 무량심을 위로코자 한 바를 희원하노라하면서관음제도본원진경이란 한 책을 꺼내 내게 주었다. 정성스럽게 공경해 받들어 읽어서 이내 관음불조가 중생의 진고(塵苦)를 보고 불지하령(佛旨下領)으로 하세(下世)코 흥림국 황궁중에 탁생(託生)되었음을 알았다. 이를 받은 이상, 여하히 이 일종공덕(一宗功德)을 성취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 경이 어떻게 어려운 서천(西天)의 산스크리트어(梵語)로 써 있는 고로 동토인들은 이 문자를 알 자가 적어 급히 집에 가지고 돌아가, 번역정서하여 각간한다 운운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 두 보권이 전후해서 출현한 이래 보살신앙이 한층 밀접하게 중인의 심중에 파고 들었다.


보살의 생애가 상세히 알려졌던 당시 민중의 감동은 어떠했던가. 6백년을 경과한 현재에도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바로 몇몇의 많은 자료를 모으고 충실히 역술하여 우리나라에 두루 밝혀 그의 출생지까지 극명코 강호에 공포하는 감격과 중책에 심신이 심히 떨림을 어찌할 수 없다.


이제까지 비불(秘佛)로서 그 생애가 알 수 없는 대로 신앙해 왔으나 백일하에 비사(秘史)를 밝혀 시대에 처음으로 해명을 얻게 되었다. 바른 사실은 언제인가는 바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설사 천년이 경과할지라도 사실은 매몰되지 않는다.


노자선옹(老子仙翁)의 예를 보더라도 단지 한 책의 도덕경을 관문의 영장(令將), 윤희(尹喜)에 건네고 단독 산오에 은둔했으나 그 한 권본이 6백년 지나 장도능(張道陵)등에 의해 점차 세상에 선전되었다.


보살의 보권(寶卷)이 석실에 있다가 발견됨은 범자로 써 있었음을 추측하면 아마도 당시의 행자가코탄(于闐)”에 깊이 들어가 중국에 가지고 돌아온 것이라 판단된다. 송조의 처음에는 보권변문류(寶卷變文類)가 금지된 사실이 있으며 이를 동굴이나 석실에 은닉했음에 틀림이 없다.


범자라 기록했으나 아마 동류인 카로슈티(Kharost(h)i, 佉僂, 驢脣)문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진정으로 역사상 대발견이라 하겠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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