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고증편)-4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 시대적배경과 탄생국 코-탄(于闐國) 외국민족의 침략에 조우하면서도 민족의 특성을 잃지 않은 채 독자적문화를 축성하기란 불가능하다 할만큼 어렵다. “코탄”은 천혜의 지형속에서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을 지내오면서 기원전 250년경에는 불타의 교가 전입된 흔적이 보인다. 대자은사 삼장법사전 권오(大慈恩寺三藏法師傳卷五) 양질(陽帙) 2의 255(葉右)에는「인도“아쇼카(Asoka,阿育)” 왕의 태자“쿠나라(瞿那羅,Kunala)”, 스스로 “코탄”에 이르러 비사문천(毘沙門天)에 기원하여 득자한 이후 그 위를 전하다」고 되어있다. 또 서역기(西域記)에는「구나라(拘那羅)의 보호에 즈음하여 호족(豪族)이 “코탄(于闐)에 오며」또 같이「이 때에 당하여 중국황제의 한아들 득죄하여 유배되서 “타리므(塔里木) 유역”에 들어와 코탄(于闐)에 이르러 스스로 왕이라 칭하다」라고 되어있다. 뒤에「두왕이 다투어 중국의 왕이 승리하다」고 되어 있으나 어찌됐던 우전국(코탄) 개조(開祖)는 아쇼카(阿育)왕을 중심으로 한 일족, 혹은 중국 왕자, 또는 양족이 일체화한 것이 처음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코탄의 옛 명칭인 “쿠수타나(瞿薩旦那,Kusutana)”국의 국명이 지유(地乳)또는 대지(大地)라고 역명되어 있으나 나는 건국자가 아쇼카왕의 태자 “쿠수타나(瞿薩旦那)”왕자인데서 구사다나국(瞿薩旦那國)이라 호칭되어 “코탄”이란 지명은 “코사다나”의 명칭이 다시 변전됨이 아닌가 생각한다. 흥림국(興林國)이란 명칭이 “코탄”이나 “코사타나국”이라고 확실히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진(秦)나라의 통일시대나 혹은 송(宋) · 원(元)시대에 분서(焚書)와 종교금지로 인해서 당시 역자가 쿠수타나국(瞿薩旦那國)에 누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흥림국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라 추찰된다. “코탄”의 지명은「우돈(于遁) · 관나(渙那) · 갓탄(豁丹) · 굿탄(屈旦) · 코탄(于闐) · 코탠(于?) · 호탠(和田)」등의 역자(譯字)가 사용되고 있으나 이하는 코탄으로 기록하기로 한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세음보살(고증편)-51 (0) | 2016.11.25 |
---|---|
관세음보살(고증편)-50 (0) | 2016.11.24 |
관세음보살(고증편)-48 (0) | 2016.11.22 |
관세음보살입적후기-47 (0) | 2016.11.21 |
관세음보살전기-46 (0) | 2016.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