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사리불의 법문 57

근와(槿瓦) 2014. 7. 20. 01:58

사리불의 법문 57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께서는 또 모든 제자들을 거느리고 기원 정사로 돌아가셨다. 어느 날, 사리불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였다.

"벗이여, 세간에는 네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그것은 내부에 더러운 때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과 아는 사람, 또 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과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 더러움을 갖는 두 사람 가운데 그것을 여실히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뒤떨어지고 여실히 자각하는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때를 지니지 않은 두 사람에 대해서도 그 자각의 유무에 의해 우열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때 목련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벗이여, 그 우열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찌하여 우열이라 하는가?"

'벗이여, 그것은 이와 같은 이유이다. 때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확실히 자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제하기 위해 마음을 정하여 용기를 갖고 힘쓰는 일이 없다. 따라서 탐, 진, 치의 더러움을 지닌 채 죽는다.

비유컨대, 먼지에 뒤범벅이 된 놋바리때를 시장에서 사다가 깨끗이 씻지도 않고 먼지가 쌓인 구석에 던져 두면 더욱 더러워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에 반하여 그것을 여실히 아는 사람은 더러움을 제거하려고 결심하고 용감하게 힘쓰므로 그는 탐, 진, 치를 떠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목숨을 마칠 것이다. 비유컨대, 범벅이 된 놋바리때를 시장에서 사와 깨끗이 씻으면 예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더러움은 없더라도 그것을 분명히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자기의 마음에 들어맞는 모양에 생각이 빠져 그것 때문에 탐욕에 괴로와하고, 진에와 우치에 사로잡혀 더러움을 지닌 채 목숨을 마치게 된다. 비유컨대, 깨끗한 놋바리때를 시장에서 사오더라도 깨끗하게 씻지 않고 먼지가 가득찬 구석에 던져 두면 더러워지는 것과 같다. 또 불결함이 없고 불결함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아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맞는 좋은 모양에 생각이 빠질 걱정도 없고, 따라서 탐욕에 괴로와하지도 않으며 진에와 우치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더러움이 없이 묵숨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비유컨대, 깨끗한 바리때를 시장에서 사다가 깨끗하게 씻으면 더욱 깨끗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목련이여, 나는 이런 이유로 우열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벗이여, 내가 여기에서 불결이라고 함은 좋지 못한 욕망을 말한다. 죄를 범하고서도 '그 죄가 알려지지 않기를' 원하고, 죄가 알려지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주의를 받고 싶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주의를 받고 싶지 않다'라고 바라는 것은 모두 이러한 불결함이다. 이 불결함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화를 내고 초조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스승의 법화를 들을 때에도 스승이 특히 자기에게 주의하여 자기와 문답하게 되기를 원한다든지, 공양을 받을 때에도 자기가 제일 먼저 공양 받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불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화를 내고 초조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벗이여, 어떠한 것일지라도 이 좋지 못한 욕망을 여의지 않으면 그것은 자연히 남에게 알려진다. 그렇게 되면 비록 그가 조의(粗衣)를 걸치고 숲속에 머물며 의식주의 탐을 여읜 행을 닦더라도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된다. 비유컨대, 깨끗이 씻은 놋바리때를 시장에서 사다가 거기에 뱀이나 개 혹은 사람의 시체를 넣어 두고, 다른 놋바리때 뚜껑으로 덮은 후에 다시 시장에 갔다고 하자. 사람들은 어떤 진기한 것이 있나 하고 뚜껑을 열어 속을 보고 불쾌한 생각을 가지는 것과 같다.

또 이 좋지 못한 욕망을 버리면 그 일이 자연히 남에게 알려져, 비록 그 사람이 마을에 머물러 남의 초대를 받고 속인의 옷을 걸치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그것은 마치 깨끗하게 씻은 놋바리때를 시장에서 사다가 거기에 하얀 쌀밥을 담고 고기국을 넣은 후 다른 놋바리때 뚜껑을 덮어 다시 시장에 갔다고 하자. 사람들은 뚜껑을 열어 속을 보고 즐거워 식욕이 일어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때 목련이 말했다.

'사리불이여, 내가 일찌기 왕사성 근방의 작은 산에 머물고 있을 때였는데, 이른 아침에 탁발을 하려고 마을로 들어가니, 수레를 만드는 그의 제자가 힘을 다하여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때마침 나형(裸形) 외도의 빈두자(賓頭子)가 지나가다가 옛날에 그도 수레를 만드는 사람의 제자였으므로 뚫어지게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제자는 지금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데, 그 패인 곳, 비뚤어진 곳, 마디진 곳 등을 깎을 것이다. 그러면 수레바퀴는 안성마춤이므로 잘 들어맞을 것'이라고.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수레 만드는 그의 제자는 과연 수레바퀴의 패인 곳, 마디진 곳을 깎아냈다.

이것을 본 빈두자는 너무 기뻐서 정신 없이 '아아, 그는 마치 내 마음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나의 생각대로 수레바퀴를 만들었다'고 외친 일이 있다.

벗이여, 이 경우와 같이 당신은 생활을 위해 출가하여 허식(虛飾)을 꾸미고 경조(經躁)하고 마음이 어지러워진 제자의 마음을 마치 투시(透視)한 것처럼 삭제해 나갔다. 신심을 가지고 출가하여 열심히 행하고 지혜가 있는 자는, 당신의 설법을 듣고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듯이, 굶주린 자가 밥을 먹듯이 기뻐할 것이다. 진실로 당신은 동학자로 하여금 불선을 여의게 하여 선에 나가도록 하셨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이 서로 그 설한 바를 기뻐하였다.

 

어느 날 또 사리불은 말하였다.

벗들이여, 정견(正見), 정견하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어떻게 하면 불제자로서 바른 견해를 가지고 법에 대하여 불괴의 신심을 갖추며 그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것인가. 벗들이여, 불제자로서 불선(不善)을 알고 불선의 기근(機根)을 알며, 선을 알고 선근을 알면 그만큼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되며, 법에 대해 불괴의 신심을 갖추고 그 정법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불선, 불선의 기근, 선, 선근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살생, 투도(偸盜), 사음, 망어,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 탐욕, 진에, 사견 등 열 가지를 불선이라 하며, 탐욕, 진에, 우치를 불선의 기근이라 하는 것이다. 또 앞의 열 가지 불선을 여의고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을 선이라 하고, 뒤의 탐욕 등 삼독을 여의는 것을 선근이라 한다. 이리하여 불선의 기근과 선과 선근을 알고, 모든 욕과 해치는 마음을 여의고, 아견(我見)의 번뇌를 뽑고 무명을 멸하여, 이 현세에서 고의 종말을 이룬다면 그 사람은 바른 견해를 가지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갖추어 이 정법에 도달할 것이다."

일동은 그 가르침을 기뻐하고 다시 물었다.

"벗이여, 이 밖에 불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며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갖추어 이 정법에 달하는 법이 있을 것인가?"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있다. 만일 불제자로서 식(食)을 알고, 식의 집(集)을 알고, 식의 멸(滅)을 알고, 식의 멸에 이르는 도를 안다면, 그것은 바른 견해를 가지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갖추어 이 정법에 달할 것이다. 그 식과 식의 멸에 이르는 길이란 무엇인가? 모름지기 생물의 몸과 마음을 갖추고 혹은 아직 생기지 않는 것의 생기는 도움이 되기 위해 네 가지의 식(食)이 있다.

즉, 조세(粗細)의 단식(團食)과 촉식(觸食)과 사식(思食)과 식식(識食)의 네 가지이다 그리고 이 식의 인(因)은 갈애이므로, 갈애가 멸할 때에 식(食)은 다한다.

팔정도, 곧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은 이 식의 멸에 이르는 도이다.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가 이와 같이 식을 알고, 식의 집(集)을 알고, 식의 멸을 알고, 식의 멸에 이르는 도를 알고, 모든 욕심과 해의(害意)를 여의고, 아견(我見)의 번뇌를 뽑아 내어 무명(無明)을 멸하고, 지금 현재에서 괴로움이 다함을 본다면 그것은 바른 견해를 가지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갖추어 이 정법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괴로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집(集)을 알고, 괴로움의 멸을 알고,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도를 알면, 그것 역시 바른 견해를 지니며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갖추어 이 정법에 달할 것이다.

생, 노, 병, 사, 우, 비, 고, 뇌, 민 및 구해서 얻지 못함은 모두 괴로움인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이 살아 있는 일이 괴로움이며, 미래의 망집을 끌어내는 갈애가 그 집이며, 이 갈애가 남김없이 멸하면 그것은 괴로움의 멸인 것이며, 정견 등의 팔정도는 고의 멸에 이르는 도인 것이다."

일동은 사리불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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