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전기-41

근와(槿瓦) 2016. 11. 15. 00:48

관세음보살전기-4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41. 나무열매로 주림을 견디며 명상으로 추위를 막다


붕조(鵬鳥)의 출현에 원숭이떼들이 멀리 도망해 버렸으므로 세사람은 겨우 안심하여 삼보일배(三步一拜)의 고사(故事)를 남겨두고 또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보모와 영련은 살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대사가 위기에 기지로 임기응변(臨機應變)한 사실을 상찬(賞讚) 감사하며


“대사님!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묘안이 위기에 닥쳐 갑자기 떠오르게 됐사옵니까?”하고 영련이 물었다.

“심의(心意)가 가라앉아 정신이 산란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승(小僧)은 여인의 몸인 고로 심신(心身)의 산란을 거두기에 힘이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수행에 남녀의 구별은 없으나 예부터 여인의 몸에는 오장(五障)이 있다 합니다. 첫째는 범천왕(梵天王)이 될 수 없고, 둘째는 제석천왕(帝釋天王), 셋째는 마왕(魔王), 넷째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다섯째는 불신(佛身)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근고수행(勤苦修行)을 쌓아 심의(心意)의 적연(寂然)을 계도(計圖)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좌선(坐禪)하지 않는 때에도 급히 심의(心意)를 통일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까?”

“수행이라 함은 평상시부터 영기(靈氣)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걸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와 평상시에, 다시 말해 행주좌와(行住坐臥) 및 평상시에 영기를 산란시켜서는 안됩니다.


영기(靈氣)를 한 곳에 집중하면 자재(自在)한 본성(本性)을 볼(觀) 수가 있습니다. 나는 아직 그 영역에 도달해 있지 아니합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묘지혜(妙智慧)의 문을 여는 것이 선결이 됩니다.


본래의 법성을 관(觀)함에 보통 여신(女身)은 구예(垢穢)가 많아 법기(法器)로 될 수 없다고도 하나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묘 청정(微妙淸淨)한 법신(法身)임을 증지(證知)케 하고 대승(大乘)의 문을 열어 무릇 온갖 고(苦)로부터 도탈(度脫)시켜 드리려 합니다.”


“묘지혜(妙智慧)가 나타나면 그것이 될 수 있습니까?”

“되고 말고요. 묘지혜(妙智慧)가 나타나면 인간의 진제(眞諦)가 깨달아집니다. 남녀(男女)의 몸을 초월해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열리게 되면 드디어 피안(彼岸)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때가 거의 도래(到來)하게 됐습니다.”


대사는 감개무량하게 수미산을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묘지혜가 열리면 자연히 피안(彼岸)에 도달하게 됩니까?”


이번에는 보모가 물었다.

“그렇지요. 깨달음이 열리는 대로 묘지혜(妙智慧)가 나타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은 모두 공(空)이며 원융무애(圓融無礙)하여 통하지 않은 바 없고 달(達)하지 못하는 바 없습니다.”


“묘지혜(妙智慧)는 어떻게 오온(五蘊)을 개공(皆空)하게 하는지요?”

“묘지혜를 햇빛으로 비유(比喩)하면 오온(五蘊)은 어두움(夜闇)에 해당됩니다. 햇빛이 비치면 어두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어떻게 사라지게 되는지요?”

“자연스러운 가운데 사라져 버리지요. 제암양휘(諸闇揚揮)의 묘체(妙諦)라 하겠지요.”


영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사에 물었다.

“오온이 개공(皆空)했을 때의 극치감(極致感)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일러 주옵소서.”

“우선 오온(五蘊)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서는 안되겠군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오온(五蘊)의 념(念)이 있습니다.


대원경지(大圓鏡智), 육근청정(六根淸淨)에 들지 못함도 육욕칠정(六慾七情)에 탐착하게 됨도 이 오온(五蘊)에 유래(由來)합니다.


오온 가운데 맨처음의 색온(色蘊)은 즉, 만물의 형상(形象)이며 이른바 안계(眼界)에 비치는 유형물질(有形物質)의 총해(總該)를 지칭(指稱)합니다. 수온(受蘊)은 감수 인상(感受印象)의 의념(意念)으로 경(境)에 대해 사물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상온(想蘊)은 연상, 사색(連想· 思索)의 의념(意念)으로 경(境)에 대해 사물을 상상(想像)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행온(行蘊)은 실행, 작위(實行· 作爲)의 의념(意念)으로 기타, 경(境)에 대해 성내고 탐하는 등속의 선악에 관한 일체의 마음의 작용과 신체의 행위입니다. 식온(識蘊)은 의식(意識), 기억(記憶)의 의념(意念)으로 경(境)에 대해 사물을 요별, 식지(了別· 識知)하는 마음의 본체입니다. 잘 알겠습니까?”


두사람은 걸어가면서도 대사의 말씀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마음의 의념(意念)이라 함은 무서운 것이에요. 여러 가지의 물질을 보면 이것을 인상(印象)으로 해서 마음에 감수(感受)합니다. 감수하면 욕심이 생겨 어떻게 하든지 갖고 싶다고 망상을 내며, 이제 얻으려고 실행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것이 얻어지고 구해져도 마음속에 깊이 의식으로 남게 됩니다. 거기에 환희(歡喜)나 비애(悲哀), 공포, 혐오, 원한, 번뇌, 애연(愛戀)이 생겨 유리전도(流離顚倒)해 버립니다. 이 오온(五蘊)은 각기 상인관련(相因關聯)하고 있습니다.


오온(五蘊)이 공(空)해지면 일체의 번뇌· 전도(煩惱· 顚倒)가 떨어져 없어집니다. 따라서 일체의 고액(苦厄)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만법이 공적무념(空寂無念)하게 된다면 피안(彼岸)의 묘락경지(妙樂境地)에 도달함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우선 안계(眼界)를 공(空)으로 할 것입니다. 눈에 비치는 일체가 심의(心意)에 동요(動搖)를 가져오지 않으면 번뇌망상은 생기지 않습니다. 형태가 형태로서 심의(心意)에 감수(感受)되므로 탐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형태(形態)를 무위(無爲)의 공상(空想)으로서 관(觀)한다면 본래 집착할 사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형상(形象), 제법개공상(諸法皆空相)을 깨달으면 그것에 의해 오게 되는 공무(空無)의 묘현불가사의(妙玄不可思議) 만법일리(萬法一理)의 오리(奧理)가 참투(參透)되어 일체고액(一切苦厄)의 인(因)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무량광(無量光) 무애광(無礙光)에 통효(通曉)하여 광명무한을 얻게 될 것입니다.”


두사람은 이제나마 대사의 심오한 진리에 접하게 되자 대사를 따라 수행하게 된 일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고행을 체험하고 있음으로 해서 진리를 직접 몸으로 체득(體得)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체험(體驗)으로 얻은 것은 천만언설(千萬言說)의 설교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세사람은 이렇게 법리(法理)를 대화하며 걷고 있었으나 이윽고 해도 저물어 왔으므로 하루밤을 지낼 동굴을 찾아 그곳에서 좌선을 틀고 밤을 보냈다. 이리하여 삼일간을 무사히 지내자 겨우 산중턱에 이르게 되었다.


이 변경(邊境)에 이르자 기온도 매우 차서 수족이 얼어오는 듯 했다. 그위에 정상에서 불어내리는 강한 산바람은 송곳으로 찌르듯 살을 에이고 뼈를 냉기로 쑤시는 것이었다. 위로 오름에 따라 사면(斜面)도 급경사로 변하고 더구나 눈얼음이 쌓여 발디딜 데가 없어 오르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오르는 고투가 계속되었다. 바위결이 칼날처럼 예리하여 조금만 닿아도 상처가 나고 피가 솟았다. 세사람 모두가 찔리고 베어져 피투성이었다. 추위는 갈수록 더해지고 그 위에 먹을 것도 떨어져 버렸다. 공복이 오래 계속되어 기진맥진한 위에 수족까지 얼어 움직이기조차 어렵게 되어갔다. 그러나 대사만은 맨발인데도 불구하고 괴로운 표정조차 없었다.


보모와 영련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필사적으로 대사를 따라 오르고 있었다. 이리하여 반시각쯤 올라가자 전방에 그리 높지않은 두그루의 나무가 보였다. 영련은 이를 보자 아무 다른 생각할 것 없이 달려갔다. 나무에는 이름모를 열매가 잔뜩 열려 있었던 것이다. 영련이 근처에 있는 나무토막을 들어 나뭇가지를 두들겨 열매를 떨어뜨리자 보모가 이를 돌로 깨어 세사람이 고르게 나누어 먹었다.


공복이 채워지자 몸에 온기가 퍼져 오르면서 피로나 고통이 꽤 경감해짐을 느끼며 다시 원기를 차리고 걷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다시 동굴을 찾아 세사람이 서로 안고 안으로 들었으나 추위는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다.


영련은 참을 수 없이 되어

“이 추위에는 도저히 견디어 배길 재간이 없사옵니다. 고목을 보아 불을 피울까요?”라고 하였다.


대사는 고개를 저으며

“보모! 영련! 심야에 이같은 산중에서 불을 지르면 어찌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불빛을 보면 산중에 굶주렸던 맹수들이 몰려 오겠지요. 그러면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되고 우리들도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굳이 불을 피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보다도 우리들은 서원을 발해서 구도하며 성도를 원하는 이상, 진심을 하나로 뭉쳐 심령을 한 곳에 모을 것이 간요(肝要)한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자극이나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심령은 곧 오히려 더 견고해져 갑니다. 천겁 만난을 상진(嘗盡)한 후에 응결된 일단의 신혼(神魂)이야말로 영원히 분산함이 없는 정과(正果)를 성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혼(神魂)은 장차 육체를 벗게 될 때는 삼천대천세계에 소요무애함을 얻어 대신통이 얻어집니다.


우리들은 정과성취를 희원(希願)해서 이곳까지 고행하여 온 것이므로 추위와 주림은 당연히 받을 뿐입니다.

만약 이러한 괴로움이나마 견디지 못한다면 정도를 증득할 가망(可望)조차 없습니다.”


대사는 사죄하려는 두사람을 제지하면서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들은 지금껏 적지않은 간난신고를 겪어왔습니다. 이제는 마치 높은 탑을 세워 정상의 지붕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신고(辛苦)가 어렵더라도 잠깐의 사이입니다. 보모와 영련이여! 보람과 긍지를 가집시다. 지금 한때의 보람과 긍지는 미래 만년의 광명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하여야 할 몸입니다. 스스로 괴로움의 극한에 부딪쳐 그것을 극복한 뒤에야 모든 사람의 고액을 이해하며 비로소 해탈케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대사의 말씀은 준엄하였으나 두사람을 자애(慈愛)하는 깊은 정이 뭉쳐 있었다.


보모가 사과하였다.

“우리들의 영기(靈氣)가 조금 해이(解弛)했었습니다. 대사님의 방금하신 말씀에 심신이 새로워지는 듯 합니다.”


영련도

“확실히 마음에 틈이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소서.”


두사람은 심기일전(心氣一轉)하여 마음의 광명을 찾았다. 그 덕에 추위도 반감된 듯 차디찬 동굴속에서 대사와 더불어 좌선하며 피로를 풀었다. 단좌명상(端坐瞑想)으로 입정(入定)하니 어느 사이엔가 시각이 흐르면서 신체가 따뜻해져 갔다. 세사람이 한결같이 무아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호흡을 조식(調息)하여 심호흡함에 따라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몸이 훈훈해 왔다.


법륜을 굴려 무아자재성(無我自在性)을 관한 것이리라. 이를 법륜상전(法輪常轉)이라 이름인지 무아(無我)중에 한이 없는 시호 · 보리(醍醐·菩提)의 묘법을 얻어 심신(心神)은 신비현경(神秘玄境)에 융합해 나가는 것이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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