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2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9. 짚신을 내어주어 흰코끼리를 타고 화를 면하다
불행히도 털난 괴인들(毛人群)에 붙잡힌 대사는 그중 강모(剛毛)로 뒤덮인 괴인(怪人)의 옆구리에 끼이어 뒤따르는 털난 괴인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깊은 산속으로 끌려갔다. 한참 가다가 어느 동굴앞에 이르자 둘씩 열지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깜깜한 굴속을 한참동안 가다 굴이 끝나는 곳에 이르니 다시 넓은 벌판이 나타났다.
사방이 밀림에 둘러쌓여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안전한 요새로 보였다. 털난 괴인들은 대사를 벌판의 한가운데에 내려놓자 대사를 중심으로 빙둘러 원형으로 앉았다. 소요가 진정되자 한순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둘러앉은 가운데에서 추장격으로 보이는 자가 일어서서 짖는 듯한 소리로 무어라 떠들자 시방 숲속으로부터 이백여명 이상의 털난 남녀가 동시에 뛰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대사 주위에 몰려들어 각기 기성을 발하며 소란을 떨기 시작하였다.
대사는 붙잡힌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살펴보니 이들을 야차(夜叉)나 괴물(怪物)로 본 것은 잘못 본 것이었고 모두가 미개한 토인들이었다. 그들은 등이 약간 높게 어깨는 앞으로 구부러져 있었으며 털이 많은 탓인지 몸에는 아무 것도 걸친 것이 없었다. 전신에 새까만 털이 나 성성(猩猩)이나 원숭이에 유사한 인간이라 말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몰랐다. 머리털은 짧고 눈은 움푹 파여 처절한 기미가 서린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이 토인들은 원시인의 일단으로 전연 외계와 차단된 세계에서 생활을 하면서 일상생활의 용기도 없이 사냥을 하여 그날 그날을 보내는 미개족속이었다.
대사가 끌려들어 간 동굴 통로가 외계와의 유일한 통로로 밀림에 둘러쌓여 조용히 생활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여행자가 잠자코 지내가기만 하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나 만약 말소리를 내면 산울림으로 울리는 데다가 동굴이 전성관(傳聲管) 즉 나팔의 역할을 하게되어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들에게는 그 소리가 손에 곧 붙잡힐 듯 가까이 크게 들리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도 동물처럼 느끼며 일단 이족(異族)이라고 보면 죽여서 먹는 식인종으로 이 지역에서 두렵게 여겨지고 있는 족속이었다.
소리를 듣게되면 동굴에서 나와 지나가는 자를 습격하여 생포한다. 평생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으므로 부근 사람들은 그들을 악마나 요괴로 알고 무서워해서 좀처럼 이곳을 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꼭 지나가야 할 때에는 결코 소리를 내지 않고 빨리 넘어가야 했다. 그래야 위험을 당하지 않았다. 지나온 마을의 장로가 “잠자코 아무 소리 내지 말고”라고 주의시킨 것도 바로 이를 의미하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윽고 대사를 잡았던 사내가 모두의 앞에 나서서 팔을 치켜들고 가슴을 치며 자기가 잡았다고 자랑을 하는 듯 기성을 지르며 무어라 떠들어댔다. 그러자 군중은 환성을 지르며 그 사내의 용기를 찬양하는 듯 환성을 지르더니 큰 둘레를 만들어 춤추기 시작하여 마침내 집단춤이 벌어졌다. 미친듯한 난무(亂舞)가 한동안 계속되더니 필경에는 피곤해진 모양인지 하나둘 주저앉는 자가 많아지더니 괴성이 줄어들고 춤도 끝난 듯 다시 조용해졌다.
춤이 끝나 조용하게 되니 다시 붙잡은 대사에게 관심이 쏠리지 시작하여 기괴한 눈빛을 번뜩이며 대사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대사를 붙잡은 털난 괴인이 대사앞으로 다가와 대사를 아래위로 세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대사가 신고 있는 짚신에 눈길이 멎자 기이한 듯 한참 동안 들여보더니 이를 가리키며 모두에게 무어라고 지껄여 대었다.
대사는 그의 시선이 짚신에 멎는 것을 보고 이것이 기이하여 갖고 싶은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짚신을 벗어서 그에게 주었다. 털난 인간은 빼앗듯 잡아채더니 앞뒤를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제발에 신고서 부근 일대를 돌아다녔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것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게 짚신 신은 발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족속들 사이에서 부러운 듯 소요가 일어나더니 이삼인이 나와 진기한 듯 그의 발의 짚신을 보고 있더니 대사에게 다가와 자기에게도 달라는 듯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대사는 이를 보자 살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언뜻 들었다.
「아직 바랑속에는 약 백켤레 가량의 짚신이 들어있다. 이것을 주고 그들 모두의 환심을 사면 혹시 바로 죽이게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도중에 도피해 나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 바랑에서 짚신을 꺼내 한 켤레씩 털난 토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를 보고 있던 군중들이 모두 나서서 손을 내밀며 달려왔다. 삼백여명의 토인들에게 태부족인 짚신 때문에 이제는 서로 빼앗는 난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한 켤레의 짚신을 한쪽발에만 꿰어 신거나 한사람이 짚신 세 켤레를 갖거나 하므로 결국 들판의 군중들이 짚신으로 인해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수라장이 되어 아무도 대사를 의식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대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슬슬 뒷걸음질치며 빠져나와 맨발로 동굴 입구를 향해 달음질로 내달았다.
한데 대사가 기억한 동굴은 나타나지 않아 어디를 찾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발은 형극(荊棘)에 긁히고 찢기며 큰가시에도 찔려 상처 투성이로 변했다. 그러나 그대로 있어서야 발견되기 십상이었다. 할 수 없이 발길닿는대로 밀림속으로 들어갔으나 도대체 자신이 어디를 걷고 있는지조차 전연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발이 점점 막대처럼 빳빳해지며 걷기가 고통스럽게 되어갔다.「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그때 앞쪽에서 한 마리의 코끼리가 나타나 대사가 있는 쪽으로 유유히 향해오고 있었다.
이를 본 대사는「겨우 털난 토인의 난에서 헤어나자마자 또 다시 백상(백상)의 출현이란 말인가」하고 탄식했다. 「어찌해야 할까?」망설이며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젠 틀렸다고 생각하며 심신을 평정히 가지고 달려오는 코끼리를 응시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코끼리는 대사곁에 오자 갑자기 코를 상하로 흔들면서 귀는 부채로 바람을 일 듯 움직이며 연민(憐憫)하는 눈으로 대사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대사도 다시 가만히 코끼리를 쳐다보았다. 어떤 대상을 공격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가 분명했다. 한동안 코끼리를 마주 보고 있었으나 야생의 코끼리가 아니고 잘 순육된 코끼리처럼 보였으므로 대사는 이 흰코끼리는 혹시 불타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 보내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옛 경전에 불타는 백상(白象)을 타고 하계(下界)하셨다고 했으므로 이 백상도 분명히 불타께서 보내신 백상에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대사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백상의 코와 얼굴을 어루만져 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구해 주고자 왔는가? 만약 그렇다면 코를 세 번 흔들어 다오.” 하니 부사의하게도 대사가 말한대로 상하로 코를 흔드는 것이었다.
대사는 이 영수(靈獸)의 태도에 기뻐하며
“그대가 나를 구해주면 장래 내가 수미산에서 득도하여 성도한 때에 반드시 축생도(蓄生道)를 해탈하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사람말을 일아듣는 듯 코끼리는 큰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이었다. 마침 이때 털난 토인들이 대사가 도망해 나간 것을 알고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하여 이쪽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사는 놀라며
“자아! 백상이여! 이 위기를 구해다오”말이 끝나자 마자 백상은 긴 코로 대사를 감아 올려 등뒤에 태우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백상의 등에 타고 있자니 그대로 흰구름에 타고있는 기분이며 잠시 사이에 밀림을 뚫고 나와 금륜산(金輪山)기슭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마 곧장 사오십리 달렸을까, 평지에 나오게되자 백상은 조용히 대사를 땅위에 내려놓았다.
겨우 한숨 돌리게 된 대사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백상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백상이여! 참으로 고맙다. 그대 덕택에 생명을 건지게 됐구나. 그 은혜는 잊지 않겠다. 이젠 색시보(塞氏堡)부락도 가까운 것 같으니 여기서 그대와 이별해야겠구나. 장차 정과성취(正果成就)한 때에는 기필코 구원하리라. 안심하고 산에 돌아가거라.” 하고 말하였으나 백상은 돌아가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땅위에 그냥 앉아 버렸다.
지금껏 대사의 말을 고분고분 잘듣던 코끼리가 갑자기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눈도 껌벅이지 않고 대사를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 이 백상은 나와 같이 수미산에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백상에게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백상의 목을 손으로 쓸어 주면서
“백상이여! 그대가 금륜산에 돌아가지 않겠다 함은 나와 더불어 수미산에라도 가고 싶다는 것인가? 혹시 그렇다면 머리를 세 번 끄덕여 보아라.”
백상은 분명히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 확실하게 세 번을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긴코를 등위에 올리며 여기에 오르라는 듯이 권하는 동작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대사는 깊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인 코끼리가 자신의 구도에 몸을 바치려 하는 것이다.
“백상이여! 그대가 그처럼 불연이 깊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기상(騎象)으로 되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돼. 수다한 간난신고를 발섭(跋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있는지?”
백상은 머리를 크게 끄덕이면서 코로 어서 타라는 듯 등 위를 가리켰다. 대사가 기뻐하며 등 위에 올라앉으니 백상은 대사를 비호하듯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동작은 예부터 대사에 봉사하여 온 듯이 아주 익숙하였고 기상(騎象)이 됨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대사와 백상은 색시보(塞氏堡)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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