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2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7. 대사, 건반(乾飯)을 신아(神鴉)에게 주고 난을 면하다
이튿날 아침 세 사람은 노인으로부터 정성을 다한 식사를 대접받은 후 다시 심신을 가다듬어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석양 전에 신아령을 넘을 예정으로 길을 재촉하여 정오에는 산중턱에 이르렀다. 근처 일대는 삼림이 우거져 있었으며 가지 가지 모양의 아차석암(峨嵯石巖)이 홀립(屹立)해 있었다. 무기미할 정도로 적막하여 영련은 불안이 고조되어 갑자기 대아새에 습격받지 않을까 하고 겁내면서 대사 뒤를 바짝 따라 올라갔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시 가파른 길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중복까지 내려오니 멀리 떨어진 건너편 산기슭에 큰 부락이 보였다.
대사는 손을 들어 가리키며 두사람에게 말했다.
“자! 보세요. 아래쪽에 부락이 보이지요? 자! 어서 가서 쉽시다.”
세사람은 마음이 경쾌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안과 긴장탓으로 보조를 빨리해서 계속 걸었던 탓에 무리가 되어 다리가 막대처럼 뻣뻣하였다. 반나절에 오십리 이상을 걸은 데다가 더욱이 등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고행이었다. 부락이 눈에 보이자 긴장이 이완되어 쌓인 피로가 단번에 덮쳐 세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아 잠시 쉬게 되었다.
체력이 약한 보모는 고통에 못이겨 거의 쓰러지다 싶이되니 이를 본 대사가 보모팔을 붙잡고 안으며
“대아새도 만나지 않고 산을 넘었으니 여기서 잠시 휴식합시다.” 라 했으나
영련은 보모가 기진맥진한 것을 알면서도 대아새의 공포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사님! 어제 노인이 우리들에게 될 수 있는대로 한낮에 빨리 넘어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 조금이나마 쉬게 되면 피로가 더 겹쳐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단 한번 원기를 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니 계속 나아가십시다.”
그러나 보모는
“여기까지 왔어도 아무 일 없었으니 잠시 쉬어도 별 일 없겠지요. 조금 다리를 쉬어야 빨리 가볍게 갈 수 있지 않아요?”
보모가 너무나도 피곤해진 듯 하여 영련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어 결국 앉아 쉬게 되었다. 한참동안 쉰 후 삼인이 출발차 짐을 지고 막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황급하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대아새 소리가 들렸다. 세사람은 가슴이 철렁하도록 놀랬다. 소리나는 쪽을 보니 숲의 건너편으로부터 대아새의 큰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귀가 아프도록 황급히 울어대는 소리는 초목까지 흔드는데 하늘을 새까맣게 덮어 햇빛을 가린 그 기세를 본 사람은 누구든 공포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세사람의 머리 위에서 선회하던 새떼는 점점 윤곽을 좁혀 내려오면서 즉시 세사람을 덮칠 기세였다. 보모와 영련은 이미 간담이 떨어진 듯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해 하며 대사 옷깃을 잡고 빙빙 돌며 안절부절할 뿐이었다.
대사는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침착한 마음으로 그대로 땅위에 앉아 두사람에게 말했다.
“나에게 묘안이 있으니 두사람 같이 앉아 심신(心神)을 안정시켜요.”
대사의 강한 어조에 두사람은 지시대로 겨우 앉았으나 심신의 안정은커녕 심신이 멀리 어디로 날아가 버린 듯 오직 대사만 붙잡고 찰싹 달라붙었다. 누구나 돌연한 공포에는 정신이 나가고 마는 법이다. 대아새 무리의 선회는 그로부터 반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세사람을 습격할 기미가 없었다.
맹렬한 기세로 몰려온 대아새떼가 그들을 공격하지도 않으면서 돌아가지도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아새의 눈에도 영기(靈氣)의 명암(明暗)이 비쳤던 것일까? 아니면 대사가 지닌 위덕(威德)에 대아새떼의 영맹성(獰猛性)이 위축된 탓이었을까? 대사는 여유있게 자루 속에서 건반(乾飯)을 꺼내어 그 일대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평지에 뿌렸다.
이를 본 대아새떼는 일제히 내려와 새까맣게 땅을 딛고 서로 다투면서 건반을 쪼아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큰 자루의 절반을 뿌리고 나니 하늘에서 나는 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대사는 두사람을 재촉하여 부리나케 이틈에 도망해 나왔다. 굶주린 대아새떼는 어느 한 마리도 옆을 돌아보지 않고 다투어 건반을 쪼아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옆으로 지나가도 모르고 있었다. 세 사람이 달아나도 전혀 쫓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해가 바로 서산에 질 무렵 새사람은 겨우 목표했던 부락에 이르를 수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 내려오다 보니 돌에 찢긴 영련의 왼쪽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흘렀고 보모의 오른쪽 다리도 부상을 입어 고통스런 모습이었다. 대사는 우선 자신의 손수건을 찢어 두사람의 상처를 붙들어 매었다. 세사람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았는지 부락의 장노로 보이는 노인을 에워싸고 한 떼의 부락민이 몰려왔다. 모두가 세사람을 매우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장로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비구니 스님이신 듯 한데 근처에 계시는 분들은 아니군요. 어디서 이곳에까지 오셨습니까?”
“저는 묘선이라 하오며 흥림국 야마산에 있는 금광명사에 있사옵니다. 실은 서원을 발원해서 도반(道伴) 두사람과 같이 수미산으로 가는 중인데 신아령(神鴉嶺)을 겨우 넘어 지금 바로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점점 수가 불어난 군중들은 대사의 말을 듣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대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직껏 무사히 신아령을 넘은 자가 없었다. 거짓말 아닌가?”
“신아(神鴉)의 가해없이 넘어 올 수가 없다.”
“정말이라면 이 니승들은 무슨 마력(魔力)을 지녔음에 틀림이 없다.”
각기 떠드는 마을 사람들을 제지하며 장노가 다시 말했다.
“내 이분들을 보니 보통의 비구니 스님이 아니다. 더구나 수행을 쌓는 분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서부터 삼십육도(三十六道)에 이르기까지 제불(諸佛)이 수호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신아(神鴉)는 영조(靈鳥)이다. 선불(仙佛)이 수호하는 분이기에 가해가 없었음이 틀림없다. 이처럼 우리 마을에 오시게 된 것도 인연이라 생각된다. 오늘 밤은 우리 마을에 모시기로 하자.”
마을 사람들에게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호의로 맞아주시니 매우 고맙습니다. 우리에게는 간단한 소식(素食)이면 충분하옵니다. 내일 아침에는 또 일찍 떠나야 합니다.”
이때 기품이 있어 보이는 한 부인이 앞으로 나서며 “다행히 제 집에 빈 방이 있습니다. 좋으시다면 마음놓고 쉬어가시기 바랍니다.”하고 일행을 모실 것을 원했다.
대사는 읍례(揖禮)로 감사를 표했다. 귀부인의 집으로 안내받자 우선 목욕을 하고 난 다음 집안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집안 사람들 역시 기상과 품위가 풍기는 기개높은 대사와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따뜻한 정성으로 대접하였다. 잠시 후 마을 유지들이 차례로 방문하여 서로 자기 집에서 대접하고 싶으니 하루 와 주십사 하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대사는 호의에 감사하며 사절하는 대신 여러 사람들에게 고루 이야기할 수 있는 설법회를 개최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 소식이 온 마을에 전해지자 모두들 저녁식사를 일찍 마치고 서둘러 대사가 머무르고 있는 넓은 집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사의 설법이 시작되자 미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넓은 앞뜰에 앉아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대사의 법문은 이제까지 이 마을에서 들어본 일이 없는 심원한 것이었다. 대사는 인간 본래의 진제(眞諦)를 구해 영생불사(永生不死)를 서원(誓願)하여 이를 성취할 필요를 자상하게 설명해 나갔다. 대사의 설법에 깊이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대사는 청정한 거실에 들어 좌선으로 휴식을 취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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