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2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5. 대사일행, 길을 잃다
수미산은 흥림국에서 멀리 정남의 방향에 위치해 있지만 대사일행은 하늘까지 뻗어오른 험준한 산맥의 녹연(麓沿)을 따라 서쪽으로 돌아가는 노정에 들어 구법행각의 일보를 내딛었다. 남쪽은 험준한 고산 준령인지라 될 수 있는 대로 골짜기의 평로로 돌아가며 나아갔다. 하루종일 걸려도 산골짜기 길이므로 얼마 나아갈 수가 없었다.
대사는 이번 행각에 각별한 결의를 비장(秘藏)하고 있어서 보모와 영련에게 특별히 당부하여 대사의 이름이나 출신 등 일체를 입밖에 내지 않도록 명하여 그저 한사람의 행자로 보이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대사는 자신을 숨기고 밤에는 부락근처 사원에서 자고 사원이 없는 곳에서는 농가에 숙박하며 어떤 경우에는 들과 산에서도 노숙하면서 행각(行脚)을 계속해 나갔다. 아침으로 일찍 서둘러 떠났고 밤에는 무리없이 일찍 잠에 들었다.
주림이 오면 민가 문앞에 탁발을 하며 세 사람은 얻은 대로 같이 나누어 먹으며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영련은 대사를 따라 니승이 되었지만 원래 대사의 감시역으로 백작사에 들었고, 금광명사에 옮겨와서도 사원이 신도 보시로 풍족하였기에 걸식의 기회가 없이 풍부한 생활속에서 수행공부를 해나왔다. 따라서 한번도 탁발을 나서보지 않았으므로 집집마다 돌면서 문전에서 구걸함은 죽기만큼이나 싫었고 굴욕감과 수치감에 자신을 괴롭히며 울려해도 울 수 없는 신고(辛苦)의 고행을 맛보게 되었다.
미지(未知)의 민가 문앞에 서서 한잠 한끼를 구걸하는 행각(行脚)생활은 실로 냉엄한 인정의 한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진실한 목적이 있어 인생의 진제(眞諦)를 회득(會得)하지 못한 사람에 있어서는 과거의 체면을 일시에 잘라 버리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는 불교의 발흥기여서 불타교법이 겨우 인정받은 때이기에 행자에 대한 태도는 존경과 냉대의 양극단으로 나뉘어져 기꺼이 반기며 공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기가 바쁘게 내쫓는 사람도 있었다. 나누어 주어도 이교도라 하며 이상한 차별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련은 언제나 탁발순행할 때가 되면 내심 수치감에 견디기 힘든 표정으로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마지 못해 집집을 돌 뿐이었다.
대사는 이를 보고 타일렀다.
“영련! 그대 심경은 모르는 바 아니나 행자는 시방사람의 공양을 받아 시방사람과 선인(善因)을 맺어 시방사람을 구제함이 목적입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대사님! 잘 일러 주셔서 알고는 있사오나 하자고 나서면 좀체로 기가 내켜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집이 있어서이며, 나(我)라는 의식에 굳어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네가지 상(四相)을 떠나지 못한 까닭입니다. 과거의 체면에 집착하며 현재 신분의 고하에 얽매여 아직 나(我)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때문입니다. 나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 나와 타인과의 차별도 없어집니다. 부끄럽다는 사념을 넘어서 상대를 연민(憐憫)히 여기면 참된 자기와 참된 상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함은 가합(假合)의 색체(色體)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법개공(諸法皆空)중에 항존성(恒存性)은 없으며 인연성(因緣性)인 것 중에 실재성(實在性)은 있지 않습니다. 소아(小我)를 초월하여 무아(無我)의 대아(大我)에 융합할 것입니다. 그대는 아직 작은 자아(自我)중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감각(感覺=受), 표상(表象=想), 의사(意思=行), 의식(意識=識)이 생겨 이것에만 잡혀있는 것입니다.
모든 색상은 무상하며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번뇌이며 비애입니다. 행자는 세상을 버림과 동시에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은 참다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나를 버리는 것은 참다운 자아를 찾게 한다는 뜻입니다. 항시 견디기 어려움을 견디며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수행자의 마음자세이며 상식인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갈수록 큰 일 뿐입니다. 세상 일에는 선악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두타행(頭陀行)으로써 선연(善緣)을 맺는 것입니다. 밥 한공기를 보시(布施)하면 그들에 일부의 불연(佛緣)이 움트게 됩니다. 우리들이 정법을 득도한 때에는 그 법으로써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수치스럽다, 비참하다고 여기기 전에 하루 빨리 법을 구할 결심을 굳게 하여서 공양으로 생각해서 보시한 사람이나 동냥 걸식으로 알고 준 사람도 모두 교화 제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또한 필히 그리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탁발에 있음이 아니고 도를 구하여 바로 모든 중생이 불문에 귀의해서 영원의 정각을 이루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얼마라도 간난 고행을 거듭하고 주림에 견디며 참기 어려운 때에는 중생에게 불연을 맺어주고 탁발걸식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대사의 강한 어조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서원하는 보리심(菩提心)이 충일해 있었다.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의 흐림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옵니다. 지금까지는 불타께서 소승의 마음을 시험하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대사님의 가르침으로 진정 미혹(迷惑)이 없어졌습니다.”
영련의 얼굴은 환히 밝아졌다. 대사도 영련의 이해가 빨랐음을 기뻐하며 보모와 함께 영련을 칭찬하였다.
세사람의 여행은 비교적 평온한 과정이었다. 종종 곤란이 있었으나 세사람이 힘을 합해 극복하여 별일없이 보름동안을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나 16일째되는 날 대사일행은 험준한 고산대악(高山大嶽)의 절벽에 대하게 되었다. 산밑에서 쳐다보니 험준한 봉우리가 하늘높이 솟아올라 정상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산허리에는 만년설이 덮여있어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남과 북에는 각각 동서로 뻗은 크고 깊은 협곡이 있어 그 연변에 겨우 길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숲이 무성하여 무척이나 보행하기에 곤란해 보였다. 남쪽편의 길은 보기에도 험난하므로 세사람은 북쪽편의 작은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등반해 감에 따라 잡목이 빽빽하고 울창하여 낮인데도 어두웠고 길은 기구(崎嶇)함이 격심하여 양장(羊膓)과 같았다.
세사람은 무성한 가시덤불에 발을 찢기며 몇 번을 나뒹굴면서 계속 올라갔다. 위를 쳐다보면 현애 절벽이요, 밑을 내려보면 천인(千仞) 협곡이었다. 세사람은 넘어지고 엎어지며 기구철요(崎嶇凸凹), 격심한 산길을 돌아가며 나아갔으나 이윽고 날이 저무니 대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보모와 영련에게 야숙할 것을 명했다. 요행으로 절벽쪽에 동굴이 뚫려 있음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들어가 대사는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정좌명상에 들어갔다. 영련은 처음으로 노숙하는 산중에서 몸을 떨고 있다가 “행자는 항시 심신(心神)의 법륜을 굴려야 합니다. 공포를 떨치고 어서 앉아요.”라고 하는 대사의 말에 위안을 느끼고 보모와 같이 대사를 향해 정좌하였다.
다음날 새벽녘이 되자 계속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산, 또 산 뿐이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대사 일행이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서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믿었으나 실은 북쪽을 향해 걷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조차 볼 수 없는 밀림 속을 방황하며 한길이 넘는 잡초를 헤치면서 고행을 계속한 끝에 겨우 산맥을 넘게 되었다.
험한 비탈길에 넘어지기도 하는 가운데 발에 물집과 티눈이 생겨 아픔에 신음하며 계속 내려가다 보니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야 인가 드문 부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사는 한 집 앞에 서서 숙박을 청하였다. 보모와 영련은 피로와 공복에 금시 쓰러질 듯 하면서도 사력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집안에서 친절해 보이는 한 노인이 나와 세사람을 집안으로 맞아들여 주었다. 이집은 노인 혼자 사는 집이어서 안심이 된 세 사람은 긴장을 풀자마자 곧 자리에 쓰러졌다. 지치고 허기져 우선 마음이 놓이니 편안한 기분으로 쉴 수 있게 된 것만도 다시없이 기뻤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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