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1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8. 재상 “아나라(阿那羅)”,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간(諫)하다
한편 노재상 “아나라”는 거듭되는 묘장왕의 횡포를 못내 통탄해 마지 않던 차제에 끝내, 공주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에 접했다. 당황하여 형장에 달려갔으나 이미 처형이 끝난 뒤여서 군중들은 하나같이 묘장왕의 무도함을 원망하면서 흩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공주의 처형과 실종을 위요한 일련의 신화같은 소문은 어느새 온나라 안에 퍼져 사람들은 이 기적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며 분분한 뒷공론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공주는 과연 처형된 것인가?」
「불연이면 다시 어디에 붙잡혀 갇혀 있는가?」라는 의문을 몇몇 사람이 제기한 반면에「아니다, 공주는 불가사의한 불타의 이적으로 분명히 살아 계시다. 공주를 찾자.」라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공주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처형의 날로부터 사십구일이 지난 어느날, 한사람의 나무꾼이 서남방에 자리잡고 있는 향산(香山)에 벌채하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어디서인지 난데없는 청향(淸香)이 그윽하게 감도는 것을 느끼고 이상한 향기가 풍겨오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점차 산속깊이 들자 상서(祥瑞)로운 구름과 자하(紫霞)가 이어져 있어 이상히 여기며 계속 산모퉁이를 휘돌아 따라가 보니 갑자기 탁 트인 평지의 송림에 이르게 되었고 그 가운데 낡은 암자가 한 채 있음을 보았다. 초부(樵夫)가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한 사람 기품높은 낭자가 암자 안에서 정좌수행하고 있었다.
초부는 직감적으로 분명히 공주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소리없이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낭자의 전신에서 풍기는 영기와 덕성으로 보아 공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자 경악과 기쁨에 흥분한 나머지 한달음에 산을 뛰어 내려와 곧장 재상부(宰相府)에 이 사실을 고(告)하였다.
직접 초부를 대면하여 모든 사실을 듣고난 노재상은 너무나 의외이므로 반신반의하였다. 그러나 초부의 태도가 너무나도 진지하고 공주의 인상이 평소의 인상과 여러 가지로 일치하는지라 초부의 말을 듣고있는 사이에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보려는 마음이 일어났다. 노재상은 그리하여 자신의 행적을 비밀에 붙이도록 부하에게 엄명한 뒤 초부의 안내를 받으며 단신으로 말에 올라 향산으로 향하였다. 이윽고 송림에 이르러 암자로 들어가 틀림없는 묘선 공주임을 확인하자 노재상은 공주 앞에 엎드리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아나라는 울먹이는 가운데 공주의 건재무사하심을 천지신명과 부처님에게 감사했다. 공주는 시종 묵연해 있었는데 그 모습에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가까이 하기 어려운 위엄이 그 영기와 아울러 더해 있었다.
아나라가 겨우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공주를 마주 대하자 공주는 아나라의 얼굴을 감개무량한 듯 고요히 바라보더니 이어 미타불의 무량법문(無量法門)을 설(說)하기 시작했다. 공주의 법문(法門)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실하여 아나라를 감동시켰다.
공주의 설법에 감동한 노재상은 죽음을 무릅쓰고 왕께 간하여 공주의 수행을 정식으로 윤허받아 새로운 불법의 가르침을 널리 펼 것을 결심하면서 보살 그대로의 신기(神氣) 거룩하고 자비심 가득한 유화한 공주의 모습에 정성으로 합장 예배코 자리를 물러 나왔다.
공주를 무리하게 궁전에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곳에서 뜻대로 수행에 전념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아나라는 돌아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왕의 마음을 돌이켜야만 한다고 굳게 결심하면서 공주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궁전에 돌아온 재상 아나라는 묘장왕을 어떻게 해서 개심시킬까 하고 주야로 깊이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국에는 공주의 무사생존이 신불의 덕화임을 굳게 믿고 불타교의(佛陀敎義)로서 공주의 실상을 그대로 알려 불법의 위대무변한 설시법문에 귀의시키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묘장왕전에 나아간 노재상 “아나라”는 지금까지의 뜻깊은 경위를 설명하고 공주가 지금 향산에서 수행하고 있음을 알렸다.
묘장왕은 크게 놀라며 계속해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적(異蹟)을 일으키는 불법묘리의 광대무변함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묘장왕은 더 이상 묘선공주를 처형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광대무변의 불은(佛恩)을 실감치 못한 묘장왕은 왕으로서의 체면과 국치의 명분상 일단의 처형명령을 즉시 철회하는 것을 주저하는 듯 했다.
“상감마마! 참으로 인자하신 주군은 과오를 고침에는 꺼리고 망설임이 없다 하옵니다. 또한 참으로 지혜있는 왕은 덕력으로 민심을 감복시킬 뿐이며 참으로 용기있는 왕은 바른 일에 결단으로서 처리할 뿐이라 하옵니다. 어진 왕들은 인민과 마음을 함께 했으며 침착, 냉정, 총명, 지혜, 자애 어느 한가지 모자람도 없었사옵니다. 지금 상감마마께서는 경거, 횡포, 무지, 가혹의 무도한 왕으로 바뀐 바 많사옵니다. 어찌 만백성의 어진 어버이로서 될 도리이겠사옵니까? 충심으로 바라옵나니 지금까지의 생각을 고쳐 주시옵소서.
공주를 허락하여 용서하시옵고 금후 수행을 뜻대로 하도록 해주시기 복망하옵나이다. 뛰어난 보살로서의 공주마마가 태어나신 것만 해도 우리 흥림국의 영예요, 자랑이옵니다. 최고의 보살의 현현이라 아뢰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의 큰뜻을 살펴 베푸시와 소신의 소원을 들으시어 공주 수행을 윤허하옵소서.
이번 가을이야말로 상감마마의 크나큰 자애의 영을 백성에게 나리시와 백성이 존경하고 의지하는 공주의 대특사를 포고하여 온 백성이 상감마마의 자애심에 감복과 축도를 올리도록 하옵소서.
그리 된다면 만백성이 마마를 찬양하고 심복할 것이오며 왕통의 만세를 기원하며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양 무릎을 꿇고 고두간청(叩頭懇請)하는 노재상의 야윈 양뼘에 왕이 일찍이 보지못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나라”재상의 절절한 애소와 비장한 결의에 왕의 마음이 어느만큼 풀어지는 듯했다.
“잘 알겠노라.”
왕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아나라여! 이제 짐이 묘선에게 모든 것을 인허하면 백성들은 왕명을 가벼히 여기게 될 것이고 나아가 이를 악용한 무리들이 주동하여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나라가 극히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그것은 상감마마께서 공주의 진정한 소성(素性)을 알지 못하심입니다. 우리 흥림국의 백성은 어느 누구도 공주를 경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사옵니다. 또한 마마께서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사오나 천축(天竺)에서 전래된 불도신앙에 대부분의 민중이 귀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앙의 힘은 어떠한 힘으로도 압박할 수 없사옵니다. 박해에도 아무런 효력이 없사옵니다. 올바르게 신앙을 허락하여 민심을 위안 안정케 하고 인륜도덕의 길잡이가 되게하여 모든 중생이 바른 삶을 갖도록 해 준다면 이는 왕도(王道)의 나아가는 길과도 같은 것이라 만백성이 마마를 흠모해 마지 않을 것입니다. 바르고 광대한 불법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여 국교로 삼는 것이 가장 옳다고 여기나이다.”
“아나라여! 그대는 짐(朕)에게 설교를 함인가? 아니면 개종을 권유하고 있는가?”
“설교가 아니옵니다. 진심의 말씀이옵니다. 또한 개종을 권함도 아니옵고 바르고 큰 위에 순화된 아미타불도(阿彌陀佛道)에 귀의함이 바른 도리라 여기올 뿐입니다.
공주마마가 상감마마를 경애하는 마음과 백성이 마마를 경모하는 마음을 소직(素直)히 인정해 주시옵소서. 지금 백성들은 공주마마로 인해 보리심의 빛을 얻어 마음깊이 밝은 생명의 빛을 얻고 있사옵니다. 원하옵나니 아집을 버리시와 과실을 그대로 인정하시어 공주 수행을 허락하소서. 백성들의 한결같은 간청이오니 들어주시옵소서. 지난 날에 집착치 마시고 오히려 백작사의 재건을 명하실 일이옵니다.”
묘장왕은 고개를 떨군 채 아나라의 말을 들으며 깊이 고뇌하는 빛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왕을 보고 “아나라”는 다시 신앙의 자유와 구도의 필요성, 공주의 갸륵한 마음과 그 교화, 그리고 진정한 왕도 등에 대해 순순(諄諄)히 설명해 나갔다. 아나라의 말은 흡사 폐부를 찌르고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고뇌하는 묘장왕, 한마음으로 응시하는 아나라, 주신(主臣)의 두사람 사이에 괴로운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 밤의 어둠이 내려 깔리고 있었다. 그들은 궁녀가 와서 등불을 밝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두사람의 그림자는 화석과 같이 등불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묘장왕은 큰 한숨을 내쉬고 나서
“아나라여! 그렇다면 짐(朕)은 어떻게 함이 좋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낙담한 왕의 목소리에 “아나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현명하신 마마! 역시 후덕하신 우리 마마이십니다. 지금까지 맺히어 온 일을 풀어 나가자면 우선 망혼(亡魂)을 위로하여야 하니 오백니승의 유골을 모아 거국적으로 정중히 위령제를 거행함이 가장 우선이로소이다. 다음으로 백작사를 재건케 하오며 옥에 갇혀있는 장로 니승을 석방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장로 니승을 그대로 주지(主持)직에 임케 하여 더 한층 불법홍포에 진력케 함이 좋을듯 싶사옵니다.
또한 민중의 수행에 대해서는 이를 금지시키거나 모욕하는 일이 일체 나오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또한 백작사 재건시에 상감마마께서 스스로 참배해 나아가신다면 만백성이 마마를 우러르고 성지(聖旨)를 찬탄하와 만수무강을 기원할 것이옵니다.”
왕은 다시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묘선은 어찌하여야 하겠소?”
“물론 공주의 출가수행을 허락함이 마땅하옵니다. 그러나 백작사는 이미 소실된 이상 그곳으로 되돌아 올 수는 없겠나이다.”
“그러면 어디로 출가시켜야 하오?”
“공주마마는 지금 향산의 암자에 계십니다. 안타까운 일이오나 공주마마는 궁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곳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전심하실 것이옵니다. 소신이 알기로 향산(香山)의 영봉 가운데에 야마산(耶摩山)이 있고 그 산중턱에 금광명사(金光明寺)라는 고찰이 있사옵니다. 본래 승려들이 모여 수행하고 있었사오나 맹호가 출몰하여 그 주위를 맴돌아 지금은 비어 황폐해져 있사옵니다. 이를 개축하여 공주마마의 수행도량으로 함이 어떠 하올지요? 절호의 도량이라 생각되옵니다.”
묘장왕은 아직도 팔짱을 낀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직 마음속 어디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구석이 있어 주저하며 결단을 못내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아나라”의 피를 토하듯 하는 열변은 이로정연하여 일구일언이 깊은 충정심에 어리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된 왕은 자신의 과거의 행위를 되돌아보며 깊은 회한(悔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나라”의 간언은 평상시의 간언과는 달리 죽음을 각오하고 진언하고 있음을 묘장왕은 충분히 감지(感知)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주는 출생할 때 아니 그 이전부터 전혀 타인과 달랐고 어려서부터 보통 사람과 다른 뚜렷한 한가지 목적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내면으로부터 자연히 형성되어 나오는 분위기는 주위의 사람들을 덕화하며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온 것을 왕으로서도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으며 누구에게나 경모되는, 오로지 일심으로 신앙의 길을 나아가는 공주의 수행자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저지될 수 없는 숭엄한 정신적 차원임이 묘장왕에게도 절실히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왕은 홀로 생각하되「그러니 공주는 애초에 어떠한 사명을 띠고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저 백작사를 단숨에 삼킨 맹화의 화재가운데서 이적으로 살아났고 참수 교살의 사형으로도 공주를 처벌할 수 없었음은 공주가 이미 미타불에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어찌하여 지금껏 이점에 기를 차리지 못했던가?
그렇다. 공주 생탄 축하연에서 공주가 불도를 선양할 것이라는 말을 어떤 노도인이 한 적이 있다. 무엇에 홀려 그 일을 지금껏 잊고 있었단 말인가? 오백여명의 고덕니승을 소사(燒死)시킨 그 죄상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나는 무지몽매했었구나. 이 많은 죄를 어찌 벗을 것인가?」
한순간에 어리석은 인간의 긴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과오를 완전히 깨달은 왕은 크게 참회하며 가슴아파 했다.
“아나라, 생각해 보니 짐(朕)은 참으로 큰 죄악을 저질러 왔소. 지금까지 그릇된 망상에 빠져 있었소. 이제 그대에게 모든 것을 위임할 것인즉 부디 잘 처리해 주오. 불교의 신앙과 포교를 인정할 것인즉 만백성에게 전해 주시오. 진정으로 당부하는 바이오.”
말을 마치자 묘장왕은 침통한 표정으로 힘없이 내전으로 물러갔다. “아나라”재상은 늦게나마 깊은 참회로부터 우러나오는 왕의 정직한 고백을 듣고 참회회한(懺悔悔恨)의 심정에 감사하며 묘장왕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 광대무변의 불은(佛恩)이 왕에게도 내리기를 기원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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