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1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7. 공주, 사형을 받으며 기적이 일어나다
백작사를 소각한 다음날 아침 호전장군 진호(護殿將軍 眞虎)는 왕께 참예하여 공주의 주변에서 일어난 기적은 숨기고 시종을 보고하였다.
묘장왕은 진호장군의 보고를 받고 한순간 침통한 표정이 되었으나 곧 기분을 돌이켜 「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금후로는 이와 같은 사건은 다시 없으리라」고 여기게 됐지만 그래도 아비로서 친딸을 죽인 자책감 때문에 즉시 내실에 틀어박혀 한동안 미동을 하지 않았다.
백작사를 소각한 소식은 즉각 묘음, 묘원 두 공주에게도 전해졌다. 두 공주는 너무나 가련한 동생의 불행을 탄식하며 비통에 잠겨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부왕의 대노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죽이기까지 하리라고는 차마 생각도 않았는데 후마마의 서거에 이은 동생의 참혹한 죽음을 또 당하게 된 비통함과 애절함에 두 공주들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온 나라가 비통에 젖어 모든 거리가 소리없는 암운에 뒤덮인 듯 했다. 민중은 언제나 바르게 살면서 강자에 억압받는 약자를 성원하기 마련이다. 백작사 근처를 위시한 모든 백성들도 공주가 살아있음을 묘장왕이 알게 되면 곧바로 죽일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누구도 이를 말하는 자가 없었다.
진호장군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도 민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민중과 뜻을 같이해서 민과 군이 일체로 아름다운 마음의 결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공주의 파천적인 수행에 마장이 이것으로 물러가지는 않았다. 대각에 따르는 대마의 시험인지 어느새 공주 생존의 소문이 기어코 묘장왕의 귀에 이르고야 말았다.
묘장왕은 즉각 진호장군을 불러 진상을 물었다. 묘음, 묘원 두 공주도 달려가 진호장군의 진실을 들으려했다. 진호장군은 이미 결심을 한 바 있어 숨김없이 고백하고 일체를 인책하여서 혼신을 다하여 공주의 수행을 허락할 것을 간청하였다.
불법의 광대무변함과 다시없는 위덕을 이미 보았기에 필사적으로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고 논증하였다.
묘장왕은 진호의 진언을 듣고 왕명을 배신하고 왕을 기만하였다 하여 열화같이 대노할 뿐 다른 말은 더 이상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공주는 묘선이 살아 있음을 진호장군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게 되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크게 기뻐하고 당장 동생에게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안절부절하였다. 그러나 두 공주분은 우선 부왕의 노한 기분을 진정시킬 일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진호장군은 등전의 명을 받았을 때 이미 결심을 한 바 있었으므로 죽을 각오로 사실을 이야기하고 왕의 이해를 얻고자 했으나 오히려 왕의 노기가 더욱 충천함을 보고는 모든 것이 틀렸음을 깨닫고 품속에서 의연히 단검을 뽑아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목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자결하고 말았다.
죽음으로 묘장왕의 번의를 촉구한 것이었으나 지금 묘장왕에 그 뜻이 통할 리 없었다. 한나라 국운의 쇠퇴에는 그에 앞서 요매(妖魅)가 발동하는 것이어서 묘장왕은 진호의 자결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다시 야전부장(野戰副將)에 등전을 명하여 병사와 더불어 당장 공주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참수(斬首)할 것을 명령하였다. 묘음, 묘원의 두 공주는 번갈아 왕께 매달리어 부디 목숨만은 살려줄 것을 울부짖으며 애걸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왕명을 받은 군사들은 백작사로 말을 달리어 묘장왕의 명을 전하였다. 공주는 고요히 오백여명의 니승고혼에 고별기도를 마치고 보모와 영련을 뒤에 남기고 홀로 가마에 올라 형장으로 향하였다.
형장으로 가는 공주의 심경은 조용한 명경지수였으나 보내는 보모와 영련의 가슴은 단장의 비통에 비할 바 아니었다. 또 한번 광대무한의 불타가피를 기원하며 온 정성을 다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구름처럼 모여든 민중들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 공주의 슬픈 운명을 탄식하며,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했다. 공주는 단지 자기몸 하나로 인해 야기된 모든 일에 깊이 죄의식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소사한 오백니승의 영혼들과 수많은 다른 영혼들을 구하지 못할 바에야 선망영전에 죽어서 대죄할 것을 결심했다. 불도를 수행함에 마장은 영광을 연마하는 시련이라 여겨 몸을 바꾸어 태어나 성도 대각할 서원을 불타 앞에 발하였다.
형장에 도착한 공주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리들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노고가 너무도 많습니다. 다만 부왕마마와 제가 같이 수행하여 묘과를 증득할 수 없음을 슬퍼할 뿐입니다. 그대들에게는 조금도 허물이 없습니다. 내가 부왕마마를 설득치 못한 것이 죄인 것입니다. 홍진에 탐착해서 후세의 귀명(歸命)을 그르치며 인세(人世)의 명리를 얻어 천세(天世)의 명리(命理)를 버림이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생과 사는 인간의 일대사(一大事)입니다. 일대사인 생사의 윤회를 지금 벗어날지도 모르는 일. 기쁜 마음으로 형을 받겠습니다. 나의 뜻을 아시고 거리낌없이 형을 집행하여 주십시오.”
집행리를 위시한 병사일동은 공주의 영기와 위덕에 눌리어 그만 무릎을 꿇은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아침내 어명을 받은 야전부장이 형리를 재촉하여 순서에 따라 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형리는 왕명을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지라 창백한 안색으로 일어섰다. 공주는 형장에 단정히 앉아 눈을 감고 고요히 선정에 들어 있었다. 멀리 성내로부터 모여든 군중들은 한결같이 공주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묘장왕의 비도잔학을 원망하면서 마음속으로 불타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한결같이 염원했다.
집행리는 정오의 시각이 되자 공주의 뒤로 돌아가 칼을 뽑아들었다. 매섭게 빛나는 차가운 칼날을 보자 사람들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마침내 형리는 칼을 머리위로 쳐들어 세 번 휘두르고 나서 다시 높이 쳐들었다가 공주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일더니 형리가 내려친 칼이 공주의 목에 닿기도 전에 두동강이 나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황한 집행리는 다시 다른 칼을 집어들고 계속해서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였으나 번번히 칼만 부러질 뿐이었다. 마침내 또다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집행리의 등골에서는 식은 땀이 물흐르듯 하였고 두다리가 후들후들 마구 떨려 제대로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끝내는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를 보고 있던 사형집행리들 역시 처음 당해본 신이(神異)에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후들후들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직접 왕명을 받고 사형집행을 감독하기 위하여 나온 야전부장은 눈앞에 벌어진 엄청난 사태에 비로소 깨달아지는 점이 있어 즉시 병사들과 옥리들을 이끌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 야전부장은 묘장왕에게 형장에서 벌어졌던 기적과도 같은 사실을 세세히 보고했다.
그러나 묘장왕은 이미 악귀로 변신해 있어서 다른 부장과 병사로 하여금
“칼로서 안된다면 밧줄로 교수형에 처하여라.”하고 다시 명하였다.
묘장왕에게는 보살같은 공주도 오히려 요괴나 마귀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왕의 또 다른 명령은 즉시 시행되었다. 공주는 자신의 죽음보다도 부왕이 갈수록 죄를 깊이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눈물을 지었다. 공주는 경건히 두 손을 모아 아미타불에 예배한 후 눈을 감고 형의 집행을 기다렸다.
마침내 집행리는 튼튼한 밧줄을 공주의 목에 감은 다음 나무에 매달지 않고 끝을 건장한 병사들로 하여금 당기도록 했다. 허나 이건 또 웬일인가? 양 밧줄 끝에 매어달린 수십명의 병사들이 온 힘을 다해 밧줄을 잡아 당기건만 공주의 목에 감긴 밧줄은 미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본 군중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공주를 향해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아 쥐는 것이었다. 당황한 것은 집행리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형(刑)을 집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온힘을 다하여 밧줄을 당기고 있었으나 공주의 목에 감긴 밧줄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에 부딪친 집행리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공주의 목을 조이려 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공주는 이런 정경을 보고 깊이 연민의 념을 느껴 많은 사람에게 죽는 마당에서조차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 생각하고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소리높여 미타께 기원하기 시작했다.
“대자대비하신 미타불이시여! 부디 이 몸을 도인(導引)하시어 귀명(歸命)케 하여 주옵소서. 만약 지금 이들이 왕명을 따라 이 몸을 처형치 못하면 이들이 이 몸 대신 죽어야 하옵니다. 이 몸으로 인해 거듭 살생의 누를 끼치게 되옴은 참을 수 없사옵니다. 수행은 악의 인과를 없애기 위한 것일진대 이 이상의 악업이 다시 없도록 해 주소서.”
공주가 기도를 마치자 과연 그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아니면 집행리들과 병사들이 갑자기 힘을 얻은 탓인지 공주가 땅바닥으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공주의 몸이 마악 땅에 쓰러지려고 하는 순간, 돌연, 일지의 맹호같은 사진(砂塵)이 불어닥쳐 회오리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일대가 캄캄해졌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고개를 들고 엎드리었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을 때에는 언제 그랬더냐 싶게 주위가 평온해져 있었다. 놀란 사람들이 형장을 다시 돌아보니 이는 또 웬일인가! 쓰러져 있던 공주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형장을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은 말을 잊은 채 거듭 일어나는 기적에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휩싸여 들어갔다. 황망히 달려온 집행리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묘장왕도 이번만큼은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기이한 일이 차례로 일어남은 도대체 어찌된 연유인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묘장왕의 심경은 알 수 없는 당혹의 와중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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