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전기-16

근와(槿瓦) 2016. 10. 19. 01:19

관세음보살전기-1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공주가 불문에 귀의해서 백작사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소문은 파문이 번져가듯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 백성들 사이에서는 미타신앙이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불도 수행을 두고 묘장왕의 이해 부족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점등하여 어느 사이 묘장왕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묘장왕은 자기의 권위가 도전받게 됨에 내심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권력자는 항상 자기 이상의 권력이나 권위를 증오하며 자기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비상한 적개심을 품게 되는 것으로 선인이나 불타에 대해서까지도 질투를 느끼며 자기의 존재를 신불의 위치에 두려는 망념에 잡혀 여하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기의 권력을 유지코자 한다.


여기에서 비극이 발생하며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제 묘장왕도 마치 그와 같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묘선공주에게까지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누구로부터인지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더니 마침내 묘장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묘장왕의 공주가, 요즘 삼청전 주거하니,

절의 모든 니승들 모두 공주에 감복하고

감시하던 영련도 같이 불도에 귀의했네.

천외법리 논하며 무상보리로 새삶 주어

이와 같이 덕높아 명성 만천에 드날리네.

애석하다 묘장왕, 그런 도리를 모르고서

고형받는 공주에, 엄한 감시로 괴롭혀도

불법무변 은혜가, 심한 고역을 없애주네.


이 노래를 듣게 된 묘장왕은 열화같이 격노하여 안탁(案卓)을 두들기며 고성으로 절규했다.

“괴이하도다. 엉뚱한 것, 당장 장로니승을 불러 들여라.”


장로니승 득진(得眞)은 왕의 부름을 받자 자신의 명(命)이 풍전등화와 같음을 느꼈다. 가마에 흔들리면서 이미 죽을 각오를 했다. 장로니승이 궁전에 닿자마자 묘장왕은 일갈대성으로 문책하는 것이었다.

“너에게 공주를 맡김은 개심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잊었느냐? 그러한데 공주를 후대하고 왕명을 거스리다니 어찌된 것인가? 또 짐(朕)을 우롱하는 노래까지 흘리며 모욕함은 무슨 까닭이냐?”


왕의 노성을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득진장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감마마! 소승의 말씀을 들으소서. 소승 왕명을 받잡고 공주마마를 맡으면서 이어 개심토록 모든 수단을 다하며 수없이 개심하시도록 설교했으나 공주마마의 견고한 뜻은 금강석보다 더 굳어, 조금도 만류할 수 없었사옵니다. 그뿐 아니라 공주마마의 정신, 근기의 강함은 초인적이어서 혼자의 힘으로 열사람의 일을 마치며 그 위에 모든 경전의 이치에 통달하여 누구도 공주마마보다 더한 자가 없사옵니다. 또 덕화력이 커서 공주마마 설교는 듣는 자가 누구든 마음이 감복케 되며, 어떠한 계층의 사람도 이해하고 감동을 얻게 되옵나이다. 그 지혜는 천기의 미세를 가르고 꿰며 그 오묘현의에 이르러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사와, 도무지 저희 소승들로서는 너무 멀고 높아 어떤 힘으로도 감히 미칠 바가 못되옵니다.”


장로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담담한 태도로 묘장왕을 쳐다보면서 바로 말을 이어

“상감마마! 원하옵나이다. 원컨대 소승 비원 간청을 받아주시와 공주마마의 수행을 허락하시기 죽음으로써 감히 복망하나이다. 요즘 항간에 불려지고 있는 노래는 마마에게 모욕하는 의미가 아니오며 오직 공주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옵니다. 또 한편으로는 미타불께서 은밀히 마마의 각성을 촉진코져 흘리게 함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옵나이다.”


사람이 어떤 한가지 기(氣)에 전도되고 있을 때는 충언이 귀에 거슬리듯이 귀에 합리적인 말도 거슬리기 마련이다. 장노득진의 말은 바로 묘장왕의 대노를 사 불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망언을 어디에 함부로 하느냐? 자신의 무능함을 은폐하고 대담하게도 사견을 말하다니. 왕명을 거슬리고 어리석은 묘선과 결탁하여 얼이 빠져 이매망량(魑魅魍魎=산천에 있는 온갖 귀신, 도깨비)에라도 홀리었느냐? 어디 그만한 영험이 있다면 짐이 가하는 제재를 광대무변의 법력으로 면해 보아라. 여봐라 이 니승을 당장 옥에 단단히 가두어라.”


이성을 잃은 묘장왕은 자제할 줄 모르고 눈을 치뜨고 코숨을 거칠게 내쉬며 악마의 형상이 되어 일찍이 자애의 왕이라 일러졌던 면모는 털끝만치도 찾아볼 수 없이 순식간에 나찰야차로 변하고 있었다.


무슨 힘에 놀란 듯 튕겨 일어선 왕은 당장 호전장군 진호(護殿將軍 眞虎)의 등전을 명하였다.

“다름이 아니다. 목하 공주 묘선은 짐의 명령을 배반하여 백작사에서 여승들을 모아 짐의 악평을 노래로 유포해서 민심을 교란하고 있다. 모든 마음과 힘을 허비하여 반성을 촉구했으나 마녀로 변신한 이상은 이젠 달리 바랄 바가 없다. 당장 백작사를 포위하고 묘선 일파를 불질러 없애버려라. 한사람도 빠져 달아나지 않게 태워 죽여라. 하나라도 빠져 달아나게 하면 너에게 중벌을 가하리라.”


진호(眞虎)에 있어서는 바로 청천벽력이며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호위역에 근무하면서부터 그 총명예지와 미모천진한 모습에 항시 심중으로 경모하고 있었던 터다.


그 위에 덕이 높고 아무 죄도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진호장군은 진퇴양난에 빠져 번민하였다. 한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눈을 뜨고 왕명을 받았다.


신하로서의 충성심 외에는 더 이상 진호장군으로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악판단을 젖혀두고 우선 왕명을 준수하는 것밖에 달리 어쩔 수 없는 진호장군의 심경에 복잡한 갈등이 일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날 한밤중 만백성이 고요히 잠든 틈을 타고 한떼의 군사가 백작사로 향하고 있었다. 납덩이를 흘린 듯 별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소리없이 행군해 나가던 병사들은 마침내 사원에 이르러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하였다.


진호는 침통한 안색으로 병사에 명하여 마른 풀과 나무를 절 주위에 쌓은 다음 기름을 붓고, 기름 횃불을 만들어 일제히 점화토록 명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치솟아 밤하늘을 밝히며 백작사를 화염지옥의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화염속에 도피하는 니승, 이미 소살(燒殺)되는 비구니, 매연에 휩싸인 채 숨막혀 죽어가는 그림자, 그야말로 아비규환, 초열의 생지옥이었다.


도망할 곳이 없어 오로지 불타를 명호하는 자, 최후까지 살길을 찾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모두가 필경 새까만 소사체로 변해 여기저기 쌓여져 갔다. 이때 공주는 그녀의 방에 들어앉아 조용히 선정에 들어 심신을 응관하고 있었다.


돌연 귀를 찢는 아비규환의 소리에 눈을 떠 즉시 문을 열어본 영련은 청천벽력이 떨어진 듯 경악하여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의 대웅보전은 불길에 휩싸여 있고 그뒤의 여승 요사채는 불바다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대로 간담이 떨어진 듯 요동도 못하고 “불! 불!”할 뿐이었다.


공주 그때 영련을 급히 부르며

“어서 문을 닫으세요. 그리고 빗장을 걸고 이리와 반좌(盤坐)하세요. 당황해서는 안되요. 인간의 생사 운명은 정해 있는 것. 거스릴 수가 없습니다. 자 심기(心氣)를 평정히 하여 산란치 않도록 하세요. 산란하면 영혼이 왕생할 수 없어요.”


공주의 반석같은 태도를 보고 보모도 영련도 어느 정도 심기를 안정시켜 앉았다.


그러나 공주의 말에 의지해서야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 앉을 수 있는 얄팍한 수행, 거기에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참상을 보아버린 영련에게는 불길을 피하고자 몸부림치며 아우성치던 여승들의 모습, 단방을 한숨에 삼킬듯이 달려들던 불길의 공포에 휩싸여 그만 그 자리에서 까무라치고 말았다.


무정한 업화(業火)는 대응보전을 재로 만들고 공주들이 있는 방으로 밀려들어 왔다. 처절한 화염에 쌓인 단방은 일순에 불속에 사라질 듯 보였으나 부사의하게도 광무하던 불길은 단방 문앞에까지 와서 크게 돌며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주위에서 타옮겨 온 성화의 기세가 마치 철판에 차단되는 것처럼 단방에는 조금도 미치지 않고 되돌아 물러간 것이다. 참담한 비극 속에서 한가지 이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백작사는 재가 되고 여기저기에 그을려 타버린 시체의 무참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가리게 하였다. 새벽이 되자 절의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은 참혹한 광경에 말문이 막혔으나 누구의 입에서인가 공주를 찾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주마마는 어찌되었지?”“공주마마께서는 피신을 하셨습니까?”


외치는 소리가 밀물처럼 번지는 가운데 공주를 열렬히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타고 있는 잿더미속을 헤쳐가며 애타게 공주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있던 병사들도 자기들의 책임까지 망각한 채 공주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공주께선 건재하시다!”

누가 발견했는지 단방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군중들은 소리나는 곳으로 눈사태나듯 달려갔다. 그곳에는 아무런 화재의 흔적도 없는 평소 그대로의 단방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군중들은 모두 그들의 눈을 의심했다. 처참하게 소진되어 버린 대사원의 한가운데 다만 조그마한 단방(丹房)만이 전혀 불길이 닿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군중들은 쥐죽은 듯 고요한 정적에 휩싸여 들었다.


그 정적 가운데 조용히 문이 열리며 안으로부터 보모의 모습이 나타났다.

“앗! 보모다. 참으로 잘도 무사하시구나.”


와! 하는 환성과 함께 군중들은 보모앞으로 몰려들었다.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 공주님께서는 지금 좌선중이십니다.”


공주는 미동도 않은 채 삼매선정의 상으로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공주의 전신에서 호광(毫光)이 방사되듯 보였다.

“영련수좌가 상밑에 쓰러져 있어요. 누가 좀 도와 주십시오.”


보모의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군중들은 쓰러진 영련에 처음으로 주의를 기울여 공주의 뒷모습에 북배하면서 영련을 붙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이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누구 한사람 말도 없이 일제히 합장하며 공주의 모습에 예배하기 시작했다. 공주의 모습은 군중들에게 이제는 태양과 같은 존재이며 불타에 버금가는 존재로 비쳤던 것이다. 한참만에 좌선을 푼 공주는 많은 군중들이 배례하는 가운데 참담하게 소진되어 버린 사원과 소사한 니승들을 돌아보며 흐르는 눈물을 억제치 못했다. 그제서야 많은 군중들도 일제히 울음을 터뜨려 한순간 문자 그대로 호곡(號哭)이 천지를 진동하는 듯 했다.


마침내 공주는 떨어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유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한구 한구 유체를 수습하면서 공주는 일생을 두고 이 불쌍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구해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제불상천의 비호에 의해 기적으로 살아남은 자신의 생명을 생각하고 중생을 위해서라면 한목숨 기꺼이 바치겠다는 서원과 중책을 불타를 명호하며 굳게 맹세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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