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665-13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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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현재의 법 가운데 걸림없는 지혜를 얻게 됨을 말하였느니라.”
그 때에 대덕 아난은 보상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큰 이익을 얻었도다. 여래께서 그대에게 최상의 도를 성취할 수기를 말씀하셨느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도무지 법이란 것이 없으니 수기를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질법[色法]이 보살이 아니어서 물질법의 수기를 말씀하심이 아니며,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보살이 아니니 의식 등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닙니다. 지계(地界)가 보살이 아니니 지계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니며,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도 또한 보살이 아니니 수계·화계·풍계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닙니다. 눈이 보살이 아니니 눈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니요, 귀·코·혀·몸·뜻이 보살이 아니니 뜻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닙니다. 명색(名色)이 보살이 아니니 명색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니요, 과거·현재·미래도 보살이 아니니 3세 평등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닙니다. 인견(因見)이 보살이 아니니 인견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니요, 생멸(生滅)이 보살이 아니니 생멸의 수기를 말씀함도 아닙니다.
대덕 아난이여, 보살이라 말한 것은 이것이 거짓 말함이요, 보살의 참뜻은 이 적정구(寂靜句)니 만일 법의 마지막이 이 적정일진대 수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대덕 아난이여, 수기란 것은 일체 말로 설한 법을 다 섭수한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또한 어떤 법을 보살이 혹 안이니 밖이니, 혹 선이니 불선이니, 혹 함이 있느니 함이 없느니를 집착할 것이 없으니 그런 뒤에 수기하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보살의 수기란 온갖 법에 소속할 것 없는 것을 수기라 말하며, 온갖 법 취할 것 없는 것을 수기라 말하며, 온갖 법 처소가 없음을 수기라 말하며, 온갖 법 머무름 없는 것을 수기라 말하며, 온갖 법 벗어날 것 없는 것을 수기라 말하며, 온갖 법 망상 없는 것을 수기라 말하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보살이란 이렇게 수기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보상 천자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천자여, 보살은 이 모든 법을 통달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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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수기를 말하나니,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최상 보리도의 수기를 말씀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마왕 파순이 그 권속을 데리고 각기 탈 것을 타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한쪽에 머물러 서서 이런 말을 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의 수기만 말씀하시고 성문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파순이 질문을 마치자 부처님께서 곧바로 대답하셨다.
“파순아, 보살은 삼천대천세계 국토에 있는 모든 인간·천상을 다 잘 아느니라. 이 인연으로 보살의 수기를 말하느니라. 성문은 인간·천상의 아는 것이 아니므로 보살의 수기를 주지 않느니라. 많은 중생으로 보리심을 발하게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보살의 수기를 말하나니, 성문의 수기를 말하면 보살은 퇴전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지 않느니라.”
그 때에 문수사리동자가 파순에게 말하였다.
“네가 이제 무슨 까닭에 이 모임에 왔느냐?”
“문수사리여, 부처님 세존께서 보상 천자를 위하여 무상도(無上道)의 수기를 말씀하시되, '네가 장차 부처가 되리니 명호를 보장엄 여래·응공·정변지라 하리라' 하시고 성문의 수기를 말씀하지 않으시니, 나의 궁전·누각·난간·보배나무와 동산·오락의 처소가 흔들려 서로 부딪치며 '석가 여래·응공·정변지께서 보상 천자를 위하여 무상도의 수기를 말씀하시도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되, '파순아, 네가 이제 저 모임에 가서 다시는 보살을 수기하여 너의 궁전에 와서 나지 말도록 하라'고 하였다.”
문수사리는 파순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수기를 말하는 것을 너는 지금 기뻐하지 않는구나.”
“문수사리여, 나는 실로 기쁘지 않다. 염부제 일체 중생을 위하여 아라한의 수기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근심할 것이 없지만 한 보살에게 최상도의 수기를 말씀하신다면 우리의 근심과 번민은 말할 수 없도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만일 보살의 최상도의 수기를 말하면 우리의 궁전이 캄캄해지며 이 보살이 3승법으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건져내어 삼계에서 벗어나게 하리니 문수사리여, 우리는 이 일로 온갖 근심·번민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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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순아, 너는 네 처소로 돌아가라. 너는 어떤 힘으로도 능히 저 보살이, 끝내 보리의 도에 향하여 방편이 풍족한 반야바라밀행을 성취하는 자를 막아내기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마(魔)의 올가미를 여의고 필경(畢竟)의 행을 이룩하여 방편을 잘 알고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부처님의 신력으로 마왕 파순으로 하여금 문수사리에게 묻게 하였다.
“어떤 것을 보살이 필경의 행을 닦아서 방편을 잘 알고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는가?”
“파순아, 만일 보살이 일체의 소승행을 여의면 이를 보살이 필경의 행을 이룩한다고 말하며, 만일 일체 번뇌의 마업이 다 최상도에 이익 됨을 보면 이것을 보살의 선교방편이라 말하며, 일체 번뇌와 함께 행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말하느니라.
다시 파순아, 보살의 마음은 마침내 모든 중생을 구제하므로 큰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필경의 심행(心行)이라 말하며, 네 가지의 거두어 잡는 행[四攝]으로써 모든 중생을 거두면[攝] 이것을 보살의 선교방편[善知方便]이라 말하며, 끝내 일체 중생의 체성이 적멸함을 관하면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이라 말하느니라.
또 파순아, 보살은 능히 안팎의 온갖 보시하는 보리의 마음까지도 버리고 필경 최후의 경지에 이르면 이것을 보살의 필경의 심행이라 말하며, 보살이 일체 중생을 위하여 받는 자의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을 보살의 선교방편이라 말하며, 보살로서 비는 자[乞者]와 받는 자가 있거든 진실한 본원(本源)을 알고 평등행을 하면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이라 말하느니라.
또 파순아, 보살이 모든 선법(善法)에 대해 처음 발심으로부터 끝내 불퇴전에 이르면 이것을 보살의 필경의 보리심을 행함이라 말하며, 만일 보살이 남에게 핍박받지 아니하더라도 능히 제 이익을 놓으면 이것을 보살의 선교방편이라 말하며, 보살이 법의 뜻을 생각하고 문자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이라 말하느니라.
또 파순아, 비는 자를 보고 저버리지 아니하면 이것을 보살의 필경의 심행이라 이르며, 보살이 모든 선근을 모아서 온갖 지혜를 구하면 이것을 보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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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방편이라 말하며, 보살이 모든 법의 체성을 잘 알면 이것을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행함이라 이르느니라.”
그 때에 보상 천자는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이 마왕 파순의 권속을 가히 신력으로 태워서[乘] 배[腹] 속에 집어넣을지니, 그들은 능히 선남자·선여인의 대승에 향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네 말처럼 마왕 파순을 보살의 뱃속에 들여놓지 못하느니라. 또 천자여, 네가 받아 지니는 불상장엄제일수락(佛相莊嚴第一受樂) 삼매의 힘으로 파순으로 하여금 사자좌에 앉게 하여 부처님의 신력을 나타내어 부처님의 변재로 법을 설하게 하라.”
그 때 마왕 파순이 이 말을 듣고 몸을 감추어 대중 속에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문수사리의 위력으로 거두어 잡아 가지기 때문이다. 문수사리가 이 생각을 하자 마왕 파순이 부처님의 형상을 나타내어 사자좌에 않았으며, 대중들은 이것을 보고 마왕 파순인 줄을 알았다.
문수사리는 또 말하였다.
“파순아, 너는 이제 여래의 도를 얻었느냐?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사자좌에 앉다니 말이다.”
문수사리의 힘을 빌어 마왕 파순은 말했다.
“문수사리여, 세존께서도 아직 보리를 얻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내가 얻겠는가? 왜냐하면 보리라는 것은 이 은혜를 갚은 모양이니 욕심을 여의고 얻는 것이 아니며 알고 향하여 나아가므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보리라는 것은 함이 없는 모양을 얻음이니 그가 함이 없는 모양을 얻으므로 공(空)의 모양을 깨달아 아나니, 이것을 보리라 말할지언정 공으로 공을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상[相] 없는 모양을 깨달아 아는 것을 보리라 할지언정 상 없는 것으로써 상 없는 모양을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원(願)이 없는 모양을 깨달아 앎을 곧 보리라 말할지언정 원 없는 모양으로 원 없는 모양을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법계의 체성을 깨달아 아는 자를 곧 보리라 이름할지언정 체성으로써 체성을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진여(眞如)의 분별 없는 모양을 깨달아 아는 것을 곧 보리라 말할지언정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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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진여를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여실한 본원에 머무름을 깨달아 앎을 이 보리라 말할지언정 여실한 본원에 머무른 것이 여실한 본원에 머물렀다고 깨달아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명(命)도 없고 사람[人丈夫]도 없는 체성을 깨달음을 이 보리라 말할지언정 그것을 깨달아 알았다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보살이 이러한 보리의 모양을 말하는 것을 듣고는 능히 모든 법의 체성에 분별할 것이 없으면 곧 부처라 말하리라.”
마왕 파순이 부처님의 변재로 이 법을 말할 적에 5백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 때에 대덕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참으로 희유합니다.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힘으로 마왕 파순으로 하여금 여래의 몸을 나타내되 신상(身相)이 구족하며 사자좌에 앉아서 이러한 깊은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일체의 초목은 마음이 없지만 가히 여래의 신상을 구족하게 나타내어 능히 설법할 것이며, 나도 또한 대덕 사리불로 하여금 여래의 몸으로 변하여 신상을 구족하여 부처님의 변재로 설법하게 할 것입니다.”
그 때에 대덕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이 대중 가운데 숨어버리더라도 나로 하여금 여래의 몸을 나타내어 신상이 구족하게 하며 나를 희롱하여 성문의 사람으로 세존의 모습을 나타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문수사리의 위신력으로 인해 숨을 수가 없었다. 문수사리는 대덕 사리불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그를 변화시켜 여래의 몸을 만들어 신상이 구족하게 하여 사자좌에 앉게 하니, 여러 대중들이 또한 보고 알았다.
그 때에 문수사리동자는 대덕 사리불에게 말했다.
“그대는 마왕 파순과 함께 말을 나누십시오. 여래가 여래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듯이 말입니다.”
그러자 대덕 사리불은 이렇게 물었다.
“파순이여, 보리라는 것은 어떤 체성인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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