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650-130

근와(槿瓦) 2016. 10. 13. 02:29

대보적경-650-1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646 / 3476] 쪽

...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수기(授記)라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몸을 아는 자는 곧 계(戒)를 알 것이요, 입을 아는 자는 곧 계를 알 것이요, 마음을 아는 자는 곧 계를 아는 것입니다. 몸과 입을 아는 자는 깨달음의 적정함을 알 것이요, 깨달음의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중생의 적정함을 알 것이요, 중생의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온갖 법이 적정함을 알 것이요, 온갖 법이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여실하게 비롯함의 적정을 알 것이요, 여실하게 비롯함의 적정을 아는 까닭에 적정법의 인(因)의 적정과 연(緣)의 적정을 알게 되나니, 그들은 온갖 법에 따라서 능히 적정을 말할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말하여 보살의 계의 청정이라 말하나니, 그러므로 여실히 수기를 말하는 것이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법성이 필경 공한 줄을 알고 법성이 끝내 자재로운 줄을 알며, 모든 중생의 온갖 악(惡)을 능히 참아서 마음 일어나지 않는 인(忍)으로 바깥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중생을 등지지 않고 능히 일체의 악을 없애면, 저 중생성(衆生性)과 같이 인(忍)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인의 체성과 같이 보리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보리의 체성과 같이 온갖 법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온갖 법의 체성을 아는 것과 같이 여실여법(如實如法:眞如法)도 또한 그러하며, 들은 바 법이 같은 법성인 것처럼 법성계가 필경 공하나니 법성계가 필경 공하므로 모든 행이 법성에 따르는 인[行順忍]을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진실정인(眞實淨忍)으로 수기를 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보살이 삼가 일체 법행(法行)이 모든 사유(思惟)를 여의며, 모든 장엄이 없는 줄을 알고 버리고 나아가는 행[捨進行]을 이룩하나니, 혹 하는 것이 있더라도 또한 조작함이 없으며, 그 아는 것이 견고하여 일체를 능히 여의며, 안의 성품이 적정하면서 밖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정진이 고요함을 알므로 보리가 고요함을 알며, 보리가 고요함을 알므로 또한 온갖 법이 고요함을 알고 여실히 비롯됨을 알며, 들은 법과 같이 정진의 성품[精進性]이 고요하므로 일체를 능히 말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청정한 정진으로서 여실히 수기할 줄을 안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모든 법이 평등하여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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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定)에 들어가면, 선정의 힘으로 그 마음이 고요히 머물며, 마음이 고요히 머무르므로 의식[識]이 머무르는 데가 없으며, 의식이 머무름 없으므로 7각심(覺心)이 평등하며, 7각심이 평등하므로 선정이 평등하며, 선정이 평등하므로 보리가 평등한 줄을 알며, 보리가 평등한 줄을 알므로 일체 중생이 평등한 줄을 알며, 일체 중생이 평등한 줄을 알므로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고는 들은 법에 따라서 능히 모든 법의 체성이 평등함을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이 보살의 청정한 선정으로서 여실히 수기를 말함이라 하느니라. 또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지혜의 눈[慧眼]이 청정하여 여실히 온갖 법을 보고는 본 바의 법에 실로 본 것이 없으므로 흔들림이 없어서 움직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행함도 없고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으며, 행하더라도 또한 행함이 없으나 모든 위의(威儀)의 법칙이 또한 행 아닌 것도 아니며, 행이 아니라는 인연으로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아서 중생을 구제함도 아니요, 보살도를 행함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행이 아니라면 곧 분별이 없어서 모든 망상·희망·탐착심을 끊나니, 이것이 보살이 모든 있다는 생각을 여의고 또한 일체 중생의 행하는 곳을 행함이니,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의 보리를 돕는 법을 쌓아 모으는 까닭이며, 바른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는 까닭이며, 3보의 종자를 끊지 않기 위한 까닭이니라. 여래의 행이란 온갖 법의 청정한 체성을 분별하는 것이 없나니, 이 반야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보리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고, 보리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중생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며, 중생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온갖 법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며, 온갖 법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모든 법의 체성에 여실한 지혜를 얻으며, 여실한 지혜를 얻으므로 들은 일과 같이 이 법계 체성에 분별 없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지혜의 눈이 청정하여 여실히 수기를 말함이라 하느니라. 또 천자여, 보살이 몸으로 행하는 신념처(身念處)를 관하되 과거의 몸이 끝없는 줄을 알며, 미래의 몸이 나아갈 데가 없는 줄을 알며, 현재의 몸이 초목이나 기와·돌·담벼락 같은 줄을 아나니, 만일 능히 이렇게 몸과 몸의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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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관하면 이 몸의 체성에 어리석은 행위가 고요한 선정의 사유와 병행하되 또한 일부러 일으킴이 아니로다. 사유하지 않으면 일으킴도 없어 자재하리니, 이것을 나[我]를 여읨이라 하느니라. 의식으로 머무는 바 없이 신념처의 행을 수행하되 또한 법을 가히 수행할 자가 없으며, 또한 수행하지 않음도 아니니라. 온갖 법은 체성이 없되 체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몸을 관하여 몸의 행위를 닦느니라. 마음을 관하되 마음이 허깨비[幻化]와 같으며 메아리와 같은 줄을 알아서 여실히 마음을 아느니라. 즐거운 느낌을 받되 좋아하지 아니하고 괴로운 느낌을 받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아니한 느낌을 받되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무명을 집착하지 않고 감수(感受)를 여의어서 감수에 끌린 바 되지 않나니, 이것을 여실히 수념처(受念處)를 알고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능히 이렇게 느낌의 행을 관하는 자는 모든 수법(受法)에 마음이 행하는 바가 없고 마음에 안주하지 않되 이 일체의 마음을 또한 놓아 버리지 아니하며, 보리심에 또 한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며, 또한 멀리 여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마음의 행을 관하는 심념처(心念處)라 하느니라. 법의 지견(知見)과 법행(法行)과 법의 생각 없음[無念]과 사유가 없는[無思惟] 줄을 잘 알고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이 없으며, 법상(法相)을 관하지 아니하고 견(見)과 행(行)을 일으켜서 법성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법의 행을 관하는 법의 염처(念處)라 말하느니라. 이것은 온갖 법의 체성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쌓아 모은 듯 실지로 물건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나니, 들은 바 일과 같이 생각도 없고 사유도 없이 저절로 그러한 것을 법념처(法念處)라 말하느니라. 천자여, 이것을 깨끗한 법의 염처를 알고 수기를 말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또 이 보살이 온갖 지혜의 마음[一切智心]에 자재함을 얻어서 가르친 것과 같이 바로 보고 머물되 어지럽지 않고 잃지 않으며, 처음으로 일으킨 일체 선근에 번뇌 없는[無垢] 마음의 행위를 생각하여 행하는 곳을 따라 일체를 능히 버리며, 계를 범하는 마음을 꾸짖고 계에 의지하며, 욕됨을 참아 다투어 송사함이 없으며, 몸과 입과 마음으로 중생에게 성냄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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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아니하며 성문·연각의 정진의 수레[精進乘]를 타고 나아가려 하지 아니하며, 온갖 선법(善法)을 사유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모든 선정(禪定)·차제정(次第定)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행하는 것 없이 모든 견해에 행함을 보지 아니하며, 모든 법에 행하지 아니하고 온갖 법에 들어가되 모든 성인과 같이 모든 경계에 행하는 것이 없으며, 비록 성인의 무리가 아닌 자를 가까이 하더라도 몸·입·마음이 하는 짓이 일찍이 꾸지람을 받지 아니하며, 남에게 믿게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선법을 구하되 홀로 행하여 반려가 없으며, 스스로 세상을 벗어나고자 정진행을 행함은 길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매듭을 끊는 까닭이니라. 마음에 번뇌가 없는 것은 계를 깨뜨리지 않는 까닭이며, 또한 나쁜 행위를 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음은 아첨함 없이 스스로 하는 짓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산란한 말이 없는 것은 입으로 하는 짓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구하는 바가 없음은 제 재산에 만족한 줄을 알기 때문이며, 남의 심부름꾼으로 몰려다니지 않음은 삿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쌓아 모음이 없는 것은 제가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희망함이 없음은 삼계의 욕심을 여읜 까닭 이며,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은 나쁜 욕구가 없는 까닭이며, 적정함은 온갖 법이 다 고요한 줄을 안 까닭이며, 성냄·어리석음을 나타내 보임은 세상의 행위를 놓아 버린 까닭이며, 희론이 없는 것은 모든 희론을 끊은 까닭이며, 세간에 돌아오지 않음은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끊은 까닭이며, 법을 매우 좋아하는 것은 교만이 극복된 까닭이며, 법을 잘 이해함은 마음을 잘 다룬 까닭이며, 법을 잘 수호함은 계의 덕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마음이 잘 해탈함은 지혜의 덕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법을 놓지 않음은 거룩한 근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이며, 물러남이 없는 것은 보리심을 발하여 구경을 다하기 위해서이며,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은 일체가 세속의 행위이기 때문이며, 다투어 송사함이 없음은 모든 중생을 고루 사랑하기 때문이니라. 스스로 잘 보호하는 것은 남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함은 남보다 뛰어남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희망함을 여의는 것은 청정한 계를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널리 법을 설함은 아낌이 없는 까닭이며, 법을 애호함은 일체 중생을 애호하는 마음 때문이며, 처음 발심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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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선법을 쌓아 모은 까닭이며, 다른 행위가 없는 것은 온갖 법에 한 맛을 얻은 까닭이며, 동요하지 않음은 모든 움직임을 끊었기 때문이며, 종성의 차별을 보지 않음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며, 중생과 같이 함은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기 때문이며, 애초에 공하다고 관함은 온갖 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모든 견해를 다루는 것은 교화를 잘하기 위함이며, 생각이 없는 행은 행상(行想)에 집착한 모든 중생들을 조복받기 위함이며, 원하는 것 없음[無願]을 아는 것은 원하는 바를 만족하여 잘 조복된 까닭이며, 일체를 아는 것은 본래부터 지음[作]이 없는 이치를 관한 까닭이며, 착함을 행함은 선법(善法)에 만족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물건 없는 데서 물건을 관함은 물건 아닌 것이 곧 물건임을 나타내어 보이기 위해서이며, 사유 아님을 관함은 나가 적정한 때문이며,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은 중생을 관찰하여 교화하되 나 없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도행(道行) 아님이 없음은 모든 중생을 교화 하여 번뇌의 매듭[結]과 그 부림[使]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며, 방편심에 마지막[畢竟]을 얻은 것은 반야를 닦아 행한 까닭이며, 일정하게 머물러 가지 않음은 끝내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을 증득하여 접촉함이 아니기 때문이며, 도와 도 아님을 여읨은 제일의(第一義)이기 때문이며, 행과 행 아님을 여읨은 일체 범부들이 정행(正行)을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장엄함도 없고 장엄하지 않음도 없음은 모든 법을 희망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며, 스스로 칭찬하지 않음은 남과 희론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에도 견줄 데 없는 지혜는 불법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함은 온갖 법이 나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인(忍)이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이 자재를 얻었다 함이니라. 천자여, 보살은 나는 곳을 따라 나는 줄을 알지 못함으로써 나거나 앎으로써 남이 아니니라. 이 보살은 나고 죽음을 거두어 잡아 지니되 자재를 얻은 까닭이며, 또한 만족하게 불법을 성취하였나니 이 보살은 나고 죽음에 굴러 떨어짐이 아니라, 원력으로써 나는 곳마다 자재한 지혜를 얻나니, 이것을 보살이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말하느니라. 보살이 나고 죽음의 끝을 얻었다고 자재한 지혜라 이름함이 아니라, 일체 선근이 단절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이것을 보살이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말하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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