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730-14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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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불도 또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있었다. 그 때 존자 사리불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고, 걸식해서는 어느 나무 밑에서 밥을 먹었다. 그 때 정구(淨口)라고 하는 출가한 외도 비구니가 있었다. 그는 작은 볼 일로 왕사성을 나오다가 존자 사리불이 어떤 나무 밑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사문께서는 공양하고 계십니까? 존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네, 먹는 중입니다.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사문께서는 하구식[下口食 : 팔리어로는 adhomukha라고 한다. 비구가 취득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부정식(不淨食) 중 하나. 수행승은 떳떳치 못한 생활 수단으로 의식을 얻어서는 안 되는데 첫째는 하구식(下口食)으로 얼굴을 아래로 향하는 일을 하여 의식을 얻는 것(약물 조제와 농작물 경영)이요, 둘째는 앙구식(仰口食)으로 얼굴을 위로 향해 일하고 의식을 얻는 것(별·해·달 등을 관찰하는 일)이며, 셋째는 방구식(方口食)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말재주를 부려 사방에 소식을 전하고 의식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사유구식(四維口食)으로 주술이나 점 따위를 봐 주고 의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옳지 못한 방법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부정활명자(不淨活命者)라고 한다.] 을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누이여. 다시 물었다. 그럼 앙구식(仰口食)[각주 참조] 을 하십니까? 대답하였다.그렇지 않소, 누이여.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럼 방구식(方口食)[각주 참조] 을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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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누이여. 다시 물었다. 그럼 사유구식(四維口食)[각주 14) 참조.]을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누이여. 다시 물었다. 제가 '사문께서는 공양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저에게 '먹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앙구식(仰口食)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저에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셨고, 제가 '하구식(下口食)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도 저에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으며, 제가 '방구식(方口食)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도 저에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셨고, 제가 '사유구식(四維口食)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도 저에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누이여, 모든 사문 바라문으로서 일에 밝은 사람[明於事者]이고 횡법에도 밝아[明於橫法][고려대장경의 '명어사자명어횡법(明於事者明於橫法)'은 마땅히 하구식(下口食)을 설명하는 부분이어야 하는데 그 내용이 분명하지 못하다. 불광대장경 주석에 의하면 '팔리어본에는 이 부분이 '길이나 정원 등의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팔리본의 내용을 그대로 따를 경우 부정식(不淨食)의 네 번째인 사유구식(四維口食)의 내용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구분의 어려움이 있다.] 삿된 방법으로 의복과 음식을 구하는 사람이면, 그와 같은 사문 바라문은 하구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모든 사문 바라문으로서 별을 우러러 관찰하는 삿된 방법으로 의복과 음식을 구하는 사람이면 그와 같은 사문 바라문은 앙구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사문 바라문으로서 남의 심부름을 하는 삿된 방법으로 의복과 음식을 구하는 사람이면 그와 같은 사문 바라문은 방구식(方口食)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사문 바라문으로서 의술과 방술로 갖가지 병을 다스리는 삿된 방법으로 의복과 음식을 구하는 사람이면, 그와 같은 사문 바라문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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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누이여, 나는 이 네 가지 삿된 방법으로 의복과 음식을 구하지 않습니다. 누이여, 나는 다만 법으로써 의복과 음식을 구하여 스스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네 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때 외도 출가자 정구 비구니는 존자 사리불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그 때 외도 출가자 정구 비구니는 왕사성의 네거리로 나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사문 석종의 아들들은 청정한 방법으로 제 스스로 생활하고, 지극히 청정한 방법으로 스스로 생활합니다. 보시를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사문 석종의 아들들에게 보시하십시오. 만일 복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면 마땅히 사문 석종의 아들들에게서 복을 지으십시오. 그 때 모든 외도 출가자들은 외도 출가자 정구 비구니가 사문 석종의 아들을 찬탄하는 소리를 듣고,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외도 출가자 정구 비구니를 해쳤다. 그녀는 목숨을 마친 뒤에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났으니, 존자 사리불에게서 믿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이다.
501. 성묵연경(聖默然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은 왕사성에 있는 기사굴산에 있었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고, 나는 이 기사굴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거룩한 침묵[聖默然]이라고 하는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비구가 각(覺)과 관(觀)을 쉬고 내면으로 깨끗하고 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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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 등 3삼매의 하나.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라고도 한다. 제2선(禪)의 근분(近分) 이상, 혹은 비상지(非相地)의 선정을 말함. 여기서는 심(尋)도 사(伺)도 없음.]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갖춘 제2선에 머문다면 이것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한다.'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이제 거룩한 침묵에 들자.' 그리하여 각(覺)과 관(觀)을 쉬고 내면으로 깨끗하고 한마음이 되어, 무각무관삼매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갖추어 머물고 오래도록 머물었습니다. 오래도록 머물고 나서 다시 각과 관이 있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내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 죽원정사(竹園精舍)에서 사라져 기사굴산에 있는 내 앞에 나타나시더니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건련아, 너는 거룩하게 침묵하고 방일(放逸)한 행동을 하지 말라. 나는 세존의 말씀을 듣자 곧 다시 각과 관을 떠나 내면으로 깨끗해지고 한마음이 되어, 무각무관삼매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갖추어 제2선에 머물렀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하였고, 부처님께서도 또한 두세 번이나 '너는 마땅히 거룩하게 침묵할 것이요, 방일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 다시 각과 관을 쉬고 내면으로 깨끗하고 한마음이 되어, 무각무관삼매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갖추어 제2선에 머물렀습니다. 만일 부처님의 아들을 바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태어나고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났으며 부처님 법의 한 부분을 얻은 사람을 말하니, 그는 곧 나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곧 부처님의 아들로서 부처님으로부터 태어났고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났으며, 부처님 법의 한 부분을 얻어 조그만 방편으로 선정[禪]·해탈(解脫)·삼매(三昧)·정수(正受)[4선(禪)·8해탈·3삼매·9차제정수(次第正受)를 말함.]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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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전륜성왕의 첫째 태자는 아직 관정(灌頂)의식을 치르지 않았더라도 이미 왕의 법을 얻었고, 부지런히 방편을 쓰지 않더라도 능히 다섯 가지 욕망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고, 부지런히 방편을 쓰지 않고도 선정·해탈·삼매·정수에 들었으며, 하루 동안에 세존께서 신통의 힘으로써 세 번이나 내가 있는 곳으로 오셔서 세 번이나 나를 가르쳐주셨으며, 대인(大人)의 자리에 나를 세우셨습니다.
존자 대목건련이 이 경을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502. 무상경(無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은 왕사성의 기사굴산에 있었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에 계셨고 나는 기사굴산에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거룩한 머무름[聖住]이라고 하는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일체의 상(相)을 생각하지 않고, 무상심정수(無相心正受)에 들어 몸으로 증득하여 머문다면 이것을 거룩한 머무름이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마땅히 이 거룩한 머무름에서 일체의 상을 생각하지 않고 무상심정수에 들어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물고 오래도록 머무르리라.'그런데 오래도록 머물고 나서 상(相)을 취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내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마치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펴는 시간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에 신통의 힘으로 죽원정사(竹園精舍)에서 사라져, 기사굴산에 있는 내 앞에 나타나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건련아, 너는 마땅히 거룩한 머무름에 머물고 방일한 행을 하지 말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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