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645-12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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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실체가 아닌 망상이라면 이것은 곧 생겨난 것도 아니요, 머무는 것도 아니며, 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가거나 머무르거나 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얽매임도 없고 또한 해탈도 없으며, 향하여 들어가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대덕이여, 이런 뜻으로 문수사리가 말하기를 법계 체성은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으며, 또한 향해 들어가는 것과 증득하는 것도 없으며 해탈할 것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변화한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에 모든 비구들은 번뇌가 다해 해탈하였다. 해탈을 얻고는 곧 다시 문수사리의 처소에 돌아가서 각기 울다라승(鬱多羅僧)을 벗어서 문수사리에게 공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문수사리여, 당신은 우리를 잘 수호하여 주십시오. 우리들은 법을 믿고 깊게 조복되지 않았기에 멀리 여의고 떠나갔었습니다.”그 때에 대덕 수보리가 이렇게 물었다.“대덕들이여,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깨달았기에 각기 울다라승을 벗어서 문수사리에게 공양하는 것입니까?”
비구들은 말하였다.“대덕 수보리여, 우리는 지금 얻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은 문수사리동자에게 공양한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우리들은 얻을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 대중에서 떠나갔었는데, 우리들은 이제 얻는다는 생각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수보리가 말하였다.“무슨 까닭에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대덕 수보리여, 이름[名]에 집착하면서 동요되고 애착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요되고 애착한다고 해도 향해 들어감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만일 향해 들어감도 없고 얻음도 없다면, 곧 여기서 능히 일체의 동요와 애착을 끊게 될 것입니다.”수보리가 말하였다.“누가 그대들을 조복시켰습니까?”비구들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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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수보리여, 얻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 우리를 조복시켰습니다. 이 사람은 나지도 아니하고 또한 멸도(滅道)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선정(禪定)도 아니요, 어지러운 마음도 아닙니다.”수보리가 말하였다.“누가 그대들을 조복시켰습니까?”비구들이 말하였다.“그것은 문수사리동자에게 묻도록 하십시오.”그 때에 대덕 아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이 비구들은 누가 조복시켰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대덕 아난이여, 5음(陰)·18계(界)·12입(入)이 없는 것, 또한 범부도 아니며, 연각도 아니며, 성문도 아니며, 보살도 아니며, 여래도 아니며, 몸과 서로 응함도 아니며, 말과 서로 응함도 아니며, 마음과 서로 응함도 아닙니다.”
아난이 말했다.“문수사리여,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은 누구입니까?”문수사리가 말하였다.“대덕 아난이여, 만일 여래가 어떤 변화한 사람을 교화한다면 그 변화한 사람이 서로 응함이 있겠습니까?”아난이 말했다.“문수사리여, 변화한 사람이란 법과 서로 응하거나 서로 응하지 않거나 함이 없을 것입니다.”문수사리가 말하였다.“대덕 아난이여, 온갖 법의 체성이 이 허깨비[幻化]인 것입니다.”아난이 말했다.“문수사리여, 당신의 말과 같이 온갖 법의 체성이 이 허깨비입니다.”문수사리가 말하였다.“대덕 아난이여, 이 변화한 사람이 이 비구들을 조복한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변화한 사람이 조복한 것과 같이 모든 성문도 또한 그러합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렇게 조복된 것이 올바른 조복이거늘 이러한 조복을 알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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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자는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자라고 할 것입니다.”그러자 대덕 아난은 다시 문수사리동자에게 물었다.“문수사리여, 이 증상만을 가진 비구를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대덕 아난이여, 계의 덕[戒聚]이 청정한 체하는 것이 이 흔들림[動搖]이니 이것이 곧 뛰어난 체하는 것이요, 선정[定]의 덕·지혜[慧]의 덕·혜탈(解脫)의 덕·해탈지견(解脫知見)의 덕이 청정한 체하는 것이 곧 이 흔들림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이며, '내가 도를 증득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 흔들리는 망상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이며, 몸이 있다는 견해[身見]를 겁내고 또한 공(空)한 이치를 공과 같이 보고 한결같은 도(道)에 들어가서 또한 공하다고 하는 것이 바른 말이라고 하나니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몸이 있다는 견해[身見]를 공이라 하며 나아가 한결같은 도의 공에 들어가면, 이러한 공을 곧 평등공이라 하리니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대덕 아난이여, 몸이란 견해가 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다르지 않으므로 몸이란 견해가 곧 이 공이며, 공이 도와 다르지 않나니 도와 다르지 않으므로 도가 곧 이 공인 것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무명(無明)과 유애(有愛)를 겁내고 명(明)과 해탈을 좋아한다면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두 가지 모양이 있으면 해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탐냄·성냄·어리석음을 겁내고 3해탈을 좋아하거나, 네 가지 뒤바뀐 생각[四倒]을 겁내고 네 가지 상[四相]을 좋아하거나, 5개(蓋)를 겁내고 5근(根)을 좋아하거나, 6입(入)을 겁내고 6신통(神通)을 좋아하거나, 7식주(識住)를 겁내고 7조도법(助道法)을 좋아하거나, 8사(邪)를 겁내고 8성도(聖道)를 좋아하거나, 9중생(衆生)의 거처(居處)를 겁내고 9차제정(次第定)을 좋아하거나 10불선(不善)을 겁내고 10무루선(無漏善)을 좋아하거나, 유위계(有爲界)를 겁내고 무위법(無爲法)을 좋아하거나 하면 이것은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대덕 아난이여, 이 일체가 다 흔들림이며 다 희론이기 때문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만일 흔들림이 있거나 희론이 있으면 마음이 곧 스스로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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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며 제멋대로 경계를 반연하여 망상에 의지하여 무엇을 성취한다 합니다. 이러한 법을 자재(自在)라고 이름하나니 자재하므로 교만심을 내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러한 비구를 증상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대덕 아난이여, 어떤 것을 유위계(有爲界)가 공하다고 하는가? 공으로 공에 들어간다 하면 이것을 비구가 증상만이 있다고 합니다.”
대덕 아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어떤 것이 비구로서 증상만이 없는 것입니까?”“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그 안이 고요하면 곧 밖이 고요하여서 일체 경계가 혹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거나, 혹 있거나 혹 없거나, 혹 함이 있거나 함이 없거나 흔들림이 없고, 또한 망상도 없고 망상 아님도 없으며, 둘도 없고 하나도 없으며, 공덕의 장엄함도 없고 장엄 아님도 없으며, 희론도 아니요 집착도 아니며, 비로소 온갖 법의 평등을 보되 또한 평등함도 없고 평등 아님도 없으며, 어떤 한 가지 법도 능히 평등하다거나 평등하지 않다거나 할 것이 없나니,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아니하며, 망상도 없고 망상 아님도 없으며, 또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망상이란 것을 보지 않나니, 해탈을 향하여 과지(果智)의 증(證)을 얻고서 동요함이 있다는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와 같은 비구는 증상만이 없는 도반이며, 또한 희론이 없고 나와 남의 도반이라는 생각을 멀리 하고 모든 애착을 놓나니 온갖 애착에 애착하지 않는 까닭이요, 모든 반연과 각관(覺觀)·사유(思惟)를 여의어서 사유와 해탈과 해탈향(解脫向)에 취할 자가 없이 다 고요하여, 이 고요한 인연으로 이것이 나의 몸이니 나의 것이니 하는 것을 없애고,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가서 어떤 법이라도 알고 향하고 끊고 증득할 것을 보지 않습니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수행하면 증상만이 없나니, 비고 평등한 까닭에 온갖 법이 평등하여 위와 아래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혹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가히 할 짓이나 하지 못할 짓이나, 누(漏)가 있거나 없거나, 혹 세간법이거나 출세간법이거나, 함이 있거나 함이 없거나, 이러한 위와 아래로 흔들림은 망상 아님이 없으며, 또한 이러한 모든 법을 보고 알지도 아니하고 다 평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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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이렇게 아는 자는 훌륭한 해탈[善解脫]이라 이름합니다. 이런 비구는 증상만이 없는 것이니, 이런 뜻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만일 어떤 비구가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줄을 안다면 만일 허공을 움직이려 해도 손댈 데가 없듯이 사문의 법도 또한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이 법을 설할 적에 2백 비구가 모든 번뇌를 끊고 무루해탈(無漏解脫)의 법을 얻었다.
그 때에 보상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어떤 것이 보살의 증상만이 없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온갖 지혜의 마음과 무엇에 견줄 데 없는 마음과 삼계에 가장 거룩한 마음으로써 모든 성문(聲聞)·연각(緣覺)·외도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마음에 편히 머무르고 또한 온갖 선근을 수행하나니 더욱 증진하기 위한 까닭에, 중생을 교화하는 까닭에, 바른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는 까닭에 다른 중생을 위하여 일체지심(一切智心)을 설하나니, 이 마음은 여실히 근본이 평등한 줄을 알고는 그 마음의 체성을 들은 바와 같이 일체 중생의 체성을 깨달아 알며, 온갖 법의 체성을 깨달아 아는 까닭에 일체 선근의 체성을 깨달아 알며, 일체 선근의 체성을 깨달아 아는 까닭에 보살의 체성을 연설할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이 보리살타(菩提薩埵)가 여실하게 수기를 말하는 것이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보시하되 베풀어 주는 데 따르며, 원하는 것에 따라 베풀며, 모든 나머지 보시에 일체가 걸림이 없으며, 베풀되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집착함 없이, 깨달음도 없이, 아는 것도 없이 하면, 아는 것이 없으므로 곧 이것이 공이다. 능히 이렇게 보시의 체성을 알게 되며, 보시의 체성을 안 까닭에 여실하게 비롯함[如實始]의 체성을 알게 되며, 여실하게 비롯함의 체성을 안 까닭에 모든 법의 체성을 알게 되며, 모든 법의 체성을 안 까닭에 일체 중생의 체성을 알게 되며, 일체 중생의 체성을 안 까닭에 보살의 체성을 말하게 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보시청정이라 말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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