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경(大般若波羅蜜多經)

대반야경-790-158

근와(槿瓦) 2016. 10. 11. 02:34

대반야경-790-15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786 / 2116]

...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4념주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4념주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 대비 대희 대사와 18불불공법과 일체지와 도상지와 일체상지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부처님의 10력이요, 내지 이것이 일체상지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은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허깨비같고 꿈같고 형상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광명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허공의 꽃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신기루[尋香域]와 같고 변화로 된 일과 같은 것과 5취온(五取蘊)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허깨비와 같은 것 등이요, 5취온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함과 멀리 여읨과 생김이 없음과 소멸이 없음과 물듦이 없음과 청정함이 없음과 모든 쓸모 없는 이론이 끊어진 것과 진여와 법계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와 평등성(平等性)과 이생성(離生性)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고요함이요, 내지 이것이 이생성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고요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고요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고요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함과 덧없음, 즐거움과 괴로움, 나와 나 없음,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 공과 공하지 않음, 모양 없음과 모양 있음, 원 없음과


                                                                            [787 / 2116]

원 있음, 고요함과 고요하지 않음, 멀리함과 멀리하지 않음, 물듦과 청정함, 생김과 소멸함,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 샘이 있음과 샘이 없음, 착함과 착하지 않음, 죄 있음과 죄 없음, 세간과 출세간, 생사에 속함과 열반에 속함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항상함이요, 내지 이것이 열반에 속한 법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항상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항상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항상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미래 현재와 착함 착하지 않음 무기(無記)와 욕계의 매임[] 색계의 매임 무색계의 매임과 배울 것이 있음 배울 것이 없음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음도 아닌 것과 견도(見道)에서 끊을 바 수도(修道)에서 끊을 바 끊을 바가 아닌 것과 안에 있음 바깥에 있음 두 중간에 있는 법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과거요, 내지 이것이 두 중간에 있는 법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과거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과거 등의 이치는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과거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시방의 긍가(殑伽: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의 온갖 여래 응공 정등각(應正等覺)과 모든 보살과 성문승들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시방의 세계요, 내지 이것이 성문승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시방세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시방세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시방세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모든 법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보살마하살이요, 내지 이것이 반야 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저는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에서 이미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저로 하여금 반야


                                                                            [788 / 2116]

바라밀다와 상응한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치라 하시나이까. 그러므로, 만일 이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친다면 반드시 후회함이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인연(因緣)이 화합해서 임시로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 두 가지 임시적인 이름은 5()에서 말할 수 없고, 12() 18() 6() 4성제(聖諦) 12연기(緣起)에서 말할 수도 없고, 탐냄 성냄 어리석음과 온갖 전() () 수면(隨眠) 견취(見趣) 불선근(不善根) 등에서 말할 수도 없고, 4정려 4무량 4무색정에서 말할 수도 없고,


5안과 6신통에서 말할 수도 없고, 나와 유정 내지 아는 것과 보는 것에서 말할 수도 없고, 열 가지 따라서 생각함[十隨念]과 열 가지 생각[十想]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공 무상 무원 6바라밀다에서 말할 수도 없고, 4념주 내지 8성도지에서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의 10력 내지 일체상지에서 말할 수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 내지 변화로 된 일 같은 것과 5취온 등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고요함과 멀리 여읨과 생김이 없음과 소멸이 없음과 물듦이 없음과 청정함이 없음과 모든 쓸모 없는 의론이 끊어진 것과 진여와 법계와 법성과 실제와 평등성과 이생성에서 말할 수도 없고, 항상함과 덧없음 내지 생사와 열반에 속한 법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과거 미래 현재 내지 안에 있거나 바깥에 있거나 두 중간에 있는 법에서 말할 수도 없고, 시방의 긍가의 모래 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들에서 말할 수도 없나니, 왜냐 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모든 법의 모임과 흩어짐은 모두가 얻을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위에서 설명한 5온 등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오며, () () ()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오며,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 독각 여래와 그 모든 법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이름이 있고 이름이 없는 것은 모두 말할 수 있는 곳이


                                                                            [789 / 2116]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옵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모든 이름은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이 모든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이 모든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이치에 의하여 모든 법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 이름이 보살마하살이요,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저는 이 두 가지에서 대상과 이름을 이미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저로 하여금 반야바라밀다와 상응한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치게 하시옵니까. 그러므로 만일 이 법으로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친다면 반드시 후회함이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습으로 반야바라밀다를 설명한 것을 들었을 때에 마음이 잠기지도 않고 근심하거나 뉘우치지도 않으며 그 마음이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결정코 이미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서 머무름이 없는 방편으로써 머무는 줄을 알겠사옵니다. "


그 때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물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물질은 물질의 성품이 공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물질은 물질의 공이 아니요 이 물질의 공은 물질이 아니로되 물질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물질을 여의지 않은지라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느낌 생각 의식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물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눈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눈의 영역은 눈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뜻의 영역은 뜻의


                                                                             [790 / 2116]

영역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눈의 영역은 눈의 영역의 공이 아니요 이 눈의 영역의 공은 눈의 영역이 아니로되 눈의 영역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눈의 영역을 여의지 않는지라 눈의 영역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눈의 영역이며,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도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눈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뜻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빛깔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빛깔의 영역은 빛깔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법의 영역은 법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빛깔의 영역은 빛깔의 영역의 공이 아니요 이 빛깔의 영역의 공은 빛깔의 영역이 아니로되 빛깔의 영역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빛깔의 영역을 여의지 않는지라 빛깔의 영역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빛깔의 영역이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도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빛깔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법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눈의 경계 빛깔의 경계 안식의 경계와 눈의 접촉과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눈의 경계는 눈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눈의 경계는 눈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눈의 경계의 공은 눈의 경계가 아니로되 눈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눈의 경계를 여의지 않은 지라 눈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눈의 경계이며,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눈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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