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경(大般若波羅蜜多經)

대반야경-785-157

근와(槿瓦) 2016. 10. 10. 02:57

대반야경-785-15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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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눈의 경계고 나아가 이것이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눈의 경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눈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눈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귀의 경계 소리의 경계 이식의 경계와 귀의 접촉과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귀의 경계고 내지 이것이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귀의 경계 등의 이름은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귀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귀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코의 경계 냄내의 경계 비식의 경계와 코의 접촉과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코의 경계고 나아가 이것이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코의 경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코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코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혀의 경계 맛의 경계 설식의 경계와 혀의 접촉과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혀의 경계고 나아가 이것이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혀의 경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혀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혀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몸의 경계 감촉의 경계 신식의 경계와 몸의 접촉과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몸의 경계고 나아가 이것이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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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몸의 경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몸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몸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뜻의 경계 법의 경계 의식의 경계와 뜻의 접촉과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뜻의 경계고 나아가 이것이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뜻의 경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뜻의 경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뜻의 경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계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지계고 나아가 이것이 식계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지계 등의 이름은 모두가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지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지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고 나아가 이것이 괴로움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명과 지어감 의식 이름과 물질 여섯 감관 접촉 느낌 애욕 취함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무명이고 나아가 이것이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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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무명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무명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무명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탐냄 성냄 어리석음과 온갖 전(纏) 결(結) 수면(隨眠) 견취(見趣) 불선근(不善根)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탐냄이고 나아가 이것이 불선근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탐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탐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탐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4정려와 4무량과 4무색정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4정려고 나아가 이것이 4무색정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4정려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4정려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4정려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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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제 37 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9. 무주품 ② 


 "세존이시여, 저는 5안과 6신통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5안이요, 이것이 6신통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5안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5안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5안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나와 유정과 내지 아는 것 보는 것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나와 유정이요, 내지 이것이 아는 것 보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나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나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佛隨念]과 법을 따라서 생각함[法隨念]과 승가를 따라서 생각함[僧隨念]과 계율을 따라서 생각함[戒隨念]과 평정을 따라서 생각함[捨隨念]과 하늘을 따라서 생각함[天隨念]과 숨을 따라서 생각함[息隨念]과 싫어함을 따라서 생각함[厭隨念]과 죽음을 따라서 생각함[死隨念]과 몸을 따라서 생각함[身隨念]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이요, 내지 이것이 몸을 따라서 생각함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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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덧없다는 생각[無常想]과 괴롭다는 생각[苦想]과 나 없다는 생각[無我想]과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不淨想]과 죽는다는 생각[死想]과 온갖 세간은 즐거울 수가 없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과 밥을 싫어한다는 생각[厭食想]과 끊어진다는 생각[斷想]과 여읜다는 생각[離想]과 사라진다는 생각[滅想]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덧없다는 생각이요, 내지 이것이 사라진다는 생각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공 무상 무원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공이요, 내지 이것이 무원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공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공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공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보시바라밀다요, 내지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옵니까. 세존이시여, 이 보시 바라밀다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보시바라밀다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보시바라밀다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 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4념주 4정단 4신족 5근 5력 7등각지 8성도지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4념주요, 내지 이것이 8성도지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4념주 등...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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